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개인전
아무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 일시 : 2023.12.15 – 2024.1.7
  • 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 3
  • 운영시간 : 12:00 – 19: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Minji Kim solo exhibition
Where No One is Born Anew

  • Date: 2023.12.15 – 2024.1.7
  • Venue: Artspace Boan 3
  • Hours: Tue-Sun  12:00 – 19:00
  • Closed on Mondays
  • Free Admission

Credit

  • 리서치 : 김민지, 서예원, 유지영
  • 서문 : 서예원
  • 설치 및 제작 : 안민환
  • 조명 : 서가영
  • 디자인 : 신상아
  • Research : MinJi Kim, Yewon Seo, JiYoung Yoo
  • Exhibition Introduction : Yewon Seo
  • Installation Manufaturing :  MinHwan An
  • Lighting :  Gayeong Seo
  • Graphic design : Sangah Shin

미래의 인간의 몸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는 요가 수련의 경험과 미래의 몸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요가 수련을 통하여 감각하는 몸의 무게, 질량, 움직임에 대한 서사를 전개하며 인간의 몸을 되짚는다. 신체의 물리적 한계, 노화, 미래의 신체, 진화 등의 이야기는 ‘몸’이라는 공간을 한정함과 동시에 벗어나는 신체성을 드러내고, 이를 둘러싼 유연한 시간의 감각에 주목한다.

본 전시의 영상 <루카에게>는 ‘호모 압센티아(Homo Absentia)’라는 새로운 종을 가설하여 미래의 몸을 그린다. 단단한 뼈와 탄탄한 근육이 물렁해지고, 온몸을 돌아다니는 혈액은 증발해버린, 진화한 미래 인간인 ‘호모 압센티아’는 이 땅의 공동 조상이자 가장 첫 진화 단계에 있는 인간종 루카(Luca)를 찾아헤맨다. 

관객들은 침대 구조물에 누워 영상 속 호모 압센티아의 서사와 사운드 가이드를 따라가게 된다. 가이드는 몸 전체를 서서히 자각하게 하고, 의식적 이완을 통해 긴장을 덜어내어 몸이 증발하는 경험으로 안내한다. 관람자는 어느새 느껴지는 몸의 새로운 감각에 다가간다.

물질적이고 형상이 분명한 ‘몸’은 보통의 의지에 따라 가눌 수 있다. 팔꿈치에서 어깨로, 척추의 위 아래로, 상피조직이 양 옆 신경조직으로, 눈가 주름이 미세한 떨림으로, 산소가 콧구멍 안으로, 혈액이 장기로 흘러 움직인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는 언어적 생각이나 의식적인 상상 혹은 기억으로 신체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언어적 상상은 청각적 신호와 인지적 사고를 거쳐 몸을 반응하게 하고, 기억 조각은 허공에 돌다가 그것 자체로 의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의식조차 사라지고 오롯이 ‘몸’만 존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또한 철저한 의식이거나 착오일지라도.

김민지 개인전 《아무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Where No One is Born Anew》은 ‘몸’이 (비)의식적인 순간과 관계할 때 경험하는 감각과 이에 동반하는 순환적 시제와 다차원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영상과 설치, 작가적 세계관은 모두 ‘몸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조건과 맞물려 상응한다. 영상의 첫번째 이야기 〈루카에게 Dear. Luca〉(2023)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의 조상이자, 다차원 세계에서 존재하는 ‘루카’를 등장시킨다.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던 종족 호모 사피엔스 이후 과학 발전을 이룬 인류는 ‘호모 마키나’로 진화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모두 멸종하여 영상의 화자인 ‘호모 압센티아(Homo Absentia)’의 시공에 이르게 된다. 질량이 없는 몸을 지닌 그들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에 대해 이야기하며, 압축적 시제의 가장 끝 지점에서 과거의(혹은 미래에 있을) 루카에게 편지를 쓴다. 몸을 둘러싼 텅 빈 무중력의 지대, 힘의 영향으로부터 해방을 향한 안녕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두번째 이야기 〈몸 만지기 Touch–Body–Eyes〉(2023)는 호모 압센티아가 안내하는 몸의 가이드이다. 이 작업은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몸을 뉘인 상태에서 시각적 경험은 제공하지 않으며, 신체와 청각적 감각에만 집중하도록 안내한다. 가이드는 신체의 세부를 지칭하고 각 부분을 하나의 단위로 제안하고, 가상의 범주 안팎에서 몸의 움직임과 물성, 질량을 자각하게 한다. 이 탐구의 흐름은 몸의 물리적 한계와 동시에 부재를 노출시키며, 궁극적으로 ‘몸이 사라지는 감각’은 탈-신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이행한다.

