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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_20110616

공간들이 소리치네 “나 여기 있어!”

등록 :2011-06-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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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내부. 이탈리아 건축·디자인그룹 ‘모토엘라스티코’와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함께 진행한 ‘접을 수 있는 놀이터’. 식당 개업 때 자주 쓰이는 풍선 인형에서 모티브를 얻어 꾸몄다. 전시공간 한편에서는 음료 등을 즐길 수 있다.

문턱 낮춘 복합문화공간들의 변신은 무죄
갤러리는 고고하다. 발 딛기 버거운 느낌이다. 고가의 그림이 드나드는 그곳은 정·재계 로비나, 비자금 조성의 요충지로 입길에 오른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서 열리는 공연은 자주 접하기 어렵다.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문화생활을 포기할쏘냐. 어깨 힘 빼고 가볍게 좀더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플랫폼이 곳곳에 열려 있다.
복합문화공간이다. 영어로 ‘컬처 콤플렉스’(culture complex). 수영장·야구장 등이 한데 모인 종합 운동장을 ‘스포츠 콤플렉스’라고 일컫는다. 컬처 콤플렉스, 복합문화공간은 ‘종합 공연장’ 정도로 여길 수 있겠다. 전시관과 공연장, 영화관 등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해 그 역사는 짧지만, 변화상은 무쌍하다.

국내 복합문화공간 1세대는 기업 주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문화마케팅을 펼쳤던 쌈지가 1998년 세운 쌈지아트스페이스는 10년 동안 운영되다 사라졌다. 지금까지 명맥을 잇는 곳은 1993년 문 연 두산아트센터, 한국화장품이 2003년 세운 스페이스*C 등이 있다.

기업주도형 1~2세대, 3세대 새 시도 활발

2세대 복합문화공간 역시 기업이 만든 곳이 많지만, 운영 방식과 내용은 많이 달라졌다. 제대로 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입지를 다진 곳은 담배회사 케이티앤지(KT&G)가 2007년 세운 홍대 앞 ‘상상마당’(사진)이다. 상상마당은 무엇보다 다양한 독립 문화 콘텐츠가 오가는 플랫폼의 구실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인디밴드의 공연장, 독특한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 갤러리, 문화 아카데미까지 갖춘 이곳은 좀더 다르게 놀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됐다. 케이티앤지는 이 성공을 이어가며 15일 충남 논산에 숙박시설까지 갖춘 새로운 ‘상상마당’의 문을 열었다. 금호건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운영하는 ‘크링’(Kring)도 문턱을 낮춘 전시관과 접하기 어려운 예술·독립영화 등을 볼 수 있는 상영관 덕에 명소로 떠올랐다.

홍대 상상마당이나 크링은 그 화려한 외관 때문에 건축 평론가들이 눈여겨보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건축학과 교수는 “상상마당이나 크링은 기업들이 홍보 등을 위해 만든 곳이니, 건물 자체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를 치는 듯하다”고 말했다. “신기한 외관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3세대 복합문화공간은 두 갈래 길로 갈리고 있다. 우선 ‘문화’가 마케팅의 열쇳말로 떠오르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복합 영화상영관 등을 유치해 ‘복합문화공간’임을 내세우는 곳들이 많아졌다. 서울 영등포구의 타임스퀘어가 전형이다. 그러나 이들 공간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문화를 이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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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제공
다행히, 다른 도전도 진행중이다. 거대하지는 않지만, 동네 곳곳에서 대안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한 복합문화공간이 피어나고 있다. 서울 여기저기선 ‘예술공장’이 가동중이다. 2009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세운 서울창작공간이 벌써 11곳이나 문을 열었다.

지난 9일 문래예술공장에서는 일반인·예술가 15명과 강사 4명이 자리한 가운데 ‘국제사운드아트창작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는 예술가 200여명의 창작공간인 문래예술촌이 있다. 이곳 역시 작지만 알찬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은 독특한 전시와 공연, 영화 등을 즐길 수 있다. 3세대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그 특징은 국외에서 온 예술가들이 머물 공간도 함께 마련했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에 나서기도 한다. 그만큼 문화 창조자들이 문화 향유자들을 거리낌없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생산·소비자 가까워진 공간 늘어나는 중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 역시 4명의 국내외 입주 작가들이 상주하며 전시와 워크숍 등을 연다. 이곳하면 ‘파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본연의 모습은 ‘대안 문화’(sub-culture) 창작·전시 공간이다. 강남 복판에 28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려 만든 건물 또한 묘한 볼거리이다. 이동미 홍보담당자는 “전세계 5000여명의 예술가 네트워크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플래툰의 아시아 거점”이라고 소개했다. 청와대와 경복궁을 바로 곁에 두고서도, 발칙한 상상력을 한껏 표현하고 있는 곳도 있다. 메타로그 아트서비스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을 운영중이다.

전시·공연 공간을 갖춘 카페도 큰 흐름을 형성하는 중이다. 낮에는 조용한 전시관이 함께 있는 카페지만, 밤에는 시끌벅적한 음악 공연장으로 변신하는 곳. 서울 마포구 서울화력발전소(옛 당인리발전소) 근처에 있던 신발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사이트’(무연탄)의 풍경이다. 공간 자체도 재활용이지만, 카페 곳곳에 꾸며진 재활용 또는 빈티지 콘셉트의 가구들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소호 한켠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무연탄 근처의 ‘그문화’ 역시 숨은 명소다. 이곳은 아트 콘텐츠그룹인 ‘mqpm’이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상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옛 서울역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는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기차는 오지 않지만,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오고 갈 역으로 곧 거듭난다. 이곳은 ‘문화 스테이션 284’(284는 서울역의 사적 등록번호)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오는 8월 문을 연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알아두세요. 복합문화공간, 여기 있었네

홍대 부근 →상상마당 영화관, 전시관, 공연장, 아이디어 제품 숍, 아카데미 / 서교예술실험센터 전시관, 다목적홀(공연장으로 이용 가능), 아카데미 등 / 당인리극장 카페, 공연장 / 그문화 카페, 전시관, 세미나실(저녁 7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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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툰 쿤스트할레
강남 지역 → 플래툰 쿤스트할레(사진) 입주 작가 워크숍, 상설 전시관 / 크링 영화관, 전시관, 카페 등 / 스페이스*C 다목적홀, 화장품박물관, 전시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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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보안여관
기타 지역→ 통의동 보안여관(사진) 건물 내외부 전시관, 시민 참여 워크숍 등 / 성북예술창작센터 예술치유 프로그램, 전시관, 다목적홀 등 / 신당창작아케이드 공예 예술가 창작 공간, 카페 전시관 등 / 아트선재센터 영화관, 전시관 등 / 스페이스 꿀 전시관, 공연장, 카페 등 / 광진교 리버뷰 8번가 전시관, 공연장, 카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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