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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_20130913

[커버스토리] 초대합니다, 도심 시간여행

[중앙일보] 입력 2013.09.13 00:30 수정 2015.01.02 14:52 | Week&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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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문을 연 헌책방 대오서점의 낡은 책장에는 서촌의 지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세종대왕이 태어났다는 서촌
경복궁 옆 두 동네 ‘북촌·서촌’ 탐구

서울 종로구는 지난달 열린 지명위원회에서 “경복궁 서쪽 지역을 ‘상촌(上村·물이 내려오는 곳)’ 혹은 ‘세종마을’(세종대왕 탄생지)로 부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복궁 서측, 그러니까 청운효자동·사직동 일대, 다시 말해 ‘서촌(西村)’으로 불리던 동네다. 종로구는 “역사적으로는 청계천 서쪽 서소문 일대를 ‘서촌’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서촌’ 주민의 반발은 당연했다. “어차피 법정동(法定洞)도 아니고, 별명처럼 부르던 이름을 갑자기 바꾸는 게 어딨습니까.” 지역 토박이 배안용(50)씨가 따져 물었다. 서울시는 ‘경복궁 서측’이라고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밝혔다. 서촌과 상촌, 세종마을, 그리고 경복궁 서측. week&은 어떤 이름을 쓸까 고민하다 아직 시(市), 구(區)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마당이라 독자에게 익숙한 ‘서촌’을 쓰기로 했다.

권문세가의 북촌 vs 나인·중인의 서촌

예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낀 북촌은 권문세가가 살고, 서촌은 궁중 나인과 중인이 살던 터라 했다. 두 마을은 언뜻 닮은꼴이다.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 등으로 두 동네 모두 건축 제한고도(5층)가 있다. 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일찌감치 한옥 보존정책을 편 북촌과 3년 전 뒤늦게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된 서촌은 많이 다른 모습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옥밀집지역 지정 시점 기준으로 2002년 북촌은 건물 2782동 중 1233동이, 2010년 서촌은 2136동 중 668동이 한옥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북촌은 기와지붕으로 뒤덮여 제비 날개처럼 새카맣다. 1930~60년대 개량된 ‘도시형 한옥’이 태반이라고 해도 제법 절제미가 있다. 반면에 서촌은 색이 옅어진 기와지붕이 근대식 벽돌건물, 빌라 옥상과 뒤섞여 있다. 전통마을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두 동네는 시장에서 확 갈라진다. 통인시장을 비롯해 예부터 서촌은 궁궐에 물건을 대던 시장이 많았다. 지금도 시장통 같은 좁은 골목이 동네를 미로처럼 휘젓고 있다. 그럼 북촌은? “1983년 시집올 때부터 시장이 없었어요. 불편하긴 해도 양반촌이어서 그런가 했지요.” 백경순(53)씨가 넌지시 자랑했다.

전통의 현장 북촌 vs 생활의 현장 서촌

말하자면 두 동네는 ‘맛’이 다르다. 북촌이 역사와 전통을 돌아보기 좋게 재현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면, 서촌은 우리네 살았던 세월이 켜켜이 묻어난다. 일례로 북촌 재동의 600년 묵은 백송은 헌법재판소 뒤편에 번듯하게 모셔져 있지만, 그루터기만 남은 서촌 통의동 백송의 곁은 한 무더기 장독과 통기타가 벗하고 있다.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서울의 옛 동네 두 곳을 다녀왔다. 동네마다 특색에 맞는 명소 열 곳을 꼽았다. 보름달같이 넉넉해진 마음으로 유유자적 다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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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오래된 골목 곳곳에 지난 세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어디쯤일까, 윤동주가 별을 헤던 곳
시간의 용광로 서촌, 문화·예술 명소 10곳

조선시대 중인이 살던 동네라고만 알고 있다. 하나 겸재 정선(1676~1759)은 82세까지 이곳에서 인왕산을 들락거리며 ‘인왕제색도’ ‘수성동’ 등 숱한 산수화를 남겼다. 시인 윤동주(1917~45)가 ‘별헤는 밤’을 짓고, 서양화가 이중섭(1916~56)이 계곡에 들어가 목욕 재개한 뒤 붓을 들었던 집터도 모두 이 일대였다. 지난 6월엔 궁궐 표지판 디자인 프로젝트, 이상(1910~37)의 집터 문화공간 조성 사업 등 한국 전통문화 보존·전승 활동을 12년째 하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지기 신사옥도 통의 동에 들어섰다. M.A.R.U 김종규 소장과 고건축 전문가 김봉렬 한국 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의 손을 거친 건물이다. 마을공동체 ‘품애’(poomm.com)가 맞춤형 서촌 투어를 진행한다. 02-3217-3013. 종로구 문화관광과(tour.jongno.go.kr)는 서촌·북촌 무료 해설을 진행한다. 02-2148-1853.

