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_20100917

이상을 품어라 새 문화 창조의 날개 돋으리니…

문화유산 지킴이 ‘아름지기’ 李箱탄생 100주년 앞두고 강연-시낭독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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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이상의 거리를 거닐다’ 행사에서 소설가 한유주 씨(마이크를 든 사람)가 이상의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쓴 산문을 낭독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920년대 말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당시 교내 화실에서의 이상.사진 제공 소명출판
“이상(1910∼1937)은 일본 학자들도 ‘문학적 천재의 영웅전설’이라고 표현합니다. 당시 일본의 모더니즘 문학을 모방했다기보다 오히려 뛰어넘었으니까요. 그는 아시아를 대표했던 시인이었습니다.”

1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통인동 대림미술관 4층 전시장.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강연에서 박현수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는 시인 이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상의 거리를 거닐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단체 아름지기가 이상 탄생 100주년(9월 23일)을 앞두고 그가 주로 살았던 통인동 일대에서 그의 문학과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박 교수의 강연에 이어 스티븐 카프너 서울여대 영문학과 교수가 ‘20세기를 사는 19세기식 모던 보이’,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날개 달린 식물의 공간’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이상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공간의 오디세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실험정신은 이 시대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저수지로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2시간여의 강연을 마친 일행은 인근 통의동의 ‘보안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0년대 문을 연 보안여관은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의 문인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현대문학사의 상징적 공간 중 한 곳이다.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이 여기서 발간됐다. 현재 여관은 전시업체 메타로그아트서비스가 인수해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이상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인 기테 초흐 씨가 이상의 시를 낭독했다. 무용가 정영두 씨는 이상의 실험정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행사에 참가한 KTX 기장 강은옥 씨는 “강의를 들으니 이상이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상상력의 빈곤에 빠진 문화계는 그에게서 새로운 문화적 키워드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부 정은숙 씨는 강연을 듣고 이상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이상의 문학작품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아름지기는 통인동 154에 있었던 이상의 집을 복원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집은 이상이 1912∼1933년에 기거했던 곳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09년 7월 이 땅을 매입해 아름지기에 복원 및 활용을 맡겼다. 건축가들이 매주 모여 설계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름지기는 이곳에 내년 말까지 ‘이상의 집’을 만들어 그와 관련한 기록을 보관하고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집은 서촌 일대의 문화적 거점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 종로 집터 복원해 전시-기록보관 계획

이 밖에도 올해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다양하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은 11월 6일까지 ‘2010 이상의 방(房)’ 전시를 통해 그의 육필원고 27점과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50여 점을 선보인다. 극단 오늘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소재를 얻어 위성신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오감도’를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축제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은 이상 관련 사진자료 등을 선보이는 ‘木3氏의出發’전을 17일∼10월 13일, 대산문화재단은 17일∼10월 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부남미술관에서 ‘이상, 그 이상을 그리다’를 주제로 문학 그림전을 연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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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INE_201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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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_20100826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무대서 환생하다
[이상, 다시 날다] <곶나들이>, <오감도> 등 연극·퍼포먼스 통해 초현실주의 작가 재조명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입력시간 : 2010/08/26 09:41:59수정시간 : 2010/08/26 0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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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곶나들이’ (사진제공=극 연구소 마찰)

“그가 만약 세계에 알려졌다면 아르튀르 랭보나 프란츠 카프카, 또는 장 콕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던한 예술적 감성은 지금 뉴욕에서 볼 수 있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연상시킨다. 마치 록스타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같기도 하다.”

지난해 내한한 ‘아방가르드 실험극의 거장’ 리 브루어는 이 인물을 묘사하며 이처럼 극찬을 했다. 랭보와 카프카에서 너바나로 연결되는 이 전방위적 찬사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바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었다.

 

현대에 출몰하는 이상의 유령

1930년대 활동한 초현실주의 작가 이상은 동시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최근까지도 영화와 연극 등에서 꾸준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상의 여성편력과 동시대 화가 구본웅과의 관계를 다뤘던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를 비롯해,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로 재탄생했다. 지난해엔 시 <오감도(烏瞰圖)>에서 제목만 빌린 <오감도(五瞰圖)>라는 영화도 개봉했다.

연극은 더 오랫동안 다양하게 이상을 탐구해왔다. 채윤일 연출의 <이상의 날개>는 1977년과 1978년 두 차례 공연된 데 이어 지난 2003년에도 무대에 올려지며 이상을 재해석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난 유쾌하오. 이럴 땐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굿바이!”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난해한 이상의 작품을 알기 쉬운 연애사로 재창조했다.

