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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_20130817

‘문화의 마법’ 이젠 명소가 된 한국의 낡은 건물들
입력:2013.08.17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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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 해마다 300만명이 찾는 오르세 미술관이 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된 이 미술관의 원래 주인은 기차였다. 오르세역은 1900년 만국박람회 때 최첨단 시설로 지어졌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점차 낡은 건물로 전락했다. 폐쇄 얘기가 나올 무렵 정부 박물관국이 나섰다. 역 건물을 ‘역사기념물’로 지정한 뒤 미술관으로 꾸며 1986년 문을 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기차역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갤러리 ‘테이트 모던’도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2000년 세계 최대 갤러리로 개관한 이곳은 원래 버려진 화력발전소였다. 발전소 외관을 유지한 채 전면 개조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영국 뉴캐슬 인근 소도시 게이츠헤드는 폐허가 된 공장을 개조해 발틱현대미술관을 만들었고, 이탈리아 베니스의 낡은 세관 건물은 이제 푼타 델라 도가나란 이름의 박물관이다.

이처럼 수명을 다한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 재생 작업이 국내에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서올 통의동의 지은 지 80년 된 ‘보안여관’.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나그네의 쉼터가 돼준 여관은 2007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지금까지 40여 차례 전시회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서울 성수동 일대의 폐공장과 낡은 창고들은 하나둘 스튜디오나 쇼룸으로 변신 중이다. 뮤직비디오나 화보 촬영장으로 인기가 높고 공연도 열린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거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방치된 사무실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싼 보증금과 월세에 이끌려 이 거리로 온 이들은 ‘문래예술창작촌’을 형성했다. 인천 제물포에 1940년대 세워진 창고, 인쇄소 등은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변신했고, 서울역은 ‘문화역서울284’라는 새 이름으로 전시, 공연, 콘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서울의 명물이 됐다.

낡은 건물만 새 주인을 만나는 건 아니다. 서울 도화동과 효창동을 잇는 새창고개와 연남동 폐철로에서는 ‘경의선 숲길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4월 1단계 공사를 마친 대흥동 일대 760m 구간은 시민에게 개방됐다.

‘공간 재생’은 급격하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적 두려움이 생산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우동선 교수는 “건축물은 당대 진보의 상징이자 성장의 지표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이라며 “역사를 지닌 건물에 새로운 용도를 불어넣어 기억을 훼손하지 않은 채 옛것과 맞닿은 새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공간 재활용의 미학] 文化가 머무는 역… 藝術이 있는 창고

“건축이란 땅 위에 일으켜 세우는 개별적 건축물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가 공유해야 마땅한 문화적 가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건축가 정기용)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11일 오후 2시,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건물 안으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 손을 잡은 엄마들도 있다. 그들이 찾는 곳은 서울역.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기차가 드나들지 않는 옛 서울역이다. 낡은 역은 이제 ‘문화역서울284’로 불린다.

1925년 9월 지은 경성역은 광복 후 서울역이 돼 근현대사의 질곡을 견뎠다. 일제가 건설한 망국의 상징이자 6·25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다. 60년대 이후 서울역은 상경하는 이들이 처음 만나는 우리나라 수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자가용 시대가 열리고 2004년 KTX 개통으로 신역사가 완성되자 옛 역은 제 기능을 잃었다. 버려진 빈 건물엔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 모여들었다. 용도 폐기된 역사는 해가 갈수록 황폐해졌다. 문화재로서 위상을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3년여 공사 끝에 2011년 지상 2층, 지하 1층의 원형이 복원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새로 부여된 독특한 이름에는 목적(문화), 지역(서울), 가치(사적번호 ‘284’)가 모두 담겼다.

문화역서울284에선 요즘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제 ‘아시아프’ 전시가 한창이다. 예스런 벽지 무늬와 창 모양이 고스란히 되살아난 부인대합실, 역장실 등 오래된 역사 구석구석에 개성 넘치는 미술 작품이 자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머물렀다는 귀빈실의 대리석 벽난로 앞에서는 젊은 예술가의 비디오아트가 상영되고 있었다. 최초의 양식당 ‘그릴’은 다목적홀로 변했다. 3층 옛 이발실 자리에는 역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복원전시실이 마련됐다.

