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8 – November, 10, 2015 (12:00pm~06:00pm)
Park chan kook, Yeo da ham, JongbuhmXJongeon, Hong soon
Sponsor Arts Council Korea

2015.10.28 – 2015. 11.10 (12:00pm~06:00pm)
박찬국, 여다함, 종범X종언, 홍순명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City where had devolved the position of production to consumption and distribution is wandering. The brutality of city and the world ignore the ecology of life and occupy spaces and places though dividing map. However, city itself is consisted of numerous inerasable layers of discourses and is a living organism which of always changing at cross point between spaces. City is operated co-constructively by tense relations between social space and individual places.

Although the city as a consumption and distribution area in the industry society pushes artists to time and place of surplus, artists have been living their own ways in city. Through reorganizing relations between individual and overall, macroscopic and microscopic and excavating small and abstractive things and maximizing them, they emphasize that our dichotomous thinking about their own universality and try to show them through their works.

is the 1st project to examine the current state of horizontal and individual narratives within the powerful and vertical stream of the city, Seoul.

생산의 자리를 소비와 유통에 내어준 도시는 유랑(流浪) 한다. 도시와 세계의 야만성은 도시적 삶의 생태계를 무시하고 지도를 분할하며 장소와 공간을 점령 한다. 오래된 자본은 도시를 황폐화 시키고 도시의 외곽을 투기하다, 새로운 자본으로 도심에 돌아왔다. 그렇지만, 도시는 결코 쉽게 지울수없는 수많은 담론에 의해서 구성되고, 수많은 장소와 공간의 교차점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도시는 닫혀서 정체된 곳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장소들 사이의 긴장된 관계들로 구성되고 재구성 된다. 사회적 공간과 개별의 사적인 장소는 반대항이 아니라 상호구성적으로 작동한다.

산업사회의 도시속에서 생산자의, 소비와 유통의 도시는 여전히 예술가(작가)들은 불필요한 잉여의 장소와 시간 속으로 몰아내지만, 작가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도시를 살아낸다. 이들은 개별과 전체, 미시와 거시를 관계적으로 재구성 한다. 생활사, 미시사, 지방사, 지역사, 개인사 같은 도시의 작고 추상적인 것들을 발굴하고 극대화 시킨다. 이런 것들이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라는 것을 이들은 작업으로 역설한다.

《MADE IN SEOUL 메이드 인 서울》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막강한 수직적 변화의 흐름 안에서도 수평적이고 사적 네러티브와 그 현재적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첫번째 프로젝트이다. 참여작가 홍순명, 박찬국, 종범×종언(김종범, 최종언), 여다함은 다채로운 자신들의 삶의 생산 플랫폼으로써 ‘서울’에 대한 신작들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Artist talk

일시 : 2015. 10. 31 (토)
장소 : 통의동 보안여관
참여자 : 구나연, 최성우 / 박찬국, 종언X종범, 여다함, 홍순명

최성우 : 토크에 앞서 참여자 분들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홍순명 작가님은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에서 나온 오브제로 <사소한 기념비>를 제작하셨죠. 박찬국 작가님은 동대문에서 DDP에 대항하는 DRP, 동대문 옥상낙원을 만드셨어요. 거기 올라가면 동대문과 창신동 일대가 다 내려다 보여요. 동대문 짝퉁 시장을 재편성 해보고자 하셨죠. 여다함 작가님은 <서울 벌목꾼>이라는 작업을하셨어요. 서울의 포스터나 프린트물이 대규모로 붙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나무가 몇 그루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하죠. 일종의 간접벌목인 셈입니다. 종범X종언은 서울의 무명씨들이 만든 생활속 오브제를 오마주 하여 그것을 미니어처화 했습니다. 그리고 이 추위에도 아티스트 토크를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는 구나연 선생님입니다.

구나연 : 전시의 제목이 <메이드 인 서울>인데요. ‘서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서울과 자신의 삶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종범 : 저는 30년 정도를 계속 서울에서 살다가 2년 전 결혼하면서 안양으로 이사를 갔어요. 요즘은 서울에 대해 느끼지 못했던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2호선을 타고 한강 위를 지나며 서울이 펼쳐지는 풍경… 전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경기도에 살며 서울 풍경을 마주쳤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가 매혹적임을 거부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가장 최근에 느낀 서울 관련한 인상입니다.

구나연 : 인상과 더불어 요즘 I.SEOUL.U로 이야기가 많은데, 나와 서울의 관계를 다시 설명한다면? 서울에서 보는 것 경험하는 것 등에 대해서요.

김종범 : 저는 서울과 저 사이에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디자이너인데요. 세부를 디자인하거나 설계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감이나 기준이 있어요.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길거리에 있는 것을 자세히 보고 훈련쌓기를 해요, 그걸 ‘노상 관찰’이라 표현을 하죠. 서울에서 마주치는 전봇대, 표지판 이라든지 이름 없지만 세심하게 고안된 장치들을 보며 시각적 훈련을하는 편인데요. 그 하나하나가 서울을 이루는 이미지고 제가 매혹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파편들이기도 합니다.

최종언 : 저는 달동네를 좋아해요. 낮밤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데, 어렸을 때 부터 잘 놀러다니던 집 근처 녹천마을이 최근 재개발로 사라졌어요. 주변에 있는 것들은 늘 이어져갈 것 같지만 달동네는 금방 사라지죠. 저는 사라질 동네를 다니며 사진 찍고 구경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여다함 : 사실 서울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떠날 계기가 없어 죽지 못해 사는 곳인 것 같아요. 여기 머물기로 결정 한 게 아닌 이상 다른 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살 데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성인이 되어 가며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는 아무래도 소비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업하며 주로 생각한 건 소비자 혹은 노동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이에요. 그 동안 한국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외국에 나가볼까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해봤는데 취업에 실패했어요. 힘들더라고요.

