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덕기자 덕질기 3] 보안여관에서 밤송이를 팔았다_20171025

박종찬
방송에디터석 기자

“보안여관에서 도시농부 장터가 열려요. 선유아리농장도 재미 삼아 나와봐요.”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말이었다. 농장 이웃인 ‘우보님’(우보농장 주인)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관리기를 빌려주고, 볏짚을 나눠줬으며 서툰 농사에 여러 도움을 받은 터였다. ‘세모아(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장터’는 도시농부들과 유기농 식재료로 상을 차리는 요리사들이 만나 여름작물을 나누고 요리하는 행사라고 했다. 가을 농사가 막 시작된 농장에는 배추, 무, 갓 따위 모종만 자라고 있었다. 장터에 내놓을 수확물이 별로 없었다. 농장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주일 만에 감자 50여개, 마늘 20여개, 애호박 5개, 노각 20여개, 참외 2개, 대파 한단이 농막에 쌓였다. 공동밭 풀을 베다가 돼지 머리보다 큰 호박 두 개를 횡재했다. 상추, 깻잎, 호박잎 등 푸성귀는 모조리 거둬 꾸러미에 담았다. 그래도 소형차 뒷좌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도 좌판 장식용으로 챙긴 밤나무 가지가 반을 차지했다. 이게 팔릴까? 장터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2일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선유아리농장 좌판에 채소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9월2일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선유아리농장 좌판에 채소들이 전시돼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은 옛날식 여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허름한 벽과 바닥에서 퀴퀴한 흙냄새가 났다. 시골 폐가와 다를 바 없었다. 호박 두덩어리를 맨 앞에 문지기로 세웠다. 푸성귀는 바구니에 담아 상자 위에 올렸다. 벽에 달린 전구에는 밤송이를 걸어 분위기를 잡았다. 생긴 대로 키워 볼품없는 채소들은 보안여관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농산물 좌판이라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전시회 같은 분위기였다.?“마늘이 너무 귀여워!” 손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좌판을 벌인 뒤 1시간이나 지났을까? 마늘 다섯쪽과 참외 두개를 2천원에 팔았다. 감격적인 마수걸이,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점심 무렵 감자와 노각을 한봉지씩 4천원에 팔았다. 덤으로 고추를 한움큼 줬더니 손님이 1천원을 더 놓고 갔다. 밤송이는 최고 인기였다. 밤송이 처음 본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만져보고 쳐다보고 인증샷 찍느라 바빴다. 급기야 밤송이를 사겠다는 손님이 나타났다. 파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노각 두개를 집어 들며 같이 사겠다고 졸랐다. 결국 1천원에 팔았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서 손님들이 밤송이를 구경하고 있다.
지난 9월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서 손님들이 밤송이를 구경하고 있다.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 내놓은 선유아리농장의 채소들.
‘세모아 도시농부’ 장터에 내놓은 선유아리농장의 채소들.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안 부러웠다. 호박과 늙은 애호박은 요리사들이 사갔다. 마지막에 감자와 노각, 애호박 등이 1만원에 떨이로 나갔다. 이날 총매출은 딱 5만원. 아리농장 첫 수익 창출이었다. 농작물을 키워서 팔았다는, ‘생산자의 자부심’이 뿌듯하게 올라왔다. 아마도, 밤송이를 판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농부. 내 인생의 이력이 한줄 늘었다.

pjc@hani.co.kr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6051.html#csidx66a86631b564a73a8e8a31d1f0936c4 

서울경제TV_20171013

[센즈라이프] 예술가들의 발자취 따라 ‘서촌’ 나들이

 

[오프닝]
맑고 청량한 가을 하늘. 시 한 구절 읽고 싶어지는 천고마비의 계절인데요. 옛 문학인들의 발자취를 도심 한복판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서촌’입니다. 오늘은 과거에는 예술가들의 쉼터이자 지금은 감성 핫 플레이스(인기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서촌을 센즈라이프에서 만나봅니다.

[기자]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뜻하는 ‘서촌’.
누하동, 청운동, 옥인동, 통인동, 체부동을 아우르는 곳입니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골목길.
그 안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마주 할 수 있는 곳인데요.
‘서촌’은 시인 이상, 윤동주, 화가 이상범, 이중섭 등 내로라 하는 예술인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시인의 ‘서시’ 입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을 윤동주 시인.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하문 터널 방향으로 주택 사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왕산 자락길 시작점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입니다.

