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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_20100826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무대서 환생하다
[이상, 다시 날다] <곶나들이>, <오감도> 등 연극·퍼포먼스 통해 초현실주의 작가 재조명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입력시간 : 2010/08/26 09:41:59수정시간 : 2010/08/26 0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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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곶나들이’ (사진제공=극 연구소 마찰)

“그가 만약 세계에 알려졌다면 아르튀르 랭보나 프란츠 카프카, 또는 장 콕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던한 예술적 감성은 지금 뉴욕에서 볼 수 있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연상시킨다. 마치 록스타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같기도 하다.”

지난해 내한한 ‘아방가르드 실험극의 거장’ 리 브루어는 이 인물을 묘사하며 이처럼 극찬을 했다. 랭보와 카프카에서 너바나로 연결되는 이 전방위적 찬사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바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었다.

 

현대에 출몰하는 이상의 유령

1930년대 활동한 초현실주의 작가 이상은 동시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최근까지도 영화와 연극 등에서 꾸준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상의 여성편력과 동시대 화가 구본웅과의 관계를 다뤘던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를 비롯해,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로 재탄생했다. 지난해엔 시 <오감도(烏瞰圖)>에서 제목만 빌린 <오감도(五瞰圖)>라는 영화도 개봉했다.

연극은 더 오랫동안 다양하게 이상을 탐구해왔다. 채윤일 연출의 <이상의 날개>는 1977년과 1978년 두 차례 공연된 데 이어 지난 2003년에도 무대에 올려지며 이상을 재해석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난 유쾌하오. 이럴 땐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굿바이!”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난해한 이상의 작품을 알기 쉬운 연애사로 재창조했다.

2007년에는 이상의 이름을 거꾸로 붙인 <상이(箱李)>라는 연극도 있었다. 이상이 ‘상이’라는 분신을 갖고 있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극 속에 이상과 상이 두 인물을 등장시켜 그의 분열된 자아와 불안한 자의식을 표현했다. 현실보다 이상(理想)을 추구하며 이상(異常)한 작품을 썼던 그의 이면에는 상이와의 공모와 합작이 있었다는 해석이 독특했다.

미국의 연출가 리 브루어는 재미교포 작가 노성이 영어로 창작한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2000년 무대로 옮겨 선보이고 지난해 이를 재공연하며 이상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상은 21세기의 현실로 옮겨져 연극이자 설치미술로 표현된다. 이상의 시가 전통적인 문장이나 형식을 거부한 것처럼, 리 브루어는 비디오, 프로젝터, 인형극 등을 통해 이상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한편 그림연극으로 그려진 이상도 있었다. 연극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 날개>는 배우들의 연기를 기본으로 애니메이션, 인형극, 그림자극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이상의 <날개>를 그림연극 형식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무한 변주되는 이상, 다원적 해석의 보고

이처럼 이상의 생애와 작품이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흥미롭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을 모티프로 작업을 하고 있는 연출가들은 공통적으로 “해석의 폭이 다양하고 아직도 미스터리한 점이 많다”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이상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건축가이자 미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활동에 그치지 않고 건축가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으로 입선하기도 하고,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1일>에 삽화를 연재할 정도로 전방위적 재능을 발휘했다.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예술 세계가 함축된 그의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가 됐다.

얼마 전 공연된 극 연구소 ‘마찰’의 즉흥 퍼포먼스 <곶나들이>는 이런 영감과 새로운 실험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치러진 곳은 특이하게도 공연장이 아닌 통의동 보안여관. 이 장소는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시작이자 결과물이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이상이 살았던 통인동 154-10번지와 가까운 거리이고, 이상의 여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금홍이 있었던 곳도 이 근처의 제비다방이다. 극 연구소는 이 점에서 보안여관이 이상이 작품을 쓰거나 그의 저작에 영향을 미친 곳으로 예측하고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공연은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 제15호, <절벽>, <이런 詩>, , <최후> 등 9편을 바탕으로 이상, 금홍, 변동림 등 세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관객은 여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배우들과 연출을 따라 그들이 보여주는 세 인물의 옛 모습을 보안여관의 현재 모습과 겹쳐보며 이상을 다시 읽게 된다.

한편 극단 오늘은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일부터 연극<오감도>(부제: 이상(李箱)의 이상(理想)과 이상(異常))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작품은 비록 제목은 오감도지만 전체적인 설정은 <날개>에 가깝다. 부제처럼 연극은 이상(李箱)의 이상(理想)과 이상(異常)을 투쟁적 삼중주로 보면서 ‘백수’ 이상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성신 연출가는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는 오늘날의 현실과 교차되며 백수이자 사회부적응자인 예술가 이상을 오늘의 현실에 담아낸다. 시 <오감도>가 공연 중간 슬라이드로 보이는데, 다소 난해하면서도 극의 내용과 적절히 어울린다. 위 연출가는 “이상은 백수의 삶을 즐기지 못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삶의 무게를 버거워했다. 자신을 사랑했던 만큼 자기 증오가 컸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하며 “이런 백수 이상과 그 자아, 금홍, 세상 사람들과의 갈등을 표현할 것”이라고 연출의 묘를 밝혔다.

근대를 살면서도 탈근대를 지향했던 이상은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계속되고 있는 현대에 들어서 더욱 흥미로운 텍스트가 되고 있다.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그의 문제적 삶은 오히려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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