마지막 영상 〈깨어있는 잠 Wakeful Slumber〉(2023)은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의식적으로 몸 전체의 긴장을 풀어주는 요가의 송장자세[1]로 관람하기를 제안한다. 미래의 몸으로서 관람자를 호출하고 다시금 질량과 중력 없음을 환기한다. 몸의 이완을 위해 잠을 권하는 듯하지만, 깊은 자각 수준에서는 의식을 작동하게 하는 ‘반수면’ 상태에 가깝다. 이완을 의식하는 반수면 상태는 논리적 배치에 동조하지 않고, 무의식과 내면에 기댄다. 시각을 배제하고 영상의 목소리만으로 흩어지는 본 지시는 지적으로 사유되거나 분석되지 않는다. 그것은 호흡을 지속하면서 숨의 간격, 공기의 리듬과 흐름으로 자각의 순환을 이룬다. 자각의 순환은 결국 신체 중 배꼽으로 통하여 엄마의 몸과 연결되고, 그곳의 재생으로부터 깨어있는 잠을 수행한다.

잠을 반-유도하는 것만 같은 짧지 않은 영상 시간과 목소리, 설치물, 웹사이트는 아트스페이스 보안의 텅 빈 유리 공간과 얽힌다.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목소리’는 몸체를 통해 발산되고 내부와 외부로 퍼져나가 동적인 수면 상황를 만든다. 비가시적 존재인 목소리는 시각적 전제를 드러내지 않을 때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가시적인 존재들은 가시적 반경에서는 몸을 감추지만 수단이 아닌 자체로서 궁극적인 것을 상상하게 하고, 단일 체계의 산물인 시각성이 지닌 견고함에 균열을 낸다. 이 전시가 조우하는 유리 건축 공간이 균질하고 무수하게 채워져야하는 근대 공간으로 상징된다면, 비가시적인 목소리는 유리 표면을 휘젓는 힘이 공간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일 것이다. 인식의 질서가 지배한 공간을 다면적 외부로, 웹으로 확장한다.

웹사이트 〈사라진 이야기 Disappear〉(2023)는 전시의 사전 워크샵을 진행한 참여 예술가들의 창작 텍스트들이 소개되는 장이다. 이 장은 ‘사라지는 몸’에 대한 탐구와 공동의 시간을 각자 고유의 관점으로 공유한다. 이 웹사이트의 구성은 워크숍 경험에 대한 단상이나, 픽션적 세계관 혹은 ‘몸’에 대한 리서치 등을 에세이, 소설, 시의 언어로 풀어 낸다. 관객들은 작가의 작품 외에 전시 주변의 일련의 시간들과 과정을 웹사이트와 설치 형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아무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Where No One is Born Anew》은 몸이 사라진 미래의 어느 순간에 도착할 방향을 건넨다. 비가시적이지만 존재하는 몸은 신체가 없기 때문에 다른 지시로 감각을 의도하는 것이 아닌, 몸 자체로서 철저히 몸을 감각하는 것과 같다. 이제 그 순간으로 이행했다면, 얽매이지 않는 몸, 어느 곳이든 존재할 수 있는 몸, 영원히 존재하는 몸, 아무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몸은 가능하다.

(글. 서예원)


[1] 사바아사나(savasana)라고도 불리우는 ‘송장자세(Corpse pose)’는 요가에서 의식적으로 긴장을 낮추는 행법으로, 고대 과학 사드라에서 파생되었다. 이 의식을 수행하는 안내서 요가니드라(Yoga Nidra)에서는 ‘잠’을 몸의 이완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보통 안락의자에 몸을 맡기거나 커피나 술, 담배를 하거나 TV를 볼 때 보통 긴장을 푼다고도 하지만 이는 감각의 전환에 가깝다. 요가에서 말하는 참된 이완은 ‘모든 것을 넘어선 경험’이고, 절대적인 이완을 위해서는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와미 싸띠아난다 사라스와띠, 『요가 니드라』, 한국요가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