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예술공간이 된 여관… 잠시 쉬었다 가세요_20181121

‘통의동 보안여관’ 11주년 기념전
서정주·이상·윤동주 등 숨결 담아
조각·설치·영상작품 기획 전시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1930년대 여관으로 운영되다 지난 2007년부터 원형을 유지한 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보안여관이 오는 25일까지 11주년 기념전 ‘아모르 파티’를 개최한다. /사진제공=통의동 보안여관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가 탄생한 곳은 다름 아닌 여관이었다.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 앞쪽에 자리 잡은 ‘보안여관’은 넉넉하지 않던 시절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이중섭 등이 머물렀던 쉼터였다. 70여 년 여관으로 지냈으나 2004년 경영난으로 문 닫은 이곳을 2007년에 최성우(58)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이 사들이면서 보안여관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미술관 못지않은 묵직함을 갖게 된 ‘통의동 보안여관’이 11주년 기념전을 25일까지 열고 있다.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여다함 ‘객지 여덟 밤’ 중 일부.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목욕탕 표지를 간판처럼 내건 낡은 벽돌건물. 쉽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현관문 옆 창으로 사자나 코끼리처럼 보이는 기괴한 형상의 작품이 먼저 보인다. 작가 권용주는 도심재개발로 2009년 동대문구 휘경동 작업실에서 쫓겨난 뒤로 공사장 부산물로 조각과 설치작품을 만들며 “조각적 형태를 고민중”이다. 북청사자놀음이라도 출 법한 작품 앞에서 무분별한 도시 재생이 ‘기형’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느껴진다. 고개 들어 2층 창문을 보면 거대한 바위 같은 것이 건물을 부술 듯 밖으로 부풀어 있다. 백현주 작가의 PVC소재 풍선 작품인 ‘오늘의 주인’은 “도심에 남겨진 다양한 미래 유산적 산물들을 다시 관찰하고 해석해 사라지는 공간의 또다른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 꼭 이곳 ‘통의동 보안여관’처럼.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믹스라이스의 영상작품 설치 전경.

여다함 작가는 ‘낯선 공간에서 자는’ 여관의 정체성을 반영한 30분짜리 체험형 작품을 선보였다. 보안여관의 여러 틈새가 문양처럼 새겨진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 드러누우면 뒤척일 때마다 울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객지에서 꾸는 꿈’을 깬 정신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번 11주년 전시 제목은 ‘아모르파티(Amor Fati)’. 요즘은 가수 김연자의 노래 제목으로 더 유명한 ‘아모르 파티’는 원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꺼냈던 말이다. 주변 서촌 상권의 임대수익 등을 감안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장사를 했어야 할 이 보안여관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필연적 상황에 긍정하며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할 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상과 닿아있다”는 것이 송고은 보안여관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아카이브 전시 ‘여관전설’ 전경.

그래서 눈여겨볼 것이 보안여관 옆 건물인 신관 2층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다. 보안여관의 역사를 파헤쳤더니 18세기 후반까지 이곳을 포함한 통의동 반경 2.5㎞는 추사 김정희의 집이었다. 이후 영추문을 통해 궁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대기소 격인 대루원, 기상청인 관상감이 있었다는 것은 문화재청 발굴조사로 확인됐다. 18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동초등학교가 들어서 1933년까지 이곳에 있었다. 매동 출신의 소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 골목이 등장하는 이유다. 여관이 지어진 것은 서정주의 글에서 전해질 뿐이었으나 지난 9월 전시 준비를 위해 폐쇄 등기부등본을 뒤지고 ‘경성상공명부’를 조사한 결과 소화13년인 1938년에 통의동 3번지의 보안여관에서 세금 31원을 낸 기록이 강영조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쓴 박정희 씨에게는 1940년대 ‘위안부’ 강제징집을 피해 결혼 맞선을 보러 수박색 한복치마를 입고 인천에서부터 찾아왔던 곳이요, 1970년대 문화공보부 등에 근무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에게는 당시의 정책들이 생산되던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요람이었고 산실”로 기억되는 곳.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는 “동시대 미술기관으로 10년을 보냈으니 이제는 앞으로 쌓아올릴 새로운 문화 지층에 주목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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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덕기자 덕질기 3] 보안여관에서 밤송이를 팔았다_20171025

박종찬
방송에디터석 기자

“보안여관에서 도시농부 장터가 열려요. 선유아리농장도 재미 삼아 나와봐요.”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말이었다. 농장 이웃인 ‘우보님’(우보농장 주인)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관리기를 빌려주고, 볏짚을 나눠줬으며 서툰 농사에 여러 도움을 받은 터였다. ‘세모아(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장터’는 도시농부들과 유기농 식재료로 상을 차리는 요리사들이 만나 여름작물을 나누고 요리하는 행사라고 했다. 가을 농사가 막 시작된 농장에는 배추, 무, 갓 따위 모종만 자라고 있었다. 장터에 내놓을 수확물이 별로 없었다. 농장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주일 만에 감자 50여개, 마늘 20여개, 애호박 5개, 노각 20여개, 참외 2개, 대파 한단이 농막에 쌓였다. 공동밭 풀을 베다가 돼지 머리보다 큰 호박 두 개를 횡재했다. 상추, 깻잎, 호박잎 등 푸성귀는 모조리 거둬 꾸러미에 담았다. 그래도 소형차 뒷좌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도 좌판 장식용으로 챙긴 밤나무 가지가 반을 차지했다. 이게 팔릴까? 장터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2일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선유아리농장 좌판에 채소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9월2일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선유아리농장 좌판에 채소들이 전시돼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은 옛날식 여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허름한 벽과 바닥에서 퀴퀴한 흙냄새가 났다. 시골 폐가와 다를 바 없었다. 호박 두덩어리를 맨 앞에 문지기로 세웠다. 푸성귀는 바구니에 담아 상자 위에 올렸다. 벽에 달린 전구에는 밤송이를 걸어 분위기를 잡았다. 생긴 대로 키워 볼품없는 채소들은 보안여관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농산물 좌판이라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전시회 같은 분위기였다.?“마늘이 너무 귀여워!” 손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좌판을 벌인 뒤 1시간이나 지났을까? 마늘 다섯쪽과 참외 두개를 2천원에 팔았다. 감격적인 마수걸이,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점심 무렵 감자와 노각을 한봉지씩 4천원에 팔았다. 덤으로 고추를 한움큼 줬더니 손님이 1천원을 더 놓고 갔다. 밤송이는 최고 인기였다. 밤송이 처음 본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만져보고 쳐다보고 인증샷 찍느라 바빴다. 급기야 밤송이를 사겠다는 손님이 나타났다. 파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노각 두개를 집어 들며 같이 사겠다고 졸랐다. 결국 1천원에 팔았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서 손님들이 밤송이를 구경하고 있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서 손님들이 밤송이를 구경하고 있다.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 내놓은 선유아리농장의 채소들.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 내놓은 선유아리농장의 채소들.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안 부러웠다. 호박과 늙은 애호박은 요리사들이 사갔다. 마지막에 감자와 노각, 애호박 등이 1만원에 떨이로 나갔다. 이날 총매출은 딱 5만원. 아리농장 첫 수익 창출이었다. 농작물을 키워서 팔았다는, ‘생산자의 자부심’이 뿌듯하게 올라왔다. 아마도, 밤송이를 판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농부. 내 인생의 이력이 한줄 늘었다.

pjc@hani.co.kr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6051.html#csidx66a86631b564a73a8e8a31d1f0936c4 

중앙일보: 벼에서 쌀로, 다시 밥과 막걸리로 … 사라진 1500종, 토종 벼의 귀환을 꿈꾸다_20171029

[중앙선데이]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의 2층 전시장에 토종 벼들이 예술적 오브제가 되어 놓여있다.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의 2층 전시장에 토종 벼들이 예술적 오브제가 되어 놓여있다.

전시가 시작되는 보안여관 입구

전시가 시작되는 보안여관 입구

2011년부터 토종 벼를 심어온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

2011년부터 토종 벼를 심어온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볍씨는 1998년과 2001년 충북 청원군에서 출토된 소로리 볍씨입니다. 약 1만5000년 전 것으로, 중국보다 4000년 앞서는 것으로 분석됐죠. 한반도에서 재배된 토종 벼는 1500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토종 쌀인가요?”

통의동 보안여관 프로젝트전 ‘먹는 게 예술이다, 쌀’ 가보니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과 아트스페이스 보안 1942에서 ‘먹는 게 예술이다, 쌀’(10월 16일~11월 4일)을 시작한 최성우(57) 대표(일맥문화재단 이사장)는 기획 의도를 묻는 말에 이렇게 되물었다. “젊은 작가들과 기획 아이디어를 찾다가 토종 벼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는 최 대표는 생활밀착형 예술에 초점을 맞추는 ‘OOO가 예술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토종 벼를 점찍었다. 그리고 2011년부터 토종 벼 되살리기에 힘써온 우보농장의 이근이(50) 대표 농부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학자, 요리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벼-쌀-밥’의 순환 구조를 예술가들의 감각으로 풀어낸 전시 ‘흔들리며 서서; 교감식물’(11월 4일까지)을 비롯해, 토종 쌀과 밭작물을 거리에서 파는 세모아 토종 마켓(21일), 생태인류학적 관점에서 쌀과 인류 문명의 상관 관계를 풀어보는 좌담 ‘교감하는 생태와 문명’(28일), 교육 프로그램 ‘토종 쌀과 풍토·시간·사람’(28일)이 진행됐다. 11월 1일 오후에는 토종 쌀과 작물을 인근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두 쉐프(두오모의 허인, 디미의 이희재)들의 요리로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워크숍이 이어질 예정이다(문의 boan1942@gmail.com). 21일 오후 열린 개막식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이소요 작가가 만든 토종 벼 ‘흑갱’의 표본. 작품 사이즈가 가로 83·세로 161cm로 토종 벼가 사람 키만하다.