 

jung3(1) 보안여관 통의동 2-1

2006년 문을 닫기까지 80년 넘게 운영된 여관. 광복 후 문인이 장기 투숙하며 현대문학사를 빚어냈다. 1936년 서정주·김동리 등이 모여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아지트도 여기였다. 외관은 남겨둔 채 2009년 갤러리로 변신했다. 다음 달 19일 동네 주민과 함께하는 플리마켓이 열린다. 02-720-8409.

(2) 사진 위주 류가헌 통의동 7-10

한옥 두 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맞댄 형태의 갤러리. 2010년 문을 열었다. 긴 툇마루와 잔디마당, 사진 책을 넘겨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가 있어 한옥을 느긋하게 음미하기 좋다. 오전 10시30분~오후 6시30분. 월요일 휴관. 02-720-2010, ryugaheon.com.

(3) 시인 이상의 집 통인동 154-10

이상이 큰아버지댁 양자로 들어간 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던 집이니까, 생의 8할 이상을 이 집에서 머물렀다. 이 집에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여러 작품을 생산했다. 다음달 말 한옥 개·보수를 끝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아름지기 02-741-8374, arumjigi.org.

(4) 공방 서촌 일대

서촌에는 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공방이 적지 않다. ‘빈티지공방’(02-752-2532)에선 주인이 손바느질한 빈티지 소품을 만날 수 있다. 천연 비누·양초 공방 ‘리즈솝’(02-725-3698)과 패브릭 가방 전문 ‘서촌33’(010-3129-5893)에선 미리 연락하면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jung4(5) 노천명 가옥 누하동 225-1

‘사슴’의 시인 노천명(1911~57)은 팔자가 모진 여인이었다. 친일파의 오명을 썼고, 한국전쟁 땐 미처 피란을 못 가 북한과 내통했다는 죄로 옥살이까지 했다. 49년 독신인 채 양녀와 안착했던 이 집에서 8년 뒤 병마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가정집이어서 들어가 볼 수 없다.

(6) 대오서점 누하동 33

백발 성성한 권오남(83) 할머니가 1951년 문을 열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TV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유명해져 요즘은 먼지 쌓인 정취를 구경하러 왔다 기념품으로 헌책을 사가는 이도 많다. 대개 오후 1시면 문을 연다. 02-735-1349.

(7) 송석원 터 통인동 43-1(표석)

조선시대 평민 서당 훈장이던 천수경이 인왕산 옥류천 위에 초가 ‘송석원(松石園)’을 짓고 시모임을 열던 터. 규장각 서리, 술집 머슴 등 문우(文友)의 신분은 낮았으나 수백 명이 모여 한시 대회도 열었단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 윤덕영(1873~1940)이 사들여 건평 1983㎡에 달하는 호화 별장(벽수산장)을 지었다.

(8) 구립 박노수미술관 옥인동 168-2

광복 이후 한국화 1세대로 꼽히는 박노수(1927~2013) 화백의 작품 500여 점이 있는 미술관. 지난 11일 개관했다. 동서양 건축기법이 뒤섞인 벽돌 건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1938년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걸 72년 박 화백이 사들여 지난해 종로구에 기증했다.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

(9) 이중섭 집터 누상동 166-202

황소 그림으로 알려진 화가 이중섭이 1954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머물며 이듬해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생애 첫 개인전을 준비한 지인의 집. 이중섭은 2층 다다미방을 썼는데, 창문이 깨져 비바람이 들이쳐도 그림 팔아 번 돈으로 술을 마셔 버렸단다. 지금은 빌라촌으로 탈바꿈했다.

jung5(10) 윤동주문학관 청운동 3-65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시절 소설가 김송의 집(누상동 9)에 하숙을 하며 자주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 지난해 인왕산 자락의 버려진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윤동주문학관으로 조성한 까닭이다.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02-2148-4175. 윤동주 시인의 언덕(청운공원)에서 오는 29일 ‘별 헤는 밤’ 음악회가 열린다. 종로구 문화관광과 02-2148-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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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골목에서 내려다본 북촌 전경(북촌 6경). 멀리 서울 도심 풍경이 어우러진다.

이리 오너라~ 여기서 그러시면 안 돼요
노천 박물관 북촌, 역사·전통 체험 명소 10곳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동네 ‘북촌(北村)’에선 좁은 골목조차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왕조 600년사가 서린 북촌 땅이 아예 거대한 박물관이 된 건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주민 주도로 서울시가 북촌 가꾸기 정책을 펴면서 허물어져 가던 한옥이 바로 서고 안내센터가 들어섰다. 가회동 한옥 일부를 서울시가 사들여 무형문화재 체험이 가능한 전통 공방을 마련했다. 대표 촬영 명소만 꼽은 투어 코스(북촌 8경)도 조성했다. 하여 북촌을 그저 눈으로만 보는 건 손해보는 짓이다. 역사를 곱씹으며 전통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갈피나마 잡을 수 있다. 단 대부분 주거지이므로 함부로 기웃거리거나 크게 떠들면 안 된다. 한옥을 속속들이 둘러보고 싶으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권한다. 한옥체험살이안내센터 02-742-9987.