[인터뷰] 최정남/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
“윤동주 선생님은 올해가 딱 (탄생) 100주년입니다. 하숙을 하시면서 이 언덕에서 인왕산을 자주 산책을 하고 자주 시를 떠올렸던 그런 인연을 통해서 이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탄생하게 되었죠.”

버려진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어진 이곳은 총 3개의 전시장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중국 지린 성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왜 서촌에 있을까요?

[인터뷰] 최정남/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면서 누상동에서 하숙을 하시면서 인연을 맺게 되죠. 그러면서 이 때 우리가 잘 아는 ‘별을 헤는 밤’이라던지 이런 작품들이 그 당시에 발표가 되면서 이 동네와 특히 더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어린 학생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진서 / 청운중학교 1학년
“동아리를 같이 하는 친구들과 평소 윤동주에 관심이 많아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동경과 시,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렸던 시인 윤동주.
실제, 이 곳에 방문한 이들은 스무여덟 해 남짓을 살다가 별과 함께 저버린,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정현/서울개성고등학교 1학년
“윤동주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당시 윤동주가 가지고 있었던 철학이나 이상들이 친필 원고들에 잘 반영된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오면 윤동주의 시 뿐만 아니라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나 사진들이 많이 있기때문에, 먼 시인이 아닌 마치 친구처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문학가 ‘이상의 집’도 ‘서촌’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스물일곱 해 짧은 생을 살다간 그가 머물던 집터를 문화공간으로 꾸몄고, 1,000원 이상을 기부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표시와 ‘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투박한 간판.
삐걱거리는 철문과 앙상한 목조 뼈대.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는 경복궁 영추문 맞은 편에 자리 한 ‘보안여관’.
가난한 문화예술인의 지붕이 되어주었던 이곳은 서정주, 김동리 등 많은 문인의 안식처였습니다.

[인터뷰] 최성우/보안여관 대표
“보안여관은 1936년에 생겼고요.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선생들이 보안여관에 머물면서 시인부락이라는 한국의 문학 동인지를 만든 곳이죠. 문학 청년들이 서울을 올라와서 여관이라는 곳에서 일시적 정주를 하면서 생활하면서 문학동인지를 만들고 시도 쓰고 단순히 여관이 아니고 문화생산의 플랫폼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 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보안책방, 전시장, 카페, 술집이 운영되고 있고 실제 숙박을 할 수 있는 보안스테이(여관)도 얼마 전 문을 열었습니다.

[인터뷰] 최성우/보안여관 대표
“보안여관의 기존 오래된 건물은 그대로 두고, 인간 감성의 컨셉트를 가지고 새로 건물을 지어서, 읽고, 보고, 먹고, 자고, 걷는다는 컨셉트을 가지고… 가족 나들이도 오시고 연인들의 주말 데이트 코스도 되고, 좀 더 진지하게 문화예술을 즐겨보자는 사람들도 오고, 특정한 사람들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
이번 주말 북적이는 도심을 떠나 골목골목이 정겨운 ‘서촌’을 거닐며 옛 문인들의 정취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서울경제TV 김혜영입니다.

 

https://youtu.be/EET-4jrAsD

 

중앙일보_20170918

[인스타, 거기 어디?]통의동 보안여관 왜 핫한가 했더니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자꾸 옛날 여관 사진이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표시와 ‘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투박한 간판 사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의 모습이다.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

그 자리에 있은 지 80년은 족히 넘은 이 여관은 요 몇 달 사이 인스타 속 나들이 명소로 떠올랐다. 보안여관 관련 게시물 수만 3600여 개. ‘보안책방’ ‘보안스테이’ ‘일상다반사’ 등 보안여관과 연결된 장소들의 게시물도 속속 올라온다.

예술가들 사랑했던 옛모습 간직한 서촌 명소
2004년 여관 문 닫고 지금은 갤러리
바로 옆 ‘보안1942’ 생기면서 SNS 핫플레이스로

지난 9월 15일 오후 1시쯤 소문으로만 듣던 보안여관을 직접 찾아갔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 편에 자리잡은 보안여관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는 게 가장 쉽다. 4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 일명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쭉 거슬러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보면 통의동파출소, 대림미술관을 지나 투박한 보안여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경복궁 영춘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오른쪽)과 그 모습을 꼭 닮은 '보안1942'.

경복궁 영춘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오른쪽)과 그 모습을 꼭 닮은 ‘보안1942’.

