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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_200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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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짐 푸는 작가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문인과 군인이 묵었던 그곳, 70년 세월 버텨 문 활짝 열었네
한겨레 hspace 현시원 기자 메일보내기 hspace 박미향 기자기자블로그 hspace
» 짙은 갈색의 담백한 외관, 영추문길에 있는 이 건물의 이름은 보안여관.

짙은 갈색의 담백한 외관, 영추문길에 있는 이 건물의 이름은 보안여관(사진)이다. 청와대와 가까운 곳, 군사정권 시절의 국가적 구호를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다. 70여년의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건물의 역사는 이름의 둔탁함을 뛰어넘어 깊고도 다채롭다. 40년대에는 서정주 시인이 시를 쓰고 지인들이 모여 문학 잡지를 만드는 낭만이 서린 곳이었고 군사 정권 시절에는 보안을 완장에 새긴 청와대 직원들이 하룻밤 묵고 가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더 예전에는 적산가옥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넓은 한옥 지붕, 네모반듯한 방의 구획과 다락이 덩그러니 남아 건물의 뼈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금 이 헐벗은 건물을 채우는 건 방에 짐을 푸는 손님들이 아니라 미술 작가들이다. 18일부터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揮景: 휘경, 사라지는 풍경’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들은 오색찬란한 테이프를 건물 외벽에 붙이거나 재개발 지구에 버려진 삶의 흔적들을 여관 방에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꽃무늬 교자상 위에는 동네에 버려진 벽돌을 올려놓고, 흙벽에는 휘경동 집 벽에 붙어 있던 버려진 액자들이 붙었다. 전시에 참여하는 6명은 모두 휘경동에 작업실을 가진 작가들. 재개발 사업 때문에 철거 현장을 피부로 겪은 작가들은 초토화된 휘경동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을 다양한 작업으로 남기는 전시를 기획했다.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미술 전시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봄에는 ‘통의동 경수필’전이, 지난 8월에는 ‘어번 앤드 디스어번(Urban & Disurban)’전이 이 낡은 건물을 채웠다. 쓰임을 다한 건물이 소리 소문 없이 폐기되거나 번쩍번쩍하는 건물로 탈바꿈하는 대신, 이렇게 도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현재 보안여관 건물의 소유주인 일맥문화재단의 최성우 대표는 옛 건물의 ‘창의적 복원’이라는 말을 새기고 있었다. 그는 “공간과 시간이 어떻게 중첩될 것인가라는,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여관이라는 공간은 결국 불특정 다수가 머물렀다가 떠나가는 곳이 아닌가. 문화예술 작가들의 다양한 에너지가 사회와 만나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고 말했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내년쯤이면 시각예술이중심이 되는 문화공간으로, 또 한번 새 역사를 몸에 새길 예정이다.

글 현시원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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