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_11.03.28

[여의춘추-손수호] ‘보안여관’을 아십니까?

햇살 눈부신 주말 오후, 서울 서촌의 한 폐옥으로 문화인들이 모여들었다. 집결지는 통의동 2-1 보안여관. 프리모 레비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노마드북스) 출간을 기념하는 북 퍼포먼스가 열렸다. 기타와 피리, 리코더가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시를 낭독하고 춤을 추면서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의 삶을 반추했다. 시인 이문재, 소설가 김애란 등이 낭송에 참여하고 정영두가 무용을 맡았다.시집을 편역한 이산하 시인은 24세에 나치에 납치됐다가 1987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탈리아 작가의 처절하고도 치열한 일대기를 추억했다. 그는 북 퍼포먼스를 “레비에게 24년 만에 바치는 진혼제”라고 말하면서 “내 안의 나치를 만나는 시간으로 삼자”라고 나지막이 호소했다. 행사는 지붕과 기둥, 벽체만 남은 폐허와 같은 곳에 이루어져 효과가 배가됐다.

근대시인들 체취 담긴 廢屋

이제 프리모 레비의 이름을 떼놓고 ‘통의동 보안여관’을 들여다볼 시간. 여관이 자리한 경복궁 서쪽 ‘통의동’은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살던 곳이다.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이 벗들과 노닐었고, 추사 김정희가 여기서 문예를 닦았다. 이상의 ‘오감도’에 나오는 ‘막다른 골목’도 이쯤이다. 지금은 인사동에서 건너온 화랑과 대안공간, 출판사, 건축사무소가 하나둘 둥지를 틀어 새로운 예술촌을 형성하는 중이다.

‘보안여관’ 이름에서도 의외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작명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여관은 본시 사람들이 머물고 떠나는 곳이니, ‘편안을 지킨다’는 뜻은 숙박업의 옥호로 안성맞춤 아닌가. 국가보안법이 1948년에 제정됐고 여관의 건립연도가 1930년대이니 단어의 순수성에 대한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핵심은 문학과 미술의 흔적이다. 시인 서정주는 1930년대에 이곳에 머물면서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시인, 화가 이중섭이 뻔질나게 드나들어 여관의 문지방을 닳게 했다. 문학사의 중요한 장면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연출된 것이다.

보안여관은 2004년에 문을 닫았다. 얼추 80년간 서촌에서 나그네들을 맞다가 장소와 시설 여러 면에서 여관의 기능을 다해 자연사한 것이다. 최초 인수자는 지하를 파서 공연장을 꾸미고 싶어 했으나 청와대 주변의 집회시설은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메타로그 대표 최성우에게 넘겼다.

최성우는 프랑스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꽃무늬 벽지가 뜯겨지고 서까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곳을 부동산 혹은 물리적 구조물로 보지 않았다. 옛 건물을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지어 가게나 들이면 좋으련만 이 곳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소중했다. 그는 고심 끝에 보안여관을 ‘예술이 쉬어가는 문화숙박업소’로 명명하고 전시장으로 개방하고 있다.

지금도 보안여관 내부에는 옛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숙박요금은 8000원에 멈췄다. 현관에는 거울이 걸려 있고, 그 거울에는 ‘일상의 다섯 가지 고마움’이라는 옛글이 쓰여 있다. “고맙습니다-감사의마음, 미안합니다-반성의 마음, 덕분입니다-겸허의 마음, 제가 하겠습니다-봉사의 마음, 네 그렇습니다-유순한 마음.”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삐걱거리고 방구석마다 거미줄이 걸려 있다.

새로운 한국문화 발신지 되길

앞으로 보안여관은 어떻게 될까. 폐허로 남을까, 리모델링을 할까. 최성우는 신중하게 인문적으로 접근한다.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 ‘보안백서’를 발간하고 문화재생공간 혹은 새로운 문화의 발신지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건물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해놓고서는 오래된 미래를 지향하며 먼 길을 천천히 걷고 있다.

서울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부수고 없앴다. 지금 서촌에서도 옛것을 헐고 새것을 짓는 일이 한창이다. 보안여관은 한국문학의 역사스페셜이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통의동을 찾아 보자.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오마이뉴스_20110315

그 거리에서 통(通) 하였느냐

경복궁 돌담길 따라… ‘통의동’ 나들이
11.03.15 16:23|최종 업데이트 11.03.15 16:23|김종성(sunny21)
서울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깨끗하고 살기 편하다며 너도나도 아파트로 몰려가더니, 다시 옛집의 추억이 그립다며 한옥을 찾아 나선다. 겨울의 차가움이 한결 부드러워져 여행하기 좋은 요즘, 지난 13일 주말을 맞아 한옥마을이 있는 종로에 가보니 맛집을 찾아온 미식가들과 풍경을 찾아온 사진가들이 인도에 가득하다.

봄날의 나들이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종로의 삼청동과 인사동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발길을 돌리다 도착한 곳이 경복궁 돌담길의 영추문이 이정표처럼 서 있는 통의동이다. 양반들이 살던 북촌 한옥마을과 달리 평민과 중인들이 살던 서촌 한옥마을이 있는 동네로,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맘에 와닿는다. 서울, 그것도 청와대 바로 앞에 있는 동네지만 외지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 통의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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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 역사의 힘이 느껴지는 동네 통의동
ⓒ 김종성

통할 통(通), 뜻 의(意) – 통의동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면 경복궁 돌담과 함께 청와대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통의동이다. 앳된 얼굴의 의경들이 산책하듯이 시민들과 함께 걸어 다닌다. 죄지은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더구나 자전거를 탄 나 같은 사람은 왜 그리 더 유심히 관찰(?)하는지 모르겠다. 자전거 탄 테러리스트는 못 들어봤는데 말이다. 오랜 세월 권력의 기세에 눌려 산 탓일까. 통의동의 첫인상은 마치 숨죽이고 있는 듯 했다.

경복궁 돌담길을 걷다가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 앞에 섰다. 궁궐의 출입문에 계절을 상징하는 이름을 붙이다니, 우리 조상들의 낭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아직 시민들에게 개방하지 않은 영추문 너머의 높은 기와지붕 위에 있는 서유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앙증맞은 모습에 긴장감이 풀린다.

통의동에는 이 영추문길을 중심으로 한옥마을, 미술관과 독특한 카페, 책방이 들어서 있다. 주민들 외엔 유동 인구가 거의 없던 동네에 문화, 예술인들의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 위로는 청와대를 두고 바로 옆으로는 경복궁을 두었으니 예로부터 권력과 가까웠던 동네인데, 그 동네의 이름이 ‘뜻이 통한다’, ‘소통한다’는 의미의 통의동이니 현재의 정치 상황과도 결부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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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의동은 멋진 예술을 보여 주면서도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곳이 많아 고마운 동네이기도 하다.
ⓒ 김종성

미술관이 된 여관, 멤버십 헌책방

이 지역은 이웃 삼청동이나 가회동, 소격동처럼 화려하지 않다. 눈길을 끄는 큰 기와집이 없고, 사진에 담고 싶은 돌담도 경복궁 담을 제외하면 없다. 하지만 웅장하게 이어지는 경복궁 돌담과 청와대로 안내하는 효자동 길, 정부청사 별관이 묘한 긴장감을 뿜어내면서 오래된 한옥과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에서는 진한 소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난다. 언뜻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분위기의 공존, 통의동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동네 골목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다양하게도 꾸며놓은 미술관, 갤러리, 책방들은 통의동 나들이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한때 서정주 시인이 묵으며 살았다는, 지금은 미술관이 된 보안여관, 앉아 쉬기 좋은 마당이 있는 한옥집에 만든 사진 갤러리 류가헌(流歌軒), 회원제로 운용 중인 독특한 헌책방 가가린, 멋진 미술 작품들을 보여주면서도 입장료를 여전히 안 받는 통의동의 터줏대감 진화랑 등, 이들의 특징이라면 어느 한 곳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고 야트막하다.

