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개인전

《외곽》

  • 일시: 2021. 04. 07 ~ 04. 28
  • 장소: 아트 스페이스 보안 1 (구 보안여관 전시장)
  • 운영시간: 12:00 ~ 18: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후원: 서울문화재단

Kim Hyesook

Solo Exhibition

Frame

  • Date: 07. Apr. – 28. Apr. 2021
  • Venue: ART SPACE BOAN 1
  • Opening Hours: 12PM – 6PM
  • Closing Days: Every Week Monday
  • Admission Free
  •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이번 전시 《외곽》은 도시공간의 표면을 두른 공간의 기하학에 관한 작업이다.

김혜숙은 공간에 쌓인 시간의 단서들을 모아 선과 면으로 해체,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7 군산, 2018 청주에 이어 이번엔 동두천 일대의 공간들을 다룬다.

기존의 작업을 이어오며 스스로가 느낀 한계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며 매체의 물질성, 사용하는 재료, 작가의 움직임이 담기는 화면의 공간, 그것을 나누는 선면의 다양한 활용에 대해 생각해 본 전시이다.

선과 색이 만나 이루는 면의 배치는 건물을 둘러싼 외벽, 발코니, 창문, 지붕 등의 구조에서 가져왔다. 선택되어진 공간은 그곳을 이루는 선들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이 세로의 직선, 가로의 직선, 대각선, 곡선, 원의 둥근 선 등 공간이 지닌 틀에 관한 기준선이 존재했다. 이 기준선은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되어 화면의 변주를 주는 시작점이 되어준다. 이번 전시는 그것을 바라본다.

도시의 피부를 그리는 방법

박지형 (독립 큐레이터)

겹쳐지는 것들에 대해 말해보자. 김혜숙에게 겹 구조는 작품 제작 방식의 핵심이자 개념적인 근거이다. 작가의 손이 꼼꼼히 훑어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질료의 쌓임이 남는데, 이는 그가 기억을 되새기며 형상을 만들어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종이 위에서 보냈음을 증명한다. 여러 시점의 이동 역시 한 화면 안에 중첩되어 그가 도시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태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 전반에서 도드라지는 질감은 얇은 종이의 결 사이로 스며든 물감의 여러 농담과 샤프의 얇은 흑연이 밟고 지나간 흔적의 레이어다. 이 층위들은 무엇의 지표인가?

포개어진 형태들은 작가가 현실의 공간적 맥락을 시간 축의 영역으로 변환하는 실험 속에서 압축된 기호이다. 도시의 여러 장면들을 관찰하여 그린 그림이므로, 작품들은 특정한 시기의 풍경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연이어 드는 생각은 과연 그의 작업 세계를 풍경화라는 독립된 장르로 명명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작가의 시선이 닿은 중성적인 장소들은 곧 의미를 갖는 풍경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 특히 자연이 아닌 인공적인 사물이나 건축물 등에 집중하는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비켜나갔던 주변부의 시간을 회화적 프레임 안으로 소급시킨다. 그러나 도시로부터 추출된 크고 작은 입자들은 실재에 관한 총체적인 기록에 동원되는 대신 상상적 세계를 구현하는 근거가 된다. 리드미컬한 선의 점진적 이행, 건축 자재의 질감과 대비되는 색의 명암, 대담한 프레임 분할 등 부단히 그 역할을 달리하는 도시의 역동적인 면면들은 구체적 장소성과 역사성을 상실하고 오롯한 시각적 단위로서 새롭게 위치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리얼리티를 담는 풍경화로 속단하기에는 그 이상의 자의적이고 함축적인 작동 원리가 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가 처음부터 기하학적 추상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작가가 2010년대 중반까지 보여준 작업들은 이와 사뭇 다르다. 작가가 군산에서 머물며 관찰한 것들을 엮어낸 < 장미동 >(2015-6) 연작의 경우, 한 화면에 제법 구체적인 골조가 들어서며 건축적 구성물들 간의 비현실적인 결합과 확장이 강조되어 있다. 특히 평면도를 여러 시점에서 관찰하고 부감하듯 이리저리 재조합한 느낌을 주는데, 하나의 연극적 장면을 연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따라서 완성된 작품들은 가상의 장(scene)안에서 가능할 법한 신체적 경험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이와는 달리 전시 《외곽》(2021)에서 선보인 작업들은 인공물로부터 추출한 조형적 단서들을 보다 자유롭게 배치하고 이를 임의의 규칙에 따라 재전유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구조물은 아주 크게 확대되고 또 다른 부분은 작게 축소되며 추상적 패턴을 형성한다. 나선형 계단의 굴곡, 타일 바닥의 그리드, 창문의 형태와 나무 바닥의 질감은 화면 전면부에 교차되며 나타나므로, 관객은 작가가 제시하는 재현 앞에서 3차원적 감각을 상상하기보다는 일상적 단상들이 직조하는 시각적 리듬을 읽어내는 데 집중하게 된다. < Mosaic Tile >(2020-21)이나 < Curve >(2021) 연작의 경우 세밀하게 배치된 기하학적 형상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균형과 긴장, 속도감 등이 도드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 상의 변화는 실제 작가의 관찰 시점과 감정적 상태, 또 도시를 체화하는 방식이 점진적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이는 작가가 때로는 원거리에서, 또 때로는 근거리에서 현실에 몰두하며 공간과 신체 사이의 거리를 적극적으로 조율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세가 반영된 결과이다.

