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s Commentary
풍토, 시간, 사람, 쌀 과 밥
매끈한 우주선 같은 완벽한 포장속의 볍씨는 한반도의 풍토, 시간, 사람들을 담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쌀은 식물로써의 벼, 곡물로써의 볍씨, 식량으로써의 쌀, 볏짚은 건축자재 였다. 쌀은 화폐를 대신하고 쌀로 세금을 걷어 들였고 논농사가 모든 근간이어서 ’정치는 치수(治水)’라고 했다. 민족은 기억의 공동체 이고, 풍토와 지역의 시간이 동일 한 생존 운명 공동체이다. 한반도에서는 쌀을 재배하고 밥을 지어 먹고 생존한 사람들이 살았다. 특정 음식재료를 집단적으로 먹고 진화하며 특정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의 내장과 이빨, 우리의 문화, 식탁은 쌀과 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밥은 곡물인 쌀에서 영양소를 해방시키고 물과 불, 그릇을 만나 먹을수록 깊어지는 쌀의 풍미를 끌어내는 쌀 요리의 정점이다. 포도주나 커피의 품종들에 대한 관심들은 많지만 쌀의 품종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한다. 좋은 쌀로 지어진 밥 한 그릇은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먹을수록 깊은 풍미를 우리한테 가져다준다. 끼니로 음식을 같이 먹는 행위인 식사(食事)는 인간의 경이로운 제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와 소통이다. 인간문화에서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원재료를 되찾는 일이다. 기업화된 농업과 음식의 치명적 결함은 자연을 우리에게서 부터 멀리 떼놓는 것 이다. 인간과 자연의 단절은 우리의 식탁에서 부터 치명적이다.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재료를 직접 만져보거나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이 어디서 자라고 누구에 의해서 키워졌는지를 알지를 못한다.
우리는 볍씨 안에 갇혀있는 여러 담론들을 끌어내 동시대 사회와 예술의 경계에서 ‘쌀 ‘을 다시 만난다. 쌀에서 벼와 쌀, 밥 그 이상의 의미를 확장시킨 담론들과 예술가들의 창의적 발상들을 잘 지어진 쌀밥과 함께 다시 우리 몸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시간
쌀이 한반도에서 등장한 것은 약 1만 5000년전으로 충북 청원에서 발굴된 ‘소로리 볍씨’다. 중국 일본 보다 나이가 많다. 소로리 볍씨는 야생종과 재배종 중간형태인 순화종이고. 쌀 재배는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가와지마을에서 5030년 전에 탄화미가 발굴 된 걸로 보아 5000년 전부터 쌀이 한반도에서 재배되었다. 쌀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풍성한 만족을 준적이 없는 곡물이었다. 주식으로 자리잡기는 오래 걸렸다. 한반도에서의 쌀은 오랜 투쟁의 결과 이다. 쌀은 귀족과 특수계층의 곡물이었고 지금은 잡스런 곡물 잡곡이라 불리 우는 콩, 피, 조, 수수, 보리 등이 오히려 한반도의 주식이었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 중에는 13세기, 이양법을 시작한 조선 중기 시대부터 쌀이 겨우 우리의 주식이 되었으니 주식으로써의 쌀의 역사는 600-700년 이다. 한반도에 재배되던 토종 벼는 1000 여종에 이르렀지만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의 통일벼로 인해서 이 땅에서 종으로써 사라지게 된다. 토종벼는 이 땅의 자연적인 선택이었지만 역사와 시간 속으로 강압적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토종벼의 소멸은 슬프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식민정책에 의한 ‘산미증산계획 ‘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품종이 1940년대에 전체 재배 면적의 90%까지 되었다. 박정희는 1960년대 필리핀에서 개발된 난쟁이 밀의 성공을 한국에서 재현하고 싶어 했다. 1960년대 식량증산에 앞장선 것은 농민들이 아니고 중앙정보부 였다. “통일벼로 통일, 유신 벼로 유신”이라는 수확량 중심의 쌀 생산으로 인해 한반도는 오랜 숙원이었던 식량자급에 성공 하게 된다. 그렇게 1970년대 중반 통일벼와 후계품종들이 토종 벼를 이 땅에서 밀어냈다. 쌀의 자급과 수확량은 얻었지만 한반도에서 자생한 토종 벼로 형성되었던 문화와 쌀과 밥의 풍미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밥은 맛없는 식량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반도에서의 토종의 소멸은 생물 다양성의 소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밥의 맛과 풍미, 쌀을 둘러싼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 이다. 그렇게 우리는 ‘밥 맛 없다. ‘라는 속된 표현을 쓰게 된다. 쌀은 세계인구 1/3이 주식으로 하는 곡물이지만 한반도의 쌀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어 쌀이 주식이라는 의미가 흐릿해졌다.
