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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_20121107

“갤러리-카페에 정겨운 골목까지… 서촌은 예술인들의 새 아지트”

동아일보 2012-11-07 03:00:00 수정 2012-11-07 09:15:02


서울 서촌에 둥지 튼 영화감독 이해영의 ‘서촌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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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어린 시절은 강남 일대, 30대에는 홍익대 앞에서 살다가 서촌으로 이사 온 ‘서울토박이’ 이해영 감독. 2일 서촌의 한 골목을 걸으며 “서촌에는 산과 시장, 정겨운 사람, 멋진 그림이 걸린 갤러리,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등 예술 하는 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촌(西村)은 다양한 삶의 질감이 공존하는 동네예요. 갤러리와 카페가 있고, 산이 있고, 재래시장과 사람들이 조화롭게 사는 서촌은 예술인에게 탁월한 영감의 원천이죠.”

서울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에 자리한 옛 동네를 서촌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종로구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체부동 사직동 필운동 내자동 적선동 등 15개 동이 모두 서촌이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을 만든 이해영 감독 겸 시나리오작가(39)는 6월 필운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낸 ‘강남 키드’였고 30대에는 시끌벅적한 인디문화의 메카인 홍익대 앞에 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가 돌연 10년간의 홍대 앞 생활을 정리하고 이 조용한 동네로 흘러들어왔다. ‘화차’의 변영주 감독도 자신의 영화제작소 ‘보임’ 사무실을 서촌에 마련했고, 가수 윤건은 이곳에 작업실과 카페를 차렸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촌의 문화예술 공간이 한적하고 예스러운 분위기로 주목받아온 가운데 예술인들도 하나둘씩 서촌에 둥지를 틀고 창작활동을 하는 추세다. 2일 오후 가벼운 ‘동네 복장’으로 나온 이 감독과 서촌 곳곳을 거닐며 ‘서촌 예찬’을 들었다.

○ 화려한 홍대 앞에서 소박한 서촌으로

“홍대 앞에 살 때는 젊음과 에너지를 얻는 대신 새벽에 만취한 사람들의 토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어요. 마흔에 접어드니 새소리에 깨고 어느 골목에서나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이는 서촌에서 삶다운 삶을 찾고 싶었죠.”

유독 토박이가 많은 서촌 사람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이웃 간의 유대가 강하다. 이 감독이 이사를 오자 주민센터에서 전입자 대상으로 여는 ‘서촌 골목 도보 투어’에 참가하라는 공지가 날아왔다. “이런 투어가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는데도 서촌 토박이 주민이 가이드로 나서 동네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통인시장에서 순대를 썰던 아주머니가 처음 보는 손님의 입에 순대를 넣어주고, 목욕탕에서는 때를 밀어주는 아저씨가 구두까지 닦으며 1인2역을 하는 등 동네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그에겐 정답게 다가왔다. 이 감독은 “서촌에 살면서부터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확실히 넓어졌다”고 말했다.

동료 영화인들과의 사이도 가까워졌다. 허진호 임상수 김정환 감독이 이 감독의 이웃사촌이고 주변에는 명필름, 인디스토리, 누리픽쳐스, 주피터필름 등 영화사들이 있다.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의 구정아 프로듀서가 운영하는 바 ‘퍼블릭’은 영화뿐 아니라 디자인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모여 교류하는 사랑방이 되었다.

○ 예술가 발길 잡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서촌은 예로부터 문인 노천명 이상 윤동주, 화가 이중섭 박노수 이상범 등 유명 예술가들이 살아온 터전. 지금도 이들의 집터나 가옥, 화실이 남아 있다. 건축가 김원과 황두진,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이자 부부도 서촌 주민이다. 북촌에 살던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체부동에 낡은 한옥을 얻어 한옥 수리 과정과 서촌에서의 삶 이야기를 전하는 ‘체부동 한옥 프로젝트’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그룹 보드카레인의 기타리스트 이해완도 홍대 앞에서 서촌으로 이사하는 등 인디뮤지션들도 서촌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최근 서촌에는 작은 갤러리, 출판사, 서점, 카페 등이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서고 각종 문화행사를 열면서 이 일대가 문화의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7월에는 청운동에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었고, 이상이 살던 통인동 집터에 세워진 가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이상의 집’이 1월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이상의 집은 내년 4월까지 이상, 근대, 경복궁 서측 지역 등을 주제로 음악 문학 영화 미술 건축 관련 문화행사를 선보이는 ‘통인동 제비다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7월에는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한 폭의 배경이 된 인왕산 수성동계곡이 복원, 공개됐다. 옛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정선의 그림 속 경관을 살린 것이다. 서정주 시인 등 많은 예술인이 묵었던 80여 년 역사의 통의동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인다.

2006년 출판사 푸른역사를 용산구 동자동에서 통의동으로 옮긴 박혜숙 대표는 “인왕산 경복궁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서울광장 교보문고처럼 최신 문화가 진행되는 현장과도 가깝다”며 “서촌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으로 출판사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통의동 한옥에 자리한 갤러리인 사진 위주 류가헌의 박미경 관장은 “서촌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관람객 수는 적지만 관람객들은 오직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단골이 되기 때문에 작가들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된다”고 전했다.

한적한 문화 마을 서촌이 카페와 가게들로 급격히 상업화된 삼청동이나 관광객이 몰리는 북촌처럼 변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서촌에 살며 마을소식지를 발간하고 책 ‘서촌방향’을 출간한 설재우 씨는 “서촌은 청와대와 가까워 개발에 규제나 제약이 많아 옛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도록 개발과 보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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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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