박찬국 : 서울은 무언가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에요. 만들어진다 함은 어디가나 물건이 넘쳐나는 곳이라는 거죠. 우연히 동대문 시장에 있다보니, 이곳이 만드는 구조와 파는 구조의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대문 주변은 청계천이 심난할 때 전쟁끝나고 아무렇게나 하꼬방 오두막을 짓고, 판자촌에 사람들이 기거하며 살던 장소였죠. 물건 파는 장소와 멋져 보이게 하는 장소와 거주하는 장소를 구분하려고 60년대에 주상복합을 지어요. 그게 동대문 신발도매 상가에요. 일종의 병풍인데, DRP가 있는 옥상에 가보면 아 그게 확실하구나 싶어요.
동대문 신발상가 쪽은 창신동과 DDP가 있어서 물건이 많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곳이에요. 하지만 막상 물건을 만드는 구조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모두들 명품을 좋아하는데, 왜 동대문에서는 명품을 만들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논리의 비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전하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사용할 수는 있는 물건을 만들되, 최고가 되는 리스크는 감내하고 싶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요? 일본이 2,30년 전에는 짝퉁에서 시작했지만 기초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었는데 우리는 왜 그 이상의 것이 안 나올까 궁금해요. 우리나라 경제력 문화력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봤을 때 그런 점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있고, 동대문에서 ‘생활자로서의 작가’로는 뭘할 수 있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홍순명 : 전시 제목이 <메이드 인 서울>이잖아요. 저는 오 십 년대 끄트머리 서울에서 태어났거든요. 우리 시절에는 사대문 밖에서 태어난 사람은 서울 사람으로 안쳤어요. 나는 효자동에서 태어났어요. 이 전시에 내가 가장 적절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요.

구나연 : 이번 작업<사소한 기념비>를 이 전시에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홍순명 : 제목이 정해진 전시를 할 때 그 전시에 대해 넌 무슨 공부를 했는가, 라는 질문이 불편해요. 저는 제가 해오던 작업을 가지고 이 주제를 차용해서 한 것일 뿐이에요. 이전부터 ‘기억’을 주제로 계속 작업을 해왔고, 그 기억은 세월호로부터 시작됐어요. 기억해야 할만한 것들이 지워지는 상황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세대의 책임이라고 느껴졌어요. 작품에 ‘기념비’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붙였죠. 뭔가 해야만 한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충무로에 아스토리아라는 호텔이 있어요. 1959년에 지어진 호텔이죠. 대표님 말로는 최초의 관광호텔인데, 공식적인 등록은 세번째로 했다고 해요. 올해 다시 리노베이션할 계획인데 아직도 건물을 못 부수고 있어요. 어쨌건 문을 닫은지는 몇 개월이 지났죠. 이 건물이 부서질 때 재미있는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건을 많이 가져왔어요. 부술 때도 가려 했는데 아직 건물을 부수지는 않았죠. <메이드 인 서울> 전시 소식을 듣고, 여관과 호텔이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끝난 호텔의 기억을 여관에 옮기는 게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2층에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레스토랑 의자로 조각을 만들고, 조각의 반 정도에는 의자가 놓여져있던 장소에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렸어요. 작은 조각들은 감고, 큰 조각에는 그것이 있던 장소의 현장성이나 상황 들을 그려넣었어요. 저는 처음에 호텔이 크니 가면 주워올 게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2층부터 꼭대기까지 방의 구조와 물건들이 다 똑같더라고요. 재개발 하는 곳을 가면 다양한 물건이 많아요. 하지만 호텔은 크고 뻔하죠. 텔레비전, 선풍기, 에어컨이 반복되어요. 뜻밖에 주어올 게 없더라고요. 그렇지만 지하실에서 주어온 것, 레스토랑 집기 등 물건들 몇 개를 얼기설기 묶어서 나름대로 호텔을 기리는 물건을 만들었어요.

구나연 : 홍순명 작가님이 ‘기억’이라 하셨는데요. 사라지는 것이나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작가들이 유독 매력이나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김종범 : 저는 디자이너라 기술에 관심이 많아요. 도자기같은 경우, 특정 시대에 정점을 친 기술이지만 지금은 재현이 잘 안되죠. 디자인도 생명처럼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정점을 치고, 쇠퇴하며, 사라지죠. 그것이 자본주의 논리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자인이나 기술에도 사라지는 것을 붙잡을 수 없는 상태가 오는 것 같아요. 이번에 전봇대 모형을 만들었는데, 이전에 나온 전봇대들은 표면을 처리해서 은색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회색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새로나온 전봇대나 신호등은 처음부터 쥐색으로 도장이 되어서 나와요. 기기가 드러나지 않게 세부가 설계되어 나오죠. 새로운 전봇대로 거리가 뒤덮히면 사람들은 내가 만드는 물건을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것들이 생명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기억하는 상태에서 강하게 부여잡고 싶은 의미가 생겨요.

최종언 : 저는 중계동 백사마을에 갔어요. 큰 달동네죠. 사진을 찍고있으니 동네분이 요즘 사진 찍는 사람들 많이 온다며 무슨 일 있냐고 묻더라고요. 마을이 사라지면 아파트가 들어서잖아요? 아파트는 다 똑같아요. 저는 그것보다 달동네처럼 꼬불꼬불 자연스러운 것이 좋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못 보는 풍경이라 생각하니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어요.

여다함 : 저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큰 관심은 그다지 없어요.