풍토, 지역
신자유주의 시대의 우리는 풍토와 지역을 잃어버렸다. 세계 어디서든 표준화된 시간이 흐른다. 한반도에 1000여종의 토종 벼가 자랄 때는 큰 산 하나를 넘으면 벼의 품종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1910년 이전에는 주막이 12만개(조선주조사)나 있었다니 주막마다 근처 지역의 쌀로 담은 다른 술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괴산 불정 삼방리의 중요무형문화재 70호 “흙살림 벼놀이굿”중에 있는 < 종자타령 >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
알록달록 까투리찰 먼저먹는 황토조라, 여주태생 조동지요 김포토종 자광베라, 밭에심어 보리베요 뻘건수염 돼지찰베, 수염세다 쪽제비찰 보은청산 대추베라 짜리몽당 쫄장베요 늘어지니 버들벤가, 임금먹던 대궐찰베 한가위라 가위찰베, 검은이삭 북흑조요 하얀수염 노인베라 이베저베 많을씨고 ‘
토종벼의 소멸은 종의 소멸뿐 아니라 지역과 농사꾼의 특성의 소멸을 뜻한다. 토종벼 마다 가지고 있는 이름 속에 들어있는 지역과 자신들의 생김새, 농사꾼의 손의 기억을 지워냈다.
사람, 토종, 석유, 손노동
토종벼는 아름답다. 생긴것도 성질대로 거칠고 야생적 이다. 화학비료 만 닿아도 잘 자라지 않는다. 풀들속에서도 꼿꼿히 높이 성장해서 키가 크다. 길들여 지지 않는 자연미를 가졌고. 볍씨 10알만으로도 1000배로 증폭하는 생산적 생명력을 가졌다. 이름도 각양각색 다양하고 생김새도 천차만별 이다. 자신만의 색깔과 성질이 분명 하다. 남을 닮으려 일부러 애쓰지 않고 자신의 땅과 기운에 맞는 스스로의 모습으로 자란다. 토종벼논에 기계가 들어가면 꼬이고 휘말려서 고장이 난다. 제도나 시스템에 안 끼워 맞추어지려고 스스로 애를 쓰는 듯 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토종벼, 토종씨앗만이 아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토종벼를 재배하는 소농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자신들이 키운 곡물에 폭력적인 가해를 하지 않는 농부들에 주목한다. 기계로 1~2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종일 걸려 손으로 홀태를 써서 손으로 볕씨를 털어내고 있는 다품종 소농들이고 생태농업을 지켜오는 이들을 말한다. 풍종을 다양화 하는 것은 기계화된 관행 논으로는 불가능해서 석유농업을 거부한다. 석유농업이나 비료를 땅에 쓰기 시작하면 땅과 자신들의 태도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토종종자를 찾는다는 것은 문화주체성을 가지자는 꼰대적 발상이나, 과거로 돌아갈려는 한갖 향수, 자신의 것을 주장하는 아집이 아니다. 토종종자는 그 땅의 시간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 이다. 전남 장흥에서 만난 이영동 농부는 밭에 가는 것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토종씨앗은 시간과 땅이 만나면서 각자의 개별생태계를 구축하며 얻어가는 자신들만의 정체성 속에서 만들어진 씨앗들이고 종자가게나 자본에 뺏긴 씨앗을 매년 받아심는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땅에서 땀과 정성, 오랜 기간의 육종과정을 애정과 신념들로 거두어서 다시 본인 스스로 자신의 땅에 되돌리는 것 이다.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진지한 탐구, 나에대한 정체성,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최성우, 통의동 보안여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