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진축제 개막 11월 1일부터 한 달간
손댄 사진의 편중성이 극심, 축제 균형 무너져
통의동 보안여관 외국 작가 특별전에서 배워야
사진의 관점을 3단계로 나눴고 공부하는 사람이나 전시장에서 보는 사람이나 진지하게 찍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단계는 무엇을 찍느냐의 문제이며 두 번째 단계는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이며 마지막은 왜 찍는지의 문제다.
아마추어들은 무엇을 찍는지의 첫 단계에서 평생 제자리걸음을 한다. 봄에는 어딜 가고 여름에는 어딜 가야하고 가을이면 바쁘게 산과 절을 찾아 찍고 겨울엔 또 뭘 찍을지 잘 알고 있지만 그 다음해 이것을 늘 반복한다. 1년이면 충분히 잊어버릴 시간이니 해마다 뭘 찍으면서 즐겁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행복한 사진 생활을 한다.
어떻게 찍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작가들이다. 이들 또한 남들과 다르게 찍는 것에 몰두하여 평생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상 다르게 찍을 방법 또한 정해져 있어서 하늘 아래 새로운 대상 없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기법 없다.
왜 이 사진이 존재하는지, 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작가는 몇 없다. 다시 정확히 표현하면 왜 찍는지의 문제를 가끔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다음 작업을 보면 또 지지부진하면서 방황한다. 왜 찍느냐의 문제는 알아듣기 좋게 말하면 이 사진은 무슨 발언을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작품발표 왜 하느냐?
11월 1일부터 서울사진축제가 열린다. 2016년의 주제는 ‘서울 신아리랑-천리의 강물처럼’이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청 시민청,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등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본 전시와 특별전이 사진전시이며 그 외 심포지엄, 시민포럼, 사진워크숍 등의 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것은 서울사진축제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와 같이 큰 사진 축제의 정체성은 본전시에 있다. 서울사진축제도 마찬가지다. 1부 ‘경계에서 경계를 바라보다’와 2부 ‘타인의 땅에서 나의 집으로’로 나뉜 본전시에는 한국 작가 21인이 참가했다. 참가를 한 것인지 서울사진축제의 초청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필시 주최 쪽에서 21인의 작가들을 선정했을 것이다.
서울사진축제의 주제와 전시 소개를 보면 내가 제시하는 3단계 중에 마지막에 해당하는 “왜 찍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21명의 작가를 광범위하게 묶어놓고 있는 큰 그림은 이주, 디아스포라다.
» 김규식 » 김홍식 » 문소현 » 원범식 » 성지연 » 한성필 » 김태동 » 조준용
» 안옥현 » 정지현 » 박현두 » 옥정호 » 임노아 » 고정남 » 김상돈 » 유비호 » 송호철 » 박형렬 » 양철모 » 조이경 » 황규태
그런데 21명의 사진가 중에서 스트레이트로 찍은 사람은 몇 명인지 살펴보자. 고정남은 모델에게 설정한 상황에서 연출하여 찍었다. 김규식은 제공된 사진의 크기가 작지만 사진처럼 보인다. 김상돈은 스트레이트로 찍은 사진이다. 김태동은 두 장을 같이 보여주는 딥틱이라고 하는데 보도자료엔 따로 따로 왔다. 김홍식은 렌티큘러 작업인데 찍어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다. 문소현은 어떤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찍어서 나온 사진은 아니다. 박현두는 모델을 불러 건물에서 설정한 연출이며 박형렬은 천과 실로 된 공간 안에서……. 라는 설명을 보니 뭔가 설치한 상황에서 나온 작업이며 성지연은 인물 연출사진이며 송호철은 사진을 영상으로 투사한 것이며 안옥현은 연출한 인물이며 양철모는 그냥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옥정호는 설정된 연출 인물이며 원범식은 디지털 꼴라쥬이며 유비호는 동영상이고 임노아도 동영상이다. 정지현은 일종의 설치, 설정된 연출사진이며 조이경은 동영상, 조준용은 사진을 투사하였고 한성필은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황규태의 사진도 그냥 찍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5명 정도가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나머지도 사진이 아니라고 볼 순 없다. 찍어서 영상으로 쏘더라고 사진이 기본이며 여러 장 합성하더라도 사진이 기본이고 두 장을 나란히 전시해도 사진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연출하든 설정하든 사진은 사진이라고 볼 순 있다.
서울사진축제를 관람할 관객들의 대부분은 스트레이트로 찍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사진을 전공하는 대학생 관객들이라면 만드는 사진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공자들이 다음번 서울사진축제에 선택되려면 그냥 찍어선 곤란하다는 것을 학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인구의 대부분은 그냥 셔터를 눌러서 찍는 사람들이다. 서울사진축제는 사진전공자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찍는 방법에 있어 지나치게 편중된 것이 첫 문제점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는 내용이다. 본 전시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니 읽어보자.
1부 경계에서 경계를 바라보다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세계화로 인한 도시경관의 혼재성과 현대적 디아스포라로 인해 유동하는 도시인의 정체성, 변화된 삶의 방식과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 공동체 내부의 문화적 접합과 틈새를 탐색하는 작업들이 소개된다.
