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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타임즈_20100825

‘눈먼 자들의 도시’ 전시회를 가다
인간의 심리적·사회적 변화를 그린 작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눈이 머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복합문화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는 이 소설과 연계해 지난 19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11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 전시회는 문학의 텍스트를 미술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들은 ‘시각의 마비’와 연결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표면과 이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화이트’다. 소설 속 눈먼 자들이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말한 점에 착안해 작품에 흰색이 들어가 있다. 또한 전시공간인 방과 방 사이의 벽에는 소설의 내용이 일부분 기재되어 관람내내 소설이 주는 의미와 장면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방명상, 서평주, 안세권, 최승훈, 박선민 작가가 참여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잠겨진 방문을 통해 방명상 작가의 ‘통로’를 먼저 보게 된다. 컴컴한 방안에는 사진과 영상이 설치돼 있다. 영상을 보면 차와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 아래 한 여자가 정류장과 같은 곳에 앉아 무언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계속적으로 보여진다. 현대인들의 공허한 심리와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인물들의 심리가 비슷함을 묘사한 작품이다.

서평주 작가의 ‘시력검사표’는 낙서된 신문이 방을 도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려지고 잘려진 신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다. 더불어 시력 테스트 장치가 설치돼 있는데 그 안에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테스트용 글자들이 담겨있다. 눈먼 자들이 살고 있는 집단 수용소에서 보통의 가치와 질서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보편적 가치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얼마나 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2층 계단 앞에 높인 ‘시위자들과 시각 장애인’은 최승훈·박선민 부부작가의 작품이다. 모든 것을 다 감싸고 눈만 보이는 시위자와 눈 이외는 모두 무방비 상태인 시각 장애인을 대비해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눈먼 자들의 모습이 과연 그들만의 모습인지 아니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은 청계천 재개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세권 작가는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했다 사라지는 강력한 이미지와 풍경을 포착하는 작가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 속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도

두 번째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이다. 최수항, 하태범, 김주리 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최수앙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3개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일상의 실험실’이라는 큰 틀 아래에 ‘자율성에 대한 에스키모’, ‘인위적인 균형’, ‘인공획득 면역’이라는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다리가 하나 없는 말 조각, 실험도구처럼 이용되고 있는 의족, 다리가 하나 없는 테이블이 의자에 의지해 균형을 맞춘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능적 장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에 눈이 먼 사람이 한 사람이었지만 전염병처럼 확산되면서 도시가 온통 눈먼 사람으로 가득차 버린다. 결국 이 도시에서 눈뜬 자가 정상인지 눈먼 자가 정상인지를 모르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다. 작가는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다. 기능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진짜 장애인인지 아님 편견으로 가득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진짜 장애자인지를.

‘방’이라는 작품은 너무 많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태범 작가는 눈먼 자들이 세상을 하얗게 보는 것처럼 방을 온통 다 하얗게 칠해놓았다. 이불, 옷장, 주전자 등 세간살이 모두다 하얗다. 그 안을 들여다 본 관람객을 이 방안을 거치고 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사연을 품고 있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마치 소설 속 집단 수용소에 들어오는 각양각색의 인생들처럼.

‘흙, 물’은 사라져 가는 풍경에 집착하는 김주리 작가의 작품이다. 점토로 이뤄진 이층집은 수조 안에 놓아져 있다. 이 작품은 전시기간 내내 조금씩 무너져 내리게 된다. 눈먼 자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도시의 풍경과 우리에게서 없어지고 있는 과거의 풍경이 연계돼 관람객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치유와 회복의 염원을 담아서

세 번째는 치유와 회복의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다. 김진란, 정만영, 권대훈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김진란 작가의 ‘쓸데없는 연습’이 전시되는 공간인 여관 방바닥에는 빨래비누가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져있다. 그 위에는 빨래하는 모습의 영상을 담은 흑백TV가 있다. 소설 속 눈먼 자들에게는 빨래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눈뜬 자인 의사 부인은 눈먼 자들의 영혼이 씻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빨래를 한다. 작가도 매일 비누가 작아지는 동안 세척되어지는 일상의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매주 토요일마다 방을 닦고 청소하는 퍼포먼스가 행해진다.

정만영 작가는 2가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하나는 ‘무서운 도시’이다. 부서져버린 건물의 잔해가 방바닥에 널려 있고 천장에는 무거운 추가 걸려 있다. 그는 여기서 우리가 정말 무너뜨린 것이 건물만인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세워질 건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예전에 화장실이었던 공간을 이용한 ‘스며든 소리 가변크기’ 라는 작품이다. 벽과 바닥에 있던 파이프들을 드러나게 하고 음향을 설치해 물이 흐르는 소리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소리가 하나의 조형언어로 표현되고 있는 작품으로 마치 그 안에 들어가면 샤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권대훈 작가의 ‘일체유심조’는 시간의 흐름과 빛의 방향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을 보여주는 빛 조각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이 마음에 따라 세상도 달라 보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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