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WOOK KIM Solo Exhibition

LOCH NESS AND ITS MONSTER

김신욱 개인전

LOCH NESS AND ITS MONSTER

  • Date: 04. JUNE. – 27. JUNE. 2021
  • Venue: ART SPACE BOAN 2
  • Opening Hours: 12PM – 6PM
  • Closing Days: Every Week Monday
  • Admission Free
  •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 일시: 2021. 06. 04 ~ 06. 27
  • 장소: 아트 스페이스 보안 2 (신관 지하 1층)
  • 운영시간: 12:00 ~ 18: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후원: 서울문화재단

상상적 영화관

유운성

그는 시네아스트는 아니지만 시네마티스트임은 분명하다. 조금 다르게 말해보자. 어떤 의미에서든 작가 김신욱은 결코 영화작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종종 그의 작업 곳곳에는 사뭇 영화적인 것이 기이할 정도로 넘쳐난다. 확실히 그는 묘하게 영화적인 특성을 띠고 있는 대상에 적잖이 강박적으로 끌리곤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통해 이런저런 세계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이미 영화적으로 배치된 세계에 자신의 카메라를 가져가는 편을 선호한다. 물론 그러한 세계를 드나드는 동안 기록물과 기념품 등속을 모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2019년 가을 영국 런던의 히드로공항 로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무척이나 유쾌했던 그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엽서와도 같은 글에 담아 나중에 한 사진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의 사진 작업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나는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는데 다름 아닌 그 소재의 영화적 특성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한참 네스호의 괴물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며 전시도 준비 중이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건네준 자료들은 주로 공항 인근의 장소들과 플레인 스포터들에 관한 것이었다. 플레인 스포터란 공항 주변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광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취미를 지닌 사람들을 가리킨다. 영국과 같은 유럽에도 이런 일본식 오타쿠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신기해하면서 허우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에서 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한 철도 오타쿠를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앞서 언급한 사진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이들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그들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모종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허공에, 그 이름 없는 장소에 매혹된 이들이다. 스크린 또한 이러한 장소이다. 이름 없는 공항이나 영화관은 있을 수 없겠지만, 허공이나 스크린에 이름을 붙인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이러한 장소에 오롯이 매혹되기 위해서는 거기서 오고 가는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 자체의 완벽한 무용성을, 그 쓸모없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유운성, 「이름 없는 곳」, 《보스토크》 제22호.)

그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로부터 꼬박 일 년이 지나, 김신욱은 서울에서 네스호의 괴물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우리의 삶과 예술을 둘러싼 상황들이 급격히 바뀌었으며 김신욱 또한 영국에서의 오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간적 감각으로 지각 불가능하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지만, 매일같이 세계 곳곳에서 검출되는 초미세 바이러스로 살풍경해진 시기에 여지껏 어떠한 장비로도 탐지된 바 없는 거대 괴물에 관한 전시를 보러 가는 일은 묘하게 도착적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도착적이라는 건 영화적이라는 뜻도 된다. 꼭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어딘지 찜찜하고 무언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감각, 금지된 것도 아니지만 승인된 것도 아닌 무엇을 하고 있다는 감각 없이는 영화적 체험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신욱이 바로 이러한 감각을 통해 네스호의 괴물이라는 기묘한 대상에 접근하고 있음은 한 중년 남자의 사진과 네스호의 괴물을 본뜬 듯한 작은 모형들이 있는 전시대의 사진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남자는 괴물을 직접 보고자 하는 꿈을 지니고 1991년 이후 현재까지 30년 동안 네스호를 관찰하고 있는 스티브 펠섬이란 인물이며, 괴물 모형들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위해 그가 직접 점토로 빚어 만든 것이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펠섬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네시를 찾는 일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뜻하지 않게 우리는 영화 장치의 물리적 구성 자체가 어떻게 어린아이의 상상을 촉발하는지 그 생생한 사례를 접하게 된다.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가족 휴가를 왔던 1970년 이래로 줄곧 나는 네스호의 괴물이라는 이 대상에 매혹되었다. 네스호 탐사국을 방문한 것도 그때였는데 자원자들로 구성된 이 팀은 매년 여름마다 어커트성 근처의 호숫가에 임시 캠프를 만들고는 네시를 촬영하겠다는 바람으로 24시간 감시장비를 거기에 설치했다. 진정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들이 영화 촬영용 카메라와 삼각대를 그 위에 올려놓는 거치대였다. 렌즈만으로도 1미터는 되었음에 틀림없다. 다 큰 어른들이 괴물을 찾는다고? 굉장한데!

