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보안여관
2016년 세번째 기획전시

<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 >

주최/공간 : 통의동 보안여관
참여작가 :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 신학철(아카이브)
객원큐레이터 : 신양희
전시 디자인 : 배지선
일시 : 2016년 8월 31일 ~ 9월 30일 (11:00 – 18:00 / 월요일, 추석당일 휴관)
전시토크, 오프닝 : 2016년 9월 12일. 오후 5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 본 전시는 2016서울루나포토페스티벌 기간중에 열립니다.

이 전시는 미술가가 사랑했던 인민 혹은 인민을 사랑했던 미술가 를 가시화하는 전시로,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 작가가 참여하며, 신학철의 1980년대 이후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도 병행한다.

앞의 세 작가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났거나 관찰했던 인민을 추적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담아낸다. 신학철 작가의 아카이브는 긴 시간 역사와 인민의 관계에 주목했던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작품 슬라이드 상영, 과거 인터뷰, 여러 필진의 글과 작품 이미지를 병치한 인쇄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기획 의도

우리 시대는 왕이나 귀족이 통치하던 시대와 달리 국가가 인민을 통치한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쓴 국가는 자신의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집합체로서, 국가는 인민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이는 그릇된 진술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인민의 것이 아니라 계급적대적인 상황을 봉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레닌에 따르면 “국가는 계급들의 화해 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다. 국가는 계급대립들이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곳에서,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을 때에,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한에서 생겨난다. 바꿔 말하면, 국가의 출현은 계급대립들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국가와 혁명』, 레닌, 16p)이었다. 레닌이 진술한 것처럼 국가의 출현은 계급 간 대립을 억제할 필요에서 생겨났고 동시에 계급 간 충돌 속에서 생겨났으므로,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것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국가는 결국 정치경제를 지배한 자들의 것이자 그들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아무리 국가가 민주주의를 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질서와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즉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주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 대해 체계적 폭력을 사용하기 위한 조직(『국가와 혁명』, 레닌, 139p)”이라는 레닌의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민주주의 또한 국가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때, 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신을 내포할 수 없다. 현재의 국가는 표면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떠받드는 권력 기구로서 자본과 한몸이 되어 인민을 통치한다.

이처럼 국가가 자본의 운동을 견인할 때, 인민은 한낱 인적자원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을 국가의 발전 혹은 자본가의 자본을 증식하기 위한 도구로 규정한다면, 인민은 현질서에 복무하고 체제 유지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민은 이 사회를 견인해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인민이라는 말은 억압되고 왜곡되어 왔고 지금도 수면 아래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문제를 떠나 인민이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존재해왔고 지금도 사라진 존재들이 아니다. 인민은 국가-자본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국가-자본에 적대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이러한 인민의 존재를 구체화한다는 것, 특히 미술의 언어로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민을 재현한다는 것에 대한 필연성이 없을 때, 그것은 유효하지 않은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미술에서 민중으로 그려졌던 인민은 역사적 변화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들 예술가들이 재현하고자 했던 인민의 모습은 허구일 수도 있지만 실체이기도 했다. 국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어떤 희생마저도 정당화되었던 시대를 지나 인민이 역사의 주체로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술이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당시 민중미술에서 인민의 모습이 착취와 억압으로 희생되는 모습으로 그려졌든 혹은 어떤 변화를 동인하는 낭만적이고 실존적 모습으로 그려졌든 그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인민의 모습이었다. 이제 그러한 힘을 갖는 인민의 모습을 미술의 장에서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미술의 언어가 다양화되고 분화되면서 예술가 개인에게 현실 세계가 침잠하는 동안, 그 개인의 내면을 통해 드러난 세계의 모습에서 사회의 명증한 상과 그 내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는 일은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이 전시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는 미술가가 사랑했던 인민 혹은 인민을 사랑했던 미술가를 가시화하는 전시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규정된 인민에 대한 전제는 깔려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술가들이 마주한 인민의 모습을 미술의 언어로 드러낸다. 먼저 참여작가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났거나 관찰했던 인민을 추적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담아낸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신학철의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를 병행한다.

