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명 : 신정균 개인전 《아크로뱃》
  • 전시 기간 : 2021. 2. 18 (목) – 3. 14 (일)
  • 전시 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2 (신관 B1)
  • 운영시간: 12:00-18: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협력 기획 : 문한알
  • 디자인 : 김규호
  • 공간 설치 : 장영원
  • 글 : 안소연
  •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주관 :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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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JUNGKYUN SOLO EXHIBITION Acrobat

  • DATE: 2021. 2. 18 (THU) – 3. 14 (SUN)
  • Venue: ART SPACE BOAN 2
  • Opening Hours: 12:00-18:00
  • Closed on Every Monday
  • Admission Free
괄호 안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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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미술비평가

  1. 회상

어떤 시간에 대한 걸쇠.

1994년, 0교시 수업이라는 시간의 속임수.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과거라는 소리인가, 그렇(지 않)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는 말인가. 그건 늘 평일 8시 5분에 특정하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7시에 집에서 나와 7번 버스를 타고 홍대 정문에 내려서 한산한 교정을 빙⏤ 돌아 교실에 들어갔다. 0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표시해 놓은 그 이상한 시간 설정을 굳이 해명해 볼 생각도 나는 없었지만, 현재의 시간을 억지로 잡아 늘어뜨려 더 유예시켜 놓으려는 그들의 불온한 마음을 내가 몰랐던 것도 아니다.

있다 해 놓고 없었던 것처럼 없었던 걸 있는 것처럼, 신화적이면서 이데올로기적인 서사라도 되는 것처럼, 현재의 시간은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춘기의 육체와 같이 감춰진 게 많았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적인 시간, 하지만⏤ 자율학습이 끝나 곧 소멸할 밤 10시 보다 0교시를 앞둔 아침은 언제나 더 조용했다. 어둠 때문에 발에 차이는 하루의 잔해 조차 헤아려 볼 수 없었던 어제의 밤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아침은, 알 수 없음으로 진단된 현재의 감각을 살아있는 온몸에 퍼뜨린다. 게다가, 10월의 교정은 먼 시간처럼 얼마나 설렜던가. 엄청난 침묵을 지니고 있는 늙은 고목들의 몸통이 현재의 시간에 그토록 헌신하고 있으니, (단풍),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는 시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 (나무의 계절), 그게 얼마나 매일의 새로운 결말을 지탱해 주는가 말이다.

금요일,

재난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을 파고들었다. 우연히.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누군가 교실에 매달려 있는 TV를 켜 놓았다. 헬기에서 찍은, 선명하지 않은, 긴박한 영상이 그대로 보도됐다. 시간이 두 동강 난 것처럼, 붕괴된 다리가 삶과 죽음의 영역을 둘로 나누어 놓은 것 같았다. 아⏤ 재난의 (불)확실한 형상.

그 후로 나는 죽음에 대해 갑자기 생각(해야) 할 때, 아니, 미지의 불안을 잠재울 죽음을 떠올릴 때, 그 재난이 다시 올 거라는 상상을 –그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것을- 눈 앞에 그린다.[현재]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 (그 비현실적인 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 현재에 정지를 불러 올 재난의 사건을 떠올렸다.[과거] 나는, 거의 매번,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 재난과 죽음의 서사를 다시 연습한다.[미래]

  1. 재난의 서사: 시간의 철회

그가 재난에 대해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하지만 이미 일어난 것으로 판명될, 언젠가 또 벌어질 (지 모를) 사건에 대해서다. 과거로부터 남겨진 잔해를 발견하고 수집하고 관찰하고 기록하여 다시 그 “형태”와 “행위”를 허구적으로 모방하거나 현실에 재작동시켜 왔던 신정균은, 그가 우연히 찍은 7분 20초 분량의 현장 기록 영상을 보여주면서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그가 늘 시달려 왔던 낡고 오래된 과거에 직접 연루되어 있기 보다 코 앞에 들이닥친 (근)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측이며, 의심이다. ⏤이것을 말하려면, 1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야 한다⏤ 그때, 그는 재난과 함께 타임캡슐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떠오르는 말들을 띄엄띄엄 이어갔는데, 어쩌면 어딘가에 (이미) 당도해 있는 미래로 가는 데 있어 그 시공간의 착오가 일종의 재난임을 선고하려는 그의 어떤 비장함을 나는 사사로이 넘길 수만은 없었고, 지금,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본다.