이소요 작가가 만든 토종 벼 ‘흑갱’의 표본. 작품 사이즈가 가로 83·세로 161cm로 토종 벼가 사람 키만하다.

 송호철 작가의 18분 30초짜리 영상작업 ‘벼 꽃과 한국의 토종 벼’

송호철 작가의 18분 30초짜리 영상작업 ‘벼 꽃과 한국의 토종 벼’

김준 작가의 ‘층간-소음’(2017). 이곳에서는 눈을 감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김준 작가의 ‘층간-소음’(2017). 이곳에서는 눈을 감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아트스페이스 보안 1942 2층 전시장에서는 밥그릇, 대나무 도시락 등을 볼 수 있다.

아트스페이스 보안 1942 2층 전시장에서는 밥그릇, 대나무 도시락 등을 볼 수 있다.

21일 오후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앞.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과 서촌을 오가던 사람들이 거리에 펼쳐진 좌판에 연신 고개를 기웃거린다. 통통한 봉투에 든 도정한 쌀들과 누룽지에 관심을 보이자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가 설명을 시작한다. “이것은 자광도(紫光稻)라는 토종 쌀인데, 밥을 지으면 자주색이 아주 반짝반짝하죠. 임금님께 진상하던 겁니다. 처음엔 조금씩만 넣어 드셔보세요. 풍미가 색다르실 겁니다.”

보안여관 안으로 들어가니 토종 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펼쳐진다. 송호철 작가의 비디오 영상 ‘4는 88이 아니다’는 이양기와 트렉터 등 4번의 기계 작업으로 마무리되는 현대 농법과 여든여덟 번의 손길(米)이 필요하다는 전통 자연 농법을 비교해 보여준다. 안 쪽에는 김준 작가의 ‘층간-소음’이 설치돼 있다. 한아름 볏짚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벌레 소리, 바람소리가 들린다. 토종 벼가 자라는 논에서 작가가 채집한 소리들이다. 헛간 같은 느낌의 보안여관 분위기와 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삐걱대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왼쪽에 이소요 작가의 거대한 표본 액자가 관람객을 맞는다. ‘흑갱’이라는 이름의 이 토종 벼는 키가 무려 150cm에 달한다. 최 대표가 설명했다. “저렇게 키가 큰 데 잘 쓰러지지도 않는다고 해요. 잡초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를 키운 것 같아요. 게다가 이게 가장 큰 품종도 아니래요. ‘북흑조’는 다 크면 180cm나 되지만, 아직 자라고 있어서 작가가 표본 작업을 못 하고 있답니다.”

오른쪽 공간에서는 이 작가가 똑같은 크기로 정갈하게 표본 작업을 해놓은 토종 벼 55점이 한꺼번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가위찰·각씨나·까투리찰·궐나도·금나·돼지찰·대관도·대추벼·버들벼·앉은뱅이·여명·장끼벼·적토미·졸장벼…. 세상에, 토종 벼의 품종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절로 나오는 감탄은 곧 ‘왜 이걸 여태 모르고 있었나’라는 한탄으로 이어진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1911년부터 13년까지 조사한 『조선도품종일람』에 따르면 당시 벼 품종은 모두 1451종. 식량 수탈을 위해 일본 도입 품종을 심으면서 이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1970년대 식량자급을 내세워 개발된 ‘통일벼’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토종 벼에는 길들지 않는 자연미가 있죠. 토종 볏논에 기계가 들어가면 꼬이고 휘말려 고장이 날 정도입니다. 때문에 기계로 1~2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 종일 걸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죠.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들 덕분에 토종 벼는 멸종 위기에서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지역마다 다른 토종 벼, 이제 부활할 때”
이소요 작가의 토종 벼 표본 55점이 설치된 2층 전시 공간

이소요 작가의 토종 벼 표본 55점이 설치된 2층 전시 공간

김준 작가의 ‘층간-소음’. 스피커 위에 볍씨를 발아시켰다.

김준 작가의 ‘층간-소음’. 스피커 위에 볍씨를 발아시켰다.

이끼 속에 볍씨를 넣은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이끼 속에 볍씨를 넣은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는 원래 문화판에서 일했다. 문학동네 기획실장, 대중문화비평지 『리뷰』편집장, 대중문화웹진 ‘컬티즌’ 대표를 지냈다. 2000년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농산물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토종 벼의 경우, 고양시 벽제동 아파트 단지 앞 1000평과 파주시 2000평 등 총 3000평의 논에 키우고 있다.

질의 :토종 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응답 :“17년 전 경기도 고양에서 처음 농사를 했을 땐 밭작물 중심이었다. 운 좋게 이웃 할머니로부터 씨앗도 받고 퇴비 만드는 법도 배우며 농사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 그때 개량종과 토종 씨앗의 차이를 알게 됐다. 개량종은 한 해밖에 못 심는다. 만약 그 씨를 받아 이듬해에 심으면 원래대로 나오지 않고 변형된다. 쉽게 말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토종은 그렇지 않다. 똑같은 것이 나온다. 볍씨 몇 알을 심으면 똑같은 쌀이 1000배로 늘어난다. 씨앗이 그만큼 중요하다.”
질의 :토종 벼의 씨앗은 어떻게 구했나.
응답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할 때 계간지 ‘귀농통문’을 펴내면서 전국의 토종 농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분들께 조금씩 얻고, 토종종자보존단체인 씨드림의 씨앗나눔행사에서도 얻었다.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도 20여 종을 구했다. 2011년에 고양시 벽제동에 3평짜리 논을 마련해 30여 종을 심었고 이듬해 3000평 논에 심을 정도의 분량을 수확했다. 정부 유전자원센터에 450종 정도 있는데, 지난해 여기서 20종을 얻기도 했다. 올해는 100종을 심었다. 그런데 토종 벼를 심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질의 :어떤 궁금증인가.
응답 :“이름에 대한 것이었다. 누가 임의로 지은 것이 아니라 농부들이 지은 것이다. 버들벼는 키워보니 진짜 버드나무 같더라. 족두리를 쓴 색시 같다고 해서 붙여진 각씨나, 붉은 돼지의 등에 비유한 돼지찰도 재미있지 않나. 졸장벼는 키가 무릎 아래 정도로 가장 낮은데 짱짱한 맛은 있어 이렇게 해학적으로 붙였구나 싶었다.”  
질의 :벼를 키워보니 어떤가.
응답 :“벼라는 식물이 진짜 아름답다. 색깔도 정말 예쁘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것도 예술가들이 이걸 보고 감흥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또 지금 먹고 있는 쌀이 무슨 품종인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이런 토종 벼가 있었고, 자기 입맛에 맞는 쌀 하나 정도는 갖고들 있으면 하는 희망도 있다.” 
질의 :토종 벼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응답 :“야생성이 강하다. 대신 화학 비료나 농약에 취약하다. ‘아키바레’로 알려진 추청(秋晴) 같은 종자는 외려 비료에 길들여져 있어 안 주면 수확량이 떨어지는데, 토종 벼는 비료를 많이 쓴 논에 심으면 그냥 쓰러진다. 퇴비 등 유기농 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사진 왼쪽부터 기획자 신현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김이박 작가·우보농장 이근이 농부·최성우 보안여관 대표·송고은 객원 큐레이터·김준 작가

사진 왼쪽부터 기획자 신현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김이박 작가·우보농장 이근이 농부·최성우 보안여관 대표·송고은 객원 큐레이터·김준 작가