신학철은 1980년대 이후 자신의 조형언어와 사회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이제 일군에서는 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신학철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빌려 80년대 민중미술을 복원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수탈당하고 수난당한 인민에서부터 역사적 주체, 소시민으로서의 인민 등 자신이 마주한 인민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고, 이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과 인민에 대한 현재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으로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 작가의 기존 작업이 인민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재현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서평주가 한국근현대사를 통해 관철되었던 국가의 폭력과 권력을 비판적 읽어내고자 했다면, 홍진훤은 자본과 권력의 힘에 밀려나간 사람들에 관심을 두면서 그들이 사라진, 부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들과 달리 이우성의 작업은 자신의 삶과 자신 주변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 좀 더 개인적인 서사를 재현하고 있다. 이들 작업의 방향은 다르지만 이 전시에서는 인민이라는 주제어를 바탕으로 모종의 공통된 지점을 찾고자 한다.

이 전시는 세 명의 젊은 작가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의 작품과 신학철 작가의 작업을 통해 인민을 마주하려는 예술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인민을 현재화하고자 한다.

글. 신양희 객원큐레이터

신학철 아카이브

한국미술에서 민중의 이름으로 인민이 재현되었던 것은 1980년대 이후다현실에 대해 침묵했던 1970년대의 미술을 지나 예술가들은 민중의 삶을 관찰하고그들의 삶에 주목한다예술가들은 민중을 때로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궁핍하게 그리거나 억압받고 수탈당한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지만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그리기도 했다그러나 19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재현되었던 인민의 모습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소멸한다이러한 상황에서도 인민에 대한 재현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신학철 작가의 작업에서는 그것이 명증하게 지속된다작가는 70년대 미술의 형식적 실험에 몰두했다면, 80년대 들어 현실을 직관하면서 역사와 인민의 필연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한국근대사연작, <한국현대사연작의 고양된 형상을 이루어내는 주체는 인민으로이들은 삶과 죽음의 모든 에너지를 역사의 이름으로 떠안는다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매체를 통해 습득한 여러 사건을 콜라주몽타주로 밑그림을 조합하고이를 다시 그려냄으로써 여러 서사를 하나의 응축된 역사화로 보이도록 만든다한편 근현대사 연작 이외에도 노동자농민중산층과 같이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계급의 모습은 개인으로 표현된 그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며국가의 지도자나 권력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사진 콜라주몽타주 작업에서 두드러진다사회를 향한 신학철의 시선은 명확하다그의 역사의식과 인민의 관계는 전형적이므로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이 전시에서는 신학철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작품 슬라이드 영사과거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또한 신학철의 작업과 인민에 대한 스물 하나의 응답에서는 작가큐레이터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그의 작업과 인민에 대한 현재적 시선을 텍스트로 담아낸다.

① 1980년대 초– 2000년대 초 작업 필름 슬라이드

② 신학철의 작업과 인민에 대한 스물 하나의 응답

    강선주강태훈김민김성우김혜미남선우학동로와정박석모박인호양유연이민구종민이진실임승현주혜진최수정최윤정진욱한재섭황여정

③ 영상자료

신학철 아카이브 구성을 위한 자료 및 작품 이미지 등은 한재섭 씨가 제공하였으며필름 슬라이드영상자료는 신학철 작가와 아르코미술관이 제공하였습니다.

신학철, 갑순이와 갑돌이-한국현대사, (130x200cm)x8, (122x200cm)x8, 2002

신학철, 갑순이와 갑돌이-한국현대사, (130×200cm)×8, (122×200cm)×8, 2002

신학철 아카이브

서평주

한국의 근현대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서평주는 이를 여러 매체로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한다그의 비판이 향하는 곳은 국가를 통치하는 자들이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며작가는 이들을 향해 똑바로 살아라라는 일침을 가한다자본과 권력 이면에 작동하는 모종의 원리를 헤집으면서 나름의 주장과 서사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작품에서 피지배계급의 결여나 박탈감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다만 그것들은 어떤 풍자나 위트를 통해 상쇄되어 왔다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두 명의 인물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두 가지 영상을 상영한다여기서 작가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자를 자처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전유해낸다. <꽃병>의 내레이터는1970년 후반과 1980년 광주학살 시기 학생운동을 했던 인물이다무력 투쟁이 사라진 자리에서 작가는 꽃병에 함축된 의미를 통해서 현재 순화되어 버린 운동에 대한 고민을 끌어낸다이 작품과 함께 상영되는 <우리인민>은 한 활동가와의 인터뷰가 바탕이 된 것으로 작가는 그에게서 여러 정치사회적 사안뿐만 아니라 인민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그 응답으로 구성된 한 편의 영상과 인터뷰집에는 인터뷰어의 진술과 작가의 의도가 간접적으로 교차한다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작가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모순을 계급적으로 인식하고자 시도한다.

