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정 개인전 CHAE Soojung solo exhibition
《오늘 하루: 3차 가공 TODAY: 3rd PROCESSING》

  • 일시: 2022. 08. 27 – 09. 18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1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추석 당일(10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Date : 27. Aug. 2022 – 18. Sep. 2022
  • Venue : ARTSPACE BOAN 1
  • Time : 12PM – 6PM
  • Closing Days : Every Week Monday & 10. Sep. 2022
  • Admission Free

크레딧

  • 작가: 채수정
  • 공동편곡 및 엔지니어: 최은철
  • 안무가: 박세진
  • 글: 반이정
  • 설치: 우희서
  •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Credit

  • Artist: Chae SooJung
  • Co-arranger & Engineer: Choi EunCheol
  • Choreographer: Park SeJin
  • Text: Ban EJung
  • Installation: Woo HeeSeo
  • Support: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생각의 연쇄가 낳은 다채롭고 미적인 지점들

반이정 미술평론가

기상청 날씨 정보 1년 통계 도표와 그걸 음계로 옮긴 악보 용지를 한 세트로 묶은 드로잉은 회화 연작과 무용수의 안무 영상 연작을 만든 밑그림인데, 수직 수평선에 가지런히 나열된 숫자나 음계들로 채워진 악보의 짜임새가 주는 첫 인상은 채수정의 2022년 신작을 특징짓기도 하지만, 시점을 확정할 순 없어도 대략 2016년 이후 관찰되는 작업의 일관성이기도 하다. 강수량, 풍속, 적설량, 기온, 운량 같은 기상 수치를 회화로 옮긴 작업에서 비, 바람, 눈, 온도, 구름 같은 구체적인 대상이 묘사되진 않는다. 날씨 정보는 기하학 패턴의 단색 회화로 나타나며 3점 혹은 2점씩 짝으로 묶여 전시된다. 이는 회화를 설치작업처럼 다루는 면모로도 읽힌다. 작년 개인전 <21c21y>(상업화랑 2021)에선 유리 창틀 두 개 사이에 크기가 같은 회화를 끼워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처럼 연출한 회화 설치물 같은 게 있었다.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 태도는 그녀의 작업 계보에서 확인되는 또 다른 일관성이라 하겠는데, 2022년 신작에선 작가의 연출로 무용수들이 날씨를 퍼포먼스로 풀이하는 영상 작업까지 더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포장용 골판지 박스를 설치작품처럼 연출한 (2016)를 만날 수 있다. 설치작업을 회화 거는 방식처럼 벽에 부착한 작업이었다. 주변에 널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 포장 박스를 펼쳤을 때, 십자가의 형태가 반복되는 데 착안을 해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평면과 입체가 혼재된 초기작이다. ’반복되는 일상(경험)에서 자기 스타일 발견하기‘라는 일관성으로 나타난다.

개인전 신작의 큰 줄기는 기상청 날씨 정보를 다원 예술 창작물로 전개시킨 것이다. 비, 눈, 바람은 일상에서 모두가 체감하는 경험이지만 그걸 수치로 나타낸 날씨 데이터는 숫자라는 추상의 영역에 있다. 각종 날씨의 수치는 ‘음-청각’(사운드 작업), ‘기하학패턴-시각’(회화 작업), ‘인체-시청각’(무용 영상 작업)으로 재현된다. 에서 전국에서 우리가 무심히 분리수거하는 일상 포장지로부터 패턴을 발견한 제작 공식처럼, 전국에서 우리가 무심히 확인하는 날씨 정보로부터 패턴을 발견하는 법을 이번 전시가 이어받는다. 채수정의 작품 제작 공식은, 일상 패턴에서 함수 관계를 찾아 거기에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이기로 요약된다. 날씨 정보를 회화로 번역한 작품은 기하학 패턴의 단색 그림들로 나타난다. 단순한 단위가 차곡차곡 쌓여 화면을 구성하는 건 전작들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촘촘하게 붓질을 쌓아 숲을 묘사한 (2018~2020)도 그렇다.

