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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Live_20121101

촌놈 연출, 돌멩이 주연… ‘마을 영화’를 아시나요

상업영화판에서 ‘추방’당한 한 영화인이 시골을 돌며 영화를 찍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마을 주민은 연기자이자, 연출자이자, 촬영 스태프이다. 12년간 전국을 돌며 마을영화 60여 편을 찍은 한 영화인의 이야기.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어딘지 좀 불편해 보였다. 처음으로 스타벅스에 가봤다며 이를 보일 때를 빼고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 경기도 양평 집을 떠나 3주간 서울에 머문 신지승 감독(49). 모처럼의 서울 체류가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마을영화를 찍는 그에게 서울은 상상력을 제한하는 공간이다. 개와 오리에게 먹이를 주는 보통의 일상이 사라진 자리, 그 여백을 관객이 채웠다. 낯선 도시에서도 ‘완전한 무방비’의 순간은 있었다. 50줄에 가까워 얻은 20개월짜리 쌍둥이를 보자, 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신 감독은 올해 일맥아트프라이즈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부터 일맥문화재단이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 분야 창작자에게 주는 상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번역하자면 공동체 예술. 사회 안에서 예술의 구실을 고민하는 ‘관계 지향적인 예술’을 뜻한다. 올해는 마을영화를 찍는 신 감독을 비롯해 경기도 안양 석수시장에서 공공예술을 하는 박찬응 작가, 한 평 남짓 택시에서 도시의 풍경을 담은 <부초의 초소> 여다함 작가 등 3명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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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5t 트럭으로 마을을 돌며 지역민이 참여하는 영화를 만드는 신지승 감독(오른쪽)과 아내 이은경씨(뒷줄 왼쪽). 그는 쉰 살이 다 되어 쌍둥이를 얻었다.

그런데 신 감독은 수상을 한 차례 거절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후문이 들렸다. 10월8일, <Don’t Worry, Be Worry:지금, 여기 예술의 생태계> 전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갤러리) 앞마당에서 신 감독을 만났다. 전국 방방곡곡 그와 함께한 5t짜리(트럭) 영화사 ‘창시’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시 기간 그는 그 트럭에서 묵었다. 옆면을 광목천으로 둘러치면 그럴듯한 상영관이 된다.

마을영화는 ‘돌멩이의 발견’

신지승 감독은 1999년 지금 사는 경기도 양평 용문면에 귀촌한 이후 12년간 전국을 돌며 마을영화 60여 편을 찍었다. 길게는 수년, 평균 3개월이 소요됐다. 그에게 마을사람은 훌륭한 창작 파트너였다. 이야기 전체를 만드는 건 감독이지만 주민들이 직접 어떤 에피소드를 찍을지 아이디어를 냈다. 이들은 연기자였고, 가끔 촬영 스태프로도 분했다.

신 감독에게 마을영화 작업은 ‘돌멩이의 발견’이었다. 돌탑마을영화라는 이름도 거기서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돌멩이. 그걸 쌓아올린 돌탑은 무속신앙에서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돌멩이로 상징되는 많은 사람’에 대한 영화를 찍고 있다. 다른 이름은 ‘공동체 영화’다.

37세에 부인인 연출가 이은경씨와 양평 시골로 귀촌했을 당시만 해도 잠시 피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상업영화계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추방당했다’고 표현한다. 투기화된 상업 영화계 구조에서 소수만 영화를 만드는 현실에 절망했고 농촌으로 들어갔다. 무일푼인 그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은 동네 주민들과 작업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동네 할머니와 아이들을 출연시켰다. “하다 보니 다른 가능성과 만나게 됐죠. 그들의 천재성을 발견한 겁니다.” 그런 ‘진화’ 과정 중에 낸 첫 작품이 <우리 마을에 횡단보도가 생겼어요>(2005)이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농촌의 아이들, 노인, 가출소녀, 장애인, 러시아 고려인, 미혼모, 소년원생 등 다양하다. 이주민 여성이 고향으로 갈 비행기 값을 마련하기 위해 금광을 발견한다는 내용의 <금광 속의 송아지>(홍천), 외계인 부자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 <반딧불 축제를 찾아온 외계인>(무주), 옛 탄광을 배경으로 하는 <사과 꽃 피고지고>(문경) 등 지역과 사람,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이야기는 바뀌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스스로 등대영화제, 달빛영화제 같은 마을 영화제를 꾸리기도 했다. 2010년에는 세계 최초로 세계마을영화축제를 열었다.

세계마을영화축제 개막작이었던 <살아가는 기적>에는 노인이 여러 명 나온다.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할머니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실제로 촬영하는 기간 중에 고양이가 죽었다. 그 내용을 영화에 담으며 신 감독도 눈물을 훔쳤다. 고양이 장례식을 하면서 살다 살다 별걸 다 한다고 구시렁거리는 할머니들의 연기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피란 중 고아가 된 할머니의 삶과 버려진 고양이가 자연스레 겹쳤다. 우연과 무작위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그렇게 그의 작품은 시간과 자연이 만든다.


ⓒ신지승 제공
신지승 감독의 마을영화에서 주민은 연기자이자 촬영 스태프이다.

상업영화가 놓치는 일상의 스토리텔링

신지승 감독에게는 자신만의 ‘영업비밀’이 있다. ‘마을사람들을 도구화하지 않는다는 동물적 신뢰’가 관건. 그는 트럭이나 마을회관에 머물며 몇 개월간 주민들 삶에 근접한다. 마을도 계급사회다. 이장을 위시한 힘 있는 사람들은 마을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신 감독은 많이 싸웠다. 화면으로 볼 때 빛나는 건 힘센 자들이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한 노인 중에는 고인이 된 이도 적지 않다. 영화에 등장했던 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 역시 농약을 마시고 뒤따랐다. 한 장 찍어달라던 사진이 금세 영정사진이 되기도 한다. 급속도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어 10년 뒤에는 더 이상 마을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 같다.

신 감독은 처음 일맥아트프라이즈 선정 소식을 듣고 수상을 거절했다. ‘스님이 수행한다고 상을 주진 않는다’는 논리였는데, 주최 측의 설득에 결국 수락했다. 마을영화 작업을 일종의 놀이나 미담으로 보는 시선이 특히 불편했다. “주민들은 단순히 연기 흉내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온 삶을 내던지는 거다. 이제까지 소수의 영화 생산자가 만든 걸 보기만 했다면 마을영화는 기존의 스토리텔링에서 놓치고 있는 일상의 예술을 구현한다.” 상업영화에서 흔한 복수와 죽음의 스토리텔링이 우리를 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삶의 매력이 돋보이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무념의 미학을 배웠다. 3주의 서울 체류 후, 그의 생각이 좀 달라졌다. 보안여관에서 동료 작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만났고 마을영화에 매진할 힘을 다시금 얻었다.

말만으로는 그의 작업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뷰를 마친 그가 영화 촬영을 서둘렀다. 보안여관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영화를 찍어 상영회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은 즉흥의 향연이었고, 빠르지만 진지했다. 그가 직접 연기 시범을 보였다. 또 다른 수상자 박찬응 작가가 그의 연기 지도를 받았다. 그렇게, 통의동에서 또 하나의 돌탑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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