특히 보안여관은 광복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 전 장기 투숙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으로, 이들은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준비하거나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기웃거렸다고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주고객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지금도 보안여관을 ‘청와대 기숙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렇게 통의동엔 멀리 조선시대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의 예술가들이 살았다니 문화와 역사의 힘도 느껴지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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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기운에 집 대문 밖에 나와 앉아 실을 감는 주민의 모습이 정겹다.
ⓒ 김종성

이정표 대신 사람에게 길을 묻는 동네

통의동의 가옥들은 하늘을 가리지 않는다. 골목에 서서 고개를 조금만 들면 저 앞 청와대 뒤 북악산의 풍모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훤히 보인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의외의 막다른 길을 만나도 답답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은 이유다. 봄기운 덕분에 주민들도 집 밖으로 많이들 나와 계셔서 이정표를 보는 대신에 길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골목길 담장 위의 고양이들에게 안 됐다는 동정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잰걸음으로 동네에서 가까운 통인시장에 가시는 할아버지가 계신가 하면, 집 대문 앞에 턱 앉아 양 다리에 칭칭 두른 실뭉치을 풀면서 실패에 감아 정리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도 계시다. 어쩜 그리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과 똑같은지. 동네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아주머니 앞에 앉아 이것저것 실없이 말을 붙여보기도 하고, ‘실패란 실을 감는 것이구나’ 하고 썰렁한 유머가 떠올라 혼자 실실 웃기도 한다.

시간이 무척 느리게 가는 동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 시간이 되었다. 아까 구부정한 걸음으로 시장에 가신다던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도 통인시장에 가보았다. 동네를 닮은 작고 아담한 시장통 길을 걸어가다 멈춘 곳은 바로 떡볶이집. 그것도 그냥 떡볶이가 아닌 간장 떡볶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재료가 할머니의 오랜 내공으로 말미암아 별미로 태어난다.

인근 효자동과 함께 통의동은, 옛건물은 무조건 죄다 흔적 없이 허물고 고층 아파트와 사무실로 바꿔 짓는 재개발만이 능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문화와 역사를 살리는 동네가 도시 곳곳으로 번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재개발로 말미암아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짓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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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9시 뉴스_20110211

여관의 재탄생‥옛 건물 부수지 않고 공간 재활용

김소영 기자 기사입력 2011-02-11 22:06 최종수정 2011-02-11 22:53

 

 

mbc110211

-ANC-

여관은 분명한데 여관이 아니고 오래된 창고인데 창고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오래된 건물들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갤러리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김소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VCR-

서울 통의동 길가에 큼지막한
‘여관’ 간판이 보입니다.

겉모습만 여관일 뿐

들어가 보면 건물 뼈대가
앙상히 드러나
세월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SYN- 창파/큐레이터
“벽지들이 층층이 다 다른 게
남아 있잖아요. 일제시대 때
신문이 이렇게 벽지로 발라져 있어요.”

그런데 이 벽에
멋스런 작품이 걸립니다.

시인 서정주가
동인지 <시인부락>을 구상하고,
이상이 작품
<오감도>의 영감을 얻은 곳.

70년 남짓 여관으로서의
수명을 마치고,
작가와 관람객이
만나는 공간이 됐습니다.

-INT- 최성우/’문화공간 보안여관’ 대표
“보통 일반 갤러리에 안
들어가시던 분들이 막 들오세요.
그러니까 아기 업은 아주머니도
들어오시고 등산 갔다가 내려오시다가
배낭도 메고 들어오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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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해안동 일대 공장 건물도
복합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지은
붉은 벽돌 건물 13개 동을

갤러리와 작가 작업실,
주민 미술교육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INT- 이승미/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10년에 걸쳐서 논의한 끝에,
돈을 가지고는 만들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문화적인 장소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칙칙한 공장가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서로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대적인 건물과 세월을
끌어안은 건물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제 우리 갤러리문화도
‘성장’에서 ‘성숙’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느낌입니다.

MBC뉴스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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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_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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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청계천변에 가득한 헌책방에서 책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일과 피카디리의 빨간 문 앞에서 가슴 졸이며 영화표를 사던 것도. 기억은 여전히 견고한데 그 기억과 어우러진 공간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속도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다. (2011-02-08)
통의동 보안여관에 투숙하는 법
되돌아보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청계천변에 가득한 헌책방에서 책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일과 피카디리의 빨간 문 앞에서 가슴 졸이며 영화표를 사던 것도. 기억은 여전히 견고한데 그 기억과 어우러진 공간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속도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다.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통인동 보안여관이 바로 그곳. 외관상 오래된 여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이곳에 머무는 이들을 ‘문화투숙객’이라고 일컫는다.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참으로 오래된 곳. 보안여관 앞에 서면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눈 덮인 영추문 앞 길에 위치한 통의동 보안여관의 허름한 외벽은 그 건물이 버텨왔던 몇 십 번의 봄과 겨울을 말해주는 듯 하다. 어느덧 오래된 것이 희귀해져 버린 서울 하늘 아래, 이토록 낡은 건물이 헐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일말의 희열마저 안겨준다. 여관의 작명 치고는 지나치게 엄숙한 ‘보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 이곳의 주된 손님은 이른바 ‘관’과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헐리기 전엔 그곳 중앙박물관이나 근처에 위치했던 문화재청에 볼일이 있던 사람들이 주로 묵었다고 한다. 오래 전, 1936년에 쓰여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전집에 의하면 그는 이곳 보안여관에 머물며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의 문인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단다. 인걸은 간 곳 없지만 장소는 변함없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몇 줄의 글귀와 함께.
지금 통의동 보안여관을 소유하고 있는 메타로그의 최성우 대표는 이 기록에는 약간의 의문점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문헌에 드러난 보안여관의 역사는 1936년 이전부터라지만 건물 지붕 상판에 적힌 건축연도는 1942년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만약 이 기록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거짓말쟁이는 누구인가. 여관의 지붕을 올렸던 미장이? 아님 서정주 선생? 최성우 대표는 솟아오르는 의문을 이렇게 정리해준다.

“건축하는 분들에게 여쭤 보니 아무래도 건물이 증축이 되었거나 아니면 원래 이층이었는데 증∙개축을 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이곳은 일제 시대 때 일본식으로 지어진 건물인데도, 여타의 적산가옥과 출입구라던가 이런저런 형태가 조금씩 달라요. 많이 고친 집일 것이고 1936년 전에도 분명 존재했겠죠.”

통의동 보안여관이 본래의 역할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쿤스트독 갤러리의 주최로 진행된 통의동 경수필전이 그 시작. 전시를 진행하며 보안여관이라는 공간 안에 숨겨졌던 역사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단지 보일러실로만 알고 있었던 여관의 지하공간에는 근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슬라이드와 자료들이 숨겨져 있었다. 곤도 유카코라는 일본 작가에 의해서였다. 크고 작은 전시를 진행하며 통의동 보안여관은 조금씩 오래된 숙박업소 이상의 의미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바로 그 이름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통의동 보안여관은 그 오래된 이름을 버리지 않을 예정이란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를 함축한다. 첫 이유는 이곳이 말 그대로 ‘여관’이기 때문. 끊임없이, 이름 모를 객들이 오가는 여관의 정체성은 인생과 예술의 그것과 참 닮았다. ‘문화투숙객’이라는 용어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더불어 ‘통인동 보안여관’이 가진 본래의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정체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 옛날, 문인들이 잠시나마 머물렀던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21세기에 이르러 색다르게 재구성된다.