이름은 여관이지만 이곳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과거 여관으로 운영되다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수년간 버려지다시피한 곳을 2007년 당시 복합문화예술 공간을 기획하고 있던 최성우 보안1942 대표(일맥문화재단 이사장)가 사들였고, 2010년부터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사실 여관일 때에도 갤러리 못지 않게 많은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다. 1936년 시인 서정주가 여기서 지내며 김동리·김달진 등 동료 시인과 함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화가 이중섭이나 시인 이상도 보안여관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예술인들 중에 포함돼 있었다. 2004년 문을 닫기 직전엔 늦게까지 야근하다 통금시간에 걸린 청와대 공무원들의 잠자리로 종종 쓰이기도 했다.
보안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 여관 시절 경고푯말.

보안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 여관 시절 경고푯말.

보안여관은 꼭 전시를 볼 생각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라는 옛 여관 시절 푯말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았다. 바로 옆에는 손님이 들어오면 숙박 등록을 했을 작은 창과 오래된 거울이 붙어 있고 안쪽으로 길게 난 복도를 따라 작은 방이 열을 지어 나타났다.

너무 낡고 헐어 골조가 앙상하게 드러난 방에는 오래된 서울의 건물 사진을 전시하는 ‘서울루나포토 2017’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발걸음을 올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바닥과 이제는 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옛 전구 스위치나 ‘문살짝’ 같은 푯말을 보는 재미가 솔직히 더 쏠쏠했다.
복도를 따라 열려있는 낡은 방문이 보인다.

복도를 따라 열려있는 낡은 방문이 보인다.

방 안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만 남기고 벽을 철거해 공간을 틔워 전시장으로 쓴다.

방 안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만 남기고 벽을 철거해 공간을 틔워 전시장으로 쓴다.

보안여관 입구에 있는 전등 스위치. 이런 스위치 보는 것, 참 오랜만이다.

보안여관 입구에 있는 전등 스위치. 이런 스위치 보는 것, 참 오랜만이다.

보안여관이 SNS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7년 6월 보안여관 바로 옆에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대표가 보안여관의 2017년 버전인 ‘보안1942’를 만들면서부터다. 카페·책방·전시장·게스트하우스까지 모두 갖춘 공간으로, 이곳의 원류인 보안여관 관련 이야기가 함께 입소문 나면서 인스타그래머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낡고 오래된 보안여관의 모습과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시인의 스토리, 거기에 세련된 카페와 책방까지 한 공간에 갖추니 더 이상 훌륭한 하루 나들이 코스도 없겠다 싶다.

깔끔한 플레이팅의 쌈밥과 차,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일상다반사'.

깔끔한 플레이팅의 쌈밥과 차,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일상다반사’.

보안여관과 똑 닮은 보안1942 건물은 최 대표가 보안여관의 DNA는 지키면서 이 시대에 맞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을 마련하고자 만든 공간이다. 건축디자인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중고등학교 등을 지은 민현식 건축가가 맡았다. 이름의 1942는 보안여관 천정 속에서 발견한 ‘1942년 천정을 보수했다’란 기록에서 따왔다. 밤이면 술집으로 변하는 서점(보안책방), 정갈한 쌈밥과 품질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일상다반사), 전시장, 그리고 7개의 방으로 구성된 게스트하우스(보안스테이)가 갖춰져 한 건물 안에서 읽고 보고 자고 먹는 것을 한번에 다 할 수 있다.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 이곳을 지키는 개 '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 이곳을 지키는 개 ‘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안1942 지하의 '보안책방'. 오후 8시 이후엔 술집 '보안술집'으로 변한다.

보안1942 지하의 ‘보안책방’. 오후 8시 이후엔 술집 ‘보안술집’으로 변한다.

이곳을 둘러볼 땐 이곳에서 제안하는 순서를 따르는 게 가장 좋다. 먼저 보안여관을 둘러본 후 두 건물을 이어주는 2층 통로로 보안1942 건물로 건너온다. 그러면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곳은 보안책방과 또 다른 책방으로, 보안여관에서 하는 전시와 관련한 책을 주로 판매한다. 전시를 더 보고 싶은 사람은 지하1층의 전시실로, 이제 그만 앉아 음료나 간식을 먹고 싶다면 1층의 일상다반사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지하 2층에 있는 보안책방을 들러도 되는데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여기를 꼭 방문하고 싶다면 오후로 나들이 계획을 짜는 게 좋겠다.

일상다반사에서 시킨 자몽국화차.

일상다반사에서 시킨 자몽국화차.