구나연 : 벌목은 나무가 있었는데 없어지는 것이잖아요? 그것과 작업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여다함 : 동력이죠. 길거리에 찌라시가 붙었다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사이클이 있잖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이죠. 저는 그것을 보면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대껴 사는 구나’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안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발언들이 재미있었고요. 이전에 한 먼지 작업도 오히려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이 더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여기를 떠나보지 않고 계속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다함 서울벌목꾼 이미지 삽입)

구나연 : 박찬국 작가님은 왜 사격장에서 옷에 총을 쏘신 건지요?

박찬국 : 원래 저는 전시를 좀체 안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보다는 제가 있는 장소나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사건을 만들 수 있나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전시를 통해서 의미나 맥락이 생산되는 방식이 불편해요. 살고 있는 것 자체로 의미나 맥락을 드러내는 방법을 고민하며 기획을 해요.
실제로 옷에 총을 쏴보니 그것에 연극성이나 육체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기획이 그런 것 같아요. 원래는 유통구조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동대문에서 평양 냉면 많이 드셔봤죠? 동대문의 원래 상인들은 6.25 이후 피난민들이에요. 그 분들이 건물에 평화상가, 통일상가 이런 이름을 붙여요. 통일상가 옥상까지 올라가려면 건물이 4, 5 층밖에 안되는데도 2시간이나 걸려요. 미로같죠. 일종의 난민들이 만든 게 동대문 시장이에요. 이 상인들이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어디에 어떻게 썼냐 하면 강남이에요. 우리나라 강남신화 대부분은 동대문 분들이 만들었죠. 생산 유통업 대부분은 연구 개발도 해야 하잖아요. 동대문에서 돈을 벌었으면 연구개발을 해서 다시 더 나은 옷을 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 자본이 다 강남빌딩으로 갔죠. 그래서 이곳의 생산구조는 계속 공전해요.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로 총을 쏜 거죠.

구나연 : 처음에 총 맞은 옷들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한상민(동대문 봉제사) : 일단 박찬국 작가께서 옷들을 꾸며보자 하셔서요. 총 맞은 자리를 메꾸다보니 이것도 작품성이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게 아니고 기술자로서 참여했어요. 이런 걸 처음 경험 해봤죠. 처음엔 구멍 뚫린 옷에 모양도 내 봤어요. 어쨌든 재봉을 하면서 한 가지로 모양이 내지지는 않아요. 옷을 소지하고 싶은 분들은 돈 좀 내고 가져가세요. 제가 했다 하더라도 다시 흉내를 낼 수 없는 작품이에요. 입어봤는데 괜찮더라니까요?

구나연 : 어느 기사에서 ‘염하듯이 사물들을 싸는 작업을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봤는데요. 시신을 싸는 재료는 랩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랩을 재료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홍순명 : 없던 것을 새로만드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는 다만 제가 원래 해오던 작업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제가 물건들을 어느 현장에서 주워와요. 다음에는 형태를 만들려고 하겠죠? 얼기설기 물건을 붙여 쌓아올린 다음에는 표피를 만들어줘야 하니, 고민을 하다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랩을 썼어요.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건, 랩을 당기면 생기는 긴장감이에요. 염은 당연히 랩으로 안하죠. 내가 염을 하는 것 같이 이 작업을 하겠다가 아니라, 작업을 하다보니 ‘아 내가 염을하고있는 것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거죠.

홍순명 : 이런 작품을 처음한 계기는 세월호에요. 그 전에는 내가 만든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도 안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랩은 약한 비닐이잖아요. 그런데 계속 감으면 힘이 대단해져요. 그래서 전구처럼 얇은 유리를 감으면 다 깨져버려요. 금이 간 화분도 깨지죠. 그만큼 잡아당기는 힘이 세요. 세월호 사건 이후 저는 팽목항에 무작정 가서 앉아있었어요. 팽목항이 부산보다 더 오래걸려요. 진도에 들어가서 팽목항까지 한 시간이 걸려요. 그곳엔 경찰도 많고 슬픈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외엔 모든 게 이상하고 어색한 상황이었죠.
팽목항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망 해수욕장이 있어요. 쓰레기가 많아 폐쇄해야하는 해수욕장이에요. 그런데 그곳의 물건들이 뭔가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거에요. 사실 여러분도 저도 세월호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잖아요? 심지어 이젠 말도 못하게하고요. 저는 사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너희들은 알고있지, 그렇다면 얘들을 내가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주워왔어요. 얘들에게는 뭔가 자그만한 이야기라도 있겠지, 그렇다면 뭔가 할 수 있겠지 싶어 엮은 거에요. 그런데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게 랩이니까 랩으로 감기 시작한거에요. 랩은 투명하잖아요? 신기하게도 감고 감다보니 이것이 은색을 띠기 시작했어요.
제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면 사람들이 ‘이거 재료가 뭐에요?’ 하고 물어봐요. 혹시 여러분 중 스쿠버다이빙 해보신 분 있으세요? 나보다 깊이 들어간 사람의 공기덩어리가 올라오면 그게 마치 수은덩어리 같아요. 메탈 같죠. 접목 이상의 접신같은 게 느껴지면서 이게 아이들 숨덩어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나하나의 물건들이 한 명 한 명에게 바치는 기념비라는 생각으로 304개의 기념비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은 약 200개 정도를 만들었어요. 내가 ‘무엇을 할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도 중요하고, 그것이 재료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어떤 주제가 생기면 내가 제일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와 접목을 시켜보는 것이죠. 이 작품은 무슨 주제로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은 매 번 불편해요. 그냥 내가 하던대로 하는 것 뿐이에요.
랩은 큰 게 만 원도 안 해요. 작품을 하려면 다양한 폭의 랩이 필요하니 이것을 잘라야 해요. 그런데 랩 공장에 가서 잘라 달라고 했더니 기본 만 개부터 잘라준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청계천 테이프 자르는 집에 가서 랩 한통의 몇 배 값을 주고 잘랐어요. 나중에 그 집에 다시 가서 작품을 보여주니 신기해 하면서 그때부터 값을 싸게 해주더라고요.