2007년에는 이상의 이름을 거꾸로 붙인 <상이(箱李)>라는 연극도 있었다. 이상이 ‘상이’라는 분신을 갖고 있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극 속에 이상과 상이 두 인물을 등장시켜 그의 분열된 자아와 불안한 자의식을 표현했다. 현실보다 이상(理想)을 추구하며 이상(異常)한 작품을 썼던 그의 이면에는 상이와의 공모와 합작이 있었다는 해석이 독특했다.

미국의 연출가 리 브루어는 재미교포 작가 노성이 영어로 창작한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2000년 무대로 옮겨 선보이고 지난해 이를 재공연하며 이상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상은 21세기의 현실로 옮겨져 연극이자 설치미술로 표현된다. 이상의 시가 전통적인 문장이나 형식을 거부한 것처럼, 리 브루어는 비디오, 프로젝터, 인형극 등을 통해 이상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한편 그림연극으로 그려진 이상도 있었다. 연극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 날개>는 배우들의 연기를 기본으로 애니메이션, 인형극, 그림자극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이상의 <날개>를 그림연극 형식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무한 변주되는 이상, 다원적 해석의 보고

이처럼 이상의 생애와 작품이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흥미롭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을 모티프로 작업을 하고 있는 연출가들은 공통적으로 “해석의 폭이 다양하고 아직도 미스터리한 점이 많다”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이상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건축가이자 미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활동에 그치지 않고 건축가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으로 입선하기도 하고,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1일>에 삽화를 연재할 정도로 전방위적 재능을 발휘했다.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예술 세계가 함축된 그의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가 됐다.

얼마 전 공연된 극 연구소 ‘마찰’의 즉흥 퍼포먼스 <곶나들이>는 이런 영감과 새로운 실험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치러진 곳은 특이하게도 공연장이 아닌 통의동 보안여관. 이 장소는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시작이자 결과물이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이상이 살았던 통인동 154-10번지와 가까운 거리이고, 이상의 여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금홍이 있었던 곳도 이 근처의 제비다방이다. 극 연구소는 이 점에서 보안여관이 이상이 작품을 쓰거나 그의 저작에 영향을 미친 곳으로 예측하고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공연은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 제15호, <절벽>, <이런 詩>, , <최후> 등 9편을 바탕으로 이상, 금홍, 변동림 등 세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관객은 여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배우들과 연출을 따라 그들이 보여주는 세 인물의 옛 모습을 보안여관의 현재 모습과 겹쳐보며 이상을 다시 읽게 된다.

한편 극단 오늘은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일부터 연극<오감도>(부제: 이상(李箱)의 이상(理想)과 이상(異常))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작품은 비록 제목은 오감도지만 전체적인 설정은 <날개>에 가깝다. 부제처럼 연극은 이상(李箱)의 이상(理想)과 이상(異常)을 투쟁적 삼중주로 보면서 ‘백수’ 이상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성신 연출가는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는 오늘날의 현실과 교차되며 백수이자 사회부적응자인 예술가 이상을 오늘의 현실에 담아낸다. 시 <오감도>가 공연 중간 슬라이드로 보이는데, 다소 난해하면서도 극의 내용과 적절히 어울린다. 위 연출가는 “이상은 백수의 삶을 즐기지 못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삶의 무게를 버거워했다. 자신을 사랑했던 만큼 자기 증오가 컸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하며 “이런 백수 이상과 그 자아, 금홍, 세상 사람들과의 갈등을 표현할 것”이라고 연출의 묘를 밝혔다.

근대를 살면서도 탈근대를 지향했던 이상은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계속되고 있는 현대에 들어서 더욱 흥미로운 텍스트가 되고 있다.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그의 문제적 삶은 오히려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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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타임즈_20100825

‘눈먼 자들의 도시’ 전시회를 가다
인간의 심리적·사회적 변화를 그린 작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눈이 머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복합문화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는 이 소설과 연계해 지난 19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11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 전시회는 문학의 텍스트를 미술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들은 ‘시각의 마비’와 연결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표면과 이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화이트’다. 소설 속 눈먼 자들이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말한 점에 착안해 작품에 흰색이 들어가 있다. 또한 전시공간인 방과 방 사이의 벽에는 소설의 내용이 일부분 기재되어 관람내내 소설이 주는 의미와 장면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방명상, 서평주, 안세권, 최승훈, 박선민 작가가 참여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잠겨진 방문을 통해 방명상 작가의 ‘통로’를 먼저 보게 된다. 컴컴한 방안에는 사진과 영상이 설치돼 있다. 영상을 보면 차와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 아래 한 여자가 정류장과 같은 곳에 앉아 무언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계속적으로 보여진다. 현대인들의 공허한 심리와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인물들의 심리가 비슷함을 묘사한 작품이다.