나 역시 보안여관과 한권서점을 둘러본 후 1층으로 내려가 카페 일상다반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 유리창 너머로 경복궁 돌담이 그림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과일청으로 만들었다는 자몽국화차 한잔을 시켰다. 국화꽃이 예쁘게 올라간 달콤하고 시원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오후가 더 여유로워졌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원본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21943977

행복이 가득한 집_201709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통의동 골목길 낡은 적산 가옥에 여관 간판이 걸렸다. 여관 안에서는 소통과 예술이 고픈 수많은 주변인의 문화적 성취와 담론이 펼쳐졌다.그리고 얼마 전 그 옆에 또 한 채의 여관이 들어섰다. 갤러리가 된 여관, 술 파는 책방, 젊은 찻집, 한 권 서점… ‘머뭄’과 ‘떠남’이 공존하는 여관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문화 예술과 접목해 생활 밀착형 예술 활동을 펼치는 ‘보안1942’. 오랜 친구처럼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쌓고 있는 그곳에서 어느 좌표에도 정주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최성우 대표를 만났다.


통의동의 문화 예술 공간 보안여관이 신관 아트 스페이스 보안1942를 오픈했다. 여관의 정체성을 ‘문화 숙박업’이라 정의하고 갤러리, 찻집, 책방, 게스트 하우스 등 ‘자고, 보고, 읽고, 먹고, 걷는’ 생태계를 구현.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가운데)와 전시 기획자, 운영 책임자 전정훈, SK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본부장과 일상다반사의 티 마스터, 보안책방 비바 프로젝트의 낮 책임자 강영희 씨와 밤 책임자 김슬옹 씨 등 공동 운명체가 함께한다.

소문은 땅속 깊은 유물에서 시작되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데 거대한 유물이 나왔다더라, 알고 보니 조선시대 집터라더라, 동굴 같은 책방에서 술도 판다더라, 날이 어두워지면 지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북적북적한다더라, 가끔 마주치는 외국인 가족은 여느 관광객 같지는 않더라, 막상 겉에서 보면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놀라고, 들어서면 생각보다 깊어 또 한 번 놀란다더라…. 이쯤되면 누구라도 궁금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체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라이프스타일 범주에서 보면 자못 진지하고, 예술 문화계의 보수 시각에서는 자발 적 아웃사이더를 지향하는 생활 밀착형 예술 공간. 전통과 컨템퍼러리, 메이저와 마이너,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범주에서 기꺼이 경계를 넘나드는 아트 스페이스 ‘보안 1942’ 이야기다.

보안여관 신관 ‘보안1942’의 핫 스페이스로 떠오른 지하 보안책방. 오후 2시부터 오픈, 낮에는 전시 기획자 강영희 씨가 책방을 운영하고, 저녁에는 부암동 심야오뎅으로 유명한 김슬옹 대표가 합류해 술과 간단한 음식을 판다. 작은 중정에서 식물 데커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을 크게 짓지 않은 대신 깊이 팠다. 지하 4층 깊이로 파다 보니 중간에 집터가 나왔는데, 땅의 지형을 3D 스캔해 원래 형태대로 지하 가장 낮은 바닥에 앉혔다. 푸른빛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안1942의 모든 공간에서는 문화와 예술에 관한 자유로운 담론이 펼쳐진다.
전통과 컨템퍼러리의 경계 
먼저 보안1942를 설명하자면 보안여관부터 짚어야 한다. 보안여관은 1942년 지었고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운영했다. 최성우 대표는 2007년 보안여관을 포함해 구옥 세 채를 매입했는데, 구입하고도 보안여관이 어떤 곳인지 몰랐단다. 어느 날 천장에서 비가 새 지붕을 고치면서 예사롭지 않은 건물임을 직감했고, 서정주ㆍ김동리 선생이 머물며 최초의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 을 만든 장소라는 기록을 찾았다. 문화 기획자인 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서사였다. 뽀얀 먼지를 걷어내고, 뒷마당에 방치돼 있던 옛 간판을 보수했다. ‘보안여관’ 간판을 건 갤러리는 2009년 문을 연 후 현재까지 17만 명이 다녀간 통의동 핫 스폿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안여관 옆 낡은 집 두 채를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 아트 스페이스 보안1942는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다. 건축 설계를 맡은 민현식 선생은 1백 장이 넘는 설계 도면을 그렸다. 건물 전체를 커다란 유리로 감싸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작게, 뒤로, 소박하게! 마치 옛날부터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처럼 익숙한 적벽돌을 쓰고 보안여관보다 3m 정도 물러나 있어 예상한 것보다 존재감이 적다. 큰 건물을 짓고자 하는 욕심은 어느 건축주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의외였다. “동네가 오밀조밀한데 대형 건물이 앞을 딱 막아버리면 안 되잖아요. 공동 운명체인 보안여관에 대한 배려가 컸죠. 새 건물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작고 무표정한 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도시의 랜드마크는 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는 괴리가 있다.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가치보다 그 안에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는 법. 건축물의 외형보다는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를 담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결과는 만족스럽다.