구나연 : 작업을 보면, 물건을 랩핑한 작업과, 랩핑된 물건을 그리는 페인팅 작업이 있습니다. 그 중 페인팅은 어떤 작품인가요?

홍순명 : 현장에서 주워온 물건과 그 사연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야기들이 머물고 있는 오브제가 감싸진 곳에 현장의 부분을 그려넣었어요. 그 이후 작품을 할 때는 현장을 직접 찾아갔어요. 팽목항 다음 제가 찾아간 곳은 밀양입니다. 주소가 없어서 찾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경찰들이 많더라고요. 어디가 사건이 있는 곳인지 금방 알겠더라고요. 물건들을 가져오고, 사진들을 찍고, 물건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어요. 작은 물건은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는 그냥 랩핑한 상태에서 더 이상 손을 대지 않는 게 예뻐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대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에도 많은 작가들이 계시는 데요. 작품을 만들다 보면 우선 구상을 하죠. 그런데 작품을 만들다가 중간에 아, 이게 딱 좋은데 싶은 순간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 물건에 랩을 감았더니 이 게 물감으로 가려지는 게 아까운 거에요. 그렇지만 처음부터 위에 캔버스를 입히고 그림을 그리려고 구상했던 터라 일단 끝까지 완성을 했어요. 그랬더니 랩만 감았던 아까의 상태가 너무 아까운 거에요. 작품을 꼭 이론대로 해야하나요? 모티브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다음부터는 작품이 스스로 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예쁘면, 물론 예쁘다는 표현이 포괄적이지만 곡해하진 마시고요. 아무튼 그럴듯 할 때 멈춘는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구나연 : 종범X종언에게 질문하고 싶은데요. 서울에 엄청 많은 사물이 있는데 이 사물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 가져오셨어요. 그 중 아 이거구나 싶은 조형적, 개인적인 선별 기준이 있나요?

김종범 : 기준은 없고요. 저는 프라모델을 좋아 하는데, 서울에서 보는 것들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가구디자인도 하고 이것 저것을 만드는데요. 전봇대 가로등 같은 것들이 서울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무심하게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물건들은 디자이너의 이름도 안 붙어있고 대부분 엔지니어가 설계했을 거에요. 저는 그 사물들이 더할 것도 뺄것도 없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관심있게 본 것은 도로에 있는 표지판이에요. 사람들이 운전을 하다가 표지판을 보면 반응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화려한 색과 형태로 표지판을 만들기도 하고, 빨강색이나 반사를 이용하기도 하죠. 하지만 막상 그것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은 아무도 보지 않아요.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구조이며 아름답고 무심하게 설계 되어있죠. 대부분 그런 점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구나연 : 그런 사물들이 미니어처나 프라모델이 되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김종범 : 거기에 있는 특별한 메카니즘은 없고요. 건담 프라모델이나 장갑차를 사서 조립하는 메카니즘과 똑같은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예술적인 활동이라 생각해요. 소비자로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로보트를 산다고 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애정을 가지고 보는 행위인 거죠. 길가에 있는 신호등 제어기를 집에 둘 필요는 없지만, 모형을 사서 음미해보는 과정이 같은 매카니즘 속에있는 게 똑같이 좋은 것 같아요.

구나연 : 여다함 작가 <서울 벌목꾼> 작업 중 보안여관 2층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작업이요. 찌라시들이 외국에서 가져온 것인가봐요. 그런데 서울에도 그런 게 많잖아요. 왜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져온 찌라시들로 작업을 하셨나요?

여다함 : 저는 어디를 가든지 그런 걸 찍는게 취미에요. 이 전시가 프랑스에서도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 보이는 이미지나 글씨가 이국적이지만, 문구들을 읽지 않아도 서울에 있는 것과 연관이 돼요. 내년에 프랑스에서 전시가 될때는 서울의 이미지로 새로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오히려 가독성이 생겨버리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누군가가 무엇을 잃어버렸으니 찾아달라, 라는 전단지 내용이 읽히면 디테일한 포인트에 사람들이 가 닿을것 같아서요,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구나연 : 그럼 외국에서는 서울의 찌라시를, 서울에서는 오히려 가독성이 없는 외국의 이미지를 사용한 건가요?

여다함: 예. 아무래도 프랑스사람들은 한글을 못 읽을테니까요. 일단 그리해보고, 사실 이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라, 여기서만 하고 말 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광고물에서 읽을 게 많다고 생각하고, 도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집을 10년 이상 하고나면 거기서 쌓이는 어떤 것들이 더 있을거라는 호기심과 기대감도 있고요. 이제 시작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시는 게 현실적일 듯 합니다.

구나연 :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도시는 수 없이 바뀌죠. 메이드 인 서울에서 보여주시는 작가들의 작품도 서울의 한 부분이며 시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일지 주의 깊게 주목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DONGDAEMUN Merchant Interviews
동대문 오리지날_ 박찬국

작가: 박찬국
영상: 김현승
진행: 이지연

> 동대문 상가 상인 인터뷰 #1

박찬국 : 자투리 천이든 뭐든 예쁘다고 생각하는 대로 옷을 메꿔주세요. 문양을 만들어도 되고, 하시는 분들 맘대로요. 총알은 일종의 상처 같은 거에요.

