The Day, 진실과 허상의 전이(轉移)

난다 개인전 NANDA solo exhibition

2011.11.07 – 11.20
통의동보안여관

현대 생활문화에서 사진의 의미와 예술가의 작업

21세기에 들어 사진은 고가의 장비와 조작의 까다로움을 수반하는 고급취미나 예술의 전유물에서 누구나 쉽게 일상을 기록하고 유희 할 수 있는 소통문화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한다. 대중의 일상에서 사진은 특히 기억하고 싶은 어떤 것을 ‘쉽게’ 가시화하는 매체이며, 그 기능은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 개인의 개별적 사이버공간 안에서 배가된다.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사건을 기록-기술하는 행위의 대체물로서 사진은 그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일반사진이 지닌 지시적 성격과 언어로서의 기능은 불특정 다수 혹은 개인이 추구하는 자기발언 의지와 결합하여 사진이미지를 매개로 소통하는 현대인의 일상적 생활문화로 이어지며, 디지털 카메라와 웹 사이언스의 기술발전이 이룬 소셜 네트워크의 확장에 가시적 밀도를 더 한다.
난다는 현대 대중의 소통문화에서 사진의 의미와 예술가/자신의 사진작업과의 개연성을 묻는다. 이미지의 상징성이 일반 언어가 지닌 의사전달의 추상적 한계를 유연하게 한다는 본질적 차이와 더불어 그녀가 주목하는 점은 사진을 통해 구현되는 현대인의 기록과 자기 표현욕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안에 용해된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허상의 현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난다는 우리의 생활문화에서 가장 보편적인 사진의 기능을 “기념일”을 기억하는 방식에 두어 사람들의 ‘특별한 기념일’과 권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모호한 기념일’에 관한 경험과 해석을 프로젝트“The Day, 진실과 허상의 전이(轉移)” 안에 병치시킨다. 기념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대중 속 한 인간의 삶과 현실을 공감하고, 아울러 신개념의 허울 아래 정치와 시장경제가 조작하는 기념일의 실체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들의 기념일과 자본의 기념일

본래 “기념일”은 국가와 종교체제가 만들어낸 거시적 행사방식의 하나로 그 이면에 사회통치를 겨냥한 권력의지가 작용하였음은 자명한 일이다. 정치의 제도적 산물인 기념일은 오늘날 다양한 성격을 띠며 대중의 생활양식 안에서 보편화 된다. 이는 가족, 건강, 환경, 지역문화의 범주로 확장되어 크고 작은 축제의 형식을 취하며, 나아가 개개인 다수의 참여의지를 움직이는 문화운동으로서 까지 그 기능을 넓혀 간다. 인간의 삶이 외형적으로나마 법질서의 일방적 제약에서 벗어나 사회참여의 자율성이 인식되어지면서 기념일은 대중적 일상에 유희(?)를 선사하는 ‘하나의 사회적 장치’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난다는 기념일에서 묻어나는 속성을 전제로 그것이 지녀야할 진정한 가치를 진단한다. 현대의 삶에서 기념일의 의미와 기능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상이한 “기념사진”들을 통해 구체화한다. 두 가지의 작업경로를 거쳐 드러나는 사람들의 사실적 초상과 상상적 무대에 의한 치밀한 연출사진이 그것으로, 그녀는 이 실행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기억의 진실과 현대인의 ‘어긋난 욕망’을 이야기한다.

작업의 첫 번째 실천행위로 작가는 웹서비스가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구조 안으로 들어간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업내용을 공공연히 하고, 누군가로부터 기념사진 촬영을 신청 받아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배경으로 의뢰인들의 어떤 특별한 날을 촬영한다. 거여동의 한 미용실에서의 초상사진은 단편영화 감독 겸 제작자인 C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찍은 것이다. C씨는 남편의 불안정한 수입을 고려해 미용사로 전업한 아내의 사업장에서 사진을 촬영, 이를 그들의 결혼기념행사로 대신한다. 파고다공원 앞 중년의 여성은 식민지시절 일제로부터 빼앗긴 부친의 재산을 환수 받고자 노력하는 L씨의 모습이다. 그녀에게 삼일절은 민족의 거국적 기념일이기보단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이어받은 자신의 인생을 대중에게 호소하는 특별한 날인 것이다.
기념일을 통해 인간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기억하는 행위에는 그 성격이 개인적이든 집단행동을 동반하든 이를 행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의식(儀式)을 수반한다. 이는 인습적으로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지나 한 시대의 문화사회적 인식과 의미규정에 따라 그 형식이 변화하기도 한다. 기념사진은 이와 같은 의식의 맥락에서 참여자를 볼거리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들이 촬영을 위해 취하는 다소 어색한 행동은 사진이 갖는 재현의 성격과 함께 연출의 특성을 추가한다.

난다의 근작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작업은 기념사진의 연출적 요소를 극적 상황으로까지 치환한다. 대중의 소소한 일상과 그들만의 삶에 배어 있는 기념일에 대한 의미를 기록하는 사실적 초상과는 대립적으로 범상치 않은 연출사진을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심층에 자리한 ‘욕망의 병리적 실체’를 신랄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자본의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이 조장한 발렌타인 데이의 현실과 이로부터 파생된 ‘변종의 데이들’은 우리 사회에 형성된 신개념의 기념일들이다. 그것은 일상의 일시적 해방을 즐기는 현대인들에게 일탈의 자극제로 작용하며, 우리의 생활문화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기념일보다 강한 중독성을 띤다. 난다는 이러한 기념일들과 이를 탐닉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냉소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한다. 그녀의 사진이미지에서 인간은 화려한 무대와 거기에 배치된 각종 상징물들에 종속된 하나의 물체/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상품으로 전락한 인간내면의 실체는 ‘물질에 경도된 속물의 표상(White Day)’으로 드러나거나 ‘소유의 탐욕과 노출증(Valentine’s Day)’ 혹은 ‘성도착증적 무기력(Black Day)’의 상징체로 가시화된다. 또한 현대인의 집단의식(意識)은 영어조기교육 집착현상에서 비롯된 한국적 “할로인 데이”와 양돈농가의 소득장려로 포장된 “삼겹살 데이”에서 비문화적 제도에 함몰된 괴이한 상태로 형상화된다. 자본과 체제의 생활문화가 산출한 현대인의 의식은 그 허위적 현실 안에서 공동사회의 가치규정이 지녀야 할 기준점을 상실한 것이다. 인간은 유희와 소비의 충동 앞에서 스스로를 물성화하고, 이와 관계하는 개개인의 욕망은 성적 도착이나 물질에 의한 자기과시와 무비판적 집단동요의식 등 심리의 변질과 문화적 불균형의 구조에 놓여있는 것이다.

김 숙 경/ 전시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