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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_20130829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옥집, 어딘가 했더니

[잇! 플레이스 ③]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마을 ‘서촌’···독특한 먹거리도
머니투데이 이슈팀 정선 기자 |입력 : 2013.08.2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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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도 가장 바쁜 도시 중 하나인 서울. 그런 서울 한복판에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동네가 바로 ‘서촌’이다.

보통 한옥마을이라고 하면 ‘북촌’을 떠올리지만,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은 북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중한 사람과 예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서촌에서 여유로운 ‘데이트’를 즐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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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안여관 2. 카페 ‘슬로우 레시피’ 3. 갤러리 ‘류가헌’ 4. 영추문 돌담길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북궁역 4번 출구에서 내려 경복궁 서쪽 영추문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건너편에 보이는 동네가 바로 서촌이다. 경복궁 서쪽 지역을 일컫는 명칭인 서촌(西村)은 넓게는 서울 종로구의 효자동, 필운동, 누하동 등 15개 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동쪽 동네를 말한다.

경복궁과 청와대 부근이라는 이유로 난개발이 억제된 덕분에 서촌에는 1950~6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이 작은 동네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다시 추억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곳이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곳이며 화가 이중섭과 천재 시인 이상, 윤동주 등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살면서 창작활동을 펼쳤던 동네다. 그래서일까. 몇 해 전부터는 이곳으로 이사해 작업 공간을 꾸리는 예술가들이 늘고 있다.

서촌 골목길 데이트는 영추문을 지나 건너편에 보이는 2층짜리 붉은색 벽돌 건물을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가 이중섭이 문지방을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가난한 예술가들로 가득 찼던 보안여관은 지금도 80여년 전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 있다.

보안여관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통의동 갤러리 골목이 형성돼 있다. 모던한 외관의 갤러리 ‘팔레 드 서울’, 한옥을 개조한 카페 ‘슬로우 레시피’ 등이 줄지어 서 있고, 왼편 좁은 골목 구석으로 들어가면 한옥 갤러리 ‘류가헌’ 등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웹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서촌으로 넘어와 카페 ‘슬로우 레시피’를 운영하고 있는 이지선씨는 “이 곳으로 이사 온지는 3∼4개월 됐다”며 “서촌은 번잡한 광화문을 옆에 두고도 조용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동네”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인 서촌 골목길 풍경은 드라마나 영화, 광고의 배경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와 이제훈이 데이트했던 누하동 한옥, 드라마 ‘상어’에 등장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 영화 ‘러브픽션’에서 하정우가 사는 집인 ‘옥인연립’ 등이 서촌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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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6.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7. 옥인상점
서촌에는 볼거리 외에도 옛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먹거리가 있다. 통인시장의 ‘기름떡볶이’와 ‘도시락 뷔페’가 대표적이다. ‘기름 떡볶이’는 한자리에서 55년이나 자리를 지킨 시장 명물이다. 하얀 떡볶이와 빨간 떡볶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 간장, 고추장으로 간을 해 볶아낸 요리다. 돌아가신 원조 할머니의 바통을 이어받은 70대 주인 할머니는 “여기서 학교를 다녔던 40∼50대들이 여전히 찾는다”고 했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도시락 뷔페’ 역시 통인시장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시장 중간에 있는 고객센터 건물 2층에서 5000원을 내고 쿠폰을 산 뒤 빈 도시락 통을 들고 시장 곳곳의 14개 반찬가게, 분식집, 떡집 등을 돌며 원하는 음식을 담아 오면 된다. 2000원을 남겨서 고객센터로 돌아와 밥과 국, 김치를 더하면 도시락이 완성된다.

서촌 골목길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이 흔한 풍경들이 눈길을 끌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서촌의 마지막 오락실인 ‘용 오락실’은 책 ‘서촌 방향’의 저자 설재우씨가 인수해 동네를 연구하고 알리는 ‘옥인상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돌아가신 주인 할머니와의 관계를 묻자 설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 이 오락실 단골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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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오서점 9. 영화 ‘건축학개론’ 누하동 한옥 10. 누하동 이상범 가옥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 5시 무렵. 누하동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 화백의 옛 집(필운대로 31-7)이 나왔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지만 대문은 닫혀 있었다. “계세요?”라고 하자 60대 할아버지 한분이 나왔다. ‘문화유산 지킴이’인 그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와서야 간판이 보여서 관광객이 별로 없다”며 “미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 그 중에서도 일본인 몇명 정도만 온다.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라고 했다.

서촌 한옥마을의 마당이 있는 고즈넉한 한옥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느린 시간 속에 추억을 곱씹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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