한상민 : 옷이 오염이 되어 있는데 이걸 그대로 놔두고 구멍을 매꿔달라? 그러면 일반적으로 고급스럽게 옷을 때운다는 느낌이 아니죠? 머리 안아픈 것좀 갖다줘요. 생각을 하도 많이 하고살아서 생각에 지쳤어.

박찬국 : 은근히 신경 쓰이죠? 옷 한 벌로 동대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김장녀 : 상상력이 필요하네. 긴장하셔야 하는 거 아녀?

한상민 : 나는 자유다 생각하고 누벼봐.

박찬국 : 보통은 동대문에서 만든 옷을 입으면 누가 만든 옷인지 잘 모르잖아요.

이지연 : 이 옷들은 봉제 하시는 분 마다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옷이네요.

김장녀 : 선생님(한상민)이 고급기술을 가졌잖아요. 친구들도 제일모직이나 좋은 회사에 있는 게 부러웠어요. 봉제를 처음 배울 당시에는 제가 배워서 가정에 보탬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우리집이 어려웠거든요. 학교다니는 제 동생까지 봉제를 배우겠다고 했어요. 선생님 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어가지고 배웠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선생님하고 엮였네요.

한상민 : 어머님이 서른 여섯에 혼자되셨으니까 고생이 말도 못해요. 그런데 듣자하니 서울에 갔다오면 기술로 돈을 잘 번다고 하는 거에요. 당시 맞춤 옷이 돈을 엄청 벌었어요. 한국을 끌고가는 게 구두 가방 옷 이 세가지. 제일 잘나간 직업군이 그거였어요. 실제로 이 기술을 배운 뒤로 돈을 엄청 벌었어요. 아침마다 은행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가져다 맡겼죠. 그런데 딱 얘가 기술을 배울라고 하는 시점에 패션이 기성화 되어버렸어요. 반도패션같은 기업이 등장하면서 패션이 활발하게 기성화가 되는 통에 그때 기성옷 쪽으로 돌아선 거에요. 일거리도 뚝 떨어져버렸어요.

박찬국 : 패션쪽에도 기술이 여러가지가 있잖아요? 패턴도 있고 봉제도 있고.

한상민: 맞춤옷을 만드려면 봉제까지 마스터 해야 패턴을 배우고, 패턴에 숙련되어야지 옷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일을 배우는 순서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패터너들은 봉제를 제대로 못해요. 한 디테일의 전문가인거지 옷을 전체 다 만들지는 못해요.

박찬국 : 몇 분 재능이 있고 의지가 있는 분들은 그렇게 하겠네요.

한상민 :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한 디테일의 전문성을 가져야지 대량 생산 시스템에 맞죠. 원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없었는데 지금은 디자이너가 생겼잖아요. 그때는 패터너만 따로 없었어요. 사장님이 패턴하고 봉제해서 오더를 내렸죠. 그게 다 기성화되면서 세분화 되었어요. 다리미질 하는사람, 패터너, 봉제사… 맞춤 못에서는 한명이 다 했던 부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 시스템이 바뀐거죠. 저는 패턴사들이 더 높게 보이거나 이런 건 없어요. 오히려 봉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더 장수 하거든요. 패터너들은 사업을 하지 않는 한 단명이에요. 디자이너 선생님이 옷만드는 과정을 다 알고 말하나요. 그림 그려와서 ‘이렇게 해 주세요’ 하면 우리들이 기술적인 프로로서 이 부분 됩니다, 안됩니다, 해서 옷을 만들게 되는 거죠.

박찬국 : 기성화 되고 나서는 일이 많이 변했겠어요.

한상민 : 공장에서 일한지는 칠 년 됐어요. 이전에는 현장에서 일했고, 아카데미에서 사 년 가까이 근무 했어요. 아, 샘플 개발실에서도 근무를 했어요. 거기에서는 디자이너, 패턴사, 미싱사 세 명이 공존하며 개발을 했었어요.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개발이 안되는 거죠.

> 동대문 상가 상인 인터뷰 #2

박대현 : 총알 구멍을 메꾸는 걸로 예술을 해야하는 건지, 자연스럽게 해야하는 건지요. 동대문 시장에서는 우리가 거의 마지막 봉제사 세대죠.

김현승 : 지금 젊은 세대 중 봉제를 하려는 사람들은 없나요?

박대현 : 젊은 사람들이 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학원에서도 의상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힘드니까 학생들이 중도 하차를 해요. 보통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에요. 건강 관리를 잘 하면 칠십 대도 있어요. 그런데 노동시간에 비해서 임금이 너무 박해요. 기본적으로 일을 하면 반나절은 잡아야죠.

정선희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홉시 열시 정도에 끝난다고 보시면 돼요.

박대현 : 보통 일이 아홉 시 열 시에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면 생산성이 안 맞아요. 봉제하시는 분들을 보면 보통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요.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고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그러면 일을 한만큼 수익도 되어야 하는데 안 돼요. 그런 점이 개선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동대문 상가 상인 인터뷰 #3

최금순 : 다른 분들이 옷에 있는 총알 구멍을 메꿔 놓은 거 보고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요. 하다보니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박찬국 : 이전에 같이 일하시던 분들은 성공해서 다른 데로 가셨나요?

이수색 : 거의 다 떠났어요. 돈도 안되고 일자리도 없고.