서평주, 꽃병, 비디오, 9분, 2015

서평주, 꽃병, 비디오, 9분, 2015

이우성

이우성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습자신이 마주한 삶의 풍경을 천에 그리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그가 포착한 일상의 단면은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다이번에 작가는 이성복의 『극지의 시』중 박영석신동민강기석 안나푸르나 원정대가 남긴 마지막 일기를 모티브로 두 점의 걸개그림을 전시한다이 세 인물은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 등반 중 연락이 두절되어 실종된 산악인이다작가는 이 사고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찾았지만사고를 면밀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여정을 상상한 그림을 그린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남벽(南壁아래에서의 산악인들의 열정은 <남벽 아래서>에 그려진 안나푸르나 남벽의 기개를 통해 전달된다또 다른 작품 <당신은 왜 산에 오르십니까?>는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고위로도 아래로도 나 있지 않은 길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는 이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여러 프레임 안에 그려진 단편적인 그림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작가의 응답이자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어떤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이처럼 작가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를 이들 산악인들에 기대어 드러내고자 한다.

이우성, 남벽 아래서, 천 위에 수성 페인트, 210×210cm, 2016

이우성, 남벽 아래서, 천 위에 수성 페인트, 210×210cm, 2016

홍진훤

홍진훤은 무언가 결여되고 소외된 풍경을 응시하고 수집하는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그는 철거가 예정된 주택의 내부밤의 휴게소를 찍었으며제주 강정마을밀양후쿠시마오키나와 등 사건의 발생지들을 찾기도 했다작가는 의도적으로 인물을 찍지 않지만이번 전시에 전시되는 연작 <노래하듯웃지 않도록>에서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산재인정을 둘러싼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투쟁과 마주하면서 구체적인 인물들을 포착한다그렇지만 작가는 이들 노동자와 가족을 피해자나 투쟁가로 그려내기 보다는 일상을 담담히 살아내는 모습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투쟁과 시위 현장을 벗어난 이들의 집을 방문하여 이야기와 식사를 나누고그들의 초상사진과 함께 사건 이후의 흔적을 발견한 사진을 찍었다전시에서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앓게 된 한혜경 씨와 백혈병으로 별세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연관된 사진을 전시한다한혜경 씨 어머니의 얼굴과 물속에 담긴 그녀의 신체전기 스위치를 끄고 키려고 했던 그녀의 손짓이 남긴 흔적은 직접적 발화를 유보하며 관객들을 바라본다이는 황상기 씨의 얼굴과 그가 사용하는 물건이 놓인 방의 일부를 드러낸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산재인정을 둘러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일상인의 모습으로 담아내고자 하며힘겨운 투쟁은 역설적으로만 암시한다.

홍진훤, 노래하듯 웃지 않도록, 디지털 프린트, 2016

홍진훤, 노래하듯 웃지 않도록, 디지털 프린트, 2016

Talk

전시토크 및 오프닝 리셉션

일시 : 2016년 9월 12일 (월) 오후5시.
장소: 통의동 보안여관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33)

참여: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 (참여작가), 최성우(통의동 보안여관 대표), 신양희(추적자 전시기획, 객원큐레이터), 신학철(패널)


작가들이 사랑한 인민, 인민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전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숱한 말들. 80년대 부터 이땅의 인민을 줄곧 그려온 신학철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됩니다.

<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 > 짜장면 심야 전시토크

대한민국 전시역사상 , 아니 우주 전시역사상 최초의 심야 여관방 짜장면 전시토크 합니다. 보안여관 2층 꽃무늬벽지 방의 장소가 협소하므로 딱 5명만 모십니다. 밤 8시 보안여관 앞에서 만나서,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2층 꽃무늬벽지방에서 어둡고 퀘퀘하고 진득한 짜장면에 소주, 짬뽕국물에 연태고량주를 마시면서 <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 >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이 사랑한 이들을 생각합니다.


일정.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시간. PM 8:00 – PM 10:00
장소. 통의동 보안여관 (2층 꽃무늬벽지방)

* 참가신청자 중 신청이유가 분명한 딱 5명만 함께 합니다.


짜장면 심야전시토크 신청
https://goo.gl/forms/tSkWtCQLiMekU0SF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