보안1942의 백미는 지하 2층 ‘보안책방’이다. 층고가 4.2m로 한쪽 벽 전체에 책이 가득 꽂혀 있어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빛이 묘한 기운을 전하는데, 두툼한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바위들이 바로 소문의 근원지인 조선시대 집터다. 지하를 파다 나온 돌을 3D로 스캔해 가장 깊고 낮은 곳에 재배치한 것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듯 생경한 경험을 선사한다.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는 책방이지만 꽃도 팔고, 밤에는 술과 음식도 판다. 이름하여 비바 프로젝트! 전시 기획자 강영희 씨와 부암동 ‘심야오뎅’ 김슬옹 씨가 합류했다. “보통 지역성을 고민할 때 꼭 주민과 어떤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마을 만들기’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지역만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거예요. 요즘은 전통 시장에 가도 물건이 똑같아요. 당연히 재미가 없죠. 옛날 선비들은 술 마시면서 책을 보곤 했어요. 여름이면 물가에 모여 시조 한 수 읊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최고의 풍류였죠.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도 이곳 서촌에서 벗들과 노닐며 작품 활동을 했으니, 서촌의 지역성과 나름 연결 고리를 찾는다면 바로 이런 옛 선비의 풍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최 대표는 밤에 의외로 책이 많이 팔린다며, 술기운에 책을 산다는 여담을 덧붙였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 기존 심야오뎅 팬이 많아 구조적 시너지 효과가 난다.

동시대 문화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늘 ‘답 없는 답’을 고민한다는 최성우 대표. 최 대표와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목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목차’에 참여하면 된다. 어떤 이야기도 자유롭게 오가며, 그 기록들로 <봄, 여름 단편>이라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모노콜렉션의 방석, 소반 등 한국적 미감을 느낄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 두는 평상처럼 단을 짜 좌식과 입식이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천장의 유선형 하이그로시 조명등은 백지혜 작가 작품.

안방과 게스트 하우스 곳곳에는 현대미술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 최성우 대표가 호텔 아트 페어를 패러디한 여관페어 퍼포먼스 중 하나로, 공간에 머물며 자연스레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노혜정 작가의 파란 바다 사진이 인상적이다.

창 너머 펼쳐지는 경복궁 담벼락 풍경이 일품.

 

여관과 갤러리의 경계 
3, 4층 게스트 하우스는 ‘여관이니까 진짜 여관을 해볼까?’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해외 문화 예술 관계자들이 한국 문화 예술의 속살을 경험하며 묵는 레지던스로, 예술가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이 된다. 실제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름간 묵은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매일 아침 8시에 한 시간씩 서촌을 산책했는데, 그 기억이 인상적이었는지 “서울의 속살을 경험한 특별한 시간”이라는 리뷰를 보내왔다.

게스트 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경복궁 돌담, 영추문, 북악산, 인왕산 등 일곱 개의 방에서 모두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고심해서 창을 내고, 최소한의 가구와 소품을 들여 담백하게 꾸몄다. 외국인도 불편하지 않도록 입식으로 구성하되 모노콜렉션의 방석, 백지혜 작가의 조명등, 참죽 나무로 제작한 장준호 작가의 책상 등 공예적 태도를 지닌 한국 디자이너 작품을 선택하니 자연스레 한국적 미감이 구현됐다. 페트병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조혜진 작가의 야자수 오브제, 노혜정 작가의 바다 사진, 재건축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양자주 작가의 회화 등 공간 곳곳에 장식한 작품은 마음에 들면 구입할 수도 있다.

“디자인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야와 달리 변방의 예술가는 당연히 ‘안 팔릴 것’을 예상하고 작업합니다. 출발점이 달라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전업 작가라면 더더욱요.” 최 대표가 기획한 ‘여관페어’는 작가들의 상업적 근육을 키우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호텔 아트 페어가 주거 공간과 유사한 환경에 작품을 매치하는 것이라면 여관 페어는 작가들이 게스트 하우스에 하루 이틀 묵으며 워크숍을 한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토론하고, 토론 결과를 나름의 방식으로 공간에 전시한다.

