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주 개인전

우리는 사랑할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 일시: 2021. 9. 3 ~ 9. 27
  • 장소: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아트스페이스 보안 3 (신관B2)
  • 운영시간: 12:00 ~ 18: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글: 김세인
  • 그래픽디자인: 금북
  • 공간기획 및 설치: 전재원
  • 촬영: 이의록
  • 후원: 서울문화재단

Sungju Ham Solo Exhibition

We’re no strangers to love

  • Date: 2021. 9. 3 ~ 9. 27
  • Venue: BOAN 1942 ARTSPACE BOAN 3 (B2)
  • Opening Hours: 12PM – 6PM (Closed on Monday)
  • Admission Free
  • Text: Sein Kim
  • Graphic design: Geumbuk
  • Exhibition desigh: Jaewon Jeon
  • Photo : Euirock Lee
  •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밈의 침묵

김세인

세계에 트롤링을 시작한 감염성 폐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란 게 막 공식 확인되던 날, 난 어느 전시장 지하에서 함성주의 그림 한 점을 음침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콘솔 게임에 열중하며 거의 강박적으로 웃어대는, 화면 속 세 인물. TV가 비춘 역광을 단초로 작가가 이지러뜨린 이 세 사람의 웃음-비명이 마치, 그림이 놓인 주변의 침묵을 음각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된 “우리는 사랑할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는 이른바 ‘릭롤링(rickrolling, 뮤지션 Rick Astley의 이름과 trolling의 합성어)’을 유행시키며 영미권에서 밈화된 신스팝 트랙 의 가사 한 구절이 어설프게 자동 번역된 한국어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함성주는 이미지 재생산에도 개입하는 이런 번역적 산출의 문제에서, 번역 대상과 번역 결과 모두에게 배타적일 때마저 있는 양자 사이의 물질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일단 함성주는 어릴 적 아버지가 운영했던 오락실에서의 이미지 경험을 강조한다. 실제로 당시 아케이드 게이머가 일상적으로 접했던 시각 기호란 브라운관의 스캔라인에 투과돼 ‘보기 좋게 뭉게질’ 것을 전제로 짜여진 것인데, 그때의 게임을 현재의 디스플레이 환경에서 실행하면 저해상도 도트의 상태가 앙상하게 드러날뿐더러, 경우에 따라선 실기 플레이에서 반투명 오브젝트로 보였던 것이 사실 체커보드로만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일종의 원풍경의 추동으로 함성주는 본인 눈이 상영하는 것과 그 배후에 있는 무언가 사이의 여러 물질성을 스스로의 캔버스에 회집시킨다. 다만 그의 작업은 그런 물질성을 회화의 툴박스로 장악해 그대로 에뮬레이션하려는 게 아니라, 직관적 의미에서의 ‘회화적’ 결단들 속에 용해시켜 심리적 차원에서 원본에 대한 셀프 트롤링을 감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발견했다 꽂힌 영화의 스틸 이미지, 그걸 출력하는 아이패드나 ‘현생’에서 포착한 무언가를 찍은 사진 등 갖가지 참조 대상의 내용성이, 필름 시대 영상의 질감이라든가 모니터 백라이트의 효과, 또 카메라 렌즈가 저지르는 왜곡 등의 물질성과 분리 및 재조합돼 각각의 작업에 재배치된다. 그 재조합 양상은 언뜻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 ‘파주’에서 얻은 기억과 사이의 관계처럼, 작가와 작업, 또 작업과 작업 사이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완전한 고백이 불가능한 어떤 연결망이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할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는 그래서, 암시적으로 도해된 함성주 개인의 밈플렉스(memeplex)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함성주는 ‘회화’에 약간은 수줍은 괄호를 치고, 이를 앞서 말한 물질적 ‘왜곡’ 자체의 종합으로 두면서, 회화적 왜곡을 개인적 밈의 생산으로 유비하는 것이다.

전시가 마스크라도 쓴 것처럼, 《우리는 사랑할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에는 구체적 표정이 있는 인물을 좀체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언어에 대한 포괄적 이해(comprehension)가 그 언어권의 밈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개인만의 것인 밈이란 영원한 외국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불투명성이 거의 비매개적으로 투명하게 적시된 이미지들이, 켜져는 있지만 동전 넣을 곳이 없는 아케이드 캐비닛처럼 침묵하고 있다.

촬영: 이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