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보안여관

여관페어를 위한 첫번째 초대 ‘식물에 관한 대화편’

문화생산자들을 위한 임시 거주공간 ‘보안스테이’는 여관의 ‘숙박부’에서 차용해 실제 공간에 머물렀던 작가들의 흔적과 작품을 보안1942의 휴먼 아카이빙에 기록, 보존하고 이후 진행될 ‘여관페어’를 통해 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Boan Stay Guestbook
일정 : 2017년 7월 29일 – 30일
체크 인 : 29일 저녁 6시
체크 아웃 :30일 오후 2시
Room No. : 31, 32, 33, 34, 43T
참여자: 김양우(시각예술가), 김이박(시각예술가), 이소요(시각예술가),
조혜진(시각예술가), 정수진(‘식물성’ 운영), 이아롬(전원 속의 내 집 에디터)

The First Invitation to Boan Stay in Preparation of “Boan Stay Fair”
– [A Conversation about Botany]

6 artist, writers, biologist, and store owner whose love for botany translate to thier work, were invited to stay at Boan Stay for one night

식물을 관련하여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모여 보안스테이에서 하루를 묵고 갑니다.
그들이 나눌 ‘식물에 관한 대화’는 이번주 토요일 7월 29일 밤 8시에서 10시까지.. 통의동 보안여관의 3층 보안스테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관페어를 위한 첫 번째 초대는 ‘식물’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활동 중인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했다. ‘글쓰는 원예가’ 이아롬, 식물을 매개로 작업하는 시각예술가 조혜진, 김이박, 이소요, 김양우 그리고 작업과 사업 사이의 화원 ‘식물성’을 운영하는 정수진은 지난 2017년 7월 29일 통의동 보안여관의 새로운 공간 ‘보안스테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들의 대화는 보안1942의 지하 보안책방에 모여 호무스와 샐러드 등의 간단한 채식을 즐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서촌의 밤 거리를 어슬렁 거리며, 인근에 자생한 식물을 채집한 한 여름 밤의 수상한 산책자들은 보안스테이의 객실을 서촌의 들풀들로 가득 채웠다. 채집된 식물들은 서촌 주변의 경관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에서 진행된 이소요 작가의 크로마토그래피(색소분리) 워크숍을 통해 각 개체가 품고 있던 고유의 색을 드러냈다.

워크숍 이후 자정까지 이어진 이야기는 최근 ‘식물’을 주제로 한 일부 미술계의 소비적인 관점에 대한 자성적 비판부터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마주한 생태학적 문제점과 그 해결을 위한 각자의 실천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인간은 종종 자연을 인류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연약한 존재로 착각 하곤 한다. 그 중 가장 큰 오해를 받는 것이 ‘식물’인 듯 하다. 울창한 대나무숲, 가파른 건물 외벽을 오르는 넝쿨, 도심의 비좁은 틈에서도 싹을 틔우는 이들에게서 인간 스스로는 얻지 못하는 생명력을 공급받는다.(다만, 오늘 우리 모두의 화분에도 그 생명력이 여전히 유효하길…)

지나치는 가로수의 꽃, 나무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쏟아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에서 이들의 식물에 대한 사유의 깊이(a.k.a 식덕)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대화에 언급된 자료와 기사는 채집된 식물, 워크숍의 결과물들과 함께 보안스테이에 남겨졌다.

객원 큐레이터_송고은

참여자 후기

  1. 식물에 대해
  2. 보안스테이 숙박에 대해

1. 먼저 식물에 대한 평소 생각과 그날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저는 대학에서 원예를 전공했습니다. 원예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식물을 기르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단어입니다. 집에서 작은 화분을 기르는 것부터 크게는 농사를 짓는 것까지 모두 원예활동이죠. 저는 살면서 식물을 기르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요. 원예과에 가기 전, 저에게 식물은 돌봐야 할 대상이면서 수집대상이었죠. 온갖 특이한 식물은 다 길러보고 싶었으니까요. 사실 원예는 취미로만 생각했지 전공으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막상 원예를 배워보니 식물에게 계절과 밤낮을 속이고, 심지어는 일부러 불임으로 만들거나(육종 및 하이브리드 씨드) 정체성도 변화(GMO)시키는 등 식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엄연히 식물도 ‘생명’인데 말이죠. 그러면서 제가 식물을 대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김이박 작가는 식물을 ‘사회적 약자’라 표현하는데, 저도 그 표현을 생각했다 하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랫부분의 존재로 태어나 어떤 방식으로 가해하거나 죽여도 최소한의 죄책감조차 들지 않는 존재를 단지 그렇게 표현해도 될까 하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태계의 순환구조를 무시하고 ‘푸르테리안(식물의 생명도 존중하기 위해 낙과만 먹는 사람)’을 선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제가 몸담고 있는 리빙분야에서는 식물을 오브제로 대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인 플렌테리어가 그 예이죠. 누구나 야생의 열대를 느끼고 싶어 열대식물을 집안에 들이지만 사실 식물의 꽃이나 잎의 유려함만 이야기 하지, 그 식물이 어떤 환경에서 왔고, 얼마나 자라는지, 어떤 조건에서 잘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사람이 많아요. 그 일례가 요즘 우리나라 블로거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아보카도 키우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주제로 글도 썼는데(http://petaldrops.com/archives/914) 글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아보카도가 이렇게 거대한 식물인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사실 식물에 관한 대화에서는 사람들이 식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지만 답 안나오는 이야기라 “자기가 키우는 거라도 잘 키우자”라는 결론을 냈는데요. 이런 주제로 대화할 기회가 있어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이, 식물을 기르는 행위 또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환경을 많이 파괴해요. 물론 개인이 농약 비료 주는게 환경에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건강한 농산물을 일부 얻고, 환경을 위해 식물을 기르기도 하는데요. 바질이나 풍선초 같은 건 벌들이 많이 날아오니 동네 벌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기르기도 하고, 아무리 병충해가 심해도 농약은 절대 뿌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기르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또한 텃밭에 최대한 재활용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이렇게 각자의 소신과 원칙을 갖고 식물을 대하며 키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도 동물처럼 책임지지 못한다면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요.

