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개인전 <풀풀풀 – 더듬어 가는 냄새>

통의동 보안여관 ART SPACE BOAN 2

2018. 11. 29 – 2018. 12. 12

좋았다. 나빴다. 한다. 대기의 순환에 따른 먼지의 농도는 오늘도 여러 번 ‘좋음’과 ‘나쁨’의 상태를 오간다. 공기는 약 78%의 질소, 21%의 산소, 0.93%의 아르곤, 그리고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한다. 그러한 공기의 조성은 그 외에도 주변의 날씨와 사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먼지, 꽃가루, 수많은 미생물과 같은 여러 혼합물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우리에게 특정한 ‘냄새’로 인식된다. 냄새는 일반적으로 하나 이상의 휘발성 화합물에 의해 생성되며 사람이나 동물의 후각에 의해 지각되는 것을 의미한다. 냄새의 좋고, 나쁨은 화학적으로 황화수소 등의 기타 기체류가 인간의 후각을 자극할 때 주는 불쾌감, 혐오감 혹은 황홀감의 인식적 차이를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공기 조성은 누군가에게는 ‘악취’로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향기’로 인식된다. 이것은 냄새가 화학적 개체의 나열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의동 보안여관 ART SPACE BOAN2에서는 2018년 11월 29일 부터 12월 12일까지 김지수 개인전 <풀풀풀: 더듬어 가는 냄새>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해온 식물의 과학적 관찰과 실험적 탐구 기저에 깔려 있는 비인간 세계에 대한 직관적이고 내밀한 감각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백목련, 서재 안쪽에 켜켜이 쌓인 원고와 책상 위에 무심히 놓여 있던 아버지의 안경 그리고 오랫동안 여러 이유로 간직해온 오브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냄새채집>(2018)은 그동안 작가가 더듬어온 냄새와 그로부터 감지된 다양한 생태계의 객관적 언어와 추상적 이미지가 서로 복잡한 연결망을 이루고있다. 이러한 다층적 사유를 바탕으로 발현된 회화작품 <풀풀풀>(2018)시리즈와 <바이오드로잉>(2017)등은 김지수의 세밀한 감각의 특이점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확장시킨다. 또한 동명의 소설과 교감하며 제작된 영상작품 <흔적의 숲>(2018)은 기체의 혼합물이 특정한 냄새로 인지되는 과정에 따른 여러 조건과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작가가 우연히 방문한 구도심 곳곳에 쌓인 부산물이 내포한 기체(냄새)의 관점을 상상하게 한다. 드론으로 촬영된 광각의 풍경부터 현미경의 마이크로한 시점까지 이미지가 순차적으로 재생된다. 전시장의 낮은 벽 안쪽에 설치된 <숨 Ⅳ>(2018)은 후각, 청각, 시각 등 식물의 감각을 이끼의 성장 환경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작가가 최근까지 진행해온 엔지니어, 과학자 등과의 협업과 과학적 접근법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냄새를 둘러싼 내밀한 감각의 영역과 과학적 사실의 연동은 마치, 코 끝을 스치는 냄새를 특정한 기억과 맞물려 떠올리는 과정과 닮아있다. 콧속의 후각 수용체와 냄새 분자의 결합이 뇌에 신호를 전달하고, 이를 독특한 냄새로 인식하는 이 모든 단계는 우리가 숨을 쉬는 순간 즉각적으로 발생된다. 공기의 분자와 적합한 수용체가 결합해 냄새를 인지하는 것처럼 <풀풀풀 – 더듬어 가는 냄새>가 제시하는 지각과 감각의 결합은 들숨과 날숨의 시간성에서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낸다.

글. 아트 스페이스 보안 큐레이터 송고은

  • 전시기간 / 2018년 11월 29일 – 12월 12일
  • 오프닝 / 2018년 11월 29일 오후 6시
  • 관람시간 / 12: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 2 (BOAN1942 B1)

전시 관련 문의

통의동 보안여관 : 02-720-8409 / artspaceboan@gmail.com/
www.boan1942.com
www.facebook.com/boan1942
https://www.instagram.com/boan1942

 

풀 풀 풀

더듬어 가는 냄새
스며드는 체취
돋아나는 향기
날아가는 홀씨
흩어지는 포자
사라지는 수증기
번져가는 연기
흘러가는 액체
부유하는 안개
증식하는 세포
연결하는 균사
떠다니는 먼지
배어드는 흔적
풀 풀 풀

어느 날 나는 잘 발달된 후각수용체를 지니고 ‘흔적의 숲’을 거닐다가 다양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 숲에는 예전에는 한 번도 맡지 못한 낯설고 기이한 냄새들로 가득했다. 숲 밖에서는 좋은 냄새, 향기, 체취만을 느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흔적의 숲’에는 숲 본연의 냄새 뿐 아니라 오래되어 변해버린 냄새, 어둠의 냄새, 절망의 냄새, 심지어 곧 사라지기 직전 죽음의 냄새까지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후 ‘흔적의 숲’은 나에게 다른 세상을 냄새로 연결시켜 주었고 이 순간에도 그 숲의 냄새가 떠올려진다. 그리고 지금 나는 ‘흔적의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모든 냄새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안다.

-김지수 (Kim Jee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