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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_20140730

[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4년 07월 30일(水)
未堂과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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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논설위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서울 통의동 2-1번지의 ‘보안여관’에서 지난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열리고 있는 박윤주 작가의 개인전 타이틀이다. 이 여관은 2010년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 된다’는 경고문과 숙박요금 8000원이라는 가격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관에서 열리는 전시답게 이상야릇한 전시 제목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유행어를 풍자한 것이 아니다. 박 작가가 청와대에서 가까운 보안여관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려고 하자 경찰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제지한 것이 모티브가 됐다.

역사와 공간 속에서 반복돼온 제재와 이에 굴복하지 않는 개인의 일탈이 이번 전시의 주제다. 여관 주인이 전시 소식을 알리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75명의 지인에게 보내자 “대략 난감. 75명 카톡,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글이 달렸다. 여관 주인은 최성우 일맥문화재단 이사장 겸 동국대 겸임교수다. 그는 서까래가 드러나고, 벽면에 일제강점기 신문지 등 여러 번 도배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보안여관을 사들여,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이곳을 ‘예술이 쉬어가는 문화숙박업소’로 꾸려가면서 ‘예술’이라는 투숙객을 받고 있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에 문을 열어 2004년까지 여관으로 80여 년 간 손님을 맞이했다. 청와대 코앞에 보안이라는 이름의 여관이 남아 있는 것과 관련, 비밀정보기관 자리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 있다. 1930년대에 건립됐으니 국가보안법과는 관련이 없다. 편안함을 지켜준다는 의미의 ‘보안(保安)’이다. 해방 이후 많은 문학 지망생이 머물렀고, 1970년대엔 공무원과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문인 등이 장기 투숙했다. 보안여관은 1936년 미당(未堂) 서정주가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든 장소다. ‘시인부락’에서 한국의 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개화했다. 뜻있는 문화예술인들 덕에 그 예술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년은 미당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마지막 창작 장소였던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미당 서정주 집’은 겨우 보존돼 있지만 가난한 예술가와 장안의 기인·재사들의 ‘소굴’이었던 피맛골의 ‘시인통신’, 문인들이 언제든 외상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종로의 술집 ‘탑골’ 등 서울시내의 문화재급 공간들이 대부분 훼손되거나 소멸됐다. 정말로 이러면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