가령 ‘식물’이 주제라면 서촌 일대를 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하고, 하룻밤 워크숍을 한 뒤 다음 날 설치로 보여주는 식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는 ‘목차木茶(Mok-Cha)’가 열린다. 최 대표는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지하 갤러리에 앉아 있다. 초대를 받거나 신청하지 않아도 누구나 방문하면 최 대표와 작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30년간 살림만 하다 작업이 하고 싶어 엄청난 양의 스케치를 들고 온 전업주부, 타지에 살다 한국에 돌아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구직자 등 모습도 사연도 제각각이다. 포트폴리오 대신 빵을 직접 구워 가져오는 작가도 있다.

1층 일상다반사는 한국 전통차와 계절차, 다과,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행복에프앤씨재단과 보안여관이 공동 운영한다. 보안여관의 낡은 벽을 마주하도록 테이블을 안쪽으로 배치해 공간의 DNA를 지키면서 색다른 동선을 완성했다.

 


경복궁이 바라보이는 입구를 등지고 ㄷ자로 배치한 아일랜드. 가구의 담박한 소재, 차 전문가의 조용한 몸짓, 정갈한 도자까지 고요한 차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언젠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매주 일요일 아침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학생들을 자유롭게 맞는 ‘선데이 살롱’을 진행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무척 감동받았죠. 세계적 작가가 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문화 예술 분야는 구조적으로 승자의 세계, 영웅의 세계지요. 동시대 현대미술의 최전선이 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보안여관 또한 어떤 면으로는 우리만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더군요. 동시대 문화 예술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던 시간이었어요. 어쩌면 목차의 가장 큰 수혜자는 보안여관일 거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갔나 헤아려보니 1백60명쯤 되더란다. 슬슬 부채감이 쌓여갔다. 2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봄, 여름 단편>은 최 대표에게 마음을 터놓은 아티스트에 대한 오마주로 기획했다. 평소 2층 전시실은 책 한 권만 파는 한 권 서점으로, 책을 전시한다는 콘셉트가 흥미롭다. 브리지를 통해 보안여관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비영리 기관은 무조건 미션에 투자하라고 하지만, 너무나 이상적 룰이죠. 그저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사주는 것만이 문화 정책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자력 강생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보안1942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 건물은 이곳에서 나는 수익으로 기획하고, 스태프 월급도 주고, 작가 페이도 넉넉하게 주는 것이 일차 목표예요. 보안1942를 ‘문화 숙박업’이라 정의하는 이유입니다.”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 1층은 일상다반사라는 젊은 찻집이 있다. 일상다반사를 기획한 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본부장은 보안1942의 지향점을 명민하게 이해했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고유한 차 문화를 소개하되, 젊은 층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메뉴와 공간 콘셉트를 제안할 것!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간의 단정한 분위기다. 일반 매뉴얼이라면 경복궁 담벼락이 바라보이도록 테이블을 배치했겠지만, 일상다반사는 보안여관을 바라보도록 입구를 등지고 테이블을 배치했다. 개방감을 제한하니 오히려 차 마시는 행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평이다. 그래서일까, 일상다반사에서는 공간 안에 갇혀 스타일만 누리거나 SNS용 사진만 찍고 후다닥 나가는 풍경은 보기 힘들다. 차 마시는 행위 자체를, 잠깐 멈춤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김선경 본부장은 “2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이 담긴 차 문화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세대와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 기쁘다”며 소회를 밝혔다.

‘보안保安’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수십 년간 나그네가 하룻밤 편히 묵고 간 여관은 이제 ‘문화 숙박업’으로서 일상으로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감싸고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회복’한다.

늘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도 많이 찍히는 보안1942의 마스코트 연두. ‘보안견연두’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8월 31일까지 목차 기획전으로 <봄, 여름 단편> 전시가 펼쳐진다.

1942년부터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기능한 보안여관의 역사와 흔적.

