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겹》

  • 일시: 2020. 01.09 ~ 02.09
  • 장소: 아트 스페이스 보안 1(구관)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설연휴 휴관
  • 입장료: 무료

《blurry layer》

  • Date: January 9 – February 9, 2020
  • Venue: ART SPACE BOAN 1
  • Opening Hours: 12PM-6PM
  • Closing Days: Every Mondays, Lunar New Year’s Day
  • Admission Free

후원 : 서울문화재단

이 정도의 삶

구나연(미술비평가)

집은 개개의 삶이 세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것이다. 인간 뿐 아니라 동물까지도 거처를 필요로 한다. 대지 위에 온전히 거주하지 못할 때, 삶은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 사회적 영역으로 거처를 확장한다. 처음 대지 위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은 최초의 행위가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한 루소의 지적처럼, 집은 삶의 범주를 넘어 그 특질과 계층의 지표이다.

조혜진의 작업은 이 오랜 세월을 통해 구축되어 온 거주에 대한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중첩되는 지점에 집을 세웠고, 또 사물을 채운다. 그의 이전 작업이 실제와 같은 집의 모양을 통해 태초의 울타리 이후 인류의 욕망과 좌절을 부추겨온 기준을 탐색해 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거주자의 선택이 만든 집안 내부의 기호와 암시를 통해 거기 살던 삶의 형식과 내용 모두를 아우른다. 부서지고 남겨진 집의 잔해를 모아 구축되는 건물은 이제 그 내부의 잔해 속에 잔존하는 사회적인 언어이자 시대적 개인의 말로 확장된 것이다.

유년시절 집을 짓는 과정을 본 기억이 있고, 한 동네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작가는 그 지역의 변화와 특징을 누구보다 가까이 경험하고 목격해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단순한 개별적 체험을 넘어 어떤 계층의 군집이 공통적으로 일궈 온 삶의 체계와 시대에 대한 성찰에 이르게 된다. 특히 집이 철거되어 여기저기 그 잔해가 흩어진 모습은 오늘의 도시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철거의 풍경이다. 그 안에는 한때 안방에, 거실에 놓이고 붙어 있던 복고의 사물이 버려져 있기 마련이다. 조혜진이 발견한 사물의 표본들은 거대한 도시 안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꾸미고 장식하기 위한 소박한 삶의 스러진 욕망들을 다시 세우고 기억하며, 그 지난 욕망이 향하고자 했던 풍요의 세계를 투영한다.

하루하루를 성실함으로 살아온 사람들, 이리저리 덧대어 집을 증축한 것처럼 욕심을 부려 보기도 하지만 옥상에 텃밭과 꽃밭을 가꾸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사람들. 삶을 형상화 한 듯한 그들의 집에서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 보이고, 터전에 대한 욕망이 보인다. … 끝도 실체도 없는 그 곳은 금세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현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현실은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조혜진 작가 노트 중에서)

그리고 거기에 살던 이들의 품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계획은 매일의 성실함과 같은 막연한 의지로 무작정 밟아갈 수밖에 없다. 조혜진의 작업이 집의 외부에서 집의 내부로 눈을 돌린 것은 이러한 일상의 미덕이 부추기고 또 안주하게 만드는 서민적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가 작업의 소재로 사용한 과거 중산층 주택의 내부 장식과 자개장은 부유한 삶의 표식과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표식을 자신의 집에 장착할 때에 비로소 삶의 형태와 계층에 대한 어떤 안도들, ‘이 정도의 삶’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갖지 못한 계층의 기호를 부분적으로 소유하며 조금씩 타협해 간 내면의 흔적이다.

따라서 조혜진이 자개와 구옥의 잔해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삶의 조건을 높이려는 소시민적 욕구들이 실현되기도, 좌절되기도 하는 장소인 집과 사물을 통해 어느 시대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는 그 집에 살던 이들이 선택한 기호 속에 응결된 내면과 바람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70~80년대 많은 집의 안방에 놓여 있던 화려한 자개장의 문양은 모두 장수와 풍요, 화목과 건강과 같은 풍속의 상징들로 덮여 있었다. 조혜진은 철거된 구옥의 거실 벽을 장식하던 나무 틀 위에 자개로 소나무의 이미지를 모자이크하여 과거의 그 곳에 살던 이들이 공유했던 상투적이나 소박했던 염원을 재현한다.

또한 버려진 낡은 자개장의 화려한 문짝과 서랍 위에는 과거 그것을 사용했던 세대가 오늘날 서로의 삶을 북돋고 다스리기 위해 휴대폰 메시지로 나누는 구태의연한 격언과 미담이 작가가 일일이 자른 자개 문자로 채워진다. 반짝이지만 어딘가 낡고, 해학이 있지만 무언가 괴괴한 말과 서체는 시대적인 기시감과 동시에 지금도 통용되는 그들의 낡은 철학과 부르튼 채찍의 표상이 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틈에서 그런 삶의 주체이자 또한 객체로서, 거기에서 태어났고, 살았고, 또 벗어나고자 했던 작가는 부모 세대가 나누는 말과 버려진 바람이 현대적 삶의 형태로 단단히 뿌리 내린 역사를 우리 앞에 펼쳐 반추한다.

동시대 대도시의 삶에도 자개장이나 금언(金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와 인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곧 과거가 될 것이며 또한 버려질 것이며, 새로운 욕망으로 대체될 차비를 하고 있다. 만일 지금 우리의 삶이 과거가 되었을 때, 공통으로 수집되고 집착하던 풍속의 기호들은 단지 흘러간 사물일 뿐일까? 요컨대 조혜진이 만들어 온 집, 그 내부와 외부의 은유는 지나간 삶들의 좌절된 욕망을 넘어, 앞으로 버려질 지금 우리의 부산물이 지닌 열망과 좌절을 앞서 표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