통인동 보안여관을 관리하고 있는 메타로그의 사무실 벽에는 프랑스어로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건물은 짓는 것이 아니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등산을 마친 아저씨가,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지나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그런 공간. 통인동 보안여관이 지향하는 바는 의외로 뚜렷하다. 뭐 굳이 거창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그 누구나 한번쯤은 흘낏거릴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 손마디 굵은 촌부에게도 늘씬하게 차려 입은 부인네들에게도 차별 없이 열려있는 문화적 플랫폼과 같은 곳. 통인동 보안여관을 지키는 이들은 그네들의 이 공간이 그렇게 ‘자라나길’ 희망한단다. 비록 허름하고 춥고 심지어는 으스스하기까지 하지만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온기가 계속된다면 이런 소망은 그리 덧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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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득한 집_2011.2월호

[리빙 디자인]
거울, 공간을 디자인하다
맑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으로 뛰어든 나르시스의 슬픈 전설, 아치형 대형 거울로 유명한 베르사유 궁, 백설 공주까지. 신화나 동화 속에 등장하는 거울은 언제나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우리를 매료합니다. 거울은 얼굴을, 외모를 담는 역할을 넘어 화려함을 더하는 장식적 재료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안주인의 솜씨와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무척 중요한 오브제라고 하지요.거울은 프레임 종류나 조각 기법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설치하는 장소에 따라 그림보다 더 멋진 아트 월이 되기도 합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현실보다 풍요로워 좁은 공간은 물론 천장까지 활용합니다. <행복>은 일상에 감각을 더하는 ‘거울’을 주제로 특별한 오브제를 선보인 다섯 작가를 만났습니다.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부터 거울 데커레이션이 돋보이는 상업 공간, 우리 집에 맞는 거울 디자인과 구입처까지, 거울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Part 1 작가, 거울을 말하다
거울을 닮은 다섯 사람에게 듣는 거울의 가장 아름다운 단면. 때론 소박하고 때론 멋스럽게, 명민하고 화려하게 공간을 완성해주는 오브제와 그 순간을 기록했다.

 

설치 작가 차명혜 씨
거울,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희망 오브제
거울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은 두 가지다. 전신을 비추거나, 옷매무새를 확인하거나. 설치 미술가 차명혜 씨의 거울 작품은 거울이 수행해야 할 이 기본 사명 대신 흐르는 풍경을, 시간을, 빛을 담는 역할을 택했다. 예전부터 창작하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메타로그의 최성우 대표는 파리 유학 시절 알게 된 설치 미술가 차명혜 씨에게 낡은 적산 가옥에 어울릴 만한 설치 작품을 의뢰했다. 프랑스 보자르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활동하다 6년 전 귀국한 차명혜 씨는 마침 보안여관에서 LED 조명과 거울을 함께 설치한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거울을 소재로 완성한 작품, 일명 ‘미러볼’은 오래된 적산 가옥 지붕 아래에서 가벼운 깃털 날개를 달고 부유한다. 공기가 순환하면 거울 조각이 움직이면서 햇볕을 반사해 벽면에 반짝이는 빛을 흩뿌리는데, 마치 어린 시절 손거울로 햇볕 총을 쏘던 추억을 연상시킨다. 해가 지면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미세한 LED 조명과 마주해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변신한다. 그는 거울의 ‘맑음’에도 주목한다. 누구든 내면에 긍정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그 내면에 숨어 있는 모습을 자극하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 . “사물을 비추는 거울은 많아요. 하지만 상처받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요?” 거울 조각이 유난히 작은 것은 아마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비추기 때문이리라. 그런 만큼 거울은 아주 작은 조각이어도 상관없다. 보려는 마음만 있으면 될 테니. 촬영 협조 메타로그

 

크리스털 공예가 홍현주 씨
낡은 고재와 화려한 거울이 만났을 때
도곡동 라쉐즈 쇼룸에 들어서면 손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거울이다. 벨을 누르고 쇼룸을 지나 사무실로 내려가는 내내 마주하게되는 온갖 형태의 거울. 그토록 다양한 거울을 보며 감탄하는 표정은 여인의 얼굴에, 고슬고슬한 고봉밥에, 소반에, 책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라쉐즈 홍현주 대표는 우리나라 고가구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멋을 발견하고, 크리스털과 옛 물건 장식을 더해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소품을 완성하는 작가다. 그가 만든 거울은 한마디로‘형태의 자유로움’이라 정의할 수 있다. 평범한 액자 프레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문짝, 솥뚜껑, 빨래판, 함지박 등 낡은 물건이 프레임이 된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낡은 고재는 크리스털, 놋수저 등과 만나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함의 대명사인 거울이 된다. 양극단의 조화 때문일까? 그렇게 완성된 거울은 소박함과 화려함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표현해낸다. 이번 칼럼에 소개하는 거울은 솥뚜껑으로 골조를 만들고 놋수저를 이용해 꽃문양처럼 프레임을 완성했다. 마치 새해맞이 인사를 하듯 빙그레 웃는 ‘해님’을 연상시키는 작품. “거울은 낡은 나무 소재가 바탕이 되면 소박한 오브제가 됩니다. 집 안 구석구석에 이런 재미난 형태의 거울을 다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생생한 표정을 불어넣을 수 있지요.” 화려한 느낌을 더하고 싶다면 조명을 활용하라는 홍현주 대표. 거울 프레임에 크리스털 장식과 은은한 알전구를 더하면 거울이자 아늑한 조명이 된다는 팁도 곁들였다. 촬영 협조 라쉐즈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이정화 씨
거울, 반전의 묘미

“거울은 좁은 공간을 바꾸고 싶을 때 가장 효과적인 아이템이지요. 어떤 면을 커팅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집니다. 단, 창과 같아서 작을수록 안락하고, 클수록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어요. 자연의 품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한 타샤 튜터 할머니 방의 창문이 무척 작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공간, 예를 들어 스파라면 큰 거울보다는 작은 거울을 추천합니다.” 수많은 데커레이션 소품 중 특히 ‘거울’을 편애한다는 스타일리스트 이정화 씨. 감각적인 거울 인테리어로 화제를 모은 뷰티 숍, 조성아 앳폼과 라뷰티 코아 도산점 인테리어가 모두 그의 솜씨다. “라뷰티 코아 도산점에는 화장대를 거울로 감싸 제작했어요. 화장대 거울 한쪽에 매화를 실사 프린팅했는데, 거울 자체가 하나의 화폭이고, 비친 얼굴은 작품이 됩니다.” 예전에는 거울 하면 으레 어떤 프레임을 고를 것인지를 물었지만, 요즘은 어떤 ‘커팅’을 원하는지를 물을 정도로 프레임의 종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해마다 찾는 파리 메종&오브제 박람회에서 유럽인의 각별한 ‘거울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부티크 호텔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세계 유수의 호텔마다 거울 데커레이션이 왕왕 등장한다. 규모가 작은 부티크 호텔을 보다 에지 있는 공간으로 연출하는 데에는 거울만 한 소품이 없기 때문. 보통 입구에는 크고 화려한 거울을, 룸에는 모던하면서도 디자인을 가미한 작은 거울을 여러 개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티크 비즈니스호텔을 표방하는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유럽의 클래식한 거울 데커레이션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가 레노베이션을 맡은 이곳에서는 유난히 거울을 많이 볼 수 있어요. 만약 좁은 방이라면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게 달아보세요. 마주 보도록 거울을 달면 공간이 회오리치는 현상을 담을 수 있지요. 간단한 원리지만 공간에 신비로운 느낌을 불어넣는 색다른 오브제가 됩니다.” 집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볼록 서클 거울을 달면 공간에 생동감을 줄 수 있다고 귀띔하는 이정화 씨. 이쯤 되면 그를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거울 전문가라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촬영 협조 서울 프라자 호텔