질의 :토종 벼를 심는 분들은 많은가.
응답 :“전국에 30여 분 계신다. 3년 전부터 ‘토종 벼를 재배하는 농부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연구하고 있다. 대규모로 생산하자는 건 아니다. 자급용 소규모로 키울 수 있는 지역 농부를 찾고 있다. 값이 비싸지만, 선호하는 품종이 생긴다면 계약 재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의 :판로가 있나. 
응답 :“도시농부 시장에 가져다 판다.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과 서울숲 등에서 한 달에 두 번 마르쉐가 열리는데, 직접 가서 설명하고 판매한다.”  
질의 :밥맛은 어떤가. 
응답 :“어떤 벼든 자기만의 특징이 있다. 밥맛도 천차만별이다. 자광도의 경우 백설기로 만들어 먹으니 카스테라 같고 맛있더라. 어떤 맛인지, 어떻게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특징과 방법을 찾아내는 게 과제다. 그래서 요리사, 음식평론가들과 테이스팅 워크숍을 꾸준히 하면서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  
질의 :쌀소비가 점점 줄고 있다.
응답 :“그래서 최근엔 막걸리 연구도 열심히 하고 있다. 1907년부터 35년까지 국내 주류업에 관한 일제의 공식기록을 편역한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를 보면 당시 주막 개수가 12만 개로 나온다. 10리 단위로 있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지역마다 술이 달랐다는 뜻이고 술 문화가 꽃을 피웠다는 얘기다. 그 술 문화를 계승하고 싶다. 그럼 쌀 소비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제대로 된 쌀로 빚은 제대로 된 막걸리가 나온다는 것이니까. 막걸리라는 말은 아무렇게 막 걸렀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걸렀다는 의미다.”
질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응답 :“한반도를 16개로 나누고 각 지역의 대표적인 토종 쌀로 막걸리를 만들 생각이다. 흑갱으로 만들면 흑갱 막걸리다. 이번에 16명을 선정해 각각 다른 쌀을 4kg씩 주었다. 누룩은 똑같이 주었다. 11월 11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마르쉐에서 선보일 예정인데, 과연 어떤 맛이 나올지 매우 궁금하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통의동 보안여관

원본 링크: https://news.joins.com/article/22060131

서울&: 서울형 도시재생, 그 현장 속에서 1박 2일 체류_20190307

생활 밀착형 문화 숙박업으로 탈바꿈한 77년 된 ‘보안여관’

1930년대 지어 2004년까지 유지되다

2010년 옛 공간과 터 유지 재생

2017년 복합문화예술 공간 신축

경계 넘나드는 문화예술 플랫폼 실험

통의동 보안여관에도 봄이 왔다. 보안여관1942 41호 방 창가에 걸터앉으면 까치들이 노니는 풍경과 경복궁 경회루 정경이 영추문 너머로 펼쳐진다. 1942년 지금의 옛 보안여관 모습을 갖춘 이후 문인들과 예술인들, 관료들, 그리고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짐을 풀었다. 사진 전현주

‘방’으로 떠났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자 길이 시작됐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으니, 모든 채비는 다 마쳤다. 여기는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41호 방이다. 창밖 너머로 3일 일요일 오후 3시께 풍경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잎사귀를 털어낸 나뭇가지 사이로 경복궁 경회루와 호수, 근정전, 하얀 샛길까지 보였다. 경복궁 서쪽으로 열린 영추문에는 사람들이 물처럼 흘러다녔다.

떠도는 이들을 더 잘 떠돌게 해주는 방

서울은 오늘도 새 방을 짓고 헌 방을 허무는 일로 바쁘다. 현재 서울에 있는 합법적 숙박업소는 대략 3200여 곳.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도 시대별 안목과 유행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안여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짓고 2004년까지도 손님을 받았다. ‘유서 깊은 서울여관’으로 손꼽힌다. 개발 논리에 밀려 그대로 삭제될 법한 공간과 터가 2010년 되살아났다. 최성우(59) 보안여관 대표는 옛 건물 골조를 그대로 두고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뒤, 2017년 복합문화예술 공간 ‘보안1942’를 나란히 신축했다. 새 건물 이름은 보안여관 천장 수리 때 발견한 ‘상량식 소화 17년’(1942년)이라 적힌 상판에서 따왔다.

보안여관 들머리를 그대로 보존했다.사진 전현주

77년 된 여관의 맥을 이어온 덕에 방마다 얘깃거리도 많다. 미당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선생이 머물며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문학의 산실’이란 별칭이 있는데, 최 대표는 “박제된 역사 속 방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숨 쉬는 방”이라며, 어제까지 방을 거쳐간 이들에게 애정을 치우쳐 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15명의 작가 그룹 루앙루파, 일본에서 온 사진작가 이타미 고, 영국과 중국에서 온 예술가들이 근래 들어 이름을 남겼다. 그 밖에 각국에서 온 패션디자이너, 엔지니어, 애니메이션 감독, 프로듀서들도 보안여관에 짐을 풀었다.

“예술가들이죠. 정주하지 않고, 묶어둘 수도 없는 이들이잖아요. 나그네들은 어디서든 잘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철학자 칸트가 말했죠. 세상 누구든 어디 가서든 적으로 간주될 수 없고, 누구든 ‘환대’받을 자격이 있다고. 떠도는 이들을 더 잘 떠돌게 해주는 일이 보안여관 정신이라 할 수 있어요.” 최 대표는 방을 거쳐간 이들의 숙박계를 보안여관 누리집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방을 알아주는 사람이 들어차야 풍경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먹고, 읽고, 자고 스스로 바탕을 만드는 방

보안1942 3·4층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 ‘보안스테이’는 7개 방마다 인왕산과 북악산, 경복궁, 통의동에서 저 멀리 효자동까지 사려 깊게 조망한다. 밤이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그림자가 빈 벽에 드리우는 방, 창문 너머 펼쳐진 디귿자 도시 한옥과 지붕을 노니는 고양이 무리가 인기인 방, 엘피(LP) 감상실로 꾸민 방, 홀로 숨어들기 좋은 방들이 있다.

한국작가들 도예작품으로 방을 채웠다.사진 전현주

개성 속에 질서가 자리했다. 41호 방은 물론, 보안여관의 모든 방은 지역 예술가들과 현대미술가들이 만든 소품으로 여백을 존중해 채워넣었다. 책상, 의자, 평상, 소반, 꽃가지 등도 유심히 볼 일이다. 이는 ‘본질적인 도시재생’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저희 보안여관 콘셉트 자체가 도시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실험하고, 사회와 중개 역할을 해나가는 일이니까요. 경계를 넘나드는 등 별걸 다 실험해보고 있죠. (웃음)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보안여관이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거예요.”

카페 겸 브랜드상품을 판매하는 보안여관1942 1층 ‘33마켓’.사진 전현주

‘편안함을 지켜준다’는 보안(保安)이란 명칭 속에서 ‘자고, 보고, 읽고, 먹고, 마시고, 걷게’ 하는 일이 박자 맞춰 이뤄진다. 2층에 ‘보안책방’이, 1층에 카페 겸 브랜드 상품 가게인 ‘33마켓’이 성업 중이다. 2년차를 맞은 책방은 한 달에 400여 권 판매 실적을 보인 적도 있다. 카페에선 한국적 다과를 곁들인 차 메뉴에 공을 들였고, 한국 현대 작가들의 도예 작품을 더불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4~5월 중 열릴 새 전시를 준비하는 지하 1층 전시 공간은 구름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는 옛 보안여관 건물 1, 2층 전시장과 궤를 같이한다. 지하 2층 술집은 현재 종료됐지만, 4월 중 열릴 새로운 콘셉트의 ‘요일별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바닥에 조선 시대 유구(집터) 4개를 그대로 보존해 노출시켰는데, 추사 김정희의 집터란 소문도 있다. 건물을 짓고 공간을 소비해온 지난 10년이 ‘생존 게임’이었다고 말하는 최 대표는 “생활 밀착형 문화 숙박업이자, 장소 특성적 예술을 생산하는 아지트”로서 보안여관을 꾸려나가는 일이 “공공성에 대한 책무”와도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오래된 여관방을 여행한다는 것

3일 저녁 7시. 보안서점에 코를 박고 머물다가 한 아름 책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과 공간을 구미에 맞게 정돈하고 차차 소요가 잦아드는 거리를 구경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깃털을 손질하던 경복궁 까치들이 청설모에게 시비를 거는 풍경, 궁궐을 청소하는 경비원들, 바삐 걷는 사람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뒤엉키며 거리가 살아나는 광경이 볼거리였다.

보안여관은 새봄을 맞아 창문에 입춘첩을 붙였다. 좀더 ‘한국적인’ 콘텐츠를 마련해 숙박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17일 보안여관 마당에서 열리는 ‘세모아’ 장터에서는 토종 먹거리와 농부들을 주제로 20여 팀 판매자들이 방문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상반기 중에는 ‘한일 관계’를 제대로 사유하는 인문학 모임이 예정됐다. 스스로 ‘궁중채화’(장인이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임을 밝힌 최 대표는 ‘우리 것에 대한 고민’이 오래된 서울 여관방을 지탱하는 힘이라 한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계속 연구하고 찾아서, 그걸 ‘보안여관스럽게’ 만들어서 보유하고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의 보안여관 방향이지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보안여관(왼쪽)과 새로 지은 보안여관1942(오른쪽)을 잇는 구름다리. 사진 전현주

방이란 한국인들 정서와 관습이 집약된 공간이다. 돌아보면 방 안에서조차 길을 잃고 헤매는 가련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거리를 방랑하는 예술가들과 나그네들에게 서울의 오랜 여관방들은 별처럼 존재한다. 그들의 결을 탐색하는 ‘방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먼 곳을 향하는 여정보다도 고되고 복될 수 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원본 링크 : http://www.seouland.com/arti/PRINT/4704.html

서울&: 70여년 여관의 진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_20180111

이인우의 서울 백년가게

70여년 여관의 진화…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보안1942 since1930’s

1936년 서정주가 함형수 등과

장기 투숙하며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곳

이상, 이중섭, 구본웅 등 화가들의

일탈과 예술혼이 영근 곳

폐업한 여관, 최성우가 2007년 인수

새집 지으려다 역사적 가치 확인

“보안여관 허무는 건 죄악”이라 판단

갤러리·서점·술집에 게스트하우스

오른쪽 2층 건물이 1936년 서정주·함형수 등이 시동인지 을 펴낸 통의동 보안여관. 지금은 갤러리로 쓰인다. 구름다리로 연결된 왼쪽 4층 건물이 복합문화예술공간 ‘보안1942’이다. 보안여관의 문화사적 후광을 받으며 다양한 문화 생산 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목표로 건축됐다.

