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틀》

김태연 개인전

  • 전시일정: 2020. 01. 10 ~ 02. 09
  • 전시장소: 아트 스페이스 보안 2 (신관 지하1층)
  • 오프닝: 2020. 01. 10 오후 4시
  • 운영시간: 12:00 ~ 18:00
  • 휴관: 매주 월요일, 설연휴
  • 입장료 무료
  • 후원: 서울문화재단

《Out of Line》

  • Date: January 10 – February 9, 2020
  • Venue: ART SPACE BOAN 2 (B1)
  • Opening: January 10 4PM
  • Opening Hours: 12PM-6PM
  • Closing Days: Every Week Mon, Lunar New Year’s Day
  • Admission Free
  •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xx yy zz xy xyz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 AGECY RARY)

태초에 세포가 있었다. 정말일까.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 이상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정말이다. 그렇다면 코끼리와 쥐의 세포 크기는 얼마만큼 차이가 날까. 사실 둘의 세포는 크기가 같다. 다만 세포를 구성하는 내용이 다르다. 우리가 유전인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 차이 중에 하나다. 모든 생물의 구조적, 기능적 단위인 세포는 이전에 존재하던 세포로부터 유래한다. 김태연의 입방체를 보며 나는 세포를 상상했다. 이 입방체의 기원은 무엇일까. 입방체의 좌표는 어디일까. 입방체가 모여 어떤 (무)생물을 만들어낼까.가로(x), 세로(y), 높이(z)의 길이가 동일한 입방체는 그 자체로 완결된 형태를 지녔다. 한 개의 꼭짓점에서 세 개의 면이 만나고, 여섯 개의 정사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이 큐브는 자기 자신만으로 삼차원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다면체다. 김태연은 동일한 규격의 입방체에 비정형의 사물을 규정된 스코어 없이 삽입했다. 모든 세포에 그 기원이 있듯 입방체 속 사물들은 김태연의 지난 작업을 경유한다. 그의 작품을 일일이 언급하는 대신 김태연의 질문을 통해 입방체와 사물의 이력을 짐작해보면 어떨까.

김태연의 질문은 어떤 판단을 하기 이전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는 일을 개의치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다음의 질문들이 그렇다. ‘작업실이 건물 4층에 있는데 계단이 좁고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 짐을 옮길 수 있을까?’, ‘주어진 물성과 형체를 전제하고 작업하는 일은 수동적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작업에서 주도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김태연은 앞선 질문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서 작업을 잇는다. 예를 들어 일정하지 않은 옛 건물 계단의 칸과 칸 사이에 정확히 들어맞는 나무 조각을 일일이 설치해 계단 전체를 슬레이트로 만든다. 그저 주어진 불편한 환경에 그쳐버릴 뻔 했던 계단은 김태연의 사물로 매끄러운 빗면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상황은 주어진 것에서 창안해낸 것으로 전복된다. 이번 전시의 프로토타입이기도 한 〈The Ruler of Shape〉(2019, 어쩌다갤러리2)에서 보여준 조각은  접자로부터 비롯된 형태들이다. 접자는 길이를 측정하거나 직선의 정확한 선, 형태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즉 도구가 형태를 지배하게 되는 필연적 순서가 선행된다. 김태연은 여기서 주도성을 실험한다. 접자를 겹쳐 세상에 없던 도형을 만들고, 그 도형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한다. 이 실험은 수동성을 주도성으로 치환하고자 했다기보다 수동성/주도성으로 이분화 된 형태란 애초에 있을 수 없음을 다시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입방체와 사물들에는 지난한 슬픔도, 격렬한 환희도, 모종의 애처로움도 없다. 특정한 내러티브를 전제하지 않은 형체들이 큐브 안에서 저마다의 정확한 장소를 찾아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 형체들의 공통점이라면 무르지 않다는 점이다. 단단한 재료는 큐브에 갇히지 않는다. 다시 말해 틀이 내용을 억제하지 않는다. 틀은 사물과 겹쳐진다. 서로를 완곡하게 의지한다. 도구와 형태 사이의 힘의 재배치를 욕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시에 서로의 있음을 명확히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정체화 한다. 틀 안의 몇몇 사물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입방체의 바닥면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려주지만 또 어떤 사물은 중력과 상관없이 입방체 안에 안착해있다. 이 안착의 완결성은 흥미롭게도 틀과 사물 사이의 유동성에 비례한다. 이를테면 입방체 안에서 비틀거리는 상태일 때를 유지한 채로 틀을 덧대야 훨씬 고정이 쉽다. 즉 완결된 상태라고 여겨지는 고정된 모습은, 정지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흔들림과 운동성을 내포한 형태인 셈이다. 김태연은 이번 작업을 소개하며 ‘개운한’ 조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구사한 거의 최초의 수식어였다. 개운하다는 뜻은 좌표가 명확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좌표에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xyz축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로 있는 것일 뿐 판단을 요하지 않는다. xyz축은 무한히 확장된다. 다만 xyz축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무엇을 하며 있을 것인지는 오직 선택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 말로 어쩌면 주도성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