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개인전 Lee Heekyung solo exhibition
《Ketika kupanggil namamu / When I call your name》

  • 일시: 2022. 12. 23 – 2023. 1. 25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2 (B1 전시장)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Date : 23. Dec. 2022 – 25. Jan. 2022
  • Venue : ARTSPACE BOAN 2
  • Hours : 12PM – 6PM
  • Closed on Mon & Jan 1st
  • Free Admission
  • 협력 | 윤띠아나
  • 연구자문 | 박소현, 최형미
  • 음악 | 박병준
  • 번역 | 박소현
  • 원어감수 | 미라 리즈키
  • 전시서문: 정희영
  • 평론: 양효실
  • 디자인: 파이카
  • 주관: 이희경
  • 주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 2022!> 시각예술분야
  • With Yuntiana
  • Consultation | Choi Hyung-mi, Park Sohyun
  • Music | Park Byung-jun
  • Translation | Park Sohyun
  • Review | Mira Rizki, Alia Damaihati
  • Preface: Chung Hee Young
  • Critique: Yang Hyosil
  • Poster design: Paika
  • Supervise: Lee heekyung
  • Organize: ARKO Creative Academy
    Support: Arts Council Korea

환대해 준 당신을 환대하며,

정희영 독립 기획자

   이희경은 언니와 산책하거나 식사(마깐,makan)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작업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작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무슬림 여성으로 살아가는 언니 아나의 씩씩한 웃음을 마주할수록 그녀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국처럼 밥을 먹는 쌀문화권이었기 때문일까? 불가능한 자리에 여전함으로 놓여있는 긍정의 감정들, 그 감정들에 매료되어 이희경은 개인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방인이었던 사람뿐일테다.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차라리 영혼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겠다는 본능적인 맹세. 개인전 《너의 이름을 부를 때》는 그 맹세로 채워진 전시이다. 가장 먼저 이희경이 공들여 보여주려 하는 것은 언니의 진실한 하루이다. 영상 <회차시간>은 한국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한 아나가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어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을 지나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온 경험을 토대로 한다. 

   영상을 보며 그녀의 회차시간을 내가 감히 상상한다. 타지에서의 외로움 그리고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버스가 가고 멈추는 길마다 숨어 있어서, 둥글게 원을 그린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버스노선을 따라 애달픈 마음도 함께 맴돌았을 것이다. 맺히는 것들을 가슴에서 내려놓기 위한 발걸음이었으나, 버스에 오르는 승객의 눈동자를 마주할수록 무엇 하나 내려놓을 수 없는 길이었을 것이다. 캄캄한 하루일수록 질문 없이 답을 내려버린 탑승객들이 야속했을 것이다. 

   작가도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따라 도시의 방문객이 되어본다. <회차시간>은 히잡을 쓰고 순환하는 버스에 올라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작가가 재편집한 것이다. 낯선 발걸음에 촉을 세우고 자신을 향하는 의뭉스러운 눈빛을 마주할수록, 불편한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할수록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아나 언니다. 사막에서도 집을 지어 살 수 있을 것 같은 언니의 강인함, 나쁜 것은 잊고 좋은 것만 떠올리는 언니의 다정함. 작가에게 언니는 동경의 대상이다. 작업의 동력이 동정이 아닌 동경이라는 사실, 이는 타자를 다룬 과거의 것들과 분명히 다른 작업의 시작점이다.

   이희경의 영상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 그가 영상이라는 형태를 빌어 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나의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하지만(<회차시간>, <평범한 날>, 2022), 아나를 향한 동경은 인도네시아 여성운동 단체 ‘그르와니(Gerwani)’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잔상>, 2022). 한국에서 이토록 당차게 살아가는 여성이 실존할 수 있는 연유를 근원적 뿌리로부터 찾아보려는 것인데, 자식이 여성과 남성의 성을 따르지 않고 이름만 쓰는 인도네시아 문화나 진보적인 사회주의 여성운동 단체‘그르와니’로부터 작가는 단서를 찾는다. 영상 <잔상>은 되려 편견과 차별 속에 여성의 목소리가 공공의 장에서 사라져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 세계를 괴로움으로 인식하는 자는 작가이고,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세계를 긍정하는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는 이희경이 차별과 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높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선명하게 만연하고 있는 배재의 서사를 환기해야만 우리는 그 폭력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적어도 <잔상>에서 만큼은 그르와니의 활동을 살피며 여성의 목소리를 억누른 자들을, 그들의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여성과 그러한 여성에게 건네지는 수상스러운 눈초리는 한국사회에서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편견과 차별은 만연하고 있으며, 일상을 일상답게 살아내려고 애써야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니 병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몸은 지쳐도 마음만은 넉넉하게 살아가려는 아나로 돌아갈 수밖에. 도무지 긍정할 수 없는 삶을 무력화시키는 긍정, 생을 순순히 긍정하는 아나에게로 돌아가자. 

   이 모든 작업은 아나가 이희경을 환대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나가 자신의 특별한 산책을 이야기해주었기에, 손과 발을 씻고 기도하는 마스지드(Masjid)에 초대했기에, 함께 거리를 걷고 밥을 먹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공간에 초대했기에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다. 아나가 나의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허락해주었기에, 오롯이 그 허락으로 인해 이희경은 아나를 너(언니)라고 부를 수 있어진다. 아나는 우리가 진심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 용기는 환대이고, 이제는 우리가 화답할 차례이다. 

환대해 준 당신을 환대합니다. 당신이 보여준 여전함과 진심을 모두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