알고리즘은 수학과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 또는 처리의 순서 등을 뜻하는 용어지만, 현대인의 생활에 편의를 도모하는 정답처럼 생활 용어로 쓰이게 됐다. 채수정은 알고리즘 또는 함수를 이용해서 예술이 제작되는 기계적인 공정을 고안했다. 날씨 정보에 따라 미시적으로 변하는 작품의 외형에서 보듯, ‘~에 따라’라는 전제 하에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결과물은 상호연관을 맺는다. 회화 신작에서 강수량은 에메랄드 그린에, 풍속은 내추럴 그레이에 적설량은 후커스 그린 딥에 기온은 피롤 레드에 운량은 코발트 블루에 각각 색채 매칭되었다. 각 날씨 정보마다 개별의 색채와 각기 다른 패턴이 매칭 되어 회화로 출력되었다.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일상 체험에서 각별한 순간 발견하기, 한쪽 값에 따라 다른 쪽 값이 결정되는 알고리즘으로 작품 제작하기. 여기에 더해 채수정 작업에서 선호되는 양상은 상반되거나 이질적인 걸 하나로 묶어 제시하는 거다. 숲이라는 유기적의 공간에 뜬금없이 놓인 정체불명의 사각형 붉은 늪이 등장하는 (2018~2020)같은 회화작업이 그렇고, 이번 개인전에서 각종 날씨가 지닌 촉각성을 회화로 시각화하거나 사운드아트로 청각화하거나 무용 퍼포먼스로 시청각화 하는 변주 방식이 또 그렇다.

날씨 정보를 작업의 밑그림으로 택했으나, 객관적 정보를 또 다른 객관적 결과물로 기계적으로 옮겨놓은 모양새는 아니다. 강수량, 풍속, 적설량, 기온, 운량 같은 입력 정보가 회화로 출력될 때의 색채와 패턴을 정하는 기준은 주관적이다. 날씨 데이터로 제작되는 악보 역시 주관적이다. 요컨대 기온 풍량 강수량 등이 낮을 경우, 낮은 음을 배치한다는 정도의 공감할 만한 기준은 정하되, 0~10mm 사이의 강수량, –9~-4도 사이의 기온, 0~2cm 사이의 적설량…등등의 수치를 음계에서 ‘도’로 지정했는데, 이를 정당화할 객관적 기준은 없다. 나머지 음계, 레미파솔라시 역시 주관적으로 어떤 강수량, 기온, 적설량 등과 매칭 되었다. 객관적인 날씨 수치를 주관적인 악보와 회화 패턴으로 변형하는 태도는, 날씨를 무용 퍼포먼스로 풀이한 신작에선 변형의 폭이 훨씬 크다. 이미 한 차례 채수정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한 악보를 또 다른 창작자(무용수)가 다시 주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니 말이다. 이번에 출품된 무용 퍼포먼스 영상이 각각 강수량, 풍속, 적설량, 기온, 운량 중 어디에 해당하는 지 외부인이 알아맞히는 건 거의 어렵다. 객관적 정보를 고스란히 기술하는 건 예술의 영역이 아니다. 날씨 회화 연작에서 보듯, 객관적 수치에서 주관적인 패턴을 도출하는 생각의 연쇄는 그녀의 스타일과 창작의 기본 동력이자 일상이다.

채수정 작업을 푸는 실마리로 인용한 와 같은 해, 2016년 작가노트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가장 자주 검색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업을 구상한 기록이 있다. 당시 자료 조사 중에 전통 조성調聲을 파괴한 무조 음악가 쇤베르크 검색해서 영감을 얻다가, 쇤베르크에서 머스 커닝햄으로, 커닝햄에서 한네 다보벤으로 생각이 연쇄 되며 영감에 살이 붙는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쇤베르크는 음악가, 머스 커닝햄은 무용가, 한네 다보벤은 미술가다. 셋은 장르적 파괴와 실험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엮일 수 있다. 이처럼 생각의 연쇄는 일상에서 흔히 겪고 흘려보내는 우리 모두의 체험이지만, 누군가는 그 일상 경험을 자기 것으로 스타일화 한다. 채수정은 주변의 일상적이고 무감동한 체험과 객관적 수치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 자료 검색에서 실마리를 준 음악 정보에서, 무용 정보로, 다시 미술 정보로 예술 장르를 도약하는 연쇄적인 생각(입력)은 회화이기도 회화설치물이기도, 음악이기도 음악설치물이기도 한 작업을 거쳐, 이제는 무용 영상에 닿아 다원예술로 출력되는 배경이었을 게다. 다원예술이 최근 몇 년 사이 미술 창작판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 건, 생각의 연쇄 경험과는 별개로, 우리의 미디어 경험이 평면과 입체 같은 장르적 구별이나 청각과 시각이라는 개별 감각에만 갇히지 않는 현실과도 연관이 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