다윈의 진화론을 빌리면, 문화도 자연처럼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연생태계와 달리 문화생태계는 인간이 선택의 주체다. 문화는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 모종의 변화를 일으킨다. 어떤 선택은 소멸을 통해 재탄생을 예비하고, 어떤 선택은 보존을 통해 재창조된다. 도시를 보면, 개발과 재생의 전략이 소멸과 생성의 방향을 좌우한다. 어느 쪽의 선택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가 그 도시의 일상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 선택은 결국 인간이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다.

지난 10년 새 이 문화 선택의 한 사례가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일어났다. 낡아서 헐릴 운명이던 건물이 현대미술 갤러리가 되고, 그 건물 옆에 원래 건물을 똑 닮은 ‘신관’이 들어섰다. 두 건물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하나의 공간을 이루면서 자신들이 같은 탯줄로 연결돼 있음을 내비친다. 최근 서울의 새로운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등장한 ‘통의동 보안여관’과 ‘보안1942’(종로구 효자로 33)이다.

#경복궁 서쪽 담장을 끼고 청와대 쪽으로 걸어가면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이 나오고, 그 건너편에 구식의 2층짜리 타일 외장(실제로는 벽돌) 건물이 보인다. 옛 ‘보안여관’이다. ‘손님의 안전을 지켜드린다’는 뜻의 보안(保安)여관은 1936년 이전 어느 때에 일본인이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폐업할 때까지 70년 가까이 청와대와 경복궁 주변의 거의 유일한 여관으로 존재했다.

‘보안1942’ 최성우 대표가 4층 게스트하우스(보안스테이)에서 경복궁 영추문을 가리키고 있다.

보안여관 건물은 폐업 후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2007년 보안여관을 산 현재의 주인 최성우(58)씨에게 재생의 선택을 받아 2010년부터 갤러리로 쓰인다. ‘보안여관 갤러리’는 폐업 당시의 오래된 여관 내부를 그대로 전시 공간으로 쓴다. 관행적인 전시 구조에 맞춰 억지로 개조하기보다는 건물이 지닌 역사성을 최대한 “살아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지키기 위한 주인의 “철학 있는” 선택이었다. 갤러리 보안여관의 가장 최근 전시는 지난달 29일 끝난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6주기 추모전-따뜻한 밥상’이었다.

이 보안여관 옆에 지난해 6월 ‘보안1942’라 명명된 새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얼핏 보면 독립된 건물 같지만 길 건너에서 바라보면 이 지상 4층(지하 3층) 건물이 옆의 2층짜리 보안여관의 확장판임을 간파할 수 있다. 몸집 작은 보안여관을 위압하지 않도록 위치도 3m 정도 뒤로 물러서 있다.

이 새 건물의 이름이 ‘보안1942’인 것은 보안여관 천장을 수리하면서 발견한 ‘상량식 소화 17년’이란 명문에 근거한다. 이 명문을 통해 보안여관 건물이 서기 1942년에 일본식 목조가옥으로 (재)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소화 17년의 보안여관이 20세기의 유산이라면, 보안1942는 보안여관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소화 17년(1942년)이라는 건축 연대가 발견된 보안여관 천장의 상량문.

보안1942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설계 민현식)으로 지었다. 갤러리(지하 1층)를 비롯해 서점(보안책방) 겸 주점(심야오뎅), 화원(보안화원, 이상 지하 2층), 브랜드 상품점이자 한권서점(2층) 등이 있고, 1층에는 카페 밥집(일상다반사)이 입주해 있다. 지하 3층에는 목공방이 들어설 예정이다. 경복궁과 청와대, 북악산이 바라뵈는 3, 4층의 게스트하우스(보안스테이)가 보안여관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보안1942는 “보안여관이란 문화적 토대 위에서 바라보고(See), 거주하고(Sleep), 먹고(Eat), 읽고(Read), 걷기(Walk)를 제안하는 문화예술 공간이자 글로벌 네트워크를 엮어가는 문화예술 플랫폼”을 자임한다. 이런 모토는 전통적인 숙박업소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시대에 적합하게 계승하고 확장하려 하는지 그 일단을 보여준다.

갤러리 입구 예술품이 되어버린 보안여관 간판과 카운터가 추억의 이야기를 머금고 있다. 펜·수채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보안여관은 운이 좋았다. 새 주인 최성우는 안목과 재력과 경영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부산의 유력한 사업가 집안 출신으로 일찍이 프랑스 문화부의 제3세계 연수단 일원으로 선진국의 문화예술 경영을 공부했다. “예술판의 끼리끼리 문화를 타파하고, 사회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라와 민족의 차이도 뛰어넘는” 문화예술의 독립지대를 ‘건설’하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수년간 최적의 장소를 물색한 끝에 2007년 폐업 상태의 보안여관과 주변 가옥 2채를 사들인다. 그 자리에 자신의 이상을 구현해줄 새집을 지을 계획은, 비가 새는 낡은 지붕을 보수하게 되면서 ‘차질’을 빚게 된다. 어려서부터 규모가 큰 적산가옥(부산 동구 초량동의 일명 ‘다나카 가옥’)에서 생활해본 그에게는 1942년이란 확실한 연대를 지닌 근대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보안여관은 2004년 폐업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재활용되고 있다. 원칙 없는 보수로 원형을 훼손하기보다는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해보자는 뜻이다.

70년이 넘는 건물의 수명에 주목한 최성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안여관의 역사에도 근접하게 된다. 알고보니 보안여관은 근대 한국 예술의 산실 중 하나였다. 1936년 서정주가 함형수 등과 장기 투숙하며 김달진,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곳이 바로 보안여관이었다. 이상, 이중섭, 구본웅 같은 문인·화가들의 일탈과 예술혼이 영근 곳도 보안여관 13개 방이었다.

보통사람들의 역사도 만만치 않았다. 통행금지가 있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청와대와 옛 공보처 공무원, 박물관(철거된 경복궁 안 조선총독부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학예사들이 숙박계를 남겼고, 청와대 경비 병사들의 면회 가족과 연인들의 추억도 쌓였다. 선배 문인들의 기운을 이어받고 싶은 신춘문예 지망생들이 열정을 벼리던 곳이기도 했다. 보안여관은 명사들이 등장한 역사 속의 ‘방’이기에 앞서, 무수한 익명들이 삶의 잔영을 남기고 간 민중들의 방이었던 것이다.

“적산가옥에 친숙했던 개인적 경험으로, 선진 문화경영의 이상으로, 무엇보다 보안여관의 역사로 보나, 그 어떤 이유로도 이 건물을 허무는 것은 죄악이었다.”

최성우의 생각은 이때부터 박제화된 유물로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문화의 일부로서 보안여관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최성우에 의해 보안여관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최성우가 보안여관에 사로잡혔다”는 그의 말에는 아이러니한 행복이 묻어났다.

게스트하우스의 방들은 특별한 전망을 제공한다. 경복궁 경회루 원경, 위에서 보는 영추문 누각, 북악산과 청와대 지붕 등이 방마다 보인다. 실내의 집기들은 대부분 협업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안여관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프로젝트인 보안1942가 완공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보안여관과 보안1942가 어떻게 콘셉트에 맞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거듭된 결과였다. 적산가옥이 일제 잔재라는 인식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이해 차이 때문에 무수한 설계 변경과 건축허가를 둘러싼 실랑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자본력과 집념이 없으면 돌파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공간이 열린 다음 단계는 그 공간에 시간을 채우는 일이 남았다. 시공이 갖춰지면 스토리가 호출되고, 구축된 스토리는 공간에 역사를 부여한다. 최성우는 보안프로젝트 계획 수립 10주년이 되는 오는 10월, “집을 지은 뒤 상량문을 올리는 것처럼” 지난 10년의 건축 과정을 정리한 백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가칭 <보안백서>는 지난 80여 년에 걸친 보안여관의 과거와 현재,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두루 담을 계획이다. 건물 자체의 이야기뿐 아니라 건물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땅과 사람의 역사도 아울러서 보안여관의 전사(前史)로 삼는다는 ‘야심’이다.

달라진 주변 환경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태될 운명에 처했던 한 일본식 목조가옥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공간 겸 ‘문화숙박업소’로 재창조된 대강의 사연이 여기까지라면,

앞으로 보안의 꿈은?

“대학 시절부터 무경계의 공간에서 먹고 자고 놀며 일하는 문화예술의 플랫폼을 꿈꿔왔다. 이제 그 기본 토대는 마련됐으니, 깃발을 지키는 거다. 문화 ‘독립공화국’의 깃발. 자본의 욕망 구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문화를 사고하고 성찰하고 생산하는 문화예술의 건강한 생태계로 이름 불리길 바란다.”

