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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_20101115

나라 잃고 떠도는 한국인, ‘보안여관’에 모신다

‘이산’ 주제로 만주·연해주·중앙아시아의 조선족·고려인의 ‘지금’ 묘사한 <흩어진 사람들-신영성 전>
김진령 | 승인 2010.11.15(월) 18:05|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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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은 묘한 곳이다. 지은 지 80년 된 보안여관은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했지만 최근에는 전문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골목 어름에서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이 벗들과 어울렸다. 추사 김정희가 무명의 화가 허련을 가르친 곳도 이 골목이었고, 천재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묘사한 막다른 골목도 바로 통의동 골목이었다. 미당 서정주는 보안여관에서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다.

세월에 밀려 퇴락했던 보안여관은 몇 년 전 갤러리로 변신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보안여관에 이산(離散)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얼굴이 걸린다. 나라 잃은 100년 동안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를 떠도는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 고려인의 ‘지금’을 묘사한 그림 전시회 <흩어진 사람들-신영성 전>.

화가 신영성이 한국인 후예들의 흩어진 삶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2002년부터다. 대학에서 가르치던 학생이 재중 동포(조선족)였다. 이후 중국 지린성 초청으로 현지를 방문하면서 그는 이산의 삶에 눈뜨게 되었다. 2004년부터 관련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이산의 문제를 그림의 소재로만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08년 사단법인 다문화연대를 발족시켜 직접 이들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의 수익금도 현지 조선족과 고려인을 돕는 기금으로 쓰인다. 신영성 화백은 보안여관을 전시장으로 고른 이유에 대해 “80년 넘게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던 보안여관이야말로 이들의 그림을 걸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11월16~25일. 통의동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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