서평주 작가의 ‘시력검사표’는 낙서된 신문이 방을 도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려지고 잘려진 신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다. 더불어 시력 테스트 장치가 설치돼 있는데 그 안에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테스트용 글자들이 담겨있다. 눈먼 자들이 살고 있는 집단 수용소에서 보통의 가치와 질서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보편적 가치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얼마나 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2층 계단 앞에 높인 ‘시위자들과 시각 장애인’은 최승훈·박선민 부부작가의 작품이다. 모든 것을 다 감싸고 눈만 보이는 시위자와 눈 이외는 모두 무방비 상태인 시각 장애인을 대비해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눈먼 자들의 모습이 과연 그들만의 모습인지 아니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은 청계천 재개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세권 작가는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했다 사라지는 강력한 이미지와 풍경을 포착하는 작가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 속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도

두 번째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이다. 최수항, 하태범, 김주리 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최수앙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3개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일상의 실험실’이라는 큰 틀 아래에 ‘자율성에 대한 에스키모’, ‘인위적인 균형’, ‘인공획득 면역’이라는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다리가 하나 없는 말 조각, 실험도구처럼 이용되고 있는 의족, 다리가 하나 없는 테이블이 의자에 의지해 균형을 맞춘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능적 장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에 눈이 먼 사람이 한 사람이었지만 전염병처럼 확산되면서 도시가 온통 눈먼 사람으로 가득차 버린다. 결국 이 도시에서 눈뜬 자가 정상인지 눈먼 자가 정상인지를 모르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다. 작가는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다. 기능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진짜 장애인인지 아님 편견으로 가득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진짜 장애자인지를.

‘방’이라는 작품은 너무 많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태범 작가는 눈먼 자들이 세상을 하얗게 보는 것처럼 방을 온통 다 하얗게 칠해놓았다. 이불, 옷장, 주전자 등 세간살이 모두다 하얗다. 그 안을 들여다 본 관람객을 이 방안을 거치고 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사연을 품고 있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마치 소설 속 집단 수용소에 들어오는 각양각색의 인생들처럼.

‘흙, 물’은 사라져 가는 풍경에 집착하는 김주리 작가의 작품이다. 점토로 이뤄진 이층집은 수조 안에 놓아져 있다. 이 작품은 전시기간 내내 조금씩 무너져 내리게 된다. 눈먼 자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도시의 풍경과 우리에게서 없어지고 있는 과거의 풍경이 연계돼 관람객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치유와 회복의 염원을 담아서

세 번째는 치유와 회복의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다. 김진란, 정만영, 권대훈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김진란 작가의 ‘쓸데없는 연습’이 전시되는 공간인 여관 방바닥에는 빨래비누가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져있다. 그 위에는 빨래하는 모습의 영상을 담은 흑백TV가 있다. 소설 속 눈먼 자들에게는 빨래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눈뜬 자인 의사 부인은 눈먼 자들의 영혼이 씻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빨래를 한다. 작가도 매일 비누가 작아지는 동안 세척되어지는 일상의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매주 토요일마다 방을 닦고 청소하는 퍼포먼스가 행해진다.

정만영 작가는 2가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하나는 ‘무서운 도시’이다. 부서져버린 건물의 잔해가 방바닥에 널려 있고 천장에는 무거운 추가 걸려 있다. 그는 여기서 우리가 정말 무너뜨린 것이 건물만인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세워질 건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예전에 화장실이었던 공간을 이용한 ‘스며든 소리 가변크기’ 라는 작품이다. 벽과 바닥에 있던 파이프들을 드러나게 하고 음향을 설치해 물이 흐르는 소리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소리가 하나의 조형언어로 표현되고 있는 작품으로 마치 그 안에 들어가면 샤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권대훈 작가의 ‘일체유심조’는 시간의 흐름과 빛의 방향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을 보여주는 빛 조각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이 마음에 따라 세상도 달라 보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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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_20100809

미술, 청자와 연극을 만나다

미술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객과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청자와 연극을 초대하기도 하고 드로잉을 통해 맨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계를 떠도는 유목민 같은 다국적 작가들은 소통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작업패턴을 제시한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에겐 시원한 볼거리가 되고 더위 먹은 미술계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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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의 ‘현대화된 허수아비’.