펠섬의 이야기는 어린 나이에 일찍 영화의 매혹에 사로잡힌 조숙한 영화광들의 회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10대 초반부터 8mm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의 이야기 말이다. 펠섬의 눈길을 끈 것은 촬영용 장비들이지만 그의 상상력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 것은 어른들이 괴물을 찾는다는 진기한 상황, 즉 성인들이 아이 같은 환상을 거대한 규모로 어딘가에 투사하거나 투영하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영화 장치를 고려하자면 이러한 투사나 투영이 펼쳐지는 곳은 스크린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스크린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김신욱의 관심은 종종 후자의 경우로 향한다. 플레인 스포터들에게 있어서는 이따금 비행기들이 가로지르는 허공이, 펠섬과 같은 네시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그 수면 아래에 무수한 이들의 바람을 품고 있는 네스호야말로 지극히 영화적인 스크린이다.

펠섬의 사진이 전시된 공간에는 선물 가게를 찍은 사진과 더불어 김신욱이 직접 수집한 이런저런 네시 모형들 몇몇이 함께 놓여 있다. 이 작은 물건들은 무엇보다 네스호라는 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기념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관 상품의 개발 및 판매를 영화 마케팅의 핵심으로 삼은 첫 사례였던 스필버그의 <죠스>를 떠올리게 하는 알레고리적 형상이기도 하다. 다만 김신욱의 관심을 끄는 저 상상적 영화관은 철저하게 장소 특정적이고 거기에 투사되거나 투영되는 환상들은 실제의 영화와는 달리 근본적으로 비가시적이고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글로벌한 ‘네시 산업’이라 할 만한 것은 여태까지 형성된 적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스필버그의 <죠스>는 오늘날의 우리를 여전히 둘러싸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화 산업의 동시대적 모델을 제시한 작품이다.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이라는 경계를 넘어 서적, 음반, 의류, 게임, 장난감 그리고 장신구 산업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 복합체를 이루게 되는 것 말이다. 김신욱이 네스호 인근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단 펠섬의 모형만이 아니라 네스호와 그 인근으로 구성된 장소 전체가 동시대의 영화화된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네스호에서 개최된 한 수영대회의 포스터가 <죠스>의 그것을 차용해 디자인되었다는 사실은 흔한 패러디 문화의 사례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네스호에 투사되거나 투영되는 저 환상이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실재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다. 네스호 위로 드리워진 무지개를 찍은 풍경 사진이 관람객의 시야에 들어오고, 그 좌측에는 호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을 찍은 사진이 보인다. 체리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이 섬은 네스호의 유일한 섬이지만 실은 고대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환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경계, 그리고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임을 각각 암시하는 무지개와 체리아일랜드에는 김신욱이 가늠해본 네시라는 대상의 성격이 압축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스호의 괴물에 대한 전설은 중세 때부터 있었지만 그 전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바와 같이 물리적 사진의 형태를 갖추고 목격담과 함께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라고 한다. 사진을 합성하는 기술은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이미 전문적인 사진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고 비교적 사용이 편리한 건판과 필름이 보편화된 것도 20세기 초임을 고려하면, 이제는 조작임이 밝혀진 네시의 사진이 1934년에야 나왔다는 것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김신욱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알게 되고 나서였다. 1933년에 글래스고에서 포트윌리엄을 통해 인버네스로 이어지는 스코틀랜드의 주요 도로 가운데 하나인 A82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이 도로가 네스호를 따라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자동차로 호수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바로 그때부터 네시 목격담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네스호의 괴물을 비롯한 현대적인 전설의 특징은 그것이 검증이나 반증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충동은 그저 사진의 증거 능력만으로는 촉발되지 않는다. 사실 사진의 증거 능력이란 사진과 결부된 진술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종종 미심쩍은 것이 된다. 증언의 말과 더불어 사진이 촬영된 장소로의 접근 가능성 또한 중요하다. 증언에 임하는 자의 수와 증언의 동일성도 중요하지만 증언하는 자들이 실제로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증언의 신뢰도와 직결되어 있다. 어떤 장소와 결부된 현대적인 전설이 교통수단의 발달과 나란히 전개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김신욱은 이런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네스호의 괴물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이한 행태들을 관찰하고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오지의 한 장소를 둘러싼 문화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세기를 작동시키는 기제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기가 20세기인지, 20세기에 불과한 21세기인지, 20세기를 매달고 있는 21세기인지는 따져볼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현대적인 전설과 교통수단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다름 아닌 미국의 특정 지역에 대한 지시어이길 넘어서 고유명사화된 서부다. 그와 관련된 숱한 대중적 상상들은 19세기와 20세기의,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의 여러 시각 이미지들까지도 가로지르고 있다. 이처럼 서부가 서부로서 정립되는 데는 사진이라고 하는 매체와 열차라고 하는 교통수단과 대중소설이라고 하는 이야기체의 만남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그 만남의 결실을 한껏 극대화하고 증폭시킨 것은 역시 영화였다. 하지만 네스호의 괴물은 서부극에 필적하는 장르를 성립시키지 못했고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출연하는 B급 영화 풍의 모큐멘터리 <네스호 사건> 등을 통해 알레고리적 존재감만을 드러낼 뿐이다. 

