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새롭게 시작하는 <木茶:목차>
2018년 <木茶:목차>는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가능하고, ‘창작생산자 중심’의 화제를 ‘수평적 구조’로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회차마다 주제를 가진 새로운 형태로 꾸려지며, 매주 목요일 진행되었던 방식에서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1회로 조정합니다. 또한 목차의 패널은 대화를 이끄는 주체가 아닌 질문을 건네는 역할로 함께 합니다. <木茶:목차>의 플랫폼을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의 주제 공모도 받습니다.
그중 첫 번째 순서인 <대화의 방식>은 오는 2월 22일에 시작됩니다. 창작자 사이의 협업, 크리틱 모임, 포트폴리오 리뷰 등 창작 생산자가 피드백을 주고받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저마다의 특징과 한계가 있습니다. 창작생산자들 사이의 두루뭉술한 서술, 지식의 불투명성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화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창작생산의 과정을 되짚어 봅니다.
Review
지난주 목요일 진행했던 <木茶:목차>의 장면들을 공개합니다. 모두에게 생소했던 대화의 방식이지만 소규모 그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수평적 대화’에 대한 저마다의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늠하는 수평성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부터 위계의 작동원리, 인터넷 환경의 수평성, 합의되지 않은 용어가 대화를 방해하는 상황, 관람객과 전시는 수평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까지 다양한 대화들이 오고갔습니다. 곧 보안여관 홈페이지에 패널이었던 강신대 작가와 이양헌 비평가가 기록한 첫번째 목차에 대한 텍스트를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목차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에 열립니다. 목차의 플랫폼으로 나누고 싶은 대화를 제안해주셔도 좋습니다.
목차 주제 제안은 이곳으로 : boan1942@gmail.com
2018 <木茶:목차> 첫 번째
대화의 방식
문화.예술계에서 수평적 대화는 창조성을 생산하고 이를 지속. 확장시키는 가장 좋은 도구 중 하나일 것입니다. < 대화의 방식 >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화’는 비위계적 구조에서 자유로운 지식 교환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긍정을 의미합니다. 최근 비엔날레를 포함한 프로젝트들에서 더욱 주요하게 다뤄지는 퍼블릭 프로그램들은 수직적인 학습을 의미하기보다는 이러한 참여적 교환 활동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현대 미술의 주요한 흐름이기도 합니다. < 대화의 방식 >은 이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는 물론 우리를 둘러싼 현실적인 대화의 조건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대화의 방식’의 대화의 방식
- 전체 일정은 소그룹 대화와 모두 발언 순으로 진행됩니다.
- 소그룹 대화의 테이블은 1, 2, 3 세 개로 나뉩니다.
- 참여자는 공유된 질문들을 기반으로 티켓에 적힌 숫자에 따라 테이블을 돌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 3회차의 소그룹 대화가 끝난 뒤 모두 발언의 시간을 갖습니다.
공유된 질문들
-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수평적 대화에 방해가 되는가?
- 당신이 나눈 가장 기분 좋았던 마지막 대화는 무엇일까?
- 창작생산에 수평적 대화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흔히 수평적 대화를 방해하는 주된 요건들로 이야기되곤 하는 ‘한국적 풍토’란 무엇일까?
- 언제, 어떤 상황이 수평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가?
- 위계가 설정된 대화는 작업(창조성)을 방해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대화는 언어적인 것, 비언어적인 것을 아우르는가?
공유한 자료에 대한 코멘터리
강신대 작가는 마에지마 사토시의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 실린 <세카이계라는 유령>이라는 텍스트와 <2015년 미술생산자모임 2차 자료집>의 일부를 공유해주었습니다. <세카이계라는 유령>은 오타쿠 문화의 담론 공간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던 ‘세카이계’라는 용어가 사실상 합의된 정의없이 불투명하게 남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세카이계’라는 용어의 유행이 창작생산자들의 창작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을 파악해보며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화의 변화와 수용, 그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재고합니다.
– <세카이계라는 유령> 중 발췌 –
“오타쿠 문화의 담론 공간에서, 하나의 말이 유령처럼 배회했다. 바로 ‘세카이계’다” (13페이지)
“동일한 작품을 어느 평론가는 ‘세카이계’라고 부르고, 다른 평론가는 ‘반 세카이계’라고 부르는 상황도 드물지 않았다.” (18페이지)
“이러한 혼란 때문에 종종 ‘세카이계라는 건 단순한 버즈 워드(buzzword, 명확한 정의나 함의 없이 특정 그룹 내에서 유행하는 말)이며,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 지적은 사실로서 옳은 것처럼 보인다.” (19페이지)
“세카이계라는 ‘말의 유행’에 창작자들까지 휘말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문예 운동’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24페이지)
<2015년 미술생산자모임 2차 자료집>은 수평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로서의 아티스트피, 고용의 형태등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무급의 전시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던 경험, 애초에 수평적 대화가 불가한 관계설정 등 더 나은 대화의 방식을 위한 물리적 토대를 점검해보는 자료입니다.
이양헌 비평가는 보리스 그로이스의 <예술의 진실성> 텍스트를 번역해 공유해주었습니다. 이 글은 과거의 독립적, 고립적 상황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예술의 진실성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던 반면에, 오늘날 인터넷 상황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예술의 창작과 수용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진단하고 있습니다.
– <예술의 진실성> 중 발췌 –
“예술가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들의 관객들과 사용하는 언어를 공유해야 한다.”
“오늘날 상황은 바뀌었다. 현대 예술가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며 작업한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인터넷에 올린다. 특정 작가의 이름을 구글링하면 그의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중략)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그의 의도와 의미로 작품에 투자한 저자의 주제가 해석학적으로 독해되고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 모든 행동은 인터넷이라는 통합된 공같은 공간에서 벌어지고, 그들 모두는 잠재적으로 다른 인터넷 유저에 접속할 수 있다. 여기서 예술 작품은 세속적이고 “진짜”가 된다.”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은 “평균의”,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 시각의 과잉은 이미지의 힘이나 기술적 변화의 힘으로 관객들에게 소통되어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조건에서 이 시각의 과잉은 더이상 예술가의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응시의 측면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