(1) 계동마님댁(북촌문화센터) 계동 105

북촌 투어의 필수 코스로 백 년 이상 묵은 한옥이다. 일제 강점기 탁지부(현 기획재정부) 민형기 재무관 집이었다는데, 북촌에선 예부터 ‘계동마님댁’으로 통했다. 2002년부터 서울시가 북촌문화센터로 운영 중이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며 한옥의 특성을 설명해준다. 서예·다도 등 전통문화 강좌도 열린다. 연중무휴.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 오전 9시~오후 5시. 02-2133-1371.

(2) 창덕궁 전경(북촌 1경) 창덕궁 1길 언덕

북촌 1경으로 꼽히는 창덕궁 1길 언덕배기에 서면 돌담 너머 무성한 고목 사이로 왕실 도서관 ‘규장각’과 역대 왕의 초상화를 모신 ‘구선원전’, 왕이 정무를 보던 ‘인정전’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단풍 들 무렵이 절경이다.

(3) 원서동 공방길(북촌 2경) 창덕궁 돌담길

조선 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중인, 하인이 모여 살던 골목. 돌담길을 따라 불교미술관·궁중음식원 등이 늘어서 있다. 궁중 여인이 빨래하던 빨래터가 골목 안에 남아 있는데, 창덕궁 후원에서 흘러나온 물이 여태 맑다. 상궁이 기거하던 1910년대 한옥(원서동 9-5)이 빨래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jung7(4) 석정골 보름우물 터 계동 25-1

궁궐에서 쓰던 우물 터. 『조선왕조실록』에는 신분 차이에 따른 비극적인 유래도 전한다. 정조 8년 우물물이 넘쳐 내막을 밝히니, 망나니의 딸이 병조판서 서자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다 결국 그를 죽여 우물에 유기하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했다. 원혼제를 올려주자 범람은 멈췄으나 이후 물이 보름은 맑고 보름은 흐려 ‘보름우물’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5) 유심사 터(만해당) 계동 43

일제 강점기 승려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중앙학교 청년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자 계몽운동지 ‘유심’을 발간한 곳. 지금은 한옥 게스트하우스 ‘만해당’이 자리 잡고 있다. 070-4195-9630.

jung8(6) 북촌전통공예체험관 가회동 11-91

중앙고등학교 서쪽 가회동 11번지 일대는 전통공방 골목이다.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가 직접 운영하는 공방도 여러 곳 있다. 종로구가 운영하는 북촌전통공예체험관은 닥종이 인형 만들기, 쪽빛 물들이기 등 요일별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6시. 02-741-2148.

(7) 한옥 경관 명소(북촌 4~7경) 가회동 31

한옥 촬영의 ‘얼짱 각도’를 찾는다면 가회동 31번지 일대가 제격이다. 집집이 이어진 한옥의 유려한 처마 곡선을 올려다 보고(북촌 5경), 도심 풍경을 배경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북촌 6경). 고갯길 옆으로 기와지붕이 넘실대는 장관을 보려면 북촌 4경, 고즈넉한 한옥 길을 걷기엔 북촌 7경이 좋다.

jung9(8) 북촌생활사박물관 삼청동 35-177

관광지가 되기 전 북촌의 삶은 어땠을까? 북촌에 한옥 개·보수가 한창이던 2000년대 초 내다버린 잡동사니를 리어카로 실어 날라 조성했다. 조선시대 오지그릇 등 엄마 몰래 엿 바꿔 먹었던 옛 물건이 빼곡하다.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7시.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02-736-3957.

(9) 맹사성 집터(북촌동양문화박물관) 삼청동 35-91

청백리 맹사성(1360~1438)이 살던 터. 전통 체험 공간을 갖춘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02-486-0191. 맹사성이 소를 타고 출근했다는 일대 언덕바지는 맹사성의 고개, ‘맹현(孟峴)’이라 불린다.

(10) 번사창(금융연수원) 삼청동 28-1

맹현에서 좁은 돌계단(북촌 8경)을 내려와 삼청동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금융연수원이 나온다. 카페와 패션가에 포위당한 지금은 짐작조차 힘들지만, 조선 말기 이곳엔 신식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던 번사창이 있었다. 훗날 번사창은 일제 강점기 세균실험실, 광복 후 미군정 땐 중앙방역연구소로 사용됐다. 한국은행이 사들여 지금의 모습이 된 건 1970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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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원정 기자 ,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출처: 중앙일보] [커버스토리] 초대합니다, 도심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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