 

보안1942의 궁극적 미션은 바로 ‘보안保安의 회복’이다. 최성우 대표는 보안여관의 역사를 담은 책 <보안백서> 출간을 계획 중이다. “2007년 인수했을 때 보안여관이 어떤 의미인지 저도 몰랐지요. 서정주 시인이 머물렀다는 것 외에는 아무 공식 기록도 찾을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보안백서>예요. 어렵게 이 집의 첫 주인을 찾았지요.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일본인 경찰이었는데, 20년 정도 살다 주인이 바뀌면서 보안여관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최 대표는 여관 주인들과 이곳에서 숙박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문화공보처 직원일 때 통금이 되면 보안여관에서 묵었고, 니드21의 유정한 소장도 첫 사무소가 통의동 근처라 보안여관에서 종종 도면 작업을 했단다. 우연이라도 보안여관에서 묵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랜 단골처럼 얼마나 반갑던지! 최 대표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던 해외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쌓는 일, 이 또한 10년 정도 지나면 보안여관의 새로운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보안保安’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수십 년간 나그네가 하룻밤 편히 묵고 간 여관은 이제 ‘문화 숙박업’으로서 일상으로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감싸고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회복’한다. 책방에서 술 팔고, 여관에서 예술 하고, 책을 전시하며 어느 좌표에도 정주하지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최성우 대표. 그가 주창하는 생활 밀착형 예술 공간의 정의는 이렇다. 먼저 ‘함께’ 즐겨야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아니라 하루든, 이틀이든, 한달이든 ‘지속성’을 두고 교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장소적 특성, 지역 특유의 각을 살려야 한다. 최 대표는 건강한 플랫폼을 만들면 재미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대중도 알아보는 문화적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자고, 보고, 읽고, 먹고, 마시고, 걷고! 건강한 생태계를 갖춘 문화 생산 아지트 보안1942가 더 많은 인연으로 내실을 다져 강소 문화 독립 공화국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모든 것이 빨리 사라지는 이 시대에 시간의 서사를 존중하며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는 최성우 대표에게 식물성 스킨케어 브랜드 달팡에서 ‘스티뮬스킨 플러스 리쉐이핑 디바인 세럼’ ‘스티뮬스킨 플러스 멀티 코렉티브 디바인 세럼마스크’와 ‘8플라워 넥타 에센셜 오일 엘릭시르’를 선물로 드립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취재 협조 보안여관ㆍ 보안1942(02-720-8409, www.boan1942.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본링크: http://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2/6167?call=list&c=0&p=1

Korea JoongAng Daily_20170731

Former motel has vacancy for culture: Newly-built Boan 1942 is home to a gallery and a history-filled bookstore

July 31,2017

Boan 1942, a gallery and bookstore, has opened right next to Boan Yeogwan, a gallery in central Seoul, so that the two places can be the cultural space for those in the city. [JOONGANG SUNDAY]

Deciding where to go to read books is getting increasingly difficult with more and more unique places to read springing up every week in Seoul. One of the newest places to visit is Boan 1942, a new building opened right next to the Boan Yeogwan gallery in Tongui-dong, central Seoul.

In the second underground floor of the building is the Boan Bookstore. After opening the front door, visitors will be wowed by one 4.2-meter-high (13.7-foot) wall filled with books and another that is filled with bottles. One can simply pick out a book of their choice and sit down with their favorite drink.

That’s not all. Visitors will be standing on a floor made of glass. Remnants of four homes from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ere discovered while constructing the building, and Choi Sung-woo, president of the building and the gallery, decided to install a glass floor so that visitors could see what’s underneath them.

The second floor of the new Boan 1942 building is also a bookstore and gallery. The bookstore sets one theme a year, and chooses one book whose story is used to decorate the gallery space. The gallery and bookstore are connected to Boan Yeogwan next door with a bridge.

The two buildings, Boan 1942 and its sister Boan Yeogwan gallery, are works by Choi, who wanted to make a cultural platform where people can come and expose themselves to ideas and artwork that they do not have access to in their everyday lives. When he found an old motel called Boan Yeogwan, he decided to buy the building and two others nearby in 2007. Originally he planned to tear all the buildings down and then build a new big one. But it didn’t take too long for him to figure out that the building had a long history of being used as a gathering place for literary experts since 1942, including poet Seo Jeong-ju and novelist Kim Tong-ni. More recently, it was known to host busy government officials working at the Blue House until it closed down in 2004.

“I walked around Seoul every weekend for about a year and a half, and took pictures of neighborhoods that are disappearing as I was looking for a place [to build a cultural platform,]” Choi said.

At left is the gallery space at Boan 1942 and at right is the underground bar and library. [JOONGANG SUNDAY]

He saw the value of the old building that he purchased and decided to maintain its history. Choi even found an old Boan Yeogwan sign in a dumpster nearby broken into pieces and put it back together.

