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1942 X 버시스

두럭DoLUCK08
청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선정작가 결과보고전시

IM Hee Ju solo exhibition
임희주 개인전
《쌍차쌍조双遮双照: 무지개의 꿈》

  • 일시: 2022. 08. 02 – 08. 21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3 (신관 B2)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Date : 2. Aug. 2022 – 21. Aug. 2022
  • Venue : ARTSPACE BOAN 3 (B2)
  • Time : 12PM – 6PM
  • Closing Days : Every Week Monday
  • Admission Free

  • 작가: 임희주
  • 작품 기동 및 통신 프로그래밍 기술 지원: 김경태(버시스)
  • 영상 프로그래밍 기술 지원: 강정우(버시스)

  • 디렉터: 최성우
  • 진행: 박승연, 최정욱
  • 글: 김경화, 박승연 
  • 디자인: 최정욱
  • 모션그래픽 및 편집: 임희윤
  • 설치 도움: 강지형, 박재형
  • 촬영: 박재형
  • 전시기록: 유용진
  • 협업 및 후원: 버시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주최 및 주관: 보안1942

  • Arist: IM Hee ju
  • Exhibit Objects Mechanical & Comm Programming Support: Kyungtae Kim(Verses)
  • Video Programming Support: Jungwoo Kang (Verses)

  • Director: Sungwoo Choi
  • Curated by Seungyeon Park, Jeonguk Choi
  • Text: Kyoung Hwa Kim, Seungyeon Park
  • Graphic Design: Jeonguk Choi
  • Motion Graphic & Edit: Heeyun Im
  • Installation: Jihyung Kang, Jaehyung Park
  • Cinematographer: Jaehyung Park
  • Photographer: You Young Jin
  • Cooperation & Supported by Verses, ARTS COUNCIL KOREA
  • Organized by BOAN1942

두럭DoLUCK은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가 2013년부터 진행한 청년 예술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며 2021년부터는 선정된 작가에게 전시 기회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2022년에는 음악을 만드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을 넘나들며 “사용자 주도 음악 경험Listener-led Music Experience”을 제공하는 인터랙티브 기업 버시스와 함께 두럭DoLUCK08 프로그램을 협업하며 선정된 작가에게 테크니컬 어드바이스를 추가로 지원하였다.

소리로 빚어내는 깨달음의 순간
가림과 동시에 비추는 것, ‘쌍차쌍조’

소리의 다양한 결은 예술가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새로운 의미로 피어오른다. 때로는 소리가 갖는 고유의 속성을 파헤치면서, 때로는 소리에 새겨진 관념과 관행을 해체하면서 예술가는 소리와 맞닿은 세계를 고유의 상상력으로 비추어 낸다.

임희주 작가는 청각을 불쾌하게 하는 소리, 시끄러운 소리,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 혼란을 야기하는 소리, 그로인해 배제되고 소외되어 온 소리인 ‘소음’에 천착한다. 누구나 불편해 하는 소음은 작가에게 창작의 원동력이자 내면을 비추고 깨달음을 얻어내는 힘이다. 소리의 경계에서, 소음이 갖는 소외적인 측면은 그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발언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작가가 통찰한 소음은 비체(abject)적 존재다. 끊임없이 들리지만 간과되는 존재, 어디나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존재, 누구나 불편해 하는 존재, 경계를 규정할 수 없는, 혹은 경계를 흐리는 존재, 그래서 경계 바깥으로 내던져진, 타자화의 존재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오히려 소음은 동일화를 거부하고 질서와 체계, 또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권력을 전복한다.

소음의 청각 경험은 강력하다. 보고 싶지 않는 것은 눈꺼풀로 가릴 수 있건만 들려오는 소리는 거부하거나 차단할 수 없다. 귀를 막아도 피부를 뚫고 온몸을 울리며 파고든다. 소리는 모든 방향에서 듣는 이의 몸에 와 닿으며 내면으로 침투한다. 이러한 청각의 속성은 소리의 강제적 수신을 전제한다. 같은 맥락에서 『음악 혐오』의 저자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듣는다는 것은 순종적 행위”라고 말한다. “귀 기울임은 복종”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듣는다. 귀에는 차단장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한다.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청각의 특성은 때로는 고통을 수반한다. 한 공간 안에서 지속되는 소리, 자율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크고 거친 소리, 통제와 질서를 벗어난 파괴적인 소리, 이러한 소리는 고통을 일으키는 소음으로 간주된다. 소음은 온 몸으로 스며들어 듣는 이를 꼼짝 못하게 하며 마침내 그것에 굴복당해 스스로를 희생하도록 만든다.

임희주 작가는 소음이라는 청각 요소를 이용해 ‘쌍차쌍조’의 깨달음을 풀어낸다. 소리와 소음을 이용해 두 귀를 ‘쌍차’하는 청각 환경을 조성하고 존재자, 즉 관람객은 소음을 전유하며 소리의 통제 불가능성을 몸소 체험하도록 설계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오브제들로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관람객의 청각을 사로잡고 온몸을 에워싼다. 그 소음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관람객은 그 안에 매몰된다. 지속적인 소리가, 그리고 소음이 외부 세계로부터의 차단과 단절을 유도하는 것이다. 소리에 파묻혀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되는 경험은 동시에 온전히 내면을 비추는, ‘쌍조’의 단계로 나아간다. 서로를 막아 차단하고 서로를 비추어 비로소 드러나게 한다는 ‘쌍차쌍조’의 역설적 상태와 같이 그 소리 경험은 궁극적으로 존재의 참다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중도의 과정일 수 있다. 외적 현실을 가리고 내면의 진정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작가에 의해 섬세하게 설계된 가상의 예술 공간에서 소리와 소음의 청취를 통해 은유적으로 구현된다.

