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럭03 – 첫번째 공부
두럭03 첫번째 공부모임은 크게 두개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이문재 시인의 ‘ 생태, 공유, 예술가, 두려움 없는 미래 (가제)’에 관한 두럭03을 위한 여는 말이 있고, 두번째는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가 진행하는 ‘ 내인생의 두장면’이라는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이 됩니다.

강사소개

이문재

20대 초반부터 시를 썼고 20대 중반부터 기자생활을 했으며 40대 후반,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요즘 문명전환에 관한 공상을 자주 한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

2007 – 제7회 노작문학상, 2005 – 제5회 지훈문학상, 2002 – 제17회 소월시문학상,
1999 – 제4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1995 – 제5회 김달진문학상

2016 – 타인의 땅, 2014 – 심장을 켜는 사람, 생각해 봤어?, 지금 여기가 맨앞, 2012 – 시인의 오지 기행 고요로 들다, 2009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2008 –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희 좀 해주세요, 2007 – 공간 가득 찬란하게, 산책시편,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 2006 – 이문재 산문집, 2005 – 별빛 쏟아지는 공간, 2004 –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제국호텔, 2003 – 미리내 언덕에서, 내가 만난 시와 시인, 2001 –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1999 – 샘물이 바다로, 마음의 오지, 1988 – 내 젖은 구두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1982 – 시운동 5

이문재 시인_시작노트

지금, 여기 시인이 맨 앞이다.

강의실에서는 또박또박 말한다.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시와 더불어 살아났다가 죽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 번 시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흔치 않지만, 시를 쓰면서 다시 태어나고, 시를 완성하면서 죽는 그런 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시를 통해 시 세계가 전환된다.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시가 몇 편 있다. 느림에 관한 두어 편. 그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다. 자본주의의 속도전에 진저리를 칠 때였다. 도시적 삶에 숨가빠할 때였다. 그러고 나서 에콜로지를 몸속으로 초청했다. 생태적 상상력으로 인간과 세계를 보려 애썼다. 그러다가 도시와 마주쳤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생태적 상상력은 심층적이면서도 포괄적이다. 어떤 자리에서 ‘생태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이렇게 답했다. 에콜로지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탈근대론이라고. 근대의 모든 그늘(빛은 남겨두고)을 걷어치우려는 상상력과 의지, 열정과 실천이 모두 생태론에 포함된다. 지금과 다른 삶, 여기와 다른 사회, 오늘과 다른 문명을 설계하고, 타자와 더불어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나는 생태론의 범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생태적 상상력은 당위나 임무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이때 생태론은 생태정치로 몸을 바꾼다.

생태론은 때로 위험하다. 도덕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선취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태론은 생태 파시즘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가 생태적 상상력과 만날 때는 유의해야 한다. 시의 대상을 보다 예각화하고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생태적 상상력을 사회적 상상력으로 바꾼다. “죽음이 죽었다”랄지 “집이 집에 없다”와 같은 문장은 당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시와 사회’라고 써놓고 보니 민망하기까지 하다. 이 얼마나 진부한 결합인가.

그런데 몇 번 웅얼거리다 보면 시와 사회가 새삼스러워진다. 지난 세기 후반 이후, 사회를 외면하고 현실로부터 멀어진 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바깥을 내다보는 렌즈를 버리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소위 ‘깨진 거울’을 들고 주체 이전, 혹은 주체의 바깥으로 나갔다. 없는 주체, 부서진 주체를 주장했다. 어떤 시는 자연으로 회귀했다. 인간과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나무와 새를 노래했다. 시에 자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시에 창(窓)이 없었다. 시에 독자가 두드릴 문이 없어졌다.

사회적 상상력은 시를 과도한 내면성(여성성, 식물성, 과거지향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으로부터 구해낸다. 낯익은 현실에서 낯선 그 무엇을 발견해내는 사회적 상상력은 교량일 수 있다. 시와 사회, 아니 시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이 또한 강의실에서 주절거리는 것이지만 ‘시가 삶의 구체적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시가 삶과 세계의 문제에 개입하고 간섭해야 독자가 시에 눈을 돌린다. 대체 나의 삶과 무관한 시를 누가 읽으려 한단 말인가. 시와 독자 사이에 삶이 있어야 한다. 시와 사회 사이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꾸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시를 세속도시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끌어내릴 뿐만 아니라 끌어내린 시를 사람들 사이로 널리 펼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아니고 시가 있었으면 한다. 나는 시가 전문가의 특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는 삶의 이야기여야 한다. 더 나은 삶을 도모하는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 삶의 우여곡절, 신산고초, 파란만장과 함께 길을 걸으며 저 앞의 지평선이나 소실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던져졌고, 이야기와 더불어 이야기의 저자가 되려고 하며, 마침내 한 편의 이야기를 남기고 지구를 떠난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야기-시가 우리를 멈춰 서게 한다. 가령,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묻게 하는 시, 이런 삶의 방식의 기원은 과연 무엇인가,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라고 캐묻게 하는 시. 그리하여 절망과 우울을, 무기력과 패배주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시, 그리하여 분노와 저항을 공감과 연대로 끌어올리는 시, 꿈과 희망을 창조적 실천으로 바꾸게 하는 시. 다시 말해 독자에 의해 다시 쓰여지는 시. 독자의 마음속에서, 아니 독자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 그리하여 세속도시를 다시 신성하게 만드는 시. 나는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이런 시에서 시인과 독자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이런 시에서 의미의 독점적 생산자와 일방적 사용자의 구분은 흐릿해진다.