<미래 연습(Future practice)>(2021)은, 현재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로 기록되어 있는 건물에서의 재난 대피 훈련 정황을 담고 있다. ⏤붕괴된 재난 현장을 헬기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한 기억 속의 그 긴박한 영상처럼, 아무런 조정 없이⏤ 신정균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마치 미래를 목격하고 온 사람처럼) 그가 본 것을 우연히 카메라 영상에 담아 왔다. 담아 왔다는 게 중요하다. 무명의 이 사건에 대해 그가 “미래 연습”이라는 제목의 걸쇠를 걸어 놓은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시제의 아이러니를 지닌) “재난”은 현재에 침범하려는 미래적인 것이며 동시에 현재를 과거(적인 사건)에 묻고 그 나머지 잔해를 미래에 내어주는 것으로, 일종의 시간에 대한 폭발적인 파열을 통해 시간적 철회와 갱신을 허용한다는 것. 그는 재난 그 자체의 진실 보다는 그것의 (이질적인) 시제나 (운명적인) 시간성뿐 아니라 어떤 은폐극으로서 재난의 (검은/실명(失明)의) 서사성에 주목해, 시간에 대한 추상적이면서 물질적인 차원의 양면적인 당위를 얻어 탐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 재난과 시간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몸”인데, 신정균은 (물리적 저항과 적응을 동반한) 일련의 몸짓에 주목해 현실에서의 마술적 “곡예(acrobatics)”라는 설정을 적극 끌어들인다. (실제로 그는 <차원을 이동하기 위한 연습>이라는 (미발표) 영상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퍼포머 서상현과 “곡예”를 통한 “차원 이동”을 연습하는 동안 비약적인 단서들을 남기기도 했다.)

재난 대피 훈련의 일부를 영상으로 기록한 <미래 연습>에서 진부한 일상의 풍경을 둘로 쪼개듯 파열시키는 요소는, 재난의 시뮬레이션 보다는 차원의 경계에 있는 (낯선) 몸의 움직임이다. 말하자면, 재난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모의하는 것 보다 “미래를 연습하는 몸”, 그것의 불확실한 현전이 가져오는 수행적 전환이야말로 현재의 시간을 전복시켜 철회할 만한 간섭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미래 연습>은 재난의 위기, 그것이 가져올 현재의 분열을 경고하지만, 사실 그가 거칠게 담아 온 영상 기록은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을 상상하며 저 움츠린 몸들이 보여주는 (뜻밖의) 제의적이거나 자기 지시적인 움직임이다. 다시 말해, 재난 대피 훈련 중인 사람들의 몸은 현재의 시간을 벗어나 재난과 그것의 시제로서의 미래를 구성하는 육체의 (길들여지지 않은) 행위를 만든다.

4채널 영상으로 구성된 <시뮬레이션(Simulation)>(2021)은 조금 더 그것에 가깝다. 신정균은 안전 체험 교육관에 마련된 재난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미래 연습>을 곡예로 변환시킨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영상에서는, 퍼포머가 가상의 재난 상황을 무대 삼아 즉흥적인 곡예를 보여준다. 이때, 재난의 사건은/서사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요동치는 땅, 범람하는 물, 화산 같은 불길, 그 모든 재난의 묘사는 아무런 사건, 그러니까 아무런 재난의 서사와 시간적 철회-과거, 현재, 미래의 재배열/갱신-를 불러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재난을 인식하는, 사건을 만드는, 시간의 흐름을 변환시키는 퍼포머의 행위가 목격되는 “공연”이다. 신정균이 <시뮬레이션>에서 강조한 것은, 재난을 공연하는 행위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재난은 마치 (내가 의심했던) 0교시 수업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갑작스럽게 제각각 동시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또는 반대로 그 의미를 반박하게 되는, 일종의 시간에 대한 회상/기억과 유예/지연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가상의 힘을 가졌다. 따라서, 그 실체가 아닌 불확실한 상상의 “시뮬레이션”에서 가상의 몸짓-곡예-춤을 나타내는 이 공연은 재난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그 역사적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이 춤은 (바디우 식의) “사유”를 전달한다.