또한 임희주 작가는 소음이 빚어내는 제의적 측면에 주목한다.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희생제의’ 개념을 소음과 청취의 본질적 특성에 연결지어 해석한다. 소음은 내면에 도사리는 폭력성과 과잉에너지를 소비하도록 만드는 소리 매체다. 작가는 전시장의 영상과 소리 오브제의 총체적 디자인을 통해 자극적인 소음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거나, 극단의 침묵과 과잉의 소음을 대치시켜 이를 고스란히 두 귀로,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종의 청각적 자학을 재현한다. 가상의 청각 재현을 경험함으로써 관람객은 스스로 희생되는 제의의 주체가 되어 본다. 작가는 제의의 샤먼처럼, 주술적 행위를 대신하며 그 과정을 돕는다. 작가의 전시 공간에서 이 과정은 그 자체가 고행이고 수행인 것이다. 특정 신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그리고 자아의 성찰을 위한 깨달음의 과정인 셈이다. 소리로 빚어내는 그 깨달음의 순간은 작가의 깊은 고민과 사유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글 | 김경화 음악학자

두럭DoLUCK08 보안1942X버시스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임희주 개인전 《쌍차쌍조照: 무지개의 꿈》 

 
 
두럭DoLUCK08의 최종 선정작가인 임희주 작가는 소리, 소음과 비체abject 존재자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비체가 소리라면?’이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한다. 최근에는 소리와 움직임으로 구성된 모든 것을 “기계”라 지칭하고 이를 만드는 연구와 실천을 통해 소리의 몸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임희주 개인전 《쌍차쌍조双遮双照: 무지개의 꿈》의 쌍차双遮는 ‘양변을 가린다, 떠난다’는 뜻이 있으며 “쌍조双照”는 양변을 비춘다는 뜻으로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쌍차는 스스로 자아, 나만의 고유성 거두기를 시도하는 것이며, 이 때 나와 세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물질과 비물질의 차이가 없는 쌍조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임희주는 소리로 청각 환경을 가려 쌍차의 배경을 만들고 이를 통해 내면의 과잉된 에너지를 소진해 중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깨달음을 추구한다. 즉 물리적인 폭력과 더불어 극단적인 정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폭력의 재생산을 막으려는 작가의 실천과 수행을 이번 《쌍차쌍조双遮双照》전시에 담았다. 

임희주는 공간과 관람객의 몸을 불규칙적이지만 지속적인 공기의 흐름인 소리로 채우고, 역설적으로 그 채움을 통해 비워지는 경험을 구성한다. 각 오브제들이 개별적으로 생성하는 소리들이 모여 노이즈가 되고 이 과잉된 소리들이 공간을 점유하여 듣는 자에 의해 소리와 청자간의 새로운 관계를 맺어준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만일 우리가 과잉 에너지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그 힘이 마치 길들일 수 없는 야수처럼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라며 “비생산적 소비dépense improductiv”개념을 제시하며 과잉에너지가 전쟁과 테러 등의 비극적인 방식으로 해소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비생산적 소비로 과잉 에너지를 사전에 파괴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비생산적 소비는 생산과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의미 있거나 합리적인 소비활동이 아니라 ‘잉여의 소비’, ‘소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소비’를 뜻한다. ‘잉여의 소모’ 그 자체를 위한 순수하고 비생산적 소비는 ‘희생sacrifice‘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형식과 시스템에서 벗어난 소리를 듣게된 관람객과 노이즈 사이의 관계는 희생제의ritual sacrifice의 ‘가상적 구현’이다. 노이즈와 음악의 관계를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노이즈는 폭력이며, 살인의 시뮬라크르이다. … 음악은 노이즈의 채널라이제이션channelization이며 그러므로 희생의 시뮬라크르이다.”라고 하며 폭력과 희생의 관계로 돌렸다. 즉 희생제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과잉 에너지, 폭력을 제의라는 장치 안에서 소비, 해소하는 일종의 ‘비생산적 소비’인 것이다.[1]
 
전시장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가 노이즈로 인지되었다면 이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으로 인해 부정적 관계를 맺게 되고 현재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질서를 방해하고 위협하는 요소로서 작동되는 것이다. 폭력을 발생시키는 욕망을 해소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희생’적 노이즈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연의 무질서 혹은 불이와 중도의 상태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임희주 작가가 형성해놓은 가상의 공간,《쌍차쌍조双遮双照》전시 속에서 노이즈를 인식하고 무질서를 경험함으로써 욕망의 해소를 시도해고자 한다.

글 | 박승연 큐레이터

[1]  김경화, <노이즈의 역설: 유토피아적 실현인가? 디스토피아적 상상인가?>, 김경화, 『음악논단 38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