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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_20150910

[사진 속으로]닻의 아카이브

송수정 전시기획자
입력 : 2015.09.10 21:16:24 수정 : 2015.09.10 21:30:02

골목에 들어앉은 집들은 번듯하지도, 반듯하지도 않다.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면 마당에 빨래를 널었는지, 장독대 위 화분에다는 뭘 키우는지 정도는 금세라도 알아차릴 수 있다. 원래 담벼락을 붙이고 사는 집들은 전날 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모르는 척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다들 고만고만한 살림들이라 딱히 감출 것이 많지 않기도 하다. 김승택은 이런 집들을 사각형 안에 옹기종기 붙여 놓아 구경하는 재미를 더 쏠쏠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서 길들은 생략되고, 바라보는 위치도 아래로 옆으로 다양해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훔쳐볼 수가 있다. 전봇대를 지나 세탁소 안을 기웃거리고, 지붕 위에 걸린 운동화 한 짝까지도 죄다 눈에 들어온다. 딱히 순서랄 것도 없이, 작품 속에서 눈길이 간 집들을 타넘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살이란 본래 시작과 끝이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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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택, 산수동, 2014

시간과 기억이 켜켜이 쌓은 장소들에 주목하는 김승택의 작업을 뭐라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마우스로 그림을 그린 뒤, 색을 빼기도 하고 칠하기도 한 이 작품은 사진과 일러스트가 합쳐진 콜라주다. 좁은 장소의 구석구석과 그 속에 깃든 사물까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되 선형적인 나열을 벗어나려는 그의 전략이기도 하다.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닻의 아카이브’ 전시에서 소개한 김승택의 작품 속에서는 이렇듯 소박하고 가볍고 정겨운 삶들이 닻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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