오랜 친구의 시집 뒤에 쓰기도 했지만,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이 지구에 도착한다. 하지만 억압적 양육과 폭력적 교육에 의해 시인의 자질이 거세된다. 시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단순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구하면서도 보편적인 마음이 시의 마음이다. 모든 것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인드라망을 구성한다. 인드라의 그물에서 모든 그물코는 동등하다. 차이가 있을 뿐 차별은 없다. 복잡성과 다양성,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 우뚝 서서 인간과 세계를 다시 보려는 마음가짐. 이것이 시 쓰기와 시 읽기의 핵심이 아닐 것인가.

돌아보거나 둘러봐도, 그리고 내다봐도 암담하다. 인류는 지구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는 것 같다. 우주 또한 인류를 애닯아 하지 않는 것 같다. 지구 생태계에 인간은 암세포처럼 보인다. 이 행성이 인간이란 종을 원한 것 같지도 않다. 누가 농담처럼 말했듯이,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나서 나 몰라라 하는 것 같다. 신은 애프터서비스를 하지 않고 인간은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지구는 큰 병에 걸렸다. 기후에 탈이 났다. 육지와 바다도 오염되고 교란당하고 있다. 인구는 폭발하고 자연 자원은 고갈된다. 하루에도 수집 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자본과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고 예술과 인문학 또한 시장의 외곽에서 신음한다. 종교와 대학 역시 시장전체주의로부터 독립해 있지 못하다. 미래가 희박해지고 있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는 갈수록 졸아들고 있다.

문명사적 대전환이라는 표현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곳곳에서 경고음을 내고 있다. UN은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생태회칙’을 통해 인류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했고, 파리에서는 196개 회원국이 모여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다보스포럼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지구 기온 상승은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전면적 변화를 몰고 온다. 여기에 초고령화, 다문화, 양극화, 인구 폭등, 도시화, 난민, 테러, 신종 전염병 등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은 또 어떠한가. 대중소비사회는 인간을 ‘뇌가 없는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디지털 문명은 인간의 공감능력과 사회적 결속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갈수록 인간이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시와 무관한 것일까. 시의 눈에는 이와 같은 대격변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상하다.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가 아니었던가. 로베르토 웅거의 말을 번안하면, 기억을 예언으로 바꿔내는 것이 시다. 그리고 시의 목소리, 예언의 문장은 기억의 그것보다 더 커야 한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고 현재는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의 시간은 미래다. 미래 뿐이다. 시의 특권이자 책무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회적 상상력을 지구-우주적 상상력으로 팽창시킨다.

빅 히스토리가 있다. 시간대를 138억 년 전 빅뱅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확장시키는 거대 서사. 나는 거대담론을 꿈꾼다. 나는 시가 더 큰 그림, 더 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가 빅 스토리를 말할 때, 우리의 미래가 더 커지고 더 많아질 것이다. 시가 시인보다 더 커야 한다. 시인이 인간보다, 인류보다 더 크고 넓어야 한다. 시인이 역사나 문명보다 더 높고 깊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빅뱅의 자녀이고 우주의 혈연이라는 엄연한 사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시인이라는 자명한 진실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시는 언제나 미래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가 맨 앞이다. *

강사소개

최성우

어릴때 살던집의 창문으로 보이던 손바닥만한 바다를 보면서 어벙하게 살다. 대학에서야 자신의 할일을 깨닫고 미술을 공부했다. 프랑스에서 문화경영학을 전공하고. 80년된 여관을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문화숙박업자가 되었다. 다양한 문화예술기획을 하면서 현재 통의동 보안여관 대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책임겸임교수,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을 하고 있다.

통의동 보안여관 대표 /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조형예술경영전공 책임교수

프랑스 문화성. 문화경영 및 문화정책 부문 연구과정 / Dijon 대학 D.E.S.S. (최고전문가과정) 문화경영.정책 전공 / 파리 1대학 미술사 D.E.A. / 경희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 경희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내 인생의 두장면, 자신의 무늬를 만든…책, 영화, 음악

참여자 각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두장면에 대한 사진, 이미지 혹은 오브제를 가지고 와서. 두 장면을 이야기 하고 자신을 소개 한다. 인생의 두장면을 공유하는 목적은 인생의 은밀하고 내밀한 기억을 통해서. 절대로 순간적으로 진정한 친구가 될수 없는 우리들이 자신의 개인적 주체성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내보이며 . 자유롭고 동등한 주체들로 구축되어야 할 두럭03이라는 공동체에서 더 가까이 서로를 만나기 위함이다. / 자신의 무늬를 만들어온 책, 영화, 음악 리스트 공유합시다.

소요시간 : 각자 10분이내 /  준비물 : 자신의 인생의 두장면을 위한 이미지, 오브제.

Review

드디어…. 두럭03 첫번째 공부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두럭 10강을 열어가는 말로 이문재 시인이 ‘ 지금 여기 시인이 맨 앞이다. ‘ 라는 주제발표를 했고. 이어서 두럭03 작가분의 뜨거운 발언과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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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럭03 참여멤버와 주변인들과 함께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님과 함께 ‘ 내인생의 두장면’ 이라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송곳니, 지금의 아내가된 전 여친의 주전자, 가족처럼 살았던 타국에서의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 처음 자신의 손으로 죽여본 생명체의 깃털, 발간되는 모든 버젼의 책을 사모으는 자신만의 책 등등. 을 꺼내놓으면서 절대로 순식간에 친구가 될수없는 우리들의 간극을 좁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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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에 시작해서 9시끝나기로 예정되었던. 첫번째 모임이 10시 가까이 이어졌으며. 깜짝 게스트로 참여한 유목연 작가님의 ‘ 통일국수’ 나눔도 있었습니다. 두럭02 멤버인 고재욱 작가님도 일본 레지던스 참여중 잠시 귀국중 우정출연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