◆미술 청자를 만나다

15일까지 열리는 전남 강진 청자축제는 ‘청자 아트 프로젝트(Celadon Art Project)’를 통해 미술이 잔치 현장에 조용히 스며들게 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도 고영훈과 배병우를 비롯해 이왈종·서용선·김선두·정현·유근택·김억 등 내로라하는 중량급들이다. 작가들은 청자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가을부터 강진 곳곳을 답사한 뒤 나름대로 재해석한 작품을 내놨다. 전시공간도 청자박물관·도예문화원·영랑 생가·백련사 등 지역 명소를 고루 활용하고 있다. 자연스레 청자와 어울리는 그림들이 축제 관객들에 노출되는 셈이다.

팥이나 쌀 같은 곡식 낟알들을 깨알같이 그려 작업하는 정정엽은 팥으로 청자의 모양을 그렸고, 미국 만화 속 영웅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위영일은 청자를 훔쳐 달아나는 외계인을 물리치는 울트라 슈퍼영웅을 위트 있게 표현했다.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은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블록을 여러 가지 청자의 모양으로 바꿔놓았다.

시인 영랑 김윤식이 살던 방에는 김근중의 모란 그림과 정종미의 미인도 병풍이 원래 있던 영랑의 초상화와 같이 놓였고, 비취색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백련사 만경루와 차를 마시는 다실에는 유근택과 이종구의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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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의 ‘푸른밤의 여로’.

전시는 축제기간과 별도로 11월30일까지 이어진다. 내달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면 광주와 강진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061)430-3710∼2

◆미술에 초대된 연극

전시와 영상 예술이 형식 파괴 연극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공연 제작사인 코르코르디움은 20∼29일 대학로 갤러리에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프랑스 연극 ‘파이의 시간’을 선보인다. 갤러리 입구에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해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 30분 동안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뒤 연극을 시작한다. 갤러리 공간이 주는 느낌에 맞게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 방식도 확장했다.

극단 그린피그는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전쟁이 주는 상처를 재조명한 창작극 ‘의붓기억’을 공연 중이다. 미술관의 지하와 1층 전시장을 넘나들며 선보이는 형식 파괴 공연으로, 희곡을 기반으로 하는 연극 형식에서 벗어나 연기와 음악, 영상, 미술 등의 장르를 한데 뒤섞었다.

극연구소 마찰은 지난달 6∼10일 여관을 개조한 전시 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각색한 창작극 ‘곶나들이’를 공연해 큰 호평을 받았다. 배우들이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공연하는 즉흥극으로, 무대뿐 아니라 좌석마저 없애 관객들은 전시를 보듯 서서 관람했다. 미술이 연극적 고정관념을 깨 연극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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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의 ‘출항2’.

◆새로운 작업 패턴을 꿈꾸다

대학로의 이웃한 아르코미술관과 옛 문화예술위원회 건물에선 여러 매체의 작업들이 서로 섞이고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달 5일까지 열리는 아르코미술관의 ‘노마딕 파티’는 다국적 작가 공동체인 ‘나인 드래곤 헤즈’와 공동 기획한 전시다. ‘노마드(nomad·유목민)’ 성격을 지닌 14개국 작가 26명의 ‘무대 파티’라 할 수 있다.

소통과 협업을 통해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섞여 들어간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출신인 유진 한센은 전시장을 포함해 주변의 소리를 채집해 사운드 작업으로 구현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17명으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열기구를 타며 움직이는 장면을 담은 필 대드슨의 사운드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된다. 두 작품에서 나는 소리는 자연스럽게 스위스 작가 막스 뷰헬만이 높이 1.5m 나무합판 우주선 위에서 펼치는 퍼포먼스의 배경 음악이 된다. 퍼포먼스 현장 뒤에는 이승택의 설치 작품이 무대 배경처럼 자리를 잡았다. ‘노마드’ 작가들은 전시 중간 실크로드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둔황과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을 경유해 톈산산맥에 이르기까지 실제 유목민들의 이동가옥인 ‘파오’에서 생활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경험을 다시 작품에 반영할 계획이다. (02)760-4850∼2

 