  1. 제의적 시간: 회상과 유예

<찾는 사람(Seeker)>(2021)과 <아크로뱃(Acrobat)>(2021)은 운영 중단된 취수장을 무대로 한 퍼포먼스 영상이다. 이 무대가 된 장소는 어떤 현실의 내막을 가지고 있는데, 운영 중단과 함께 근현대 산업유산으로 지정돼 원형 보존의 과제가 주어진 이 공간은 그 일부가 현재 서커스 공연 연습장으로 쓰인다. 이렇게 추가된 장소의 특정성으로 인해, 곡예와 자료 보존, 즉 소위 말하는 서커스와 타임캡슐의 임의적 교섭 관계가 만들어졌다. 신정균은 이러한 파편적인 단서들을 이어 붙여, 재난-곡예-타임캡슐의 서사와 형식에 중층의 다리를 놓았다.

<찾는 사람>에서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폐쇄된 취수장 곳곳을 탐색하는 퍼포머의 “찾는” 행위에 시선이 모아진다. 이는 마치 신정균이 그동안 몰두해 왔던 아카이브 작업 방식과 그의 신중한 태도를 상기시키면서, 그동안 과거의 잔해로 추려진 아카이브에 집중됐던 시선이 그 일을 수행해 온 작가의 행위로 전이되는 변화를 직접 겪게 한다. 예컨대, 미래 유산으로 지정돼 영구적 원형 보존 상태에 있는 장소에서 신정균은 유일하게 허락된 “서커스 공연”의 형식을 빌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 어딘가에 봉인된 타임캡슐의 내부를 가로지른다. 재난의 수수께끼 같은 시제들처럼, 시간의 봉인은 일련의 시간에 대한 철회와 그것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중단, 회상, 유예의 시간적 혼종 사태를 겪게 된다. 신정균은 그것의 일시적 출현으로서, 그것의 출현이 허용된 몸짓으로서, “곡예”라는 몸의 현전에 주목한 것 같다.

<아크로뱃>은 말 그대로 모든 행위의 당위가 전복된 자기 지시적 곡예로 현전한다. <미래 연습>에서 현재의 시간착오를 가로지르며 흐릿하게 보여진 사람들의 낯선 움직임처럼 말이다. 위에서 아래로, 얕은 경계에서 허공으로, 깊숙이 봉인된 장소로 내려오는/내려지는 퍼포머의 육체는 제의를 치르는 유예된 몸짓의 현전처럼 암호화된 시간/시제를 약동시키는 마술 같은 곡예를 보여준다. <아크로뱃>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사건은, 재난 대비 시나리오에 포섭된 미래 연습과 닮았다. 요컨대, 그것은 현재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현재의 유예가 왕복하는 사유의 춤을, 그것의 비역사적 운동성과 중력에 매여 있지 않은 무게의 해방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과거의 잔해가 축적된 현재를 사유해 오던 신정균은, 텅 빈 현재, 괄호 안의 현재 시제를 펼쳐 놓았다. 그동안 과거의 혹은 (바디우가 “금수”로 호명한) 세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새로운 날들의 문턱을 끊임없이 배회하던 신정균은, 돌연 제 시선을 미래로 돌렸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은 틀렸다.) 이때, 그는 이념적인 시간의 파노라마 같은 연속을 수수께끼 같은 재난과 무덤 같은 타임캡슐의 서사로 밀어 넣고 원초적인 시간성-태초와 최후의 심판이 함께 요동치는-을, 그것의 시간착오로 이질적인 서사가 재구성되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곡예의 육체적 현전을 강조했다. 그것은 기록되거나 영구히 보존될 원형을 도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엄격한 시차들을 교란시키고 아무도 모를 과거-현재-미래의 시제를 다시 연습하는/사유하는 무대가 되기를 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