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리 개인전 Uri Han solo exhibition
《실과 리와인더 THREAD AND RE-WINDER》

  • 일시: 2022. 02. 11 – 03. 02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2 (신관 B1)
  • 운영시간: 12:00 – 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Date : 11. Feb. 2022 – 2. Mar. 2022
  • Venue : ARTSPACE BOAN 2 (B1)
  • Time : 12PM – 7PM
  • Closing Days : Every Week Monday
  • Admission Free

  • 기획 : 현오아
  • 글 : 이한범, 허연정
  • 그래픽디자인 : 개미그래픽스
  • 공간 디자인  : 무진동사
  • 3D 디자인 : 권도하, 김희석
  • 촬영 : 김남균
  • 오브제 : 석다슬, 조혜진
  • 도움 : 김명주, 김문주, 홍효선
  • 협조 :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 Curator: Oh Ah Hyun
  • Text : Han Bum Lee, Yeon jung Heo
  • Graphic Design: Ant Graphics
  • Architectural Design : Mujindongsa
  • 3D Design : Do Ha Kwon , Heath Kim
  • Camera Operator : Nam Kyun Kim
  • Object : Dasle Seok, Hyejin Jo
  • Assistant: Myung Ju Kim , Moon Joo Kim, Hyosun Hong
  • Cooperation : Korean Film Archive  The Paju Preservation Center
  • Supported by Art Council Korea and ARKO Creative Academy

<실과 리와인더>

창고에서 발견된 풍로(風爐)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의 높이만큼 세월은 깊어져 있다.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씨를 살릴 때 쓰시던 풍로에 대한 기억은 이미 희미해져 끊어지기도, 중첩되기도 했지만 두터운 먼지를 안고 있는 사물은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견뎌낸 그 시간을 기억한다. 손으로 휙 돌려보자 이 사물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제안한다. 

  한우리의 개인전 《실과 리와인더》는 사라질 것이 예정된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물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 작가는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점점 설 곳을 잃은 아날로그 무빙 필름을 알레고리로 상정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히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들을 새롭게 감각하여 소외된 세계와 다시 접속하고자 한다. 디지털에 더 익숙한 세대인 작가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서가 아닌, 오히려 낯선 매체와 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물에 접근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총 3점의 영상은 발견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는 발견된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며, 공적인 동시에 사적이고, 사실적인 동시에 허구적이다. 작가는 발견한 천체 지도에서, 동화에서,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사를 가져오는데,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재구성하여 새로운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베르팅커>›(2022)는 실제 존재하는 별자리 파리자리에 착안하여 별자리가 된 사물의 삶을 은유한 작업이다. 1603년 독일의 천구 지도 제작자인 요한 바이어(Johann Bayer)가 만든 천체 지도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에는 51개의 별자리가 표기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파리자리이다. 작가는 유일한 곤충 별자리에 대한 가상의 설화를 꾸며내어 사물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투명한 감각>›(2022)은 독일 하메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서사의 뒷이야기를 다룬다. 카메라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다리를 저는 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이, 이 세 명의 아이들은 피리 소리를 따라 사라져버린 친구들이 남기고 간 사물을 매개로 그들을 기억한다. 사라진 친구 혹은 그 무엇은 필름, 광학적 이미지 등을 은유하는데, 디지털 매체에 잠식당한 우리가 잃어버리게 된 다양한 감각을 환기한다. 

실수로 얻어진 필름 이미지를 스캔하여 만든 영상 <얇고 깊은>›(2022)은 필름 메이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겪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커뮤니티 멤버들은 아날로그 필름과 관련된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장비와 부품 등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제작하고 매뉴얼과 결과물을 공유한다. 사물의 사라짐을 앞에 둔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애정, 그리고 오랜 시간의 대가로 만들어진 다양한 이미지들은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한때 사람들이 주목하고 열광하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퇴장하기 마련이다. 우리 눈에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사물은 시공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기억의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관계를 맺으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는 개별적 존재다. 실타래를 감아 실을 풀어내어 새로운 면을 직조하고, 리와인더가 돌며 필름이 영화의 서사를 만들어내듯 말이다. 사물의 사라짐 앞에서 붙들리고야 마는 우정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사유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현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