자립 경영의 비전은?

“어떤 독립공화국도 자립할 수 없으면 환상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우리 프로젝트는 자가발전, 자체 생존이다. 비영리 행위인 문화예술 경영에 100% 순수한 자립이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자기 전시기획 정도는 자체 해결이 가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난 반년의 경영 성과를 결산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손익분기점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됐다. 파트너십으로 운영한 주점과 카페의 실적이 좋다. 술집은 주말 저녁이면 예약이 어려울 정도이고, 1층 밥집 카페는 이 일대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갈 길은 멀지만, ‘우리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돈도 번다’는 목표대로 간다.”

10년 뒤 보안의 모습을 설정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살아 있음’이 지상과제다. 그다음은 보안여관을 잘 건사하는 것이다. 보안여관이 백 살이 되어서도 끄떡없는 건물이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는 좋은 큐레이터, 유능한 문화경영자들이 보안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되고 성장해서 나를 디렉터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주는 것이다. 노후 목표가 국제적인 떠돌이로 사는 것이다.”

글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원본 링크 :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2988.html

주간조선: 낡은 여관에 예술을 불러들이다 최성우 통의동보안여관 대표_20190617

[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낡은 여관에 예술을 불러들이다 최성우 통의동보안여관 대표

▲ 80년 된 여관에선 새로운 전시가 이어진다. ‘통의동보안여관’의 2층에서 퍼포먼스 작가 박승원의 작품 아래 최성우 대표가 앉아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0여년 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불도저 소리가 요란했다. 종로 1가 곳곳에는 공사용 가림막이 세워졌다. 600여년 역사를 간직한 ‘피맛골’도 그 뒤에서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엔 현재 고층 오피스빌딩들이 올라서 있다. 종로뿐만 아니라 서울은 재개발, 재정비라는 이름으로 헌것 부수고 새것을 지어 올리기 바빴다.

대형 타워크레인이 종로 일대에 세워지기 시작한 2007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생긴 ‘보안여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70년 넘게 여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문화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야근에 지친 정부부처 관리들의 숙소로 수많은 기억과 사연을 품은 곳이다. 2004년 여관의 수명을 다하고 문을 닫은 낡은 적벽돌의 2층 건물은 언제 허물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용도폐기된 채 먼지를 뒤집어쓴 ‘보안여관’의 간판을 다시 건 사람은 최성우 ‘통의동보안여관’ 대표였다. 최 대표는 보안여관에 통의동을 붙여 이름을 바꾸고 사람이 묵기 힘든 이곳을 문화가 묵는 곳, 즉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벽이 허물어지고 골조가 드러난 여관으로 예술을 불러들였다.

도심 개발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건물의 울림은 의외로 컸다. 역사와 시간이 점점 거세되고 있는 도시 안에서 오래된 것들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생각할 지점을 만들어주었다. 낡은 건물의 낯선 행보는 금방 화제가 됐다. 언론에 오르내리고 서촌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도시개발이라는 단어 대신 ‘도시재생’이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오랜 주택 등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그 대열의 맨 앞에서 ‘보안여관’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2년여 전, 보안여관 옆에는 4층 높이의 닮은꼴 건물이 세워졌다.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이다. 보안여관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보안여관의 역사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보안여관 천장에서 발견된 상량문에는 ‘소화 17년(1942) 5월 3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보안여관이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는 1936년이다. 미당 서정주의 자서전 ‘천지유정’에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1938년 경성상공명부에도 등장한다. 운영주 ‘이유숙’의 이름과 함께 ‘세금 31.60원’이 적혀 있다. 상량이 올려지기 전부터 여관의 기능을 했다는 이야기지만 상량문대로 1942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전통은 쓰여야 한다

신·구 보안여관은 서로 보완 역할을 하고 있다. 구관의 시간 위에 지어진 신관은 구관이 못다한 숙박의 기능을 잇기 위해 3·4층을 스테이로 만들었다. 나머지 지하 2층까지는 책방, 카페, 전시, 모임 공간이 들어가 있다. 두 건물은 2층에서 다리로 연결이 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갈 수 있게 했다. 신관을 지어 올리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책으로 쓸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적벽돌의 두 건물은 주변 풍경에서 튀지 않으려는 듯 무표정하게 서 있다. 신관은 키 낮은 구관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3m쯤 뒤로 물러서 있다.

최성우 대표(59·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책임교수)와 신관 2층 보안책방에서 만났다. 통유리창 밖으로 6월 경복궁의 초록이 무성했다. 길 건너 대각선 위치에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이 보였다.

“오래된 것이 현재 쓰였을 때 새로운 것입니다. 미술관, 박물관에 모셔진 전통은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오래된 가치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고, 유용한 현재 가치로 전환시켰을 때 컨템퍼러리 아트, 즉 동시대 예술인 거죠. 그것이 다른 지점입니다. 오래된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쓰임에 대한 생각은 다릅니다. 옛날 것은 불변의 가치로 모셔놔야 한다? 그건 문화재청에서 할 일이고 계속 사용해야 전통도 살아 숨 쉬죠.”

최 대표는 ‘쓰임’을 계속 강조했다. 보안여관이 가치가 있는 것은 단지 오래돼서가 아니라, 오래된 건물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대로 이곳에서는 읽고 보고 먹고 자고, 모든 용도의 쓰임이 일어난다. ‘미술관·박물관은 세상의 1%에 주목하지만 우리는 나머지 세상에 주목한다’는 것이 ‘보안여관’ 쓰임의 방향이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토종쌀을 전시장으로 불러들이고, 예술가들이 만든 안주와 공연이 어우러진 프로젝트 ‘통의동 예술포차’, 수집품, 창의적 제품 등을 파는 프로젝트 숍 ‘예술을 파는 구멍가게’ 등이 열렸다.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들의 벼룩시장 ‘세·모·아 프리마켓’은 도시농부, 지역주민, 아마추어 장인들의 공생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두럭’은 매년 청년작가, 기획자를 선정해 연구모임을 지원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누구나 환영’하는 대화 플랫폼 ‘목차’를 한동안 진행했다. ‘포트폴리오 리뷰’ 모임은 경력단절자, 인맥 없는 해외유학파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내는 위로의 자리였다. 아이 키우며 작가의 꿈이 멀어진 한 주부는 지방에서 틈틈이 그린 작품을 들고 올라와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갔다. 동양문화사, 서양고전음악, 가양주 담기 등을 주제로 한 스터디모임 ‘보안클럽’도 있다. 국제교류전도 자주 열린다. 구관과 신관의 전시 공간에서는 다양한 기획전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판이 벌어지지만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돼 있다. 거대담론이 아니라 ‘보안(保安)’이라는 단어 뜻대로 개인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생활밀착 예술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새로운 담론으로 예술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보안여관’의 작업들은 하얀 사각 벽의 갤러리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신관이 완성되고 신·구가 호흡하며 3년째, 자생이 목표지만 쉽지 않다. 특히 구관 운영은 어렵다. 창작 공간 지원금으로 1년에 2000만~3000만원을 받지만 전시 하나 만들기도 빠듯하다. 얼마 전 구관의 한쪽 벽이 뜯겨져나가 보수를 했다. 손을 대니 상태는 더 심각했다. 공사비가 예상을 훨씬 넘었단다. 구관은 냉난방도 안 되고 화장실도 없다. 애초에 예술이 올 곳이 아니었다. 최 대표는 “그래도 서울 시내에 불편한 건물이 하나쯤 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니냐”고 물었다. 보안여관의 내부는 헐다 만 건물처럼 벽지가 찢기고 천장이 드러나 있다. 작가들에게는 공간 자체가 작업의 일부가 된다. 이곳에 온 사람들의 반응은 두 종류라고 한다. “와~ 이런 데가 있었어?” 혹은 “언제 부술 거예요?”이다. 최 대표도 문화예술 플랫폼을 꿈꾸며 보안여관과 주변 건물 2채를 매입했을 당시엔 새 건물을 올릴 생각이었다. 평범한 벽돌과 허술한 벽, 천장 안에 정체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하도 새서 천장을 뜯어보니 상량문과 함께 박공지붕이 드러난 겁니다. 그전엔 목조주택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헐어버릴 건물이 아니다 생각했죠.” 최 대표가 비 샌 흔적으로 얼룩덜룩 무늬가 만들어진 천장을 바라보며 “저것에 홀려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낡아빠진 목조주택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헐어버릴 이유겠지만, 최 대표에게는 오히려 지켜야 할 이유였다. 보안여관의 역사를 뒤지고 설계를 변경했다. 보존을 위해 보안여관을 둘러싸듯 건물을 올려야 하나 고민 끝에 최소한의 수리만 하고 있는 그대로 살렸다.