스타일리스트 이정화 씨의 제안,
우리 집을 180도 변화시키는 거울 데커레이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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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싱 룸을 꾸밀 때에는 양쪽에 거울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옷을 입고 뒤태를 보는 것 또한 중요하기때문이다. 단, 거울을 마주 보게 달면 모든 것을 다 비춰 무척 복잡한 공간으로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할 것. 한쪽 면에 전면 거울을 달았다면 맞은편, 보통 붙박이장이 있는 맞은편 공간에는 문 안쪽에 거울을 달아 필요할 때만 열어볼 수 있도록 배치한다.
2 서재나 장식장 뒷면에 거울을 붙이면 오브제를 두었을 때 거울에 비치는 효과가 멋스럽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어지러워 보일 수 있으므로 흑경이나 블랙 아크릴 거울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3 현관에 두는 거울은 자체로 오브제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 좋다. 프레임이 두꺼운 나무 프레임의 전신 거울은 안정적이면서도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 라이트 드로잉 아티스트 최수환 씨
수천 개의 구멍과 빛이 만드는 환영
거울 속에 투영된 이미지는 시각적인 인식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거울의 속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라이트 드로잉 아티스트 최수환 씨.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의 눈이 인식하는 경계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프레임으로 장식한 흑경의 형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아요. 네모난 블랙 아크릴판일 뿐이죠.” 아크릴판과 LED 조명을 이용해 입체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평면 작업을 전개해온 최수환 씨. 그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블랙 아크릴판에 수천 개의 구멍을 뚫어 첨단 LED 기술을 이용해 거울을 상징하는 프레임의 이미지를 구현해냈다. 불이 켜지면 이미지가 형상을 드러내며 최수환식 라이트 드로잉이 완성된다. 라이트 드로잉 앞에 선 관객은 다양한 구멍의 크기로 인해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경험하지만, 그는 그것조차 빛이 만들어내는 트릭이라 역설한다. 거울은 더 이상 실용 소품이 아니다. 거울의 다양한 가능성은 첨단 기술과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통해 실험적인 아트 월로 거듭났다.

(오른쪽) 빈티지 컬렉터 사보 씨
스토리가 담긴 빈티지 거울의 매력

일러스트 작가라는 본업보다 빈티지 컬렉터로 더 유명한 사보 씨. 얼마 전 PMK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그가 선보인 거울 컬렉션은 좀처럼 보기 드문 오리지널 바우하우스 디자인 제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략 3백 개가량의 거울을 소장하고 있다는 그에게 거울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프레임 하나로 저마다 다른 표정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매개체가 흥미로웠어요. 나라별 또는 연도별로 저마다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 컬렉션하는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일상의 물건이라는 점, 생활과 밀접한 디자인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죠.” 그가 소장하고 있는 거울은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장식적인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실용성과 조형미의 경계쯤에서 언제나 거기 있었던 듯 담담하게 놓여 있을 뿐이다. “제 컬렉션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만든 시기나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보다는 거울의 쓰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끌어당기는 디자인을 골라요.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은 세월에 상관없이 그 가치를 발하니까요.” 얼마 전 새로 옮긴 작업실에서 다시 만난 1960년대 독일의 알리베어트사에서 생산했다는 원형 거울과 심플한 블랙 프레임의 1940년대 빈티지 거울은 혼자 또 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Part 2 상업공간에서 찾은 거울 데코레이션 아이디어
이제 거울은 단지 생활용품이 아니다. 흑경에 실사 프린팅해 거대한 작품처럼 연출한 아트 월부터 천장을 지배하는 거울까지, 거울로 완성한 특별한 3D 공간을 소개한다.


(왼쪽) 롯데 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클래식한 유럽 고성으로 초대
화려한 유리 샹들리에, 벨벳 암체어, 클래식한 몰딩 장식,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기에도 충분한 8인용 식탁.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프로 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이곳은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다. 각 룸마다 인테리어 효과를 배가하는 다양한 거울의 활약이 돋보이는 공간. 곡선형 벽면을 따라 가로로 길게 붙인 거울은 마치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듯한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각각의 거울을 일정한 각도로 꺾이게 연결하면 거울 표면 역시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을 투영해 더욱 입체적인 느낌의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클래식한 곡선 프레임이 돋보이는 대형 거울을 부착하고, 유리 소재의 조명등을 거울에 매치해 화려함을 부각시킨 스탕달 룸은 프레임을 강조한 멋스러운 거울 하나로 공간에 힘을 실어주는 좋은 사례다. 또한 좁은 공간에 활용하면 맞은편 공간이 거울에 투영되어 공간이 휠씬 넓어 보이는 착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 맞은편 공간이 벽면으로 막혀 있다면 오히려 답답한 느낌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문의 02-317-7183

(오른쪽) 가구 갤러리 세덱
거울 프레임으로 완성한 월 데코
각양각색의 프레임을 조합해 만드는 멋진 거울 벽을 연출하고 싶다면 가구 갤러리 세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보자. 거울을 조합해 거는 것은 그림이나 액자를 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못질을 하기 전에 거울 모양대로 자른 종이견본을 준비한 다음 다양한 형태로 배열해보면 안정적인 구도를 찾을 수 있다. 큰 거울 견본을 먼저 붙이고, 나머지 빈 공간에 작은 거울의 견본 자리를 잡는다. 이때 거울과 거울 사이의 간격은 거울 틀 두께의 두 배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액자에 비해 거울 프레임은 형태나 모양이 다양한 편. 거울을 부착할 벽면의 컬러는 동일한 톤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또한 거울 속에 무엇이 비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맞은편 벽면에 놓일 가구의 컬러나 소재까지 고려하면 멋진 거울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가구 브랜드 세덱에서 선보이는 클래식한 프레임의 거울은 벨기에의 수공예 거울 브랜드 덱뉜트 미러 Deknudt Mirror 제품이다. 문의 02-549-6701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
거울 속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은 왕실의 사교 모임과 외국 대사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해왔다. 화려하고 값비싼 거울로 17개의 홍예문을 가득 채웠고, 대리석 바닥과 금 촛대, 샹들리에 등으로 치장한 공간이 거울에 비쳐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 ‘거울의 방’을 재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디아섹 diasec보다 빛 반사가 덜한 뮤라섹 mulasec으로 ‘거울의 방’ 사진을 실사 프린팅하고, 맞은편에 거울 벽을 세워 공간 안에 서면 실제 베르사유 궁의 ‘거울의 방’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문의 02-325-1077~8


(왼쪽) 광화문 가든 플레이스 바 Bar 153
거울의 은밀한 매력에 빠져드는 공간
바 153에 들어서는 순간, 2층 높이의 거대한 거울 벽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숲의 이미지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거울에 세로줄을 에칭 etching처리해 뿌옇게 만들었다. 불투명한 세로줄무늬 패턴이 반복되어 공간이 은밀하게 거울을 통해 비친다. 한쪽 벽에는 영화 <필로 북 pillow book>의 흑백 사진을 프린팅한 시트지를 붙인 대형 거울을 부착했다. 이를 통해 여주인공의 상반신에 바 공간이 비쳐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적나라하게 모든걸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에 에칭 처리와 시트지를 통해 비밀스러움을 더한 바 153에서 위스키보다 강한 거울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문의 02-724-0153

(오른쪽) 신사동 레스토랑 컬리나리아
거울과 음식의 맛있는 하모니

크기, 모양, 프레임이 모두 다른 50여 개의 거울을 천장에 붙인 독특한 인테리어를 선보이고 있는 레스토랑 컬리나리아. ‘거울’과 ‘음식’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공간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거울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장에 달린 거울을 통해 옆 테이블의 음식, 낯선 이의 표정, 바깥 풍경을 엿보는 특별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입으로 먹는 음식은 하나지만 눈으로 맛보는 요리는 여러 개인 셈. 수십 개의 거울이 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담아내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문의 02-515-0895

 

요즘 인기 디자인!
모던 공간에 부활한 멋스러운 거울 한 점

최근 레이저로 정교하게 커팅해 프레임을 입히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거울이 인기다. 디자인은 심플하되 거울 자체의 커팅만으로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다양한 제품을 소개한다.