박찬국 : 유통하시는 분들은 돈 많이 버는 분들이 있나요? 그분들은 아직 동대문에 계시나요? 강남을 만든 주인공들이 동대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수색 : 돈벌어서 다 임대 사업쪽으로 갔어요. 예전에는 일에 치여서 일이 지겨울 정도로 많았어요. 정장 쪽도 그렇고 뭐 의류 산업이 상승세였죠. 지금은 손님들이 옷을 볼 줄아니까 점점 잘 만들어야 하고 꼼꼼해야 하죠.

최금순 : 우리 딸이 삼 년 전에 대학 졸업을 했어요. 저는 실기 이외에 이론을 공부 해보고 싶었는데 그 전까지는 시도를 못했죠. 그러다가 애가 졸업을 하면서 방송통신대를 진학을 했어요. 샘플을 만들면서 도면은 많이 봤지만 막상 제가 그리는 것은 그때 처음해본 거죠.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배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올해 졸업반인데 공부를 생전 처음 할때는 의욕이 넘쳤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새로운 원단도 나오고 스마트 의류 쪽으로도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신소재가 나오면 제가 많이 안해본 봉제방법을 쓰는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자신있게 덤비지는 못하니 많이 배워야 하는구나, 싶어요. 그리고 샘플을 만들다보면 주문 시간을 맞춰줘야해요. 지금도 밤을 안 샐 수가 없어요. 쉬어야지 생각해도 막상 일을 갖고 오면 그냥 몸이 움직이고 있어요. 시간 맞추는 게 힘들지 일자체는 어렵거나 하진 않아요.

박찬국 : 예전과 달라진 게 있나요?

이수색 : 많이 좋아졌죠.예전에는 일도 많았지만 사람도 많고 자리도 좁았어요.

박찬국 : 바뀐 시점이 언제인가요?

이수색 : 1997 – 1998년 정도에요. IMF가 지나고 좀 주춤했다가 나아졌죠.

박찬국 : 후배들도 외국인이 많지 않나요? 한국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안 들어 온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이수색 :서운하죠. 우리 직업 후배들이 없으니까요. 있다고 해도 사 오십대 후반이에요. 저희 밑으로는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박찬국 : 동대문이 짝퉁이라든가 카피 문화에 대해서도 말이 많잖아요. 좀 달라졌을까요?

이수색 : 달라질 수가 없어요. 워낙 빨리빨리 배껴야 하니까. 90% 이상은 카피라고 생각하면 돼요.

박찬국 : 직접 디자인한 옷들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을까요?

이수색 : 돈이 많으면 자기 디자인을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일단 옷을 팔아야 하는데 본인 꺼는 안 팔리면 돈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요즘 잘나가는 회사 옷을 가져와서 찍는 거죠.

박찬국 : 장기적으로 국가나 사회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창작이 많아져야 제조업 생태계가 살아가지 않을까요?

이수색 : 명품을 만들어야 하겠죠. 제가 예전에 회사에 있을 때 사모님이 명품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명품을 만들려고 많이 시도를 해 봤어요. 그런데 부족한 면이 많더라고요. 봉제 자체도 명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대량생산이 안돼요. 재킷만 해도 계속 입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옷은 만들기가 힘들더라고요. 이태리에 출장가서 진짜 비싼 옷을 한국에 가져 와요. 따라 만들려고 뜯어보면 어떻게 하는지는 아는데 소재나 부자재를 구할 수가 없어요. 국내에서 나오는 부자재로는 생산이 안돼요.

박찬국 : 생태계가 다 연결이 되어있네요.

이수색 : 몇 천 만원짜리 재킷을 이태리에서 사와서 수선을 해봤어요. 그런데 소매 끝은 수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어깨부터 옷을 잡아당겼는데 그러면 통이 이상해지잖아요. 이태리 장인들은 핏을 다 맞춰서 옷을 만들어놨는데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체형이 다르니까 사 와도 똑같이 만들거나 입을 수가 없더라니까요.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정장을 수작업해서 만들었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 회장님이 일본에서 기계를 사왔는데, 체형에 맞게끔 구멍을 뚫어 그 위로 바람을 빨아들여서 모양을 만드는 기계였어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보니, 옷이 생산이 되긴 하는데 생산 판로가 잘 안 생기더라고요.

박찬국 : 고급 브랜드는 생명이 길어야 하잖아요.

이수색 : 명품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잖아요. 우리나라에 명품 브랜드가 어디 있습니까? 다 거기서 거기고, 전 세계사람들이 다 아는 브랜드가 없잖아요. 첫째로 자금이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 잘 없어요. 다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길게 못보고 옷을 만들죠.

최금순 : 저희가 봉제를 하다보니까 옷에 있어서 봉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막상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패턴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모든 요소가 중요한데 사람들이 디자인부터 보고 옷을 고르기는 하니까요. 입었을 때 편한 건 엠피(M.P – 다트를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사용되는 패턴 용어-) 를 한다고 하잖아요. 겉으로 봤을때는 엠피 분량이 눈에 띄지는 않는데, 명품을 만드는 데 보면 몸에 맞춰서M.P 분량이 숨어 있는 거에요. 있는지 우리가 모를 뿐이죠. 그 분량이 있어서 옷을 몸에 맞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수색 : 좋은 옷을 들여오면 우리는 뜯어서 고대로 놓고 송곳질 해서 카피 하는데, 막상 입으면 그 간지가 안나죠.

박찬국 : 그만큼 패턴 하는 사람들이 경험이 많아야 해요.

이수색 : 그렇죠. 그래서 저도 회사다닐 때 이태리 좀 보내달라 수 없이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꼭 소재 담당이나 디자이너들만 데려가요. 패턴사나 봉제하는 사람들은 안 데려가죠. 우리나라에서는 봉제산업이 칠 팔십 년대 붐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베트남이 그렇다 해요. 제 동생이 베트남에 있는데, 고무장갑 이나 라텍스 종류를 다루는 공장에 다녀요. 그런데 그 공단 옆으로는 전부 봉제 공장이라 해요. 공장에 가보면 미싱이 몇 천 개씩 끝이 안보인다 해요.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일어설 때만 해도 그런데가 없었거든요.