▲ 80년 넘은 2층짜리 보안여관과 3살 나이의 ‘보안1942’(위쪽)가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 두 건물은 2층에서 다리로 연결이 돼 있다. 신관에는 ‘보안스테이’와 ‘보안클럽’ 등이 들어서 있다. 신관을 짓는 과정에서 유물이 나와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유물은 지하 2층 ‘보안클럽’ 바닥에 유리를 통해 볼 수 있게 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적산가옥의 기억

최 대표는 외조부의 적산가옥에서 자랐다. 그의 DNA가 오래된 시간의 냄새를 알아본 것이다. 그는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외조부는 부산 섬유산업의 토대를 이룬 ‘태창기업’의 창업주 고 황래성 회장이다. 어머니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채화장 보유자인 황수로(83) 동국대 석좌교수이다. 부산 초량동에 그가 살았던 100년이 넘은 적산가옥이 있다. 등록문화재 제349호다. 최 대표는 이곳에서 초·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외조부는 한때 전국 납세 1위를 할 정도로 사업을 일궜다. 태창여상을 만들어 공장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일맥문화재단을 세워 장학사업을 펼쳤다. 최 대표는 현재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적산가옥은 최근 몇 년 새 몸살을 앓았다. 주변에 40층 아파트 단지와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지반침하가 일어나고 건물이 뒤틀렸다. 건물을 해체해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최 대표는 이곳을 부산의 상징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차, 전통술, 음식을 매개로 부산을 브랜딩하기 위한 구상을 하고 있다. 적산가옥 옆에 미술관도 세울 계획이다. 보안여관을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시행착오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고 있다. 부산의 적산가옥은 일맥문화재단의 이름으로, 보안여관은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한다. 서울과 부산의 적산가옥이 평생 그의 과제가 된 셈이다. 최 대표는 “전 세대로부터 받은 것이 많으니 사회에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수백 년 된 건물을 그대로 쓰는 것이 일상이니 낡은 여관 하나 보존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씁쓸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대수로운 일이다. 최 대표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 박사준비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문화성 연구단원으로 2년을 보냈다. 학문보다 ‘실행’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마다 노크를 하다 운 좋게 연결이 됐다. 전 세계 인재들을 뽑아 유럽 전역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일반인은 만나기 힘든 퐁피두센터 관장을 만날 수도 있고, 박물관 수장고며 시스템도 구경할 수 있었다. 12명이 같은 기수로 각국의 문화계에서 굵직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때 유럽의 문화를 속속들이 공부했다.

1993년 한국에 들어와 교수는 싫고 문화경영 쪽으로 할 일이 있겠다 싶어 문화단체, 기관을 두드렸지만 그가 갈 곳이 아니었다. 민방위과장을 하던 사람이 문화회관 관장을 맡던 시절이었다. 때맞춰 집안사정으로 사업을 떠맡게 됐다.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10여년을 보냈다. 그가 한참을 돌아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 보안여관이다. 1년 반 동안 서울의 전 지역을 걸어다닌 끝에 멈춘 곳이다. 인맥 중심의 미술판과 제도권 밖에서 생활 속 문화예술로 대중과 소통할 곳을 찾고 싶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은 벽에 걸린 것이 아니다. 벽에서 떨어져나와 식탁 위에,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보안스테이에 작가들의 가구, 다기를 놓고 쓰게 하고, 전시장 앞마당에 장이 서는 것이 모두 하나의 맥락이다.

‘보안여관’은 도시재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린다. 최 대표에게 도시재생에 대해 물으니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라고 했다. “지자체장들이 도시재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재생은 버려졌던 것을 다시 쓰는 것인데 80년 된 보안여관의 역사를 1~2년에 재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도시재생을 1~2년 만에 뚝딱 하라고 하니 수십억, 수백억원씩 써서 건물만 짓고 결국 껍데기만 남는 거죠. 관 주도로 성과 내기 식 도시재생은 돈폭탄 떨어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재생을 문화 도시재생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주민밀착형으로 지속가능하게 삶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수치로 측정하고 평가하겠습니까.”

최 대표는 전문가의 부재도 지적했다. 그는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들여 그 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을 살리는 것이 전문가”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수행 자체가 모델이 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도시재생’이 유행처럼 또 다른 ‘삽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낡고 불편한 보안여관은 그래서 중요하다. 최 대표는 100년 후에도 보안여관이 잘 쓰이고 살아 남기를 바란다. 그는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장소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의 문화예술 야영지를 자처한 보안여관의 숙박계엔 계속 새로운 기억들이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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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19 공예주간’ 개막…전국 360곳서 공예 축제_20190517

17일 문화역서울284 개막식…김용삼 차관 ‘공예상’ 시상
부산 에프(F)1963서 직거래장터 ‘마켓유랑’ 25~26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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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점 3층 공예품 판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봉현)은 17~26일 전국 각지에서 ‘2019 공예주간(Craft Week 2019)’을 펼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공예를 즐기고 공예 소비를 활성화하며, 공예문화를 더욱 확산하기 위해 ‘공예주간’을 실시하고 있다. ‘2018 공예주간’에는 서울 및 수도권 일대 158개소에서 20만 명이 행사에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9 공예주간’에는 범위가 확대됐다.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부산, 광주, 창원, 청주, 강릉 등 전국 360여 개 공방・화랑(갤러리), 문화예술기관 등에서 공예를 주제로 한 전시, 체험, 판매, 강연, 지역 연계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17일 문화역서울284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전시 참가자와 협회・단체 관계자, 협력 프로그램 대표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문체부 김용삼 제1차관은 개막 행사에서 ‘올해의 공예상’을 시상하고, ‘2019 공예주간’의 시작을 선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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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 시대 공예 수집가들의 이야기 〈공예+컬렉션: 아름답거나+쓸모 있거나〉

◇ 공예의 새로운 매력을 알아가는 다양한 기획전시

공예주간 동안 문화역서울284와 인사동 진흥원 갤러리에서는 공예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기획전시가 열린다.

▲ 생산자 위주의 공예 생태계에서 벗어나, 쓰임과 향유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용자의 측면에서의 공예를 조명하는 전시 ‘공예×컬렉션: 아름답거나+쓸모있거나’, ▲ 한국공예가협회의 고문과 원로 회원을 비롯한 금속, 도자, 목칠, 섬유, 유리공예 등의 작가 104명이 참여한 전시 ‘한국 현대공예 시선’, ▲ 국가무형문화재, 장인, 현대공예가 등 작가 25명이 일상, 실천, 행동, 사회적 맥락 속으로 확산해가는 공예의 동시대적 의미를 100여 점의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 ‘공예실천, 더 프랙시스(the praxis)’ 등을 통해 공예를 즐길 수 있다.

특히 ‘공예×컬렉션: 아름답거나+쓸모있거나’에서는 이어령 전 장관 등 공예품 애호가 26명의 특별 소장품을 감상하고 영상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 전국 곳곳, 가족과 함께 즐기는 ‘2019 공예주간’

공예문화에 대한 강연과 대담도 이어진다. 통의동 보안여관에서는 젊은 공예작가와 공예이론가, 평론가, 인문학자들이 모여 옻칠, 고려다관, 목공예, 차와 다기, 모시, 백자, 공예와 패션의 융합 등, 공예의 전통적 가치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폐막식이 열리는 부산에서도 ‘공예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라는 소재로 대담이 진행된다.

공예 직거래장터인 ‘마켓유랑’은 폐막기간 25~26일, 부산 수영구의 복합문화공간인 에프(F)1963에서 열린다. 직거래장터에서는 공예와 생활문화 관련 품목은 물론 먹거리와 볼거리까지 마련해 가족 단위의 참여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역 대표 공방과 작가들이 각 지역의 공예 자원*을 활용하여 펼치는 지역공예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또한 전국의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예술기관과 복합 문화공간 등이 함께한 프로그램들이 올해 공예주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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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공예살롱 통의동 보안여관 2019 여관페어_공예편 〈호랑이의 도약〉

전국 지역별 프로그램과 일자별 주요 행사 등 공예주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예주간’ 본부인 문화역서울284(중앙홀)와 공식 누리집(http://craftweek.co.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공예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활 속의 공예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공예주간’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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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517_0000653816

 

조선일보: 고려청자 찻잔 재현에 숨겨진 이야기_20190516

 

고려 귀족들이 마시던 ‘단차’와 청자 차도구 되살려낸 

한국 차 전문가 박동춘과 도예가 이명균

18일 보안여관 ‘여관페어 공예살롱’에서 대담

경기도 여주에서 ‘하빈요’를 운영하는 이명균 도예가가 재현한 찻잔과 주전자 등 청자 다구를 이용해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이 고려 귀족들이 마시던 단차를 우려 거품 내고 있다./조선일보DB

고려는 한국 차(茶)문화의 극성기였다. 왕실과 귀족층, 불교 사원, 관료 문인들의 애호와 경제력을 토대로 중국 송나라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차문화를 형성했다. 왕실은 의례에 차를 올렸고, 왕이 직접 관료들에게 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고려는물론 한국 문화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고려청자는 이처럼 화려하게 꽃피운 고려의 차문화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11~12세기 고려의 맑고 그윽한 비색(翡色)의 청자 다완은 찻잔의 극치미를 드러냈다”며 “청자 다완은 눈처럼 흰 다말(차 거품)이 돋보이도록 만든 것이며, 섬세한 다말이 부드럽게 입안으로 넘어가도록 고안된 과학적이고도 완벽한 다구(茶具)”라고 했다.