◆작가의 내면 들여다 보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드로잉, 작가들의 방’전은 작가들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참여 작가는 김영미·변웅필·박재용·알랭 까르데나스-카스트로(프랑스)·나탈리 타쵸(프랑스)·리차드 홀란드(미국) 등이다. 드로잉이 단순히 스케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회화의 한 장르로 인식해 가는 추세를 반영한 전시다. 6명의 작가는 이미지 채집을 통해 기억을 되새기는 작품들을 그려내기도 하고, 은폐된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의 위치와 사회적 풍경을 위트 있게 그려내는 작가도 있다. 작가들이 자신만의 은밀한 방을 보여줌으로써 소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강효연 큐레이터는 “관람객 또한 자신들은 어떤 방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02)734-7555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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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_20100808

“무대도 객석도 없다”..전시장 연극 줄이어

기사입력 2010-08-08 07:07 | 최종수정 2010-08-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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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무대와 객석을 갖추지 않은 미술 전시장들이 연극 공연장으로 속속 변신하고 있다.

대관료가 극장보다 상대적으로 싼 데다 전시와 영상 예술이 뒤섞인 형식 파괴 연극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연출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 제작사인 코르코르디움은 오는 20-29일 미술 전시 공간인 ‘대학로 갤러리’에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프랑스 연극 ‘파이의 시간’을 선보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 ‘라뮤지카’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2004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데 이어 이번 공연은 갤러리로 장소를 옮겨왔다.

갤러리 입구에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해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 30분 동안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뒤 연극을 시작한다.

제작사 관계자는 8일 “갤러리 공간이 주는 느낌에 맞게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 방식도 확장했다”면서 “관객이 직접 다양한 오브제와 영상 예술을 체험한 뒤 연극을 관람함으로써 몰입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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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그린피그는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전쟁이 주는 상처를 재조명한 창작극 ‘의붓기억’을 공연 중이다.

이 미술관의 지하와 1층 전시장을 넘나들며 선보이는 형식 파괴 공연으로, 희곡을 기반으로 하는 연극 형식에서 벗어나 연기와 음악, 영상, 미술 등의 장르를 한 데 뒤섞었다.

윤한솔 연출은 “소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인위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 공간 활용이 자유롭다”면서 “관객들에게는 가려졌던 무대 뒤편까지 노출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를 날 것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연구소 마찰은 지난달 6~10일 여관을 개조한 전시 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각색한 창작극 ‘곶나들이’를 공연했다.

배우들이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공연하는 즉흥극으로, 무대뿐 아니라 좌석마저 없애 관객들이 아예 서서 관람해야 하는 연극이다.

이 극단 관계자는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조명이나 음향 같은 기술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극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면서 “무대와 객석을 없애면 관객의 코앞에서 배우의 연기가 펼쳐지는 상황이 벌어져 연극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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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적 의미가 깊은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올해 4번째 전시를 개최한다. 반어법적인 이미지를 형상화 해왔던 강지오 작가의 대표 캐릭터인 토끼를 입체화한 작품으로 꾸며질 ‘느림보토끼’ 전이다.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자료제공 |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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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호 작가의 작업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 명료하게 답을 내리기 힘든 문제에서 모순을 겪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그로인해 발생되는 모순에서 떠오르는 심상들을 기호화된 사물들로 기록하는데, 이는 관객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련의 과정 거친다. 그 속에서 나온 기호 중 하나인 ‘느림보 토끼’는 자기 본연의 모습과 개인이 쉽사리 벗어 던질 수 없는 자신과 연결된 여러 요소들의 충돌을 의미하고 있다. 가령 거북이 껍질을 등에 업은 토끼가 진땀 흘리는 형상의 경우는 삶의 부조리에 대한 문제를 담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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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는 탁한 분홍색 안개가 감도는 모호한 공간을 무기력하게 부유하는 거북의 껍질을 쓴 토끼, 기관이 달팽이처럼 변이한 토끼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단지 빠름과 느림이라는 속도의 문제를 넘어선다. 각자의 트라우마를 껴안은 채 세상과 융화되거나 대적해가는 주관적인 응시인 것이다. 이번 ‘느림보토끼’ 전은 기존의 페인팅 작업을 입체화하여 보안여관이라는 특수한 장소성을 지닌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보안여관의 예술을 파는 가게에서 캐릭터 느림보토끼의 머천다이징 상품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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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aSSET_2010.8월호(ISSUE N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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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 Tree_201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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