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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_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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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청계천변에 가득한 헌책방에서 책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일과 피카디리의 빨간 문 앞에서 가슴 졸이며 영화표를 사던 것도. 기억은 여전히 견고한데 그 기억과 어우러진 공간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속도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다. (2011-02-08)
통의동 보안여관에 투숙하는 법
되돌아보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청계천변에 가득한 헌책방에서 책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일과 피카디리의 빨간 문 앞에서 가슴 졸이며 영화표를 사던 것도. 기억은 여전히 견고한데 그 기억과 어우러진 공간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속도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다.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통인동 보안여관이 바로 그곳. 외관상 오래된 여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이곳에 머무는 이들을 ‘문화투숙객’이라고 일컫는다.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참으로 오래된 곳. 보안여관 앞에 서면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눈 덮인 영추문 앞 길에 위치한 통의동 보안여관의 허름한 외벽은 그 건물이 버텨왔던 몇 십 번의 봄과 겨울을 말해주는 듯 하다. 어느덧 오래된 것이 희귀해져 버린 서울 하늘 아래, 이토록 낡은 건물이 헐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일말의 희열마저 안겨준다. 여관의 작명 치고는 지나치게 엄숙한 ‘보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 이곳의 주된 손님은 이른바 ‘관’과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헐리기 전엔 그곳 중앙박물관이나 근처에 위치했던 문화재청에 볼일이 있던 사람들이 주로 묵었다고 한다. 오래 전, 1936년에 쓰여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전집에 의하면 그는 이곳 보안여관에 머물며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의 문인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단다. 인걸은 간 곳 없지만 장소는 변함없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몇 줄의 글귀와 함께.
지금 통의동 보안여관을 소유하고 있는 메타로그의 최성우 대표는 이 기록에는 약간의 의문점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문헌에 드러난 보안여관의 역사는 1936년 이전부터라지만 건물 지붕 상판에 적힌 건축연도는 1942년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만약 이 기록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거짓말쟁이는 누구인가. 여관의 지붕을 올렸던 미장이? 아님 서정주 선생? 최성우 대표는 솟아오르는 의문을 이렇게 정리해준다.

“건축하는 분들에게 여쭤 보니 아무래도 건물이 증축이 되었거나 아니면 원래 이층이었는데 증∙개축을 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이곳은 일제 시대 때 일본식으로 지어진 건물인데도, 여타의 적산가옥과 출입구라던가 이런저런 형태가 조금씩 달라요. 많이 고친 집일 것이고 1936년 전에도 분명 존재했겠죠.”

통의동 보안여관이 본래의 역할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쿤스트독 갤러리의 주최로 진행된 통의동 경수필전이 그 시작. 전시를 진행하며 보안여관이라는 공간 안에 숨겨졌던 역사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단지 보일러실로만 알고 있었던 여관의 지하공간에는 근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슬라이드와 자료들이 숨겨져 있었다. 곤도 유카코라는 일본 작가에 의해서였다. 크고 작은 전시를 진행하며 통의동 보안여관은 조금씩 오래된 숙박업소 이상의 의미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바로 그 이름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통의동 보안여관은 그 오래된 이름을 버리지 않을 예정이란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를 함축한다. 첫 이유는 이곳이 말 그대로 ‘여관’이기 때문. 끊임없이, 이름 모를 객들이 오가는 여관의 정체성은 인생과 예술의 그것과 참 닮았다. ‘문화투숙객’이라는 용어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더불어 ‘통인동 보안여관’이 가진 본래의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정체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 옛날, 문인들이 잠시나마 머물렀던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21세기에 이르러 색다르게 재구성된다.

통인동 보안여관을 관리하고 있는 메타로그의 사무실 벽에는 프랑스어로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건물은 짓는 것이 아니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등산을 마친 아저씨가,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지나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그런 공간. 통인동 보안여관이 지향하는 바는 의외로 뚜렷하다. 뭐 굳이 거창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그 누구나 한번쯤은 흘낏거릴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 손마디 굵은 촌부에게도 늘씬하게 차려 입은 부인네들에게도 차별 없이 열려있는 문화적 플랫폼과 같은 곳. 통인동 보안여관을 지키는 이들은 그네들의 이 공간이 그렇게 ‘자라나길’ 희망한단다. 비록 허름하고 춥고 심지어는 으스스하기까지 하지만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온기가 계속된다면 이런 소망은 그리 덧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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