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섭 개인전  《그림자 기억 장치 shadow memory》
부제 : 그림자 고고학 Archaeology of the Shadow

  • 일시: 2022. 04. 27 – 05. 22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1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Date : 27. Apr. 2022 – 22. May. 2022
  • Venue : ARTSPACE BOAN 1
  • Time : 12PM – 6PM
  • Closing Days : Every Week Monday
  • Admission Free

연계 프로그램 : 아티스트 토크
토크 제목 : 오래된 그림자 미래를 비추다.

  • 토크 일정 : 4월 30일(토) 오후 2시 
  • 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1(구관 전시장 2층) 
  • 모더레이터 : 황수경 
  • 패널 : 권태현 이수영 신형섭

크레딧

  • 작가 : 신형섭 Hyungsub Shin
  • 기획 : 황수경 Sukyung Hwang  
  • 서문 : 이수영 Sooyoung Lee 
  • 리뷰 : 허대찬 Daechan Heo
  • 설치 : 정진욱 Jinwook Jung
  • 전시 전경, 영상 : 이의록 Euirock Lee
  • 토크 영상 기록 : 채병연 Byungyeon Chae 엄윤상 Eom eyunsang 
  •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Hyunjeong Kimbak

기획의 글

황수경

   신형섭 작가는 전시마다 연작 형식의 제목을 사용한다. 그의 형식을 따른다면 이번 전시의 원제는 《그림자 고고학 Archaeology of the Shadow》이지만, 이번 보안여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작가의 형식을 조금 벗어난 제목으로 만들어 보았다. 

  그림자 기억 장치 shadow memory라는 정보통신 용어가 있다. 롬(ROM)에 저장된 프로그램과 명령어들이 램(RAM)으로 이동하여 보다 빠르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롬의 정보를 읽어 들이는 데에 사용되는 기억 장소이다. 컴퓨팅에서 섀도 메모리는 실행 중에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메모리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고 저장하는 데 사용되는 복제기술로 이러한 섀도 바이트는 일반적으로 원래 프로그램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다. 과거의 시간을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 보고 신형섭 작가가 미디어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술을 추적하는 등의 미디어 고고학을 연구하고 작업으로 실행하는 행위를 그림자 기억 장치 (shadow memory)가 컴퓨팅에서 빠른 실행을 위해 저장된 기록을 복제하는 행위와 같다고 보았다. 또한, 그가 오래된 미디어를 분해하고 재조립한 조각장치를 통해 비추어 내는 그림자를 이미지의 복제로 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고학적 발굴의 의미를 현재를 위한 기술적 발견이 아닌 미래를 제안하는 방법론으로 보아 작가가 앞으로 확장하려는 세계와 그에 대한 가능성으로 연결해 보고자 한다. 백남준은 고대를 향한 추격은 미래를 향한 추격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의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년작)>에서 달을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빛의 원천이며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오래된 미디어로 보았다. 누구나 달을 보며 상상했을 고대와 아무런 정보가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발전해 가는 기술과 미디어를 우주와 미래의 공간으로 잇고자 하는 것으로 본다면?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래된 건축물 각각의 방에 직접 조작한 장치 속 오브제들을 비추어 재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기나긴 시간을 여행하고 도달한 빛이 전하는, 오래된 미래의 그림자를 비추어 보기 위한 것은 아닐까?

네거티브 고고학1)

이수영 백남준 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사실 우리는 좀비 미디어보다 더 나은 이름을 찾고 있다. 좀비 미디어는 미디어 기기들이 물질적 측면에서 사라지지 않고 폐기되어 땅속에 묻혀 있거나 화학물질이나 독성물질, 잔여물로 남아서 우리 곁을 떠도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 고고학자 유씨 파리카(Jussi Parikka)는 좀비 미디어의 예로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 사에서 제작했다가 망한 게임기를 뉴멕시코에 불법으로 매립한 것을 찾아낸 사례를 꼽는다. 발굴된 구식 게임기들은 썩거나 분해되지 않은 채 멀쩡하게 작동했다. 좀비라는 이름이 드러내듯이, 좀비 미디어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지구에 쌓이는 전자 폐기물의 측면을 강조하는데 적절하다. 한편 파리카는 미디어 고고학의 실천 중 하나로 서킷 벤딩(circuit bending)이나 미디어 D.I.Y.와 같이 죽은 미디어의 일부를 재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전자 미디어를 뜯어내어 그 속의 반도체와 다른 부품들을 재조합하여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내는 아마추어적 팅커링(tinkering)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재사용은 조악한 결과물과 아주 소수의 미디어 쓰레기만이 구원받는 한계를 지닌다.

