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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인터뷰
2011.06.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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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영추문 앞 통의동, 청와대로 오르는 고요한 길가에 여관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름하여 ‘보안保安여관’. 언뜻 보기에도 세월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곳은 그 이름과 달리 문화복합공간이다. 80년이 훌쩍 넘은 여관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람, 문화그룹 메타로그 최성우 대표이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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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극도 하고,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죠.” 최성우 대표는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며 ‘그림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움직임’에 대한 그의 도전은 연극무대로, 퍼포먼스로 커져 나갔다. 시인 이문재, 평론가 하재봉 등과 경희대 연극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내 그의 갈망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그림’에 이르렀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위해 준비한 프랑스 유학. 하지만 ‘일이 되려고 이렇게 된 건지’ 원래 목표와는 다르게 미술사를 전공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문화경영’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80년대 당시 어디에서도 문화경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없었지요. 프랑스에서도 거의 처음으로 도입된 개념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프랑스 문화부에서 유학생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경영 커리큘럼을 창설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이거구나’ 싶어 그 과정의 첫 번째 학생이 됐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뜻밖의 코너를 만난다. 예상치 못했던 좌회전 혹은 우회전을 하면서 우리는 당혹감에 빠지지만, 지나고 보면 분명해진다. 그것들이 모두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사실이. 연극을 하면서 ‘판’ 벌이고 기획하는 재능을 깨달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전공이 바뀌면서 문화경영을 공부한 최성우 대표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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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할 게 없었습니다. ‘문화’와 ‘경영’이 무슨 관계냐고 묻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요. 한동안 강의를 나가면서 미술관이나 연구소를 알아 봤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집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누군가 가업을 이어야 했는데, 그게 저였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넘는 동안 최성우 대표는 ‘최 사장’으로 살았다. “예술하고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했어요.” 공장을 돌리고 거래처 사람들을 만났다. 눈 한 번 떴다 감으면 일 년이 후딱 지나 있었다. 가끔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은 놓을 수가 없었다. “안되겠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당한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죠. 원래부터 강남보단 강북을 좋아했어요. 삼청동, 부암동, 효자동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녔습니다.”

최성우 대표가 꿈꾼 곳은 ‘복합문화예술공간’. 그림, 조각, 사진,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최 대표는 다시 한 번 좋은 ‘판’을 벌이고 싶었다. 자리를 찾는 그의 앞에 어느 날 보안여관이 나타났다. 2006년이었다. “영업을 하지 않는 낡은 여관이었어요. 자리가 좋아서 여관 건물을 허물고 갤러리를 올리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 대표는 몰랐다. 그가 보안여관을 택한 것이 아니라, 보안여관이 그를 택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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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청와대 앞길을 지켜 온 보안여관은 ‘청와대 기숙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60~70년대 통의동에 있었던 문화재청과 청와대의 공무원들, 문인과 예술가들이 이곳의 단골이었다. “보안여관을 수리하기 위해 천장을 뜯었을 때, 80년 묵은 먼지가 풀썩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때 새삼 깨닫게 됐죠. 보안여관에 깃든 시간과 역사가 가진 의미를요. 보안여관은 문화예술이 쉬어 가던 곳이었어요. 젊은 날의 시인 서정주 선생과 화가 이중섭 선생이 서로 예술적인 교류를 나눈 곳이고 시인들과 작가들이 장기투숙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것은 팔십 년 세월을 이어 온 보안여관의 장소성에 다시 숨결을 불어 넣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성우 대표는 보안여관의 외양을 유지하는 동시에 여관 내부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연, 퍼포먼스를 개최하고 있다. 최 대표는 장소가 오래된 만큼 방범이나 채광 등에 문제가 많아, 이를 지속적으로 보수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보안여관의 공간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창의적 복원’을 통해 계속해서 이곳의 정체성을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힌다.

최성우 대표에게 있어 보안여관은 ‘문화숙박업소’다. 그는 기꺼이 ‘여관 주인장’을 자처한다. 그림을 움직이고 싶었던 남자.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예술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던 남자, 최성우 대표. 그 남자의 보안여관은 세상 모든 예술이 각자 제 빛깔을 내며 퍼득퍼득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었다.

글_ 박세라 사진_정민영
[출처]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작성자 arte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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