한국 차의 중흥조 초의선사의 다풍(茶風) 잇는 박 소장은 지난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도예가 이명균 하빈요 대표와 함께 고려시대 마시던 차와 다구를 재현했다. 그 과정과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가 오는 18일 오후 4~6시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마련된다. 보안여관에서 기획한 ‘여관페어 공예살롱’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공예살롱은 공예 작가와 전문가를 매칭해 현대 고예가들의 작업과 그 성과를 다양한 측면에서 알아보는 대담 형식의 토크 프로그램이다.

단차를 빻아 가루 내는 데 사용하는 청자 맷돌./조선일보DB

박 소장에 따르면 고려 왕실과 귀족 등 엘리트들은 단차(團茶)를 즐겼다. 단차는 찻잎을 쪄서 절구로 찧고 갈아서 틀에 담아 작은 덩어리로 찍어내 말린 차다. 마실 때는 단차를 곱게 갈아 가루로 쳐낸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거품(다말)을 내어 마셨다. 박 원장은 “고려 단차는 제다법(製茶法)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당대 다서(茶書)와 역사서, 중국 기록 등을 참고해 재현했다”고 했다. 18일 행사에서 단차 시음은 없지만 박 소장이 고려 단차와 재현 과정을 설명하고 단를 갈아 차를 우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명균 대표는 오랫동안 박 소장과 함께 고려시대 청자 다구 재현을 위해 애써오다가 지난해 고려청자 찻잔과 찻주전자, 맷돌 등을 지난해 완성했다. 이 대표는 “유약 표면에 균열이 가지 않은 11~12세기 순(純)청자의 맑고 깊은 비색을 표현하는데 가장 신경 썼다”며 “청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b1942.com, (02)720-8409, artspaceboan@gmail.com

시사IN: 아름다움 너머 예술이 된 공예_20190605

– 우리 공예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한 자리를 차지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공예품을 소장하는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도 늘어났다.

‘좀비와 정말 멋진 모자들에 대한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에 대한 외국인들의 한 줄 요약이다. 외국인들이 단 댓글은 우리 전통 쓰개에 대한 감탄과 다양한 질문으로 채워졌다. 특히 양반들이 쓰는 챙 넓은 갓이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통 쓰개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은 낯설지 않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가장 인상적인 조선의 풍물로 갓을 꼽았다.

전통 쓰개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예를 표하기도 하고 신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통 쓰개 중 챙이 있는 것을 ‘입’ 또는 ‘갓’이라 부른다. 양반들은 말총으로 만든 ‘흑립’을 주로 썼다. 흑립 중에서 챙이 넓은 것은 말총이 아니라 대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가는 대오리(죽사)를 인두로 지져서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먹칠과 옻칠을 해 만든 것인데 <킹덤>에서 주목받았다.

갓이 현대에 재발견될 수 있었던 비결은 미니멀리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도모하고 검은색 단색으로 화려한 치장을 지양하는 갓은 현대인의 미감에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전통 갓의 미학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전시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갤러리 (KCDF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공예주간(5월17~26일)’ 행사로 열리는 <공예실천, the praxis>전(6월8일까지) 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장 박창영 명인의 갓이 전시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갓일장 박창영 명인의 갓이 KCDF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위). 스크린의 화면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KCDF 갤러리 2층 전시장에는 스크린에 투사된 <킹덤>의 장면을 배경으로 갓 수십 개가 매달려 있다. 갓끈의 형태도 다양한데 풀어놓기도 하고 매듭을 지어놓기도 했다. 치자로 물들인 노란 갓도 있고 챙이 넓은 갓도 있고 심지어 싸구려 모조품도 있다. 박창영 명인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갓 사이로 공장에서 만든 모조품 갓을 놓았다. 전통이 손쉽게 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전시장에는 한국 나전칠기계에서 한 획을 그었던 김봉룡 명인으로부터 주름질과 끊음질 기법을 전수받은 이형만 명인과 아들 이광웅씨의 나전칠기 작품 그리고 청자 공예가 고 유근형 명장과 아들 유광열 명장의 청자 등 대를 이은 공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유심히 볼 부분이 있다. 박창영 명인의 갓이나 이형만· 이광웅 부자의 나전칠기 작품에는 변주가 별로 없다. 전통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시사IN 조남진

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자유롭게 변주되었다.

이런 차이는 무형문화재 제도와 연관이 깊다. 지금까지 공예품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무형문화재 제도였다. <공예실천>전을 기획한 오세원 큐레이터는 “무형문화재 장인들도 원래는 실생활 용품을 만들던 장인이었다. 그런데 실생활에 쓰이지 않으면서 이런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무형문화재 제도를 만들어 가치를 부여하고 매스미디어는 이들을 집중 조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싹트고 공예 작품에도 아우라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전통을 보존할 수 있도록 돕고 권위를 부여해주지만 그것의 확산에 장벽이 되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기술의 대를 잇는 공예가들은 전통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들의 가치는 전통을 지키는 것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무형문화재의 계보 바깥에 있는 공예 작가는 확장성이 크다. 디자이너나 예술가와의 협업도 과감히 시도한다.
공예를 예술의 언어로 사용하는 작가들
<공예실천>전의 작품 중에서도 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자유분방했다. 고 유근형 명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세운 한양고려소에서 청자 제작 기술을 익히고 전국의 고려 시대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흙과 유약을 연구해 고려청자를 재현했다. 유근형 명장이 재현에 집중했다면 아들 유광열 명장은 청자를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확대했다. 유광열 명장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청자 의자 108개를 만들어 ‘108번뇌’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도 전시했다.최근 들어 공예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다원화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 여부다. <공예실천>전에 옻칠 작품을 전시한 정해조 배재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전통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는데, 그의 작품이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 왕립박물관이나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손혜원 의원이 기획하고 황삼용 나전칠기 장인이 제작한 ‘조약돌’ 시리즈도 현대미술 작가인 데이미언 허스트에게 팔리면서 유명해졌다.

ⓒ시사IN 조남진

이형만·이광웅 부자의 나전칠기 작품은 전통에 충실하다.

아름다움이 심심해질 무렵 공예는 아름다움 너머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바로 예술이다. 젊은 공예가들은 공예의 예술성이 단순히 아름다움에만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 미감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의 언어로 공예를 사용한다. <공예실천>전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도 그랬다. 강준영 작가는 공예의 ‘고급진 표현’ 중 하나인 백자와 금칠을 활용해 똥장군을 만들어 전시한다. 고급과 저급을 뒤섞는 장난이다. 최원진 작가는 공장에서 나온 ‘불량 도자기’ 3.75t을 수집해 ‘공존’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신미라 작가는 그리스 조각상을 비누로 만들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사용하게 한 후 마모된 부분을 그대로 전시하는 ‘화장실 프로젝트’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이들에게 공예는 미의 결정체가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로 가려는 양상이 가장 두드러진 공예 분야가 도자다. 1999년 시작해 올해 20년이 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덕분에 도자 분야는 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국제 교류도 활발하다. 그만큼 시장도 커졌고 이에 비례해서 도예가들의 예술적 표현 욕구도 증가했다.
ⓒ시사IN 고재열

박동춘 명장(오른쪽)이 고려 시대 단차를 마셨던 고려 다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해석되는 ‘공예의 쓸모’

공예주간에 맞춰 열리는 한국도자재단의 <생각하는 손>전 (6월30일까지)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공예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한 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경기도자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작품이 주로 전시됐다. 세계 현대 도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고전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이 어떻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다.

전시회의 제목은 우리의 지성이 손끝으로 표현된다는 의미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오유경 큐레이터는 “전시회 제목을 ‘생각하는 손’이라고 한 것은 공예 작가들이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손이 알아서 만들었다’고 답하곤 하는 것에서 착안했다.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을지 작가의 손길을 상상하며 보는 전시다”라고 말했다.

공예의 사전적 의미는 ‘실용적 물건의 본래 기능과 미적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예술성과 함께 공예의 다른 한 축인 ‘쓸모’에 대한 해석도 변하고 있다. 공예주간에 열리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의 <공예 살롱>과 <호랑이의 도약>전은 쓸모에 대해 재해석한 행사다. ‘호랑이의 도약(Tigersprung)’이라는 표현은 문예이론가 발터 베냐민이 했던 말로 과거를 소환해냄으로써 현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안여관 제공

‘보안여관 잔술집’에서는 김윤진, 강소청, 최이재, 양유완, 전유민, 유남권 공예가의 작품이 맥주 샘플러 잔으로 쓰였다.

5월18일 진행된 <공예 살롱>의 프로그램 ‘고려 다관 복원에 숨겨진 이야기’에서는 박물관에 전시된 고려 시대 다관을 재현한 과정을 설명했다. 박동춘 명장은 전통 방식을 연구해 고려 시대 단차를, 이명균 명인은 이를 담아낼 고려 다관을 복원했다. 둘은 협업하며 고려 시대 차 문화를 복원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동춘 명장은 “고려 다관을 재현하는 것은 단순히 형태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성을 담아내는 방식을 살핀 것이다. 따뜻하고 향기롭고 기운찬 차를 마시는 우리의 방식을 재현했다”라고 말했다.