2. 그리고 보안스테이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뜻깊은 기억이었으니 모두 좋았어요. 사실 이야기 나누고 미션수행하느라 보안스테이의 장점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드는데요. 우리가 열일(?)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채광과 창밖너머 보이는 풍경을 다음에 이용하며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어요! 3층 방 한칸을 예약해 조용히 혼자 책을 읽으며 쉬면서 보내면서 새로운 여행자를 만나도 좋을 것 같아요.

참여자 이아롬

식물을 다루는 직업인이 아닌, 식물을 소재로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술기관에서 생물 재료를 취급하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결국 작가로써 식물을 통해 맏닥뜨리는 편견과 오해의 지점들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식물과 인간 문화가 교차하는 또 다른 현장에서 함께 모여 대화를 이어갈 수 있기를…

참여자 이소요

나는 2015년 <한시적 열대>라는 전시에서 식물을 작업의 소재로 다룬 적이 있다. 이 전시는 버려진 열대식물을 수거해 각목 형태로 깎은 조각작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대식물을 키우게 된 배경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전시였다. 더불어 열대 이미지를 소비하는 몇 가지 문화적 현상을 다루며 이의 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그 이전의 나와 식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잡초에 아름다움을 느껴 이런저런 풀들을 화분에 옮겨 심어 기른다든가, 방에 식물을 두고 보기를 즐긴다든가 하는 별다를 것 없는 취미로서 식물을 대해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계 안에서 열었던 한 번의 전시로 식물을 다루는 작가로 호명되고, 야자나무가 전시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전시제안, 혹은 전시를 위해 식물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구가 지금까지 소소히 이어져 왔다. 특히 식물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들어간 작업은 다른 작업에 비해 빠르게 소비가 되는 상황을 보면서 작업의 내용으로 다루었던 사회 일반의 열대식물 소비 방식과 미술계의 소비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흥미롭게 관찰하게 되었다. 하나의 현상으로 흥미롭게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하는 전시라 이런 HOT한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은 나를 얼마나 당황하게 했던가 작업이라는 형식을 빌어 실내를 꾸미고 싶어 하는 위 같은 전시 제안은 겨울철 실내가 삭막하니 식물을 들여놓아 푸릇하고 생기있게 만들자고 제안하는 90년대 기사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29일 저녁 ‘식물에 관한 대화’ 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은 식물을 자신의 작업으로, 또 생활로다루는 맥락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식물이라는 것으로 묶기엔 너무 다른 층위를 갖고 있고, 또 미술에서 다뤄지는 위의 내용에 충분히 공감했고, 그에 대해 이미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 또다시 이렇게 미술 내 행사에서 식물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응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밤을 보내며 자신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해 보자는 제안을 했던 이유는 모인 구성원 모두 지나온 궤적이 모두 달랐고, 앞으로도 각기 다른 속도와 경로를 통해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식물을 매개로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식물로 우리들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건 일시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식물이 미술과 연결되면서 생기는 답답한 점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식물에서 파생되는서로의 관심사, 그리고 기쁨의 대상이기도 한 식물 자체에 대해 편안히 이야기 하고 싶었다. 실제로 29일 밤은 서로가 어떤 일들을 경험해 왔는지 흩어졌던 이야기를 모을 수 있는 자리였고, 미술과 분리되어 식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여자 조혜진

1. 식물에 대해
-사람들은 식물을 계속해서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곤 합니다.
식물을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쯤으로 생각하는 행태가 일반적인 주거 환경 인테리어가 아닌 미술계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쉽습니다.
만약 식물을 키우려 한다면 반려동물을 고르는 것 만큼은 아니라도 자신이 키울 식물이 자신의 주거 환경과 삶의 패턴에서 알맞는지,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선 어떤 관리법이 필요한 지 정도의 공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려식물”이나 “펫렌트”니 명명하며 식물을 판매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장이 만들어낸 그린 인테리어의 상술에 속지말고, 식물 또한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는 점과 키우는 사람과 충분히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유기체임을 다들 기억 하였으면 합니다.

2. 보안스테이에서의 숙박
-보안스테이에서의 하루는 본인이 식물을 다루는 작가 임에도 쉽게 지나쳤던 도심 식물의 풍경들이 다시 한번 다가오는 하루였습니다. 시설의 쾌적함과 작가들의 작품이 어울어진 인테리어 또한 보안스테이의 매력이었습니다.

참여자 김이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