1 사각형 거울에 나무 프레임을 삽입해 수납이 가능하다. 디사모빌리(02-512-9162)에서 판매.
2 다이아몬드 모양의 벽걸이 거울은 디사모빌리에서 판매.
3 핸드메이드 베네치안 에르메스 골드 프레임 거울은 안나프레즈(031-717-5031)에서 판매.
4 큰 타원형 거울에 작은 타원형 거울 하나가 들어가 있는 재미난 디자인. 나뚜지( 02-571-5886)에서 판매.
5 빗살 무늬 프레임 자체가 거울인 감각적인
디자인의 원형 거울은 세덱(02-541-0269)에서 판매.
6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거울로, 여자아이 시리즈도 있다. 도데카(02-3445-0388)에서 판매.
7 화려하고 정교한 유리 조각이 돋보이는 베네치안 거울은 안나프레즈에서 판매.
8 프레임 대신 가장자리를 꽃모양으로 정교하게 커팅한 아크릴 소재의 거울은 도데카에서 판매.

거울을 맞춤 제작하려면 거울이 깨졌거나 마음에 드는 액자 프레임을 발견해서 ‘거울’을 맞추고 싶다면 거울 가공이 가능한 중간 도매상을 찾아가보자. 영동제경사(02-567-4689), 광성제경사(02-832-8525), 준포스터(02-3442-4191) 등에서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거울을 맞춤 제작할 수 있다.

행복이 가득한 집 (2011년 2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행복이 가득한 집 (2011년 2월호) | 기자/에디터 : 이지현, 성정아 / 사진 : 박찬우,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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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진201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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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골목마다 옛 서울의 정취와 여유로움이 숨쉬는 서촌이 뜨고 있다. 도심과 가깝지만 시골처럼 한적한 분위기가 있고 교통도 편리해 주말의 산책코스로 인기다. 특히 통의동은 특색 있는 갤러리와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상업화와 번잡함으로 문화거리의 고유한 매력을 잃어버린 인사동과 삼청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 | 월간사진 박지수 기자
정취 있는 골목과 한옥, 살아남은 아이러니한 공간

통의동은 효자로와 자하문길, 율곡로와 영추문길에 둘러싸인 약 1,300평 면적의 동네로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남아있어 옛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의 어깨넓이 정도의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있고, 길고양이들이 한가로이 담벼락을 지키며, 철대문 앞에 놓여있는 연탄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통의동은 마치 김기찬 사진의 한 장면 같다. 통의동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 때문이었다. 청와대 아래에 위치해 군사정권 시절에는 극심한 건축규제와 주민통제를 당했다. 옥상에 올라가 고추를 말리거나 집을 수리하는 것까지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 통의동 에 대한 권력의 통제가 지금에 와서는 통의동이 옛 모습을 지키도록 도와준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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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만 20곳, 영추문길 사이 빼꼭히 자리한 이색공간

타임캡슐처럼 시간이 멈춘 통의동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택일색이었던 통의동에 갤러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72년 진화랑을 시작으로 2002년에 옛 말레이시아대사관 건물에 사진전문 미술관인 대림미술관이 들어왔고, 2003년에는 브레인팩토리 갤러리가 들어와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제공하는 대안공간의 명소가 되었다. 그 다음 쿤스트독 갤러리, 갤러리팩토리, 스페이스15번지 등 크기는 작지만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대안공간의 성격이 강한 갤러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작년 2월에는 팔레드인서울 갤러리가 개관했고, 11월에는 인사동에 있던 아트사이드 갤러리가 통의동으로 옮겨왔다. 현재 통의동에는 영추문길을 중심으로 20여개의 크고 작은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갤러리 이외에도 디자인 공방 워크룸과 아트가구 카페 MK2, 인테리어북 카페 B612, 헌책방 가가린, 디저트 카페 디어플라잉팬 등 특색 있는 공간들이 영추문길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대부분 옛 서울의 분위기와 향수를 간직한 통의동 골목에 매력을 느껴 이곳으로 들어왔다. 워크룸의 박활성 에디터는 “디자인 사무실을 내기 전부터 통의동을 좋아했다. 서울에서 이런 골목동네를 이젠 보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대료가 쌌다”면서 통의동에 들어온 이유를 말했다. 삼청동이나 인사동에 비해 싼 임대료는 통의동을 선택하는 현실적인 이유다. 그러나 오래시간 묵혀온 문화적 전통과 분위기도 함께 통의동을 택하는데 한몫했다.

조선시대 중인의 문학과 정체성이 태동한 땅

통의동은 조선시대 양반과 양인(일반 백성) 사이의 계급인 중인이 살던 서촌 지역의 하나다. 중인은 의관이나 역관 등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아전 등 행정직에 종사해 지배층의 말단을 차지했다. 통의동과 창성동 지역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쓰는 음식재료와 땔감 등의 생필품을 관리하는 사재감이 있었다. 그리고 각종 공방들도 많았고 내시들도 이 일대에서 살았다. 또 궁궐 관료들의 출퇴근로였기 때문에 상권이 발달하고 활기를 띠었다. 중인들은 통의동을 포함한 서촌지역에서 생활하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당한 자본을 축적했다. 그리고 양반에 견줄만한 문화적 역량을 쌓았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여항문학이다. 여항(閭巷)이란 도시의 골목길이란 뜻으로, 조선 선조 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중인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학을 말한다. “통의동은 조선시대 사회와 문화예술의 저변을 형성했던 중인들이 살던 곳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대변하며 지금도 그것이 전해지는 곳이다.” 홍순환 디렉터(갤러리 쿤스트독)의 말처럼 통의동의 영추문길이 새로운 문화거리로 자리잡는 것은 통의동의 역사와 정체성과 부합하는 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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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문길 찾아보는 이색 문화공간