기념관을 둘러보던 김민석(19)군은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자랑스럽다. 이런 게 하나하나 모여 과거를 증명하고 현재와 함께 발전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함께 나왔다는 조현익(62)씨는 “역 근처라 오가기 편하고 기차역 자리에서 미술 작품을 보는 느낌이 이색적”이라며 “사라지면 다신 볼 수 없는 ‘역사’의 한 부분을 지금처럼 남겨두니 좋다”고 말했다. 조씨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없앤 중앙청도 남아 있었더라면 역사교육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문화역서울284의 민병직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공간의 의미를 알아주는 분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며 “전시 말고 건물 자체와 그 의미를 보러 오는 분도 많다”고 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전 11시 인천 해안동. 수탈의 관문인 개항장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벽돌 건물 사이를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걷는다. 낡고 붉은 벽돌 위에는 ‘대한통운’ 네 글자가 세월에 빛이 바래 희미하다. 이곳 대한통운 창고(1948년 건립)에서 작가들이 ‘백령도 52560 시간과의 인터뷰’ 전시 준비에 한창이었다. 큐레이터들은 포스터를 들고 금마차다방(1943년 건립)을 오간다. 옛 삼우인쇄소(1902년 건립)에는 왁자지껄한 꼬마손님들이 구경을 왔다. 건물들은 각각 전시관, 커뮤니티관, 교육관 등으로 쓰인다. 1888년 지어진 일본우선주식회사 등 1930∼40년대 건설된 13개 동이 2009년 거대한 스트리트뮤지엄으로 거듭난 ‘인천아트플랫폼’의 풍경이다.

188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해안동 개항지는 근대문물의 관문이었다. 비교적 잘 보존됐지만 쓸모없이 방치되던 ‘근대’를 ‘재생’시키는 작업은 문화계에서 시작됐다. 예술가들이 개항지를 문화공간으로 꾸며 달라고 청원했다. 역사의 터전을 내버려두거나 새 것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갈아엎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이를 받아들였다. 비움과 채움, 기억과 향유, 소통을 콘셉트로 최소한의 신축 건물을 더해 2009년 개항지는 새 출발을 선언했다.

전국에서 수탈된 물자가 열강에 빠져나가던 이곳은 이제 세계적인 예술 교류의 ‘플랫폼’ 기능을 하며 미래를 꿈꾼다. 200여팀이 거쳐 간 레지던시에서는 현재 국내외 39팀 예술가들이 창작 지원을 받으며 작업 중이다. 이들은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해외 작가들과 국제 네트워크도 형성해가고 있다. 얼마 전엔 어린이 예술캠프도 진행했다.

인천시 관동 차이나타운에 점심을 먹으러 왔다 들렀다는 배연지(21·여)씨는 “아트플랫폼이라는데 건물 모양이 공장처럼 독특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김재석(23)씨는 “역사책에만 남을 뻔한 건물들을 보존해 창의적 공간으로 쓰는 것이 보기 좋다”고 했다.

이승미 관장은 “역사와 시간을 간직한 공간들, 쇠락하던 구도심이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재생되면서 창의 넘치는 새 문화의 발상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용산 미군부대 반환지 등 역사적 사건에 연루됐던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공간 재활용의 미학] 재개발 현장은 사회의 민낯… ‘버려진 공간’서 영감을 찾다- 인천아트플렛폼 ‘옥인 콜렉티브’의 비움과 채움

인천아트플랫폼 E동 22호엔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의 예술그룹이 입주해 있다. ‘옥인 콜렉티브’. 지금은 사라진 서울 옥인동 옥인아파트에서 이름을 딴 시각예술가 그룹이다.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작가로 구성된 옥인 콜렉티브는 2009년 옥인아파트 철거현장에서 ‘버려진 공간’에서 의미를 찾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고, 요즘 재생된 개항지에 상주하며 작업 중이다. 지난 14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작업실에서 이정민 진시우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옥인아파트 철거 당시를 떠올리며 “버려진 공간은 아수라장이었지만 혼란 속에 남겨진 느낌이 작업의 여러 요소에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서울 수성동 계곡 인근에 1971년 지어진 옥인아파트는 2007년 인왕산 공원화 계획이 발표된 지 2년 만인 2009년 8월 철거됐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의 인상에서 영감을 얻은 옥인 콜렉티브가 이를 작품으로 표출했다. 이들은 철거현장에 뮤지션을 초청해 공연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벌이고 ‘옥인동 바캉스’라는 제목으로 옥상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진 작가는 “옥인아파트의 역사를 조사하고 주변 지역을 탐색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만나는 재미있는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버려진 공간’에 역사는 물론 정치와 경제도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공간이 곧 사회현상의 집약체란 것이다. 이 작가는 “재개발 문제, 수송동 계곡 주변의 고급 주택화, 표면적으로만 친환경적인 정책, 쫓겨나는 세입자들 같이 흉물로 치부된 건물이 치워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장소’를 옮긴 뒤 예술가의 촉을 곤두세워 공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한 장소에 꽂히면 그 일대를 걸어 다니며 감상을 축적해 적절한 예술행위를 구상하는 식이다. 이 작가는 3년 전 인천아트플랫폼이 문 열 당시 들렀다 받은 인상을 잊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는 “일제시대의 잔재와 근대문물이 남아있고 중국인 거리의 흔적도 존재했다”며 “외면당한 구도심의 쇠락한 느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옥인 콜렉티브는 발원지인 옥인동으로 돌아간다. 현시완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인왕산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공간도 사람도 한곳에서 오래 견디기 힘든 시대에 옥인 콜렉티브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사라져가는 공간에서 그 상징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려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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