최금순 : 기계도 훨씬 좋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중국에서 옷을 만들어 올때만 해도 품질이 안 좋다고 했는데요. 지금은 품질만 가지고는 어디서 만들었는지 구분을 못해요. 다 품질이 좋아요.

Ordinary Monument
Hong Soun
사소한 기념비
홍순명

작가는 동시대의 주요 사건이나 사라지는 장소를 방문하고 그곳의 사물, 파편으로 기념비를 제작하여 이들이 간직한 시간과 경험의 기억을 기록하고 위로한다. 이번 작품의 사물들은 충무로의 아스트리아 관광호텔에서 가져왔으며 반세기를 지켜내 온 호텔의 물건들은 <사소한 기념비>로 동종업계인 보안여관에 세워진다. 아스트리아 관광호텔은 1959년에 지어진 1세대 관광호텔로 현재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Statment
사소한 기념비는 기억과 보존에 대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 나는 사건의 현장이나 사라지고 있는 장소를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오브제들을 수집한다. 현장의 물건들은 그 장소의 기운을 머금고 있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들은 삶의 작은 파편들로 우리의 삶이 시간과 경험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가끔은 감추고 싶거나 왜곡되고 있는 진실의 단면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고 가끔은 현실 너머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나는 이런 오브제들을 몇 개씩 얼기설기 엮어서 어떤 형태를 만들고 이들을 랩으로 수없이 감아 나간다. 이들이 알고 있는 경험의 작은 부분들은 이렇게 간직되고 이는 일상에서 소소한 감동을 주었지만 금세 잊혀지는 개인의 신화나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쉽게 왜곡하며 큰 목소리를 내는 이 사회의 현상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보존방식을 만들어 낸다. 이번 보안여관의 전시는 곧 없어지게 될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 소재를 찾았다. 충무로의 아스토리아호텔은 1959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의 1세대 관광호텔이다. 곧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 호텔을 찾아가 지난 반세기를 지켜내 온 호텔의 물건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이 사소한 기념비들이 전시 될 곳 또한 같은 업종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보안)여관이라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Profile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2012년 사비나미술관, 2009년 쌈지 스페이스 등에서 수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룹전으로는 「Tina B.현대미술페스티벌」(2012, 세인트 일리 도미니칸 대성당, 프라하), 「국제 케이지 100 페스티벌」(2012, 아이젠반, 라이프찌히), 「빛으로 가는 길」(2012, 영은미술관, 경기),「문화 유전자」(2008, 송장미술관, 베이징),「산타페국제비엔날레」(2008, SITE 산타페, 산타페),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잇시 레 물리노 시립미술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산타페 아트 인스티튜트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DONGDAEMUN Original
Park chan kook
동대문 오리지널
박찬국

동대문 신발상가 B동 옥상에는 DDP*에 대항하는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 동대문 옥상 천국)가 있다. 작가는 DRP에서 동대문의 생산구조를 관찰하고 이를 해체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동대문오리지널>은 짝퉁(불법적 카피) 티셔츠들에 인위적 구멍을 내고 이를 다시 봉제사들에게 메우도록 하여 동대문 시장의 자본, 유통, 생산적 구도 속의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DONGDAEMUN design plaza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Statment
그 곳의 (작동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곳에서 살아가기
드러내고 개입하며 유니크하게 존재하는 로컬 아티스트의 삶
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 멤버들과 분주한 동대문 도매 시장을 돌며 티셔츠들을 사 모았죠. 차에 싣고 목동 사격장으로 갔습니다. 실탄 사격장에서 철갑을 뚫기위해 개발했다는 매그넘(mag357)탄과 파괴력 높은 45구경(45acp) 탄환을 사용하여 티셔츠에 구멍을 냈습니다. 정교한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 사격장 스텝들은 평소에 사용하는 원형 과녁지가 아니라 티셔츠에 사격을 하면서 각자 (사람의) 신체 어떤 부위를 쏘는 것처럼 조준해야 했지요. 인상 깊은 것은 동물 그림이 인쇄된 티셔츠를 제외시켜달라고 하더군요. 동물 단체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들은 매우 신중하게 5발씩 발사했습니다. 총탄이 지나며 그을린 티셔츠들을 동대문의 봉제 공장으로 옮겼습니다. 봉제 경력이 30년 이상된 숙련된 사람들이 총알 구멍을 메꾸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요. 처음에 어리둥절 하시던 봉제사들은 제봉틀 앞에 앉아서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구멍을 메꿔 나갑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아름다운 문양들을 만들어 내더군요. 사람마다 다르고 티셔츠마다 다 다른 문양들이 조금 수줍게. 활기차게. 때로는 자신만만하게 새겨집니다. 아, 아!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나옵니다. ”참 재미지네요.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할 소리인지 모를 말씀들이 튀어 나옵니다. 그런데 동대문이 이제 짝퉁 소리 듣는 건 면했나요? 무슨 소리? 아직도 짝퉁이지;;

Profile
1959년 태어났으며,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작가 겸 디렉터로 활동해오고 있다. 첨여 전시로는「일본 BankART Studio summer open」(2010, 요코하마, 일본), 「액체 달 」 (2010 plan.d갤러리, 독일 뒤셀도르프) 「 2009-10 Marking time」 (금천예술공장,서울) 등이 있으며, 2008-2012에는 논아트 밭아트 (nonArt butArt) 프로젝트의 디렉터 및 전주대학교 도시환경 미술과 겸임교수로 활동 하였다. 현재는 ‘동대문 옥상낙원 DRP’ 및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학교’의공간 기획과 운영을 맏고 있다.