통의동에는 영추문길을 중심으로 이색적인 공간들이 많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숨어있거나 골목길 한켠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얌전히 있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작고 아담하지만 각자의 개성을 빛내고 있는 이색공간들을 찾아가본다.
보안여관
영추문 맞은편의 통의동 2-1번지에 위치한 보안여관은 메타로그 아트서비스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 문을 열어 시인 서정주가 하숙하며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과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탄생시킨 유서 깊은 곳이다. 또 청와대와 가까워 군사독재 시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주고객이었고, 경호원 가족의 면회장소로 활용됐다. 80년 동안 영업해온 보안여관은 2004년 문을 닫고 2006년 9월경에 재건축이 결정돼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 일본, 독일의 작가들이 8개월간 보안여관에서 기거하며 작업과 전시를 진행하면서 장소의 가치를 인정받아 재건축 대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됐다. cafe.naver.com/boan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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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쿤스트독 컨테이너박스
통의동의 진화랑과 아트사이드 사이에는 이상한 컨테이너박스가 하나 있다. 컨테이너 전면은 유리로 되어 있고 내부에는 조명과 설치미술품이 놓여있다. 작년부터 쿤스트독갤러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성 전시공간이다. 쿤스트독의 디렉터 홍승환은 “아직도 갤러리와 미술관의 문턱이 높고 수동적으로 관객을 기다리고만 있다. 좀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면서 컨테이너박스는 갤러리와 관객 간의 쌍방향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고 밝혔다. 컨테이너박스는 통의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현재까지 24차례 전시가 열렸다. www.kunstdo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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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공방 워크룸
워크룸은 출판사 안그라픽스 출신의 디자이너(박활성, 김형진, 이경수)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방이다. 주로 출판물 디자인을 하며 젊은 작가들의 도록을 실비로 제작해준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도록 디자인과 함께 디자인 전시기획도 병행한다. 최근에는 영추문길의 갤러리와 카페 운영자들과 함께 헌책방 가가린을 공동운영하며 소규모 출판물을 발행하는 출판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www.workro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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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북 카페 B612
영추문길에 들어서면 흰색건물에 노란색 간판이 눈에 띄는 카페 B612가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에서 이름을 따온 카페는 이름만큼이나 감성적인 분위기다. 책장에는 인테리어, 건축, 마감재 등 다양한 디자인 책으로 가득하고 인테리어 재료의 샘플도 있다. 카페는 디엔씨인테리어에서 운영하며 카페 뒤편에 사무실이 있다. 빈티지풍의 테이블과 소파, 가구들은 인테리어회사가 운영하는 카페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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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카페 스프링 컴, 레인 폴
아트사이드 맞은편에는 낡고 오래된 2층 건물이 있고 입간판에는 ‘Spring Come, Rain Fall’이라 써있다. 이곳은 문구 브랜드인 오체크(O-Check, 공책)의 사무실겸 카페. 옛날 양옥을 개조해 1층에는 카페를 2층과 3층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빈티지풍의 문구로 유명한 오체크의 사무실을 엿볼 수 있고, 입구와 계단에는 오체크의 문구와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매달 일러스트와 사진 등 전시가 이뤄져 카페 벽면에서 오리지널 원화와 프린트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www.cafe-spr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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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카페 디어플라잉팬
이태원과 가로수길에서 입소문타고 유명해진 브런치카페 디어플라잉팬이 작년에 통의동에도 문을 열었다. 영추문길의 중간쯤에 가구카페 MK2와 헌책방 가가린 옆에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은 디어플라잉팬 특유의 손으로 그린 듯한 날개달린 프라이팬 로고를 달고 손님을 맞는다. 작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고 브런치 카페에서 디저트 카페로 변신을 꾀했다. 매일 직접 만든 케이크와 쿠키 등 여러 디저트를 골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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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없는 파스타식당, 디미
브레인팩토리갤러리 아래에는 간판없는 파스타식당이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였던 이희재와 안희윤이 3년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고 생면파스타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통의동에 들어온 이들은 ‘디미’라는 식당이름이 있지만 굳이 간판을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카페가 있었는데 간판이 따로 없었어요. 저희도 그냥 간판을 달지 않았아요. 그때는 돈도 모잘랐구요.(웃음)” 이제는 간판없는 집으로 유명해진 이곳은 파스타를 비롯해 이탈리아 요리가 주메뉴이며 식당 한켠에는 주방용품과 식기를 진열해 놓고 판매한다. www.cafedi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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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갤러리자인제노 관장 이두선

절묘한 장소 이점과 규제가 만든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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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삼청동에 있다가 재작년에 통의동으로 옮겨왔다. 임대료 때문이었다.(웃음) 삼청동의 임대료가 치솟아 어디로 옮길지 궁리했다. 우선 인사동과 가까워야 했다. 삼청동도 사간동도 인사동과 가까워 그 영향권 아래에서 발달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적한 분위기여야 했다. 통의동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내보니 통의동의 매력은?
옛날 동네와 골목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 서울 4대문 안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통의동이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도 든다. 지내다보니 교통도 편리하다. 사실 삼청동은 지하철역에도 멀고, 늦은 시간에는 버스 타기도 힘들다. 경복궁역이 가까워서 좋고 주차공간도 있어 손님을 초대할 때도 좋다.

요즘 통의동에 갤러리와 카페가 많이 생겼다.
땅값이 많이 올랐다.(웃음) 얼마 전에는 인사동의 아트사이드도 옮겨 왔고, 시몬갤러리와 대전의 이안갤러리도 건물을 사고 통의동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인사동과 삼청동이 포화상태라 통의동으로 몰리는 것 같다. 갤러리가 생기면 다음은 카페가 생기기 마련이다. 갤러리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차 마시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해서다.

이런 변화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전적으로 비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청동은 갤러리 숫자에 비해 카페와 식당이 너무 많다. 상대적으로 통의동은 갤러리가 많이 생겨 다행이다. 그리고 통의동은 청와대나 관공서 건물이 많아 매매가 쉽게 이루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발억제가 된다. 삼청동처럼 개인이 건물을 사서 새로 짓는 일이 쉽지 않다. 갑자기 인사동이나 삼청동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통의동의 바람직한 변화는 어떤 모습인가?
무엇보다 갤러리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아직도 갤러리 수가 부족하다. 갤러리가 많이 생겨서 작가들이 전시할 기회가 많아져야 비싼 작품 값도 떨어질 것이다. 작가마다 1년에 개인전 한번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가격을 올려치는 것이 미술계의 현실이다. 적당한 가격으로 자주 전시해서 많이 파는 것이 미술시장에 좋다. 미술거리가 상업화되는 것은 그림보다 스파게티와 장식품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1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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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Magazine_20101112

2010 / 11 / 12
보안여관의 문화 잠재성을 엿보다.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닫혀진 회로(Closed Circuit)>전을 조명함과 동시에 보안여관의 운영자인 최성우씨를 만나보았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른바 ‘서촌’지역의 랜드마크처럼 떠오르고 있는 보안여관은 수년전까지 실제 여관으로 사용되던 낡은 건물을 인수한 최성우씨에 의해(특별한 리노베이션 없이) 자연스럽게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시끌법적한 시작은 없었으나 회를 거듭하는 전시로 인해 그 문화적 가능성과 잠재성을 인정받게 됨으로써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보안여관을 현재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인터뷰: 고원석(공간화랑 큐레이터), 진행: 이경택(VMSPACE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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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숙박장소로 사용되던 보안여관을 영업 목적으로 인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안여관을 인수하게 된 계기와 목적은?
처음에는 보안여관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이 공간이 내게 말을 걸어 오더라.(웃음) 보안여관은 거칠고 게릴라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더욱 작품 전시에 대한 욕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를 ‘문화 숙박업’이라 명명했다. 작품이 머물다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장소인 보안여관은 기존 제도적 규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모호한 성격의 작품들을 담아내면서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기존의 대안공간도 아니고 제도권은 더더욱 아닌 이 모호함. 이 공간에 대한 정의를 강압하지 않았으면 한다.

보안여관이 한동안 특별한 전시공간으로 기능했던 것에 대한 자평은?
보안여관에는 지나는 행인들부터 등산객들 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드나든다. 만일 여기에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대미술에 대한 패배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보안여관은 지나는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이름보다는 통의동 보안여관, 이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과 모호한 정체성이 보안여관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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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보안여관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전시를 밀도있게 지속해야만 공간이 살아나는 것만은 아니다. 전시를 많이 하다보면 적절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년 한해동안은 전시의 횟수를 줄이고 장소의 성격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는 리서치의 과정을 갖기로 했다. 일단 2010년 12월부터 새로운 전시 기획자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리서치에 대해서는 당장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싶다. 또한 운영의 재원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진행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공간이 만들어진 후 컨텐츠가 들어가는 형식만큼은 지양하고자 한다. 공간의 해석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다. 건축가들과도 이런 대안을 공유하고 싶다. 보안여관에 대한 성격규명을 건축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할 생각도 있다. 이는 건축가들에게도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라 생각한다. 건축은 껍데기가 아닌 평면으로 말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공간에서의 문화 동선도 건축가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일년간의 리서치의 결과는 한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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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밀도있게 지속해야만 공간이 살아나는 것만은 아니다. 전시를 많이 하다보면 적절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년 한해동안은 전시의 횟수를 줄이고 장소의 성격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는 리서치의 과정을 갖기로 했다.’

