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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_20150710

낡고 음침한 여관의 변신은 무죄…갤러리·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박정현 기자

입력 : 2015.07.10 14:15 | 수정 : 2015.07.1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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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사진=박정현 기자

수십년전 지어진 낡은 여관들이 역사·문화공간으로 변신중이다. 세월을 못이겨 낡은데다 웬지 이름조차 촌스럽거나 음침한 여관들은 수십년간 쌓아 놓은 이야기 거리를 한 개쯤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거리가 문화 콘텐츠로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게다가 심지어 일제시대부터 지금 자리를 지켜 온 여관들은 대부분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다. 숙박업의 특성상 일찌감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옛날 여관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이름을 문화공간, 전시회장, 게스트하우스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이 시퍼런 1930년대 경복궁 돌담길 건너편에 보안여관이 자리를 잡았다. 보안여관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시인 서정주다. 그는 1936년 3개월간 통의동 3번지 보안여관에 소설가 김동리, 함형수와 함께 머물며 시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냈다. 보안여관은 1930~40년대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문학청년 예술가들이 투숙하던 곳이다. 당시 서정주의 룸메이트가 바로 함형수였다. 또 지금의 청와대 근처이기 때문에 아주 예전에는 공무원이나 장관들이 밤샘 근무를 하다가 이곳에서 가끔 쉬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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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사진=박정현 기자

보안여관은 2004년까지 숙박업소였지만 이후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했다. 문화예술공간을 운영하는 회사인 메타로그아트서비스가 보안여관 부지를 매입해 기존 건물의 모습을 간직한채 이곳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금도 보안여관엔 절반정도 뜯어진 꽃무늬 벽지, 부서진 벽과 먼지 낀 창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엔 가수 서태지가 ‘소격동’ 뮤직비디오를 보안여관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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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벌교 보성여관/사진=보성여관

한국을 대표하는 장편소설 명단엔 태백산맥이 빠지지 않는다.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전남 보성군 벌교가 무대다. 소설 속 군상들이 머물던 숙소 이름은 ‘남도여관’. 남도여관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자리잡은 보성여관을 모델로 했다. 보성여관도 일제시대 만들어진 곳이다. 1930~40년대 벌교는 상업 중심으로 일본인이 많이 오갔던 곳이다. 당시 보성여관은 지금 기준으로 5성급 호텔, 투숙객은 주로 일본인이었다. 여관 2층엔 일제시대의 흔적인 다다미방이 남아 있다.

보성여관은 광복 이후 숙박업소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턴 가게로 변했다. 이후 2004년 문화재로 등록됐고 리모델링 사업을 거쳐 지금은 카페, 소극장, 갤러리로 쓰인다. 방도 총 7개가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강남구 신사동 신사역 근처에 있는 4층짜리 여관 신사장도 요즘에는 전시회장, 사무실로 쓰인다. 신사장도 지어진지 40년이 넘은 곳이다. 신사역 사거리에서 멀지 않고 인근에 유흥업소, 음식점들이 많아 늦은 밤 취객들이 쉬어가곤 했다. 지난 2013년까지도 숙박업소로 쓰였지만 이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애초 신사장 건물의 건축주는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게스트하우스를 지으려했지만 결국 복합 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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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신사동 신사장/사진=신사장

신사장 역시 원래 건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관방은 뜯어냈지만 벽체와 콘크리트 벽은 그대로 남겨 오래된 공장 같은 느낌을 준다. 신사장의 1층은 카페로 쓰이고 2~3층은 강연회, 콘서트, 작품 전시회, 플리마켓 등을 여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패션브랜드 캘빈클라인, 운동화 브랜드 컨버스, 화장품 브랜드 랑콤 등이 이곳에서 제품 런칭 파티를 열었다. 이승기와 문채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오늘의 연애’를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4층은 디자인 회사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낡은 여관을 아예 구조만 남기고 전부 뜯어고쳐 최신식 숙박업체로 이용하기도 한다. 여관은 주로 입지가 좋아 임대 수익을 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동대문구에서 수십년된 여관을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동대문역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지역에 있어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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