신형섭 작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인 광학 렌즈들은, 그가 비록 고물상에서 헐값에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알코올과 클리닝 용제들로 아주 잘 닦아 놓아 겉모습으로는 그 연식을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오래된 렌즈들이나 방송용, 전문가용 카메라 렌즈들은 지금과 비교해보아 그 구조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 장치들은 기술 미디어라기보다는 광학기계에 더 가깝다. 이것들은 이미 썩지 않는 반영구의 삶을 부여 받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작가는 오래된 프로젝터나 바비큐 그릴에 구멍을 뚫고 렌즈들을 달고, 안에서 LED 램프로 빛을 밝혀 렌즈 앞의 오브제 이미지를 외부로 투사한다. 좀비 미디어가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낸 전자 부품들을 헤집어 아마추어처럼 납땜을 하여 겨우 쓸만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준다면, 신형섭의 <아르고스 파놉테스>는 이러한 구질구질한 티를 내지 않는다. 새로 산 바비큐 그릴이나 수트케이스의 매끈한 몸체 때문일까, 오히려 이 작품들은 우주선이나 또 다른 복잡한 광학 장치 혹은 B612같은 이름 모를 행성처럼,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오래된 기술과 새로운 기술의 공존

<사이클롭스> 시리즈들은 1920년대 프로젝터의 몸체에 버려진 구식 렌즈를 달고 있다. 그 속에는 최신 LED 전구를 품고 있어서 과거의 기술들이 현재와 중첩되어 있는 미디어 고고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예전에도 오래된 렌즈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외부로 투사하는 작품을 구상했지만 당시에는 LED 전구가 개발되기 전이라 환등기처럼 된 내부의 온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LED 전구를 여러 개 설치하여 복잡한 이미지를 외부로 투사하는 작품을 만든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사용되었던 기술의 중첩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의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기술이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을 얻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기술의 미래가 그때그때 충돌하며 비결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하나의 기술이 다른 신기술로 감쪽같이 대체되는 방식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의 다층적 시간성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기술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는 데 중요한 재료가 된다. 미디어 고고학의 일차적 목표는 과거의 지층과 유물을 되돌아보아 사라지거나 구식화되어 버린 기술과 장치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렇게 잊힌 과거의 기술을 발굴하고 그 변화를 읽어내고 동시대 미디어 문화를 대안적으로 이해하거나 과거를 미래에 투영하여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림자 고고학

이러한 기술의 시간성은 신형섭 작가의 작업에서 더 넓게 확장된다. 작가가 빛과 그림자라는 원초적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2020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그림자를 이용한 <을숙도 세레나데>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업은 2019년 한 단독주택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무와 한지로 된 창살에 사이사이에 작은 태양광 인형이나 오브제들을 올려놓고 강한 조명을 쏘아서 반대편에 생기는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하는 일종의 그림자극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2019년 전시회 제목에 “케이브”, 즉 동굴을 쓰기도 하고, 어두운 방에 여러 대의 사이클롭스를 설치한 작업을 “동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굴은 플라톤의 그림자 비유로 이어진다. 여기서 인간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바라보다가 결국에 동굴 밖으로 나와서 눈이 타 들어 갈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양을 직시해야 하는 존재로 제시된다. 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존재인 동시에 그 근원이 되는 태양과 우주를 상상하는 존재다. 작가가 다루는 것도 빛이라는 현상이고, 그 빛은 우주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신형섭의 작업은 그림자극에서 우주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속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렌즈와 같은 광학적 장치들이 가지는 가치는 어디에서 오며, 이러한 매체들이 지니는 불멸성은 무엇인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 혹은 구식 기술과 신기술은 어떻게 관계 맺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가. 미디어 고고학이 단지 구식 기술과 매체를 발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는가.

이제 인간은 백금과 구리, 희토류라고 불리는 희귀한 금속까지 사용해서 썩지 않을 것을 만들어 매끈한 아이폰 케이스에 단단히 넣어 버렸고, 이 전자 기계들은 짧으면 2년 안에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쓰레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전자 기계의 원료의 대부분은 구리, 철, 납, 리튬과 같은 광물질들이며, 광물질을 채굴하는 것은 자원고갈, 불공정한 노동 착취 그리고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같은 인류세 문제로 연결된다. 좀비 미디어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우주쓰레기가 되어 버릴 미디어의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지구의 지층을 들여다보듯이, 시간의 개념을 좀 더 심원한 것으로 확장시켜 볼 필요가 있다. 2)우리 손에 쥐어진 기술 장치들, 우리의 미디어 환경(과 그것을 구성하는 것들), 우리의 지구와 생태계, 긴 시간성으로 상상하는 과거와 미래,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실마리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1)  ‘네거티브 고고학’은 백남준이 ‘네거티브 공상과학’이라고 부른 것에서 따왔다. 

“나는 일종의 네거티브 공상과학을 생각한다. 공상과학은 극히 적은 정보를 가지고 우주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2만 년 전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여전히 신비에 둘러싸여 있는 것들을 알아 보려고 과거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까” 

백남준, 에디트 데커, 이르멜린 리비어(편)(1993),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임왕준 외(역), 백남준아트센터, 2018.

2) 질린스키에게 ‘심원한 시간’이란 지질학적 개념에서 빌려 온 것으로, 지구 전체의 역사를 약 45억 년의 하나의 단일 시간으로 보고 그것이 쌓여있는 지층의 단면처럼 새로운 단위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이다. 파리카도 전자 기계들의 원료가 땅 깊은 곳에 파묻혀 있었던 광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심원한 시간과 미디어 고고학을 연결시켜 전자 폐기물이 사라지지 않고 지구와 우주 어딘가에 쌓여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Zielinski, Siegfried. Deep Time of the Media: toward an Archaeology of Hearing and Seeing by Technical Means. Cambridge, Mass: MIT Press, 2009.

Parikka, Jussi. A Geology of Media.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