그 리서치는 보안여관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매우 궁금하다. 계획중인 책은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지 계획이 있는가?
기대 이상으로 보안 여관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역시 정신이 없었다. 이제 신중하게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며, 그 과정동안 얻어진 자료들을 모아 한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책은 총 네 챕터로 구성된다. 첫 번째 챕터는 한유주 작가가 보안여관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물론 이는 팩트가 아닌 픽션이다. 최석태와 이중섭과 같은 인물들이 머물다간 보안 여관이 가진 시대성, 역사성에 대한 사실을 두 번째 챕터에 담을 예정이다. 아다시피 보안여관은 80년의 긴 세월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건축적 역사도 지니고 있다. 민현식 교수도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어한다. 또한 근대 건축물이 보통 입면에 출입문이 나지만 보안여관은 옆쪽으로 문이 있다. 근대 건축물 보존측면에서 실사도 필요하며 실측도 필요하다. 이와 같이 보안여관의 건축 공간적인 이야기가 그 세번째이다. 네번째는 이 공간을 지나쳐간 작가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앞의 세 가지 챕터를 가지고 포럼과 토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기반으로 리노베이션에 대한 기획을 하고자 한다. 건물의 정체성과 여관이라는 노마드적 삶의 정체성을 문화예술에 접목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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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이 유지했으면 하는 정체성이랄까, 뭐 그런 것이 있는지?
보안여관이 가지는 공간의 이미지는 화이트 월 보다는 감성적이다. 공간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공간을 백그라운드로만 이용하고 떠나는 작가들이 있다. 보안여관만큼은 밀도 있는 전시로 진행하려 한다. 나는 보안여관이 너무 로컬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한다. 보안여관은 사실 좀 더 큰 차원에서의 기억과 연결된다고 본다. 보안여관이 기존의 대안공간을 대체할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 역시 궁금하다. 이번 리서치가 이에 대한 답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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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_20101022

화가 신영성, 조선족 모델로 한 작품전
기사입력 2010-10-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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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흩어진 사람들’ 展 종로의 여관서 개최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화가 신영성(한국다문화연대 이사장) 씨가 다문화 사업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주로 조선족 동포를 모델로 삼아 그린 작품 50점을 모아 내달 16일 전시회를 연다.

‘흩어진 사람들’로 이름 지은 작품전에는 부모와 자식, 형제 등 가족 간 생이별의 아픔이 뼈에 사무쳐 울거나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그리움>

그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헤어진 고통을 묘사해 현대인도 관계가 끊긴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그림 속에서 현대인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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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화가는 중국 옌지, 지린, 창춘 등지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의 모습을 바탕으로 삼아 그림을 그려 그림 속 인물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내달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이 작품전은 관람객이 이산의 아픔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전시 장소를 여관(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으로 잡았다고 신 화가는 덧붙였다.

판매를 겸해 열리는 이 작품전은 그림 당 판매 최저가를 정하지 않았으며 수익금은 조선족 동포에게 의료 혜택을 주는 사업과 함께 국제다문화 포럼 비용 등에 충당할 계획이다.

<웃는 남자>

신씨는 1985년 설치미술 그룹 ‘난지도’를 결성하며 등단,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작가전(1987년)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년'(2007년)에 초대받았으며 그간 11차례의 개인전과 150여 차례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tsy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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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_20101012

미술관으로 간 3人3色 문인들
<이제하 그림전>, 박노해 두 번째 사진전, 한유주 미디어아트와 협업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입력시간 : 2010/10/12 14:31:25수정시간 : 2010/10/12 14: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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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음악, 문학의 장르 간 융합은 예술사의 오래된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미래파, 다다, 초현실주의, 구체시 등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일렉트로닉 문학 등은 대표적인 미술과 문학의 크로스 오버 사례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떤 형식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이고 있을까?

올 가을 시인과 소설가가 미술관에서 대중과 만난다. 소설가의 미술작품전부터 작가와 미디어아트와의 협업을 선보이는 자리까지, 다양한 전시회가 10월 중에 열리고 있다.

이제하, 거칠면서도 관능적인 그림들

‘그림 그리는 작가’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소설가 이제하 씨다. 그는 흔히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지칭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시로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이기도 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그림은 문화예술계에서 마니아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림의 화두는 대부분 말, 여자, 바다이다. 특히 말을 그리기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은 거칠면서도 관능적이다. 실내에 서 있는 말의 모습은 함께 등장하는 여인과 어울려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방안의 난로 옆, 식탁 곁에 있는 말의 모습에서 우수와 슬픔, 긴장감이 느껴진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심미주의, 자유주의, 초현실주의의 일면을 공유하는 작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오는 12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이제하 그림전>를 연다. ‘밤의 말과 소녀’ 등 지난해 <문인 캐리커처와 소품들>전 이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회에 맞춰 신작 장편 소설 <마초를 죽이려고>(웅진 문학에디션 뿔 발행)도 출간됐다. 최홍명 화백의 집에서 머물며 비서이자 제자로 살게 된 주인공이 화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의 욕망과 열망, 상처와 나약함을 목격하는 것이 주 내용. 최 화백 곁에 붙어 있는 42년 연하의 젊은 여인 서채리와 아버지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눅 들린 자식들, 그림을 손에 넣으려는 장사꾼 같은 화랑가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림은 소설의 모티프가 되고, 작가에게 체화된 문학성은 다시 화폭으로 옮겨진다.

– 전시회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일년 전부터 준비했죠. 인터넷에 소설 연재하면서 그림 그리다가, 서너 달 통영에서 작업했고. 바다 보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작년 전시회보다 그림이 좀더 밝아졌어요.”

– 선생님 그림에는 말이 자주 등장하죠.

“우연히 그리기 시작했는데 변형이 됐다고 하나? 변질이 됐다고 하나? 말에 대한 의미가. 들판에 뛰는 말은 너무 흔하니까 실내에 두어서 긴장감을 주었는데, 야생의 말과 문명화된 도시 사람들, 넓혀 보면 자연과 문명의 긴장감을 형성하려고요. 근데 그림에 말과 여성을 함께 그리면서, 말이 남성의 상징처럼 변하더라고요. (그림 속에) 여성과 말의 긴장 관계가 있죠. 남성적인 파워와 여성적인 반발심, 친화력, 긴장감을 조화하려고 말과 여성을 함께 배치했죠. 어찌 보면 굉장히 문학적인 것인데…. 내 소설에서도 정욕이란 문제가 늘 화두가 되니까요. 지금 나온 소설도 마초의 후예와 제자 사이의 긴장 관계에 관한 겁니다.”

– 회화 작업이 소설 쓰기에 영향을 주나요?

“나는 미술학교(홍익대 조소과)를 다니면서 1920년대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서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림이 문학과 굉장히 가까워요. 인간의 감정을 가장 기본적으로 드러내면서, 강렬한 색채로 형태를 변형시키죠. 정서적인 면을 과장하기도 하고. 그런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으니까 자연히 문학과 가까워졌죠. ‘회화적인 요소를 문학적 언어로 바꿀 수 없나’ 생각하고 소설에 회화적 이미지를 많이 쓰게 되고, 그림에도 문학적 내용이 깔리기도 하고요.”

– 전시회 이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올 가을에 장편 <모래틈>마무리하고 통영에 가서 다시 그림 그려야죠. <모래틈>은 <문학동네>에 연재하다 중단한 작품인데, 중산층 의식에 관한 소설이에요. 올해 안에 장편 마무리짓고, 내년에 작품 하나 더 쓸 겁니다.”

박노해, 펜 대신 카메라를 들다

박노해 시인은 지난 10 년간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누볐다. 국경 너머 살아 있는 진실을 글로는 다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35밀리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난과 분쟁 현장을 찾아 간 그는 지난 1월에 첫 사진전 <라 광야>전을 열었다. 오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두 번째 전시회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4대륙 현장에서 찍은 13만 여 장의 사진 중 엄선한 12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인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쓰지 않은 것처럼, 사진 작가되기 위해서 사진 찍지 않았습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카메라였고,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한 편 한 편마다 단편소설 한 권만큼의 사연이 있습니다.”