2부 타인의 땅에서 나의 집으로
지금 여기, 서울 디아스포라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세계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서울의 유, 무형적 이주와 사회현상들, 한국 사회의 주요한 쟁점인 거주와 이주문제 등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이웃의 삶의 풍경을 표상한다.
1부는 도시의 세계화로 인한 도시경관이 혼재성과 디아스포라를, 2부는 지금 서울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21명의 작가 사진을 쭉 보고 있으면 연결성이 거의 없다. 21명의 작가 사진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도시, 공간, 익명성, 개발, 인간 등의 키워드다. 디아스포라를 느낄 만한 사진이 없다. 다시 말하면 이 21명의 사진을 놓고 어떤 이름을 붙여도 다 먹힐 것이란 뜻이다. 본 전시의 정체성이 사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따로 논다. “도시공간은 필연적으로 이주를 연상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하겠다면 더 말을 않겠다. 그 주장이라면 세상 어떤 사진을 갖다 두더라도 모두 이주민, 이주, 디아스포라와 상관이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들어있는 모든 사진은 다 이주에 관한 이야기라고 주장해도 될 것이다. 차별성 없이 작가들을 선정했다. 도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한다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사진이 한 장도 없을 수가 있을까? 21명의 작가라면 다양하게 선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설치도 하고 누구는 빔을 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용에서 이 도시에 사는 사람, 이주한 사람, 이주해야 할 사람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작업하는 사람들 중에 도시민을 찍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할 것인가?
이렇게 작가를 선정하고 이런 식으로 본 전시의 주제 이름을 붙이려면 내년부터는 그냥 ‘서울사진축제-무제’로 할 것을 권한다. ‘제목 없음’이라면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붙이든 상관없겠다.
» 돌로레스 마라 » 제랄딘 레 » 콘스탄틴 체르니츠키 » 로랑 크로낭탈 » 파트릭 투른느뵈프
» 리카르도 유이, <라 코스타 베르데>
해외작가 특별전 ‘보이지 않는 도시’는 6명의 외국 작가들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11월 9일부터 22일까지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전시가 열린다. 6명 중에 제랄린 레 한 명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정확한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돌로세스 마라는 파리와 뉴욕에서 초현실적인 거리 풍경을 찍어냈다.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들이 모두 스트레이트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대단히 직설적이면서 은유적이다. 그게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콘스탄틴 체르니츠키는 우크라이나 도시 곳곳에 있는 제철소 같은 도시의 부산물을 찍었다.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로랑 크로낭탈은 과거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 대량으로 지어졌던 아파트 같은 대형 거주공간에 대한 기록 작업이다. 건물 모양이 특이해서 합성한 줄 알았는데 모두다 존재하는 건물이라 한다. 신비스럽다. 거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게 거주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파트릭 투른느뵈프는 중국과 인도 등지의 대규모 건축물 공사 현장을 기록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워낙 규모가 커서 역시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명징하다. 획일화되어 가는 21세기 지구에 대한 입장이 보인다. 리카르도 유이는 페루 출신이다. 그가 선보이는 ‘라 코스타 베르데(녹색의 해변)’는 페루 리마의 해안 개발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개발에 따라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모순적인 상황을 카메라만 이용해 또닥 또닥 잘 보여주고 있다. 다큐멘터리인데 서사에 부족함이 없고 생각의 확장성에도 부족함이 없다.
6명 중에 유일하게 스트레이트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제랄딘 레의 사진을 다시 보고 작가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그는 “나는 거리사진과 자신들의 거주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결합하고 싶어했다. 내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특별히 모든 것이 포즈를 취한 것 같은 순간을 사랑한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허구적인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군중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는 것’이라 말한 것처럼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의 집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부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그들을 편하게 해준다.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서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공을 들인다. 거리에서 익명의 스냅샷을 찍는 것과 연출된 사진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랄딘 레의 사진마저도 완전한 연출과는 차이가 있다. 즉 연출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한국 사진가들 중에서도 연출하지 않은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외국 사진가 중에서도 뻣뻣한 연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번 서울사진축제의 본전시 작가 21명 중에는 인위적이지 않은 인물을 찍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해외 작가들의 특별전을 살펴보고 나니 본 전시의 한국 작가 21명의 작업과 너무 비교가 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1. 현행 방식이라면 서울 사진축제는 내년부터 ‘사진전공자를 위한 축제’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일반인을 위한 사진축제는 따로 만들어야 한다.
2. 현행 방식이라면 한국에선 그냥 손 안대고 찍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웅변하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사진공모전의 사진과 본 전시에 참가한 작가의 구분을 이런 식으로밖에 못하는 것이 서울사진축제를 기획한 사람들의 수준이다.
서울사진축제의 여러 행사 중에 서울도서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언니들이 왔다’ 전시는 파독간호사 50주년을 맞아 1966년 해외개발공사의 모집에 지원하여 독일로 갔던 세 여성의 삶과 일상 공간을 조명한 것으로 50년을 살아온 ‘언니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