Seoul Logger
Yeo daham
서울벌목꾼 : 매우 불만족 불만족 보통 만족 매우 만족
여다함

작가는 거리의 전단 광고물들이 수없이 중첩되어진 흔적을 도시의 전투적인 행위이자 잘려나간 벌목된 숲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른바 도시에서 발생하는 간접적 벌목인 셈이다. <서울 벌목꾼>은 이러한 도시의 소비적 외피를 전단 광고물의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에서 찾아내고 있으며 ‘매우 불만족 불만족 보통 만족 매우 만족’이라는 부제어를 통해 일방적인 정보의 쏟아짐에 관한 비판적 시선을 전하고자 한다.

Statment
길가의 담벼락이나 골목 어디를 지나더라도 흔하게 광고 전단물들(찌라시)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광고물들의 번식력은 왕성하고 전국적이다. 광고전단물들이 길거리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것으로 도시가 얼마나 활기차게 순환되고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도시의 삶을 이해해보기 위해 벽에 붙은 광고 전단물들을 관찰해보려고 했다. 벽에 붙은 광고지들은 하나같이 잘려나간 나무기둥처럼 온전하지 않은 몰골로 벽에 들러붙어있다. 찢어졌거나 다른 종이 아래 깔려있거나 혹은 똑같은 포스터일지라도 모델의 얼굴과 글자들의 보존상태는 천차만별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신 광고지와 철 지난 광고지들이 함께 붙어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끝난 폭탄세일이 현재 진행중인 성인나이트 포스터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광고전단이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광고’로서의 효과는 이미 힘을 잃고 사라졌다. 단지 도시의 풍경에 지나지 않게 될 뿐이다. 그리고 도시의 풍경 중 어쩌면 야생성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정원사가 개입할 수 없는 화원처럼 너저분하다. 번화가일수록,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일수록 이런 풍경들은 우거져간다. 그리고 그 양분은 신선하게 공급되는 소비자들일 것이다.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족, 매우 불만족’ 이 광고물들은 대체로 일관된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본과 상관없는 포스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따지면 값어치 없는 포스터는 없는데, 의미없는 벽조차 빼곡하게 덮어버리는 도시의 전투력 앞에서 한 개인이 이를 거부할 힘은 얼마나 될까.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 살 수 있는 힘도 역시 경제력일 것이다. 월세를 낼 수 있는 정도의 힘 같은 것 말이다. 어느날 내가 쓰는 핸드폰의 통신사에서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전화가 왔다. 주의 깊게 들리지도 않는 질문들에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족, 매우 불만족 중 하나를 골라 기계적으로 대답을 하다 문득 현대의 삶에 대해서 이 다섯 가지의 문항을 벗어난 질문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내가 도시에서 살 수 있도록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지, 도시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는 끈을 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는 과연 용납이 되는지 깊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Profile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하자작업장학교를 졸업하였다.
꿀풀, 금천예술공간, Apexart Residence(뉴욕), 등에서 입주 작가로 머물렀으며, 「먼지 관제탑」(2011, 꿀풀)「부초의 초소」(2012, 갤러리 상상마당), 「Don’t worry, Be worry 」(2012, 통의동 보안여관) 등 다수의 개인전과 콜렉티브전을 가졌다. 출판/인쇄컬렉티브 AC Publishing 을 결성한 바 있으며 그래픽 및 공간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동을 해왔다. 2012년 제 2회 일맥아트 프라이즈 수상작가이며, 2014년15회 에르메스 미술상 최종 후보작가 3인에 올랐다.

Seoul model shop
Jongbuhm X Jongeon
서울과학사
종언x 종범

서울과학사는 디자이너 김종범과 엔지니어 최종언의 일시적 협업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서울 속 무명씨의 생활 사물들을 수집하고, 공동으로 제작한 조립식 3D 프린터기 ‘마네킹’으로 그 모형(플라스틱 모델)을 제작한다. 전시 기간 동안 보안여관 내부에 제작 공방과 모델샵이 결합된 <서울 과학사>를 오픈하고 생활 사물들의 모형 키트를 판매한다.

Statment
종언은 최씨 이고, 종범은 김씨 이다.
종언은 엔지니어 이고, 종범은 디자이너 이다.
종언과 종범은 최근 ‘마네킹’ 이라는 조립식 3D 프린터기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돌아다니거나 주변의 사물들을 들여다 보기를 좋아한다.

종언과 종범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서울을 만드는 것, ‘서울을 이것이다’ 라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특이한 것들이다.
특이한 것들에는 도로 표지판을 받치는 구조물처럼 매일 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는 것들과,
변두리에 위치한 재미있게 생긴 집들 그리고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시선을 끄는 것들이 있다.

서울과학사는 다음과 같은 곳 이다.
서울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에서 특이한 것들을 채집하고 킷트화 하는 독립 모형점 이다.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생산 할 수 있는 생산 방식을 선택, 조합한다.
사용자에 의해 수집 된 자료와 킷트를 수렴하여 생산한다.
상설 매장이 아닌 기간 한정으로 운영된다.

Profile
Jongeon 종언
대학2학년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3D프린터를 만들어 창업한 엔지니어
서울을 너무 좋아해서 주말에는 동네 탐방을 다닌다. 달 동네에서 길을 잃는 것이 소소한 행복.

Jongbuhm 종범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의 디자이너. 각종 가구 및 장치물을 디자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Ab Group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