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100302

조선일보_20100302

[수도권] 시간이 멈춘 듯… 옛 멋이 살아있는 골목길
김성민 기자 dori2381@chosun.com

 

청운효자동 관광 코스 다른 지역 비해 개발 느려 1970~80년대 모습 남아있어

보안여관·송강 정철 시비 등 역사 흔적들 곳곳에 많아… 효자동 카페서 차 한잔 여유도

 

경복궁을 옆에 끼고 인왕산 자락에 나지막이 자리한 종로구 청운효자동은 요즘 부쩍 따스해진 봄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기 좋은 대표적인 동네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소소하지만 멋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경복궁 건너편에 있는 한옥 밀집지역인 북촌이 깔끔하게 단장된 느낌이라면 이곳에서는 서민들의 일상적 모습을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최근 도심 산책자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조선시대 중인들과 왕의 시중을 드는 내시들이 많이 살았던 이곳은 군사정권 시절에는 특히 청와대 인근 경비가 삼엄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과 성장이 느렸다. 덕분에 이곳은 아직도 1970~80년대 서울 골목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낡은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진 종로구 청운효자동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이 묻어난다. 최근 동네를 걸어서 한바퀴 도는 골목길 관광코스가 만들어졌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현재 행정동인 청운효자동은 효자동·창성동·통인동·누상동·누하동·옥인동·청운동·신교동·궁정동 등 9개 법정동을 포괄한다. 이 동네의 멋과 정취를 소개하기 위해 종로구(구청장 김충용)는 최근 이 동네를 한바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동네 골목길 관광 코스’를 만들었다.

 

◆골목마다 이야깃거리 풍성

“청운효자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스며 있는 충(忠)과 효(孝)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골목길 관광 코스를 만든 정연수 종로구청 관광사업과 주무관의 말이다. 이 코스는 포인트마다 역사적 사실과 이야깃거리가 가득해 ‘정신문화 여행길’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동네 골목길 관광 코스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만나는 ‘보안여관’에서 시작된다. 총 19개 포인트로 이뤄진 코스를 모두 둘러보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왼쪽으로는 인왕산, 북쪽으로는 북악산이 버티고 있는 청운효자동 골목길은 거리 전체가 고즈넉함에 싸여 있다.

골목여행길 출발지인 보안여관은 8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건물로 광복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장기 투숙하던 곳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주고객이었고 경호원 가족의 면회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실험적인 예술 전시공간으로 바뀌었다. 보안여관에서 시작된 코스는 창성동 골목길, 효자동의 유래를 알려주는 쌍홍문 터, 헌법 제정에 큰 기여를 한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1894 ~1956) 선생의 옛집, 청와대 사랑채, 옛 궁정동 안가였던 무궁화동산 등을 거쳐 인근에 살던 윤동주(尹東柱·1917~1945)가 시상을 떠올리며 걸었던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이른다.

청운공원에 조성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는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낮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골목길 풍경에 멀리 남산이 삐쭉 얼굴을 내민다. 언덕을 내려오면 조선 인조 때 재상이었던 김상용(金尙容·1561~1637)이 풍경에 감탄해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을 새긴 바위가 등장하고, 지금은 초등학교로 변한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의 집터와 시비를 만날 수 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1867 ~1932) 선생을 기리는 우당 기념관을 들러 다시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1층은 벽돌로, 2층은 나무로 만든 독특한 구조의 집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동양화가 박노수(朴魯壽·1927~)씨의 집이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철거 중인 옥인 시범아파트로 들어서면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 1759)의 ‘장동팔경첩’ 그림에 나오는 ‘기린교’를 볼 수 있다. 김선희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주무관은 “유서깊은 다리가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시민아파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서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단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명소인 백호정(白虎亭)도 볼만한데, 백호정 약수터에서 인왕산 호랑이가 물을 마신 후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930년대에 지어져 한국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동양화가 이상범(李象範·1897~1972)이 살았던 집도 골목길 여행코스에 포함돼 있다.

 

◆갤러리와 카페 거리

경복궁이 옆에 있어 층수 제한과 건물 개축 규제가 엄격한 효자동은 조용함과 여유로움이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즐기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러 발걸음을 한다.

효자동 거리 곳곳에는 상업성보다는 실험적인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숨어 있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작은 카페들이 많다. ‘카페 고희’나 ‘두오모’, ‘마르코의 다락방’ 같은 커피숍들이 유명하다. 최근 2~3년 사이 번잡해진 삼청동을 벗어나 효자동 골목 곳곳으로 갤러리와 카페가 많이 몰리고 있다. 청와대 사랑채 옆에 있는 ‘사랑방 손 칼국수’는 청와대 경호실 사람들이 찾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출출할 땐 통인시장에서 파는 기름떡볶이도 별미다.

종로구는 “미로처럼 얽혀 있는 청운효자동 골목길에 있는 맛집과 명소들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골목길 곳곳을 안내하는 ‘골목길 코스체험’도 도입할 계획”이라며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 4개 국어로 표기되는 표지판 35개가 세워지면 청운효자동을 찾는 사람들은 각 명소에 얽힌 이야기와 주변 맛집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