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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_20110407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
홀로코스트 작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북 퍼포먼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사진=박정훈
입력시간 : 2011/04/07 00:52:02수정시간 : 2016.04.04 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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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소년의 이야기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재를 경험했던 그녀는 동세대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증언을 토대로 세계대전 당시 생지옥으로 변한 유럽의 정경을 문학적 언어로 담아냈다. 그녀는 말했다.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이 인간의 비극이 아름다움이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면 프리모 레비의 작품은 그 비극이 발생한 근원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대인이었고, 1943년 이탈리아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빨치산 부대에 가담해 투쟁하다 체포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됐고, 살아남아 소설을 썼다.

아우슈비츠로 가기 전 레비는 소설을 단 한 줄도 써 본 적 없는 화학자였다. 요컨대 헤르타 뮐러가 문학적 말하기의 방식으로 증언을 택했다면, 프리모 레비는 증언을 하기 위해 문학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쓴 첫 소설이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고향 토리노로 돌아오는 8개월의 여정을 담은 장편 <휴전>과 아우슈비츠 경험과 빨치산 투쟁을 그린 자전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등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한 후 1987년 토리노 자택에서 투신자살했다.

홀로코스트에 남겨진 작가는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았고, 살아남아 증언을 했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최근 국내 발간된 그의 시집의 제목은 <살아남은 자의 아픔>(노마드북스 펴냄)이다.

그러므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은 수정돼야 한다. 다혈질적으로 변하는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예멘과 요르단으로 번지는 중동 민주화운동을 접하면서 “그럼에도 그곳에서 시가 쓰여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제 “분명 그래야 한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며칠 전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프리모 레비를 기린 이유다. 세계의 비극을 기리는 한 방식으로 이들은 이전 세기의 비극을 추모한다. 3월 26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북퍼포먼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 열렸다.

공연을 주최한 (주)메타로그 아트서비스측은 “프리모 레비는 죽은 동지들의 삶이었고, 아우슈비츠였고 그들의 고통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낭독자였다. 북 퍼포먼스의 춤과 음악, 낭독과 울림은 그의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는 시간이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건네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문재, 김애란, 김근, 안현미 씨 등 문인들이 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의 몇 편을 낭독하고 최세나(리코더), 이일우(피리, 기타), 김보라(소리) 씨가 시에 맞는 노래를 선사했다. 정영두, 김지혜, 공영선 씨는 레비의 작품을 몸으로 표현했다.

“아날로그 매체인 책은 점점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북 퍼포먼스는 책이라는 매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문학이 소리, 춤, 설치미술 등 다양한 방식의 예술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전시기획자 창파 씨의 말이다. 2시와 5시, 두 차례 공연 후 보안여관 마당에 모여 레비의 삶과 문학작품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시집을 편집, 번역한 시인 이산하 씨는 “아우슈비츠는 과거에서 미래까지 일어날 세계의 모든 학살과 폭력의 한 상징이다. 프리모 레비는 역사를 왜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거듭 물으며 고뇌했다”고 말했다.

레비의 증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그의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 예술가들이 모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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