분쟁 지역의 역사, 문화, 노동과 저항,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은 작품에 그대로 묻어 나온다. 사진에는 알파카를 재배하며 생계를 꾸리는 페루의 11살 어린 가장, 총살 직전의 체 게바라에게 마지막 식사로 땅콩죽을 끓여줬다는 볼리비아의 여인, 페루 수도 리마의 달동네 산크리스토발 마을, 고향 땅에서 쫓겨나 눈물 흘리며 걸어가는 팔레스타인 여인 등이 담겨 있다. 시인은 “지구촌 가장 아픈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인간의 신성함과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찍으며 틈틈이 시를 썼다. 미발표작 5000여 편의 시 중 몇 편을 골라 이번 주 10여 년 만에 새 시집을 출간한다. 전시작 등 160점의 사진을 담은 박 시인의 첫 사진집 <나 거기에 그들처럼>도 함께 발간됐다.

– 사진이 시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사실 사진을 찍으며 가장 두려워했던 게 ‘시를 방해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어요. 천재성을 타고 난 분들은 현상 하나만 보고도 시를 잡아내던데, 저는 참 힘들게 쓰거든요. 근데 옆에서 이기명(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씨가 격려를 해주면서 ‘빛으로 쓰나 만년필로 쓰나 같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전혀 방해되지 않고요. 제가 10년 동안 침묵 절필하면서 발표는 안 했지만, 사진을 찍으며 만년필로 쓴 시가 5000편이 넘는답니다. 그중 2000편 정도가 전 세계 현장에서 만난 사람에 관한, 국경을 넘는 시더라고요. 젊은이들이 그 시에 울먹이는 걸 많이 봤습니다. 빛으로 쓰나 만년필로 쓰나 시는 시다, 생각합니다. 저는 시가 흐르지 않는 대상은 찍지도 않습니다.”

– 대부분 분쟁지역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 찍을 때 생명의 위협은 없었나요?

“책상에서 시를 쓰다가 시인이 죽을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카메라는 목숨 내놓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활동하면 당연히 체포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근데 저는 분쟁현장을 떠나올 수 있지만, 폭격이 쏟아지는 곳에서 매일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다가 생명의 위협이 있었다’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 사진 찍는 걸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시대에 여전히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하실 건가요?

“사진을 찍을 때 단순한 도구를 선택합니다. 그래야 대상에 가까이 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가 35밀리 필름카메라인데, 그것도 이기명 대표가 알려줘서 35밀리인 걸 알았어요. 지금도 빛을 잘 못 맞춰요. 저는 기술적으로 사진을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을 안 두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이기명 대표도 기술적인 부분을 알려준 적이 없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하려고 합니다.”

 

한유주,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

앞서 두 작가가 글쓰기와 그림 작업을 혼자 병행하는 형식이었다면, 소설가 한유주 씨는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15일까지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 <보안여관, 술화의 물화>전이 그것.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 전자음악가 남상원 씨가 함께 했다.

제목처럼, 전시회는 보안여관이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942년 문을 연 보안여관은 서정주 시인이 김달진, 김동리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던 곳. 2006년까지 숙박업소로 운영되던 이곳은 이듬해 일맥문화재단과 메타로그가 인수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한유주 작가는 이 보안여관을 배경으로 <시회지주(豕會趾鼄): 돼지가 거미를 만나다>와 <광녀(狂女)의 낭보(朗報)>의 두 편의 소설을 쓰고, 이준 작가와 남상원 작곡가는 각각 시각, 음악으로 재해석한 미디어 설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회를 감상하려면 제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술화, 즉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소설)는 문학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한유주 작가가 쓴 2개의 소설은 이 술화에 해당한다. 소설은 20세기 어느 날 보안여관에 투숙한 남자(돼지)와 여자(거미)에 관한 이야기다. 한유주 작가가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를 이준, 남상원 씨는 ‘사물이 풀어낸 이야기’로 전환한다. 두 사람의 작품은 물화에 속한다.

“최근에도 장르 융합을 시도하는 작가와 화가들이 많지만, 대부분 같은 주제로 각자 작업을 하는 형식이 많아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준, 남상원 씨와 최대한 많이 상의하고, 소설의 소재나 형식을 공유하려고 했습니다. 전시 작품도 마찬가지로 참여 작가들이 아이디어들을 공유한 상태에서 작업했고요.”(한유주)

한유주 작가는 지난해에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 씨와 <도축된 텍스트>란 주제로 전시회를 연 바 있다. ‘먹고 맛보는 텍스트’란 모티프로 글자, 단어, 문장, 단락, 글 등 5개의 무대를 구성해 고기를 도축하고, 저미고, 섞고, 조리하고, 먹는 행위를 통해 문학 텍스트와 미디어아트의 융합을 선보였다. 한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며 엽편 소설 <도축된, 도축될, 도축되지 않은, 도축되지 않을>을 쓰기도 했다.

– 기획이 특이합니다. 세 분이 공동작업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이준)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첫째는 ‘이야기가 시각적, 음악적 예술로 승화되려면 어떤 형태가 될까’란 생각에서 시작했고요. 둘째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예술을 경험하는 것을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 작업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이준)”결과적으로 소설이 먼저 나왔지만, 시작은 동시에 했어요. 세 작가들이 대화를 많이 나눈 상태에서 각자 작업하고, 소설 텍스트가 가장 먼저 나왔고요. 그 소설을 읽고 저와 남상원 씨가 전시 작품을 만들었고요. 한유주 작가의 장점은 작품을 참 빨리 쓴다는 거에요.(웃음) 두 번째 소설이 나오면 또 그 작품 읽고 다시 작업하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전시회에서 나오는 사운드 중에 한유주 작가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부분도 있고요. 전시 작품 중에 한유주 작가와 제가 등장하는 것도 여러 개 있습니다.”

– 소설만 쓸 때와 전시회를 염두하고 소설을 쓸 때 차이가 있었나요?

(한유주) “소설 쓸 때 작가가 전적으로 사건, 배경, 인물을 설정하는데, 이 소설은 두 분과 대화를 나누고 설정했죠. 소설에 나오는 사물도, 전시회에서 어떤 오브제로 등장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쓰게 되고요.”

이번 전시에서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를 변용시킨 다양한 오브제를 볼 수 있다. 이준 작가는 시계, 전화, 라디오, 병, 옷, 테이블 등에 전자장치와 소프트웨어를 삽입해 본래 사물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준) “문학텍스트를 미디어 아트로 풀어낼 때 굉장한 매력이 있어요. 한유주 작가 소설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지 않아서 이미지화할 때 자유로운 측면도 있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문학 등 다른 장르의 예술을 융합하는 작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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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2010 세계작가페스티벌’ 개막

시인 베이다오(중국)와 안토니오 콜리나스(스페인), 소설가 모옌(중국) 등 7개국 해외 작가 11명이 참가하는 ‘2010 세계작가페스티벌’이 3일 개막했다. 단국대 국제문예창작센터 주최로 용인, 천안에 있는 단국대 캠퍼스에서 6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바다의 시 정신’을 주제로 한 작가들의 발제와 작품 낭독으로 진행된다. 국내에서는 시인 고은 신경림 천양희 안도현 나희덕,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백낙청씨 등 문인 29명이 참가한다.

김영하 ‘빛의 제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김영하씨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이 지난달 28일 영어판(제목 ‘Your Republic is Calling You’) 출간 이후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미국의 유력 출판사인 휴튼 미플린 하코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실시간 집계되는 판매 순위에서 3일(한국시간) 낮 12시 현재 소설 부문 70위, 그 하위 부문인 ‘스파이ㆍ음모’ 부문에서 17위에 올랐다.

문학과 미디어미술의 만남 ‘보안여관, 술화의 물화’

1942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문을 연 보안여관은 2006년 문을 닫을 때까지 예술가들의 모임터로 유명했던 곳이다. 소설가 한유주,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 작곡가 남상원씨가 이 여관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15일까지 ‘보안여관, 술화(述話)의 물화(物話)’라는 전시회를 연다. 보안여관을 소재로 한 한씨의 소설을 다른 두 작가가 영상, 음악적으로 해석해 만든 미디어설치 작품들을 전시한다. (02)720-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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