전시장 한쪽에 네스호 인근의 산정 너머로 뜬 쌍무지개를 찍은 사진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는 어느 보트 조종석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모니터들을 찍은 사진이 보인다. 모니터 가운데 하나는 ‘226’이라는 숫자를 표시하고 있다. 김신욱에 따르면 네스호의 최고 수심은 227미터인데 이 사진은 바로 그 인근을 지날 때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측정 혹은 검증과 반증의 충동이 무지개가 불러일으키는 환상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중심적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에이드리언 샤인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현대적인 전설이 촉발하는 충동에 온전히 삶을 내맡긴 인물이다. 펠섬의 바람이 어디까지나 네시를 목격하는 일에 향해 있다면 샤인의 그것은 무엇보다 네시의 존재를 검증하는 일에 온통 집중되어 있다. 개인 연구자인 샤인은 그동안 네스호에 관심이 있는 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을 이끌고 탐험에 참여하고 여러 자원자들을 인솔하여 네스호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고 한다. 김신욱의 사진은 특별히 그를 기인으로 바라보거나 조롱하는 기색 없이 여느 연구자들과 다를 바 없는 외양의 인물로 보여준다. 그와 관련된 전시물들도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다. 즉 그는 여느 공상과학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미친 과학자 유형의 인물과는 대척점에 있다. 한데 얄궂게도 영화는 이상한 방식으로 네스호의 괴물과 조우하고 그의 삶에 침범한다. 그러면서 그의 삶 전체를 희화화해 버린다.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가 <셜록 홈즈의 사생활>을 제작 중이던 1969년의 일이다. 이 영화에서 홈즈 일행은 네스호의 괴물을 보게 되는데 이는 실제 괴물이 아니라 영국 해군이 비밀리에 제작 중이던 잠수함을 위장한 것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와일더의 영화를 위해 이 괴물을 디자인한 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선 디자인 등에 참여한 특수효과 전문가인 월리 비버스였다. 촬영 테스트 도중 와일더는 괴물의 머리에 난 혹들이 보기 싫으니 떼어내라고 지시하는데 사실 그 혹들은 공기 유출을 막는 마개 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결국 비버스가 만든 모형은 네스호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 정도가 지난 2016년, 네스호 탐사용 수중 로봇이 거대한 크기의 괴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는 <셜록 홈즈의 사생활> 촬영 당시 비버스가 제작한 네시 모형이었음이 밝혀진다. 이 모형을 발견한 이가 바로 에이드리언 샤인이었다. 

전시장에는 네스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김신욱이 원본으로 수집한 사진과 기사를 비롯한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일상적인 것들도 있고 사고와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실소를 불러일으킬 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네스호의 괴물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한 싸구려 잡지(2002년 4월 23일) 같은 것 말이다.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은 비버스의 모형에 대한 1969년의 짧은 기사와 사진도 있다. 다만 김신욱은 소재의 우스꽝스러움을 내세우면서 희희낙락거리는 법이 없다. 그보다는 이 잡다하고 통속적인 수집물들을 통해 환상을 물질화하고 싶어한다. 바꿔 말하면 네스호의 괴물이라는 것이 지극히 물질적인 환상임을 보여주려 한다. 이럴 때 그는 벤야민이 묘사한 수집가로서의 역사가의 모습과 얼마간 닮아 있는 것도 같다. 혹은 그러한 수집가-역사가를 위한 도미에적인 노력이 사진작가로서의 김신욱을 특징짓는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