간과해서 안될 또 다른 지점은 작품을 보안여관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영역과 어떻게 연결 지을까 하는 것이다. 보안여관은 6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이라는 한 도시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서있었던 목격자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연결된 매개의 플랫폼이다. 이제는 골조만 남은 건물의 방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과거의 씨실이 짜여 남아있다. 그리고 이곳에 작가가 만든 퍼즐과도 같은 이미지가 날실처럼 엇갈려 올라선다. 역사적 특수성을 띤 무대에서의 전시는 언제나 양가적인 변수로 작동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도는 작품의 개별적인 의미가 축소되거나 장소의 에너지에 작가의 의도가 함몰될 위험을 안는다. 그러므로 전시장의 특수성과 작품의 개념 간에 어떻게 유기적 관계를 이끌어 낼 것인지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이 함의하는 바를 상기해보면, 작가가 여러 곳을 오가며 얻었던 주관적 감각이 엮여 완성된 그림들은 많은 이들의 조각난 시간들이 모여 교차하는 여관의 상징적 의미와 연동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필자는 전시장에서 작품의 일부가 실제 장소와 긴밀하게 엮여 새로운 해석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하는 몇몇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가령 전시장의 계단 난간의 비탈진 선은 < Window >(2021)의 굵은 선들의 연장선이 되어 사람이 오르내리는 이동 방향을 떠올리게 하고, 역으로 작품이 여관의 비어있는 골조를 채워주고 있는 모양새로 보이기도 한다. 줄지어 선 < Balcony Drawing >(2021)는 그림을 감싼 유리면이 여관의 풍경을 흡수하며 그림 위에서 어른거리는 반영(反影)이 된다. 두꺼운 선들의 반복적 배치가 도드라지는 < Curve 3 >(2021)은 여관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의 그림자가 되어주고 있었다. 작품은 공간의 배경으로서 기능하기도 하고 독립적인 체계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외곽》이라는 한 편의 시나리오를 그려 나간다.

필자는 여전히 작가의 눈과 귀, 발과 손이 도시의 어디에 머무는지, 무엇보다 어디로 향해 가고자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 역시도 앞으로는 또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지, 어떤 새로운 감촉들을 쌓아낼 것인지 고심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김혜숙에게 현실의 이미지는 때로 손바닥 두 개면 충분히 가려질 만큼 작고, 또 어떤 때에는 작가의 신체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무한한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그가 느끼듯 우리 모두에게도 도시란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모여 구축하는 물리적 층위이면서, 동시에 예상치 못했던 상상의 장면을 시시각각 발견할 수 있는 곳임을 다시금 이야기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