전통 복원은 현대의 빈칸을 채울 수 있어서 의미 있다. 고려 시대와 지금은 차를 내리고 우리는 방식이 달라서 다관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당시 가장 융성했던 청자 문화와 차 문화를 현대의 차 문화에 얼마든지 대입할 수 있다. 이명균 명인은 “과학적으로 유약이 맑고 투명하면서 균열이 가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청자는 보통 미세한 금이 많이 가는데 고려 시대 방식을 연구해 그런 균열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고려 다관 복원의 결과물로 남은 청자 찻잔은 요즘 사용하기에도 좋았다.

공예주간 동안 보안여관에서 잔술집을 연 오세린 작가는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공예의 쓸모를 재해석했다. 오 작가의 잔술집에서는 공예가들이 정성 들여 만든 잔을 크래프트 비어의 샘플러 잔으로 활용한다. 공예가 생활용품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오세린 작가는 고급과 저급 그리고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를 파괴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오 작가는 “무언가를 위한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 ‘무언가’가 함께해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잔술집을 기획했다.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잔에 대해 더 풍부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예의 쓸모가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수집가들이다. 공예가 빚어낼 삶의 변화는 수집가들의 삶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통 공예품이 현대사회에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다. 공예품 애호가 26인의 소장품을 전시한 <공예×컬렉션:아름답거나+쓸모 있거나>전은 공예품을 일상생활에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인 마크 테토 씨의 우리 공예품 수집 과정은 흥미로웠다. 한옥의 매력에 빠진 그는 한옥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한옥에 맞는 가구를 찾던 그는 고가구와 공예품에 눈을 돌리게 된다. 전통 공예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마련했는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좌탁은 황민혁 목수와 함께 만들었다. 그가 대략의 모양을 스케치한 것을 황 목수가 고택에서 나온 대들보를 활용해 만들어주었다. 그는 “사람과 물건 사이가 멀어진 시대에 공예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공예품을 볼 때마다 작가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고 그 공예품을 처음 들인 날도 생각나서 따뜻한 에너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전통 공예에 담긴 담백한 매력

소문난 수집가였던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발행인 한창기씨의 조카 한다래씨는 고가구 위에 장독대에 있어야 할 옹기를 놓았다. 그 검은 옹기들이 하얀 백자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씨는 “완벽한 구색을 갖추는 것보다 어울림이 더 중요하고, 자신만의 안목과 취향으로 사용할 때 공예품에 인간미와 이야기가 담긴다”라고 말했다.

공예품은 미감의 결집체이기 때문에 공예품 수집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중국 국경 도시 단둥까지 가서 북한에서 넘어온 조선 시대 가구를 수집했다는 최시영 전 한국 실내디자인협회장은 “공예품을 구하는 과정은 망설임, 용기, 흐뭇함이라는 마음의 여정이다. 전통 공예에는 담백한 매력이 있다. 조선 시대 제사상을 서재의 탁자로 쓰는데 그 단순 질박함이 설계할 때 많은 영감을 준다”라고 말했다.

공예품 수집가는 대부분 공동 창작자로 발전한다. 공예의 매력은 소통이다. 다른 예술품은 오직 예술가 자신의 정신을 표현할 뿐이지만 공예는 수집가의 의도를 구현해준다. 공예가 스스로도 이를 즐긴다. 새롭게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크 테토 씨처럼 수집가가 자신의 의도를 말하면 마치 건축가가 의뢰인의 기호에 맞춰 집을 설계해주듯 공예가도 수집가의 의도에 맞게 공예품을 만들어준다. 임인영 한국도자재단 대리는 “요즘 도자 갤러리들은 수집가와 장인을 연결해서 수집가의 의도에 맞게 장인이 작업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팅하는 일이 주 업무다. 소통이 가장 큰 키워드다”라고 말했다.

다시 <킹덤>의 갓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박창영 명인은 생계가 어려워 돈이 안 되는 갓일장 일을 그만두려 했고, 아들 박형박씨도 갓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도망가려 했다. 그런 그들에게 어렵게 기회가 왔다. 이제 우리가 전통 공예의 진정한 매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할 때다. 임미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사업본부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는 전통 공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공예주간 행사도 지난해에는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올해는 참가 단체가 늘면서 전국 규모로 확장했다”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가자 보안여관으로_20190527

임지영의 예술사용법

가자 보안여관으로

 섬네일 이미지 임지영/ 나라갤러리 대표

 

오래된 것이 좋다. 고스란한 것들이 좋다. 세상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풍경도 눈깜짝할새 달라져 있다. 옛날 사람인 나는 숨차게 쫓아가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스피드가 아니라 우선멈춤. 날고 뛰는 이 먼저 보내고 은근슬쩍 뒤로 처진다. 가만가만 느릿느릿 걷는다. 되도 않는 속도를 내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쏙 들어간다. 때마침 불어온 오월의 밤바람이 미소에 무늬를 만든다. 이팝나무 잎사귀가 일제히 손을 흔들며 작고 흰 꽃잎을 나부껴준다. 배시시 초록빛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아빠는 오래된 것들의 수집광이었다. 우리집은 거의 작은 박물관을 방불케했다. 모양도 각각에 어느 시대인지도 모를 토기들부터 누런 한지의 얼룩이 그대로인 양반 도령의 서책,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의 춘하추동, 매난국죽 병풍들부터 박목월 첫시집 <산도화>의 첫1쇄판에 이르기까지. 케케묵은 오래된 잡동사니들의 수장고 같았다. 어린 내 눈엔 그리 보였고 처음엔 딱히 그것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냥 주어진 환경이고 일상이었으므로 오래된 풍경 속에서 뒹굴거리며 자랐다. 그런데 오래된 그림들에는 오묘한 온기가 있어서 그앞에선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아주 아득한 옛날 사람들의 삶이 코앞으로 훅 다가오며, 인생은 금방이고 역사는 지금이야 은근하게 위로했다. 나는 오래된 것들이 주는 깊음을 알아차렸고, 그들이 보내는 따뜻한 위무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됐다.

삶의 어느 시절은 너무 빠르다. 새로운 일, 벅찬 사랑, 늦은 공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겅중겅중 시간이 마구 달릴때가 있다. 나는 2번이고 싶지만 3번. 빠르고 바쁘게 사느라 숨이 차고 있었다. 늦은 밤 수업이 끝나고 가쁜 호흡을 고르며 서촌으로 달려갔다. 통의동 보안 여관으로 한밤의 전시를 보러갔다. 1942년 세워진 보안 여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안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적산가옥의 골조를 그대로 살렸고, 낮은 천장과 좁은 복도, 삐걱이는 나무 계단, 깨져나간 타일, 대나무 그늘이 일렁이는 뒷마당까지 오래된 시간이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물론 그 오래되고 놀라운 공간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호랑이의 도약>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은 방방마다 젊은 예술가들의 팔팔한 예술혼이 가득했다. 완벽한 신구의 조화였다.

오랜만에 그 웃음이 나왔다. 오래된 웃음. 삶에 무늬가 아로새겨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웃음. 보안 여관의 칠이 벗겨진 황토색 나무 문짝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하다. 70년도 훌쩍 넘기도록 그곳의 주인장이, 손님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닫았을 문. 그들의 삶도 부지불식간에 여닫혔을터.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웃다가 울다가 뛰다가 걷다가 멈추었을터. 마음이 한없이 순해지고 선해진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느린 웃음과 맥주 한 잔. 전시장 입구에 붙어있는 오래된 보안 여관의 첫간판까지 버리지 않았다고 대표님이 자랑하셨다. 보안 여관은 그 자체로 이미 역사의 설치 작품이었다. 나는 와아! 너무 대단하셔요! 진심으로 감탄하며 활짝 웃었다. 아빠에겐 못해드렸던 감탄이다.

나는 오래된 것들이 좋다. 집도 그림도 사람도 시간의 강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게 좋다. 오래되어 가면서 이야기가 생긴다. 케케묵어 가면서 역사가 만들어진다. 경복궁 영추문이 바로 앞이니 이곳은 정말 역사의 한복판이다.

얼마전 나와는 띄엄띄엄 간혹가다 마주치는 언니와 삶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언니는 아직 결혼도 안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신나게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자주 걱정했고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다. 늘 당당한 언니는 무심하게 툭 던졌다. 남들의 속도에 맞춰줄 필요 있나? 나는 내 삶의 속도대로 살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게 내 생의 정속주행이야. 몇년간 엇갈리던 언니를 그제서야 딱 만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그 날 종일 삶과 사람에 대해 퍽 밀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서로 울돌목같은 시간을 핑핑 돌다가 이제야 만난 것 같다며 함께 웃었다. 한결같은 사람들이 오래 만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기의 속도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불현듯 마주쳐 손을 잡는다. 오래되어 깊은 위로를 주는 것들처럼 오래 만나 웃음이 익숙한 사람도 그렇다. 앞으로도 오롯하게 함께하며 보안 여관처럼 근사하게 오래되어 가고 싶다. 든든하게 한 자리를 지키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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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님[임지영 나라갤러리 대표/ <봄말고 그림>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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