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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_20121016

“주민들이 감독·배우인 ‘마을영화’가 벌써 60편”

글 김윤숙·사진 김창길 기자 yskim@kyunghyang.com
입력 : 2012.10.16 21:20:15


ㆍ신지승 감독 ‘일맥아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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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한 편의 영화고 그들이 진짜 주인공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고작 장비를 들고 마을을 찾아가는 것뿐입니다.”

전국의 시골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마을영화’를 만들어 온 신지승 감독(49·사진)이 ‘2012 일맥아트프라이즈’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13일 상을 받았다. 일맥아트프라이즈는 일맥문화재단(이사장 최성우)이 공동체예술(커뮤니티아트)의 저변 확대를 위해 지난해 제정한 상이다.

신 감독은 지난 1999년부터 전국 80여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영화를 만들었다. 상업영화의 세 축인 스타·자본·극장을 배제하고 그 대신 공동체, 생명,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농민·여성·노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 배우가 되고 제작자가 되어 누구나 즐기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마을영화’는 마을주민이나 공동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시나리오부터 제작까지 직접 참여해 펼치는 한바탕 영화축제입니다. 저는 그저 마을을 선정할 뿐, 나머지는 마을 주민들이 다 알아서 합니다. 직접 스태프가 되고, 출연자가 되는 거죠.”

신 감독이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9년 귀농을 하면서부터다. 귀농을 하기 전에는 영화사와 독립 프로덕션 등에서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예술영화에 관심이 많아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예술영화 자료들을 수집해 예술영화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한 투기장처럼 변해가는 영화판에 회의를 느끼고 귀촌을 결심했다.

“귀농을 한 뒤 35㎜ 영화 작업을 했어요.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상업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이 보였습니다. 영화는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마을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신 감독은 홍보영화를 찍어 마련한 돈으로 5t 트럭을 구입한 뒤 내부를 개조해 ‘움직이는 영화사’를 만들었다. 촬영 장비는 물론 침대와 화장실이 딸려 있는 트럭은 그의 일터이자 숙소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느낌이 오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섭외가 쉽지는 않아요. 쫓겨난 적도 여러 번 있어요. 그래도 동네 어르신이나 아이들 몇 명을 설득해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주민들이 하나둘씩 구경을 나오고, 그러다가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지요. 영화 장면만 설정해주면 주민들이 연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잘하는지 모릅니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지요. 영화와 농촌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벌써 60여편이다. 신 감독은 마을영화가 실제로 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스스로 놀란다고 했다. 주민들이 예전과 달리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희망을 끄집어내고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만든 영화는 ‘달빛 영화제’를 통해 상영됩니다. 별들이 찬란한 밤, 야외에 천막을 치면 멀티플렉스 영화관 부럽지 않은 대형 스크린이 만들어지죠. 관객은 물론 영화를 만든 스태프이자 출연자인 주민들입니다. 모두 모여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감상하는 겁니다. 소통의 단절은 농어촌이라고 예외가 아니죠. 그런데 한 편의 마을영화가 주민들을 하나로 묶고 마을을 축제의 장으로 만듭니다.”

신 감독은 예술의 즐거움은 누구나 누려야 하고 그 책임은 예술가들의 몫이라고 했다. “공동체예술은 과정의 예술입니다. 바로 지금,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예술입니다. 앞으로 마을영화가 600편이 되고 6000편이 되는 날까지 마을 구석구석에 꼬깃꼬깃 숨겨진 보물들을 발굴해 나갈 생각입니다.”
17일까지 서울 종로의 ‘통의동보안여관’에서 그의 영화 <금강 속의 송아지> <선비가 사는 마을> 등이 상영된다. 신 감독과 함께 전국을 누빈 5t 트럭도 보안여관 마당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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