He gave up his grandiose plan to make a one big building, but decided to keep the motel and only tore down the other two to build what’s now Boan 1942. He worked with architect Min Hyun-sik.

“While many new buildings tend to stand out alone, I wanted this building to look like one that’s been there for a long time,” said architect Min Hyun-sik.

“Since the building will be seen with the older Boan Yeogwan, [we] decided that we don’t want the building to be too modern or too unique. We wanted the building to be one without any particular expression.”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lso registered the original motel as a cultural heritage site. However, Choi sent out an official request two months ago that he wants the title to be canceled. He wanted the building to be able to continuously change.

“The idea is good, but the time might be taxidermied,” said Choi adding that the designation will hold the motel building back from being able to adapt to the present.

“The place is still in use nowadays and it is not stuck where [time stopped,] but reflects the cultural heritage of daily life. I don’t want it to be like a folk village, where certain items are stored in certain rooms that someone has used before.”

BY HAN EUN-HWA [summerlee@joongang.co.kr]

 

원본링크 : 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3036499

네이버 문화재단 _ 헬로! 아티스트:이소영

네이버 문화재단
헬로! 아티스트 이소영
흩어진 이들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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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소영은 디아스포라(Diaspora)에 집중한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을 의미했으나, 지금은 그 의미 범위가 확장되어 민족들의 이주, 이산가족, 민족분산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근원과 현재 터전인 새로운 환경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선다. 작가는 능동적으로 자신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 시대의 대안을 강구한다.

KBS 문화의 향기 17회 20170809

KBS 문화의 향기 17회2017-08-09(수)

《거리로 예술로》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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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링크: http://www.kbs.co.kr/1tv/sisa/cultureno1/view/vod/index.html?searchStatus=0&articleIndex=0&vosample=&currentUrl=http://www.kbs.co.kr/1tv/sisa/cultureno1/view/vod/index.html

KBS 9시 뉴스 20170815

KBS 9시 뉴스 2017년 8월 15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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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30년대에 문을 연 오래된 여관, 지은 지 50년이 넘은 동네 목욕탕,, 오래되고 낡아 더는 사용하지 않는 옛 공간들이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습니다. 최진아 기자와 함께 둘러보시죠.

<리포트>
낡은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면, 뼈대만 남은 목조 기둥과 흙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80년 세월이 내려앉은 서까래 아래에 그림과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인터뷰> 김한울·이유준(관람객) : “오래전에 여관이었다가 지금은 갤러리로 쓴다는 게 너무 신선해서… (재미있고, 진짜 책 속에 들어온 것 같아서 새로운 느낌인 것 같아요.)”

1930년대에 지어져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가 묵어가던 여관, 13개의 방에 미술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방송링크: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3533733

S Magazine 중앙일보

S Magazine 중앙일보
2017년 7월 23일

<서정주도 머물렀던 75세 건물, 생활밀착 예술공간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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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비 오는 가을날이었다. 곧 철거할 이층집의 지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새 집주인은 왠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곧 허물더라도 지붕 상태를 확인해 보자’ 싶었다. 2층 천장을 뜯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십 년 묵은 먼지가 온 방을 뒤덮었다. 뿌연 먼지가 걷힐 무렵, 천장 너머 높다란 박공지붕이 서서히 드러났다. 집이 보내는 마지막 SOS였다. 새 주인은 그 신호를 알아봤다. 잘 지은 적산가옥이었다.

최성우(57) 보안여관 대표(일맥문화재단 이사장)는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지붕을 본 순간 ‘이건 내 손으로 허물 수 없는 건물이구나’고 직감했어요.” 보안여관을 허물고 복합문화예술 플랫폼을 멋지게 만들어보려 했던 최 대표는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보안여관에 붙들렸습니다.” 경복궁 옆 통의동에서, 일제 강점기인 1942년부터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숱한 범인(凡人)의 하룻밤을 보살피던 보안여관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보안여관과 닮은 듯 새로운 모습의 묘한 공간이 최근 문을 열었다. ‘보안1942’다. 건축가 민현식(71)의 작품이다. 두 건물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 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21780552

KBS 뉴스광장 20170529

KBS 뉴스 광장 2017년 5월 29일

<흉물에서 미술관으로…‘재생 건축’의 매력>

“쓰임새가 다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부여받은 건축물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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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_2017-05-31_14-02-14 photo_2017-05-31_14-02-